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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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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위치
코르도바주 위치

코르도바주(Córdoba)는 아르헨티나 북동부의 주이다.[1][2]

개요[편집]

코르도바주의 면적은 165,321km²이며 인구는 3,567,654(2015년)명이다. 주도 코르도바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접해 있는 주로는 (북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산타페주,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라팜파주, 산루이스주, 라리오하주, 카타마르카주이다. 인구의 거의 41%가 수도 코르도바와 그 주변에 거주하며,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26개 군을 관할한다.

주도 코르도바에는 천주교 성당을 위주로 한 스페인 식민 시절의 많은 건축물이 남아있다. 특히 예수회 수사 유적(Manzana Jesuítica)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산 마르틴 광장 근처의 중심부의 예수회 성당이 유적 중에서 특히 유명한데, 이 성당 내부의 모든 장식물은 금으로 만들어졌다. 성당 옆에는 식민 총독부 건물이 있는데 이 역시 역사적인 유적이다. 고대 로마부터 천년고도인 스페인의 오리지널과 비할바는 아니지만 여기도 신대륙 기준으론 만만찮게 유서 깊다.

교통 및 문화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1961년부터 코스킨(Cosquín) 민속음악 행사가 푸니야(Punilla) 계곡에서 개최되는 등 다양한 축제의 본산지이다. 남쪽의 칼라무치타(Calamuchita) 계곡은 자연 생태계 관광지이다.

산타페주엔트레리오스주와 더불어 이 주는 소위 중앙 지역이라는 경제ㆍ정치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3][4]

자연환경[편집]

서부의 코르도바 산맥이 팜파데아찰라(Pampa de Achala) 고원으로 이어지며, 동부는 평원이 펼쳐진다. 북동부에 마르치키타(Mar Chiquita) 염호가 자리하고, 남부는 호수와 습지대로 이뤄져 있다. 주의 연중 기온은 여름에 16~32°C, 겨울은 2~15°C이다.

역사[편집]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 현재 코르도바 지방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는 토착 집단, 특히 코밍고네스족과 사나비론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알토 페루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페루의 금과 은을 유럽으로 운송하기 위해 대서양의 리오 데 라 플라타 항구로 가는 길을 찾았다. 코르도바 데 라 누에바 안다루시아(현재의 코르도바 시)는 1573년 7월 6일 제로니모 루이스 데 카브레라에 의해 그 길의 중간 지점으로 설립되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몬세라트 대학은 1599년에 예수회에 의해 설립되었고, 1613년에 아르헨티나 최초의 대학인 코르도바 국립 대학교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도시는 페루의 귀금속 거래의 지원을 받아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계속 성장했다. 1761년에 인쇄기가 대학에 설치되었다.

1783년,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이 통합된 지 7년 후, 코르도바 행정구는 현재의 라리오하 주, 멘도사주, 산후안주, 산루이스 주의 수도가 되었고, 이전의 투쿠만 행정구를 둘로 나눴다. 라파엘 드 소브레몬테(Rafael de Sobremonte)는 코르도바 시에 38,800명이 거주했던 첫 번째 주지사였다. 1810년 5월 혁명 이후, 주지사 후안 구티에레스 데 라 콘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군사정권의 권위를 무시하기로 결정한 회의에 참가했다. 프란시스코 오르티즈 드 오캄포는 도시를 공격하여 반대파의 지도자들을 처형했고, 그들 중에는 리오 데 라 플라타의 영국 침공 당시 저항군의 지도자였던 산티아고 드 리니어스가 있었다.

1820년 이후 후안 바우티스타 부스토스가 이끄는 코르도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함께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당시 남미 연합은 입법부도 행정부도 없었다. 리바다비아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추진하는 동안 코르도바는 지방들의 연방 조직을 모색했다. 15년 동안 이 지방은 펠릭스 데 라 페냐 임시 정부 하에서 1868년부터 안정화되기 시작한 내부 반란으로 인해 물에 잠겼다. 사르미엔토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천문 관측소(1871년)와 물리 과학 및 수학 교수진(1873년)이 취임했다.

철도의 건설과 그에 따른 이민은 코르도바에 두 번째 인구 증가의 물결을 가져왔다. 1887년부터 여러 농업 식민지(샌프란시스코, 마르코스 후아레스 등)가 생겨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목에 있던 옛 휴게소인 프라엘 무에르토(벨빌), 페레이라(빌라 마리아), 로스 루체로스(리오 세군도)가 각각 농업, 상업,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8년 코르도바에서 시작된 대학 개혁 운동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 전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교육과정 내용의 현대화와 학생들의 권리 향상은 이 운동과 코르도바의 주요 성과였으며, 아마데오 사바티니 주지사에 의해 크게 제정되었으며, 그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가장 진보적인 주지사가 되었고 나중에 국가 표준을 세울 시민 및 토지 개혁을 제정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아르헨티나의 다른 지방의 노동자들이 자동차 산업의 확장에 이끌려 코르도바의 산업 발전에 이끌렸다. 대부분의 새로운 자동차 산업이 코르도바시와 그 주변에 정착한 것은 아르투로 프론디지 대통령의 임기 (1958–1962) 중이다.

1955년 후안 페론을 대통령직에서 해임한 쿠데타 이후 페론주의 단체들이 나타났다. 이 페론주의 단체들은 다른 사회주의 단체 및 아나키스트 단체들과 함께 1966년에 시작된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군사 독재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임명된 주지사의 강경 자세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면서 노동자와 학생의 정치 참여가 증가했고, 이는 1969년 5월의 폭력적인 반란인 코르도바조로 끝이 났다. 이 반란은 로사리아조와 다른 이들이 이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반영되어 독재자 후안 카를로스 온가니아의 권력을 약화시켰고, 결국 더 온건한 군사 파벌들에 의해 그의 축출로 이어졌다.

코르도바는 1973년 좌파의 폭력, 1974년 우파의 정치 개입, 1976-77년 정부의 만행, 1978-81년 코르도바의 거대한 산업 부문을 강타한 자유무역 정책, 1980년대 부채 위기, 그리고 2002년에 끝난 최근의 극심한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계속 번창해 왔다.

산업[편집]

재무,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 분야가 고르게 발달해 있고 전자, 건설, 자동차 관련의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이외에 농업과 목축업은 주 경제의 10%를 차지한다. 교통 및 문화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교육[편집]

리오콰르토국립대학교[편집]

리오콰르토국립대학교는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주 콰르토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1971년 아르헨티나 정부에 의해 설립 결정이 내려졌고 1972년부터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이 시작됐다. 1975년 루이스 호르게 마에스트레 총장이 5개 학부 시스템을 도입했다. 1993년 임시도서관을 대신할 2,100m2의 새 대학도서관이 설립됐다. 2013년 부근의 역사(驛舍)를 개조한 강의실에서 평생교육이 시작됐고 마이크로생물 및 면역연구소 빌딩이 세워졌다.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1001-1200위권, 라틴아메리카 대학 가운데 201-250위권으로 평가됐다.[5]

교통[편집]

인헤니에로 암브로시오 L.V. 타라베야 국제공항[편집]

아르헨티나 중북부 코르도바주(州)의 주도 코르도바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9km 거리에 있으며 평균해발고도 489m에 위치한다. 공항 코드는 COR(IATA), SACO(ICAO)이다. 정식 명칭은 코르도바-인헤니에로 아에로나우티코 암브로시오 L.V. 타라베야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de Cordoba "Ingeniero Aeronáutico Ambrosio L.V. Taravella")으로 공항 건축가인 암브로시오 L.V. 타라베야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파하스 블랑카스 공항(Aeropuerto de Pajas Blancas)으로도 불린다. 2006년 여객 터미널의 대대적인 확장·개보수 공사를 거쳐 수용 규모를 늘렸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활주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2,464m×45m 크기의 1개소와 콘크리트로 포장된 3,173m×45m 크기의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아르헨티나항공(Aerolineas Argentinas)·아우스트랄항공(Austral Líneas Aéreas)·란항공(LAN Airlines)·코파항공(Copa Airlines)·TAM항공·골항공(Gol Linhas Aéreas) 등의 11개사가 있으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칠레 산티아고(Santiago), 파나마 파나마시티(Panama City), 페루 리마(Lima)를 포함해 국내외 10여 개 도시로의 직항편을 운항한다. 교통편으로는 E-53번 주립도로와 9번 국도가 인접한다.[6]

코르도바[편집]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이며, 아르헨티나 중부 코르도바주의 주도이다. 교통의 요지에 입지한 아르헨티나 산업, 기술의 중심지이며,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남아메리카 교육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코르도바 국립대학교가 있는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팜파스 평원이 완만한 코르도바 산맥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이며, 코르도바 주의 주도이다. 내륙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항공 교통 및 육상 교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및 첨단 기술의 중심지로 아르헨티나 경제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교육 도시로서의 명성도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학생 운동사와 노동 운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코르도바 시내에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코르도바의 예수회 수사 유적과 대목장(Manzana Jesuítica y Estancias de Córdoba)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과 관광 명소가 있으며, 교외에는 캠핑과 레저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가 많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카타마르카주〉, 《위키백과》
  2. 코르도바(아르헨티나)〉, 《나무위키》
  3. 코르도바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코르도바 주〉, 《요다위키》
  5. 리오콰르토국립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6. 인헤니에로 암브로시오 L.V. 타라베야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7. 코르도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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