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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오네스주(Provincia de Misiones)는 아르헨티나의 동북부에 있는 주이다.[1][2]
목차
개요[편집]
미시오네스주의 면적은 29,801㎢이며 인구는 1,060,199명(2006년)이다. 주도는 포사다스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다. 북서쪽으로 파라과이, 북쪽ㆍ동쪽ㆍ남쪽에는 브라질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서쪽의 코리엔테스주와 이어져 있다. 17개 군을 관할한다. 미시오네스주는 아르헨티나의 주 중 투쿠만주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주이다.
국경선을 건너지 않고 아르헨티나의 다른 지방으로 가려면 무조건 코리엔테스주를 통과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다. 원래 파라과이와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었으나 삼국 동맹 전쟁을 걸치면서 완전히 아르헨티나령이 되었다가 이후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에게 동쪽 절반을 할양하면서 현재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교통은 불편하며, 파라나강의 기선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포사다스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하는 기차편이 있다.
미시오네스 내의 다수는 이민자들의 후손이다. 아르헨티나 다른 지역에서의 이민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경유해 온 것과는 달리, 미시오네스에 정착한 이민자들 상당수는 브라질 남부를 경유해서 들어 왔다. 미시오네스에 정착한 민족은 이탈리아인, 독일인, 스페인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프랑스인, 스위스인, 러시아인, 덴마크인, 아랍인이 있다.
17∼18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단이 정착하여 있었던 데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3]
자연환경[편집]
파라나강(파라과이와의 국경)과 우루과이강(브라질과의 국경) 사이에 길쭉하게 뻗은 하간 지역의 북동부(파라나고원)를 차지한다. 용암으로 된 대지이며, 절벽 사이로 급류가 흐른다.
상당한 양의 철분을 포함한 암석이 토양의 일부를 구성해, 토양이 적색을 띠고 있다. 고원 중앙에서는 미시오네스 산맥이 솟아있고, 최고 지점은 세로 린 콘의 벨날드 이리고젠 부근의 843m이다. 주 북서부의 푸에르토 이구아수 부근에 위치한 이구아수 폭포는 이구아수 강 최대의 폭포이다. 이 폭포는 브라질의 파라나주와 폭포를 공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파라과이와의 국경선도 가깝다. 아열대기후로 건기가 없다. 따라서 미시오네스주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더운 주 중의 하나이다. 식물은 미시오네스 열대우림을 이루고 있다.
역사[편집]
원래 미시오네스주에는 과라니족의 고유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 땅을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은 1527년 12월에 파라나강을 거슬러 올라가 아피페 폭포를 발견한 세바스티안 카봇트였다. 1541년에 알 바누녜스 카베이사 데 바보가 이과수 폭포에 도달했다.
17세기에는 예수회 전도사가 이 곳에 왔다. 전도사단은 이 땅에 일부 예수회 전도소를 마련했다. 몇 년 후에는 그들이 건설한 전도소는 30개를 넘었다. 과라니족은 이미 농경 생활에 익숙해져 정착 생활을 하고 있었다.
1814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정권의 장관이었던 헤르바시오 포서다스는 미시오네스주를 아르헨티나령(당시 아르헨티나는 준독립 상태였지만)에 편입시키고 코리엔테스주에 편입되었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여러 나라의 권리 주장으로 인해 실효 지배를 하지 못했다.
1838년에는 파라과이가 미시오네스주에 사는 인디헤나의 과라니족은 파라과이의 주요한 구성 민족인 것을 이유로 미시오네스를 지배했다. 1865년에 삼국 동맹 전쟁이 발발하면서, 파라과이군은 다시 미시오네스를 침공했다. 1876년에 아르헨티나와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서, 파라과이는 미시오네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했다.
1876년, 니콜라스 아베자네이다 대통령은 친구인 이탈리아군 귀족으로, 피에트로 카네스트로 장군이 이민 및 식민법을 공표하는 것을 도왔다. 그 법률은 광대한 아르헨티나령의 미개간지의 인구증가를 위해 유럽에서 이민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이 법률의 시행에 따라 몇 개의 식민 회사가 설립되었다. 그러한 회사 중의 하나가 Adolf Schwelm's Eldorado Colonizacin y Explotacin de Bosques Ltda. S.A.였다. 엘 도라도는 1919년 9월 29일에 돈 아돌프 J 스치웨룸에 의해서, 파라나 상류의 항구와 함께 설립되었다.
미시오네스주는 남 브라질에서 온 많은 유럽계 이민자들과 소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및 동유럽, 특히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였다.그 이후로, 미시오네스는 경제적 성장을 거듭하여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키워왔다. 그리하여 미시오네스는 순조롭게 아르헨티나의 주로 통합되었다. 오늘날에는 주의 영유권에 대해 국제적인 분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53년 12월 10일 미시오네스는 주로 승격되었고, 1958년 4월 21일 헌법으로 승인되었다. 오늘의 미시오네스는 프랑스 문화에 매우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산업[편집]
농업 식민지와 농장에서 오렌지와 포도 등 과일 플랜테이션, 마떼 차 등을 경작, 및 그러한 제품 가공을 위한 공장과 건조하는 것이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이었다.
미시오네스주의 경제는 관광과 벌목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주로 이용되고 있는 나무는 파라나송, 구아탐브, 삼나무, 페티리브, 향나무, 등나무, 안치코, 유칼립투스 및 쿠에이크이다. 그 밖에 수입원으로서는 마떼 차, 차와 소량의 담배, 사탕수수, 쌀, 및 커피의 재배이다.
교통[편집]
카라타스 델 이구아수 국제공항[편집]
아르헨티나 북동부 미시오네스주의 푸에르토 이구아수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11km 거리에 있으며, 평균해발고도 279m에 위치한다. 공항 코드는 IGR(IATA), SARI(ICAO)이다. 브라질·파라과이 국경과 인접하며, 이구아수 폭포와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브라질 최남부의 이구아수 국립공원(Parque Nacional Iguaçu)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공항 명칭은 스페인어로 이구아수폭포를 뜻한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3,300mx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하며, 표면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취항 항공사로는 아우스트랄항공(Austral Líneas Aéreas)·란항공(LAN Airlines)·아르헨티나항공(Aerolineas Argentinas)의 3개사가 있으며 살타(Salta)·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로사리오(Rosario)·코르도바(Córdoba)·멘도사(Mendoza)의 국내 5개 도시를 연결한다. 교통편으로는 101번 국도가 지난다.[4]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편집]
이구아수 국립공원은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주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198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르헨티나 북동부의 미시오네스주 노르에스트(Nord-Est)에 있는 이구아수폭포와 그 주변의 아열대 밀림 지역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다. 이구아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지대에 걸쳐 있는데, 이구아수는 '거대한 물'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193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생물학적 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4년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세계유산(자연)으로 등재되었다. 북쪽으로 경계를 이루는 브라질 영내의 이구아수국립공원은 1986년에 별도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된 지정 면적은 5만 5000ha이다. 브라질의 이구아수국립공원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구아수 폭포를 공유하는데, 아르헨티나 영내의 면적이 더 넓다. 이 지역에는 남아메리카 인디언인 카잉강족(Caingangues)이 처음 정착하였으며, 이후 투피과라니족(Tupi-Guaranies)이 이들을 몰아내고 오랫동안 거주하였다. 1541년 스페인의 탐험가 알바르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Don Alvar Nuñes Cabeza de Vaca)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발견하였으며, 그로부터 약 10년 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구아수 폭포는 이구아수강이 파라나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상류 쪽으로 약 23㎞ 지점에 높이 60~80m인 270여개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 너비 약 3㎞에 걸쳐 반구형(半球形)으로 형성되어 있다. 수많은 연속된 폭포들이 온종일 굉음과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관을 이루고, 여기서 빚어내는 엄청난 수증기로 인하여 주변의 식생(植生)이 무성하다. 이 지역의 식생은 열대산 목본성 덩굴식물인 리아나((liana)와 착생식물(epithyte)이 풍부한 다습 아열대 삼림이 대부분인데, 주변국인 브라질이나 파라과이의 삼림과 비교하면 식물종의 다양성이 덜하지만 2000여 종의 관다발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지역에 서식하는 대표적 동물로는 맥류(貘類 tapir)와 작은개미핥기·긴꼬리미국너구리붙이(coati)·너구리 등이 있다.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한 포유동물로 오실롯(ocelot)·재규어(jaguar)·호랑고양이(Oncilla) 등이 서식하며, 큰개미핥기·브라질수달도 발견되었다. 영장류로는 검은머리카푸친(black-capped capuchin)과 검은짖는원숭이(black howler monkey 또는 검정고함원숭이)가 서식한다. 조류는 특히 다양하여 아르헨티나에 서식하는 조류의 거의 절반이 이 지역에 서식하며, 이중에는 멸종위기종인 브라질비오리(Brazilian merganser)도 포함된다. 이밖에 멸종 위기에 처한 파충류로 넓은코카이만(broad-nosed caiman)도 서식한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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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미시오네스주 (아르헨티나)〉, 《위키백과》
- ↑ 〈미시오네스〉, 《나무위키》
- ↑ 〈미시오네스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카라타스 델 이구아수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 〈이구아수 국립공원(아르헨티나)〉,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미시오네스주 (아르헨티나)〉, 《위키백과》
- 〈미시오네스〉, 《나무위키》
- 〈미시오네스주〉, 《네이버 지식백과》
- 〈이구아수 국립공원(아르헨티나)〉, 《네이버 지식백과》
- 〈카라타스 델 이구아수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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