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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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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위치
살타주 위치

살타주(스페인어: Provincia de Salta)는 아르헨티나의 북서부에 자리 잡고 있는 주이다.[1][2]

개요

살타주의 면적은 155,488km²이며 인구는 1,333,365명(2015)이다. 주도는 살타이다. 동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포르모사주, 차코주,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투쿠만주, 카타마르카주이다. 또 후후이주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북쪽으로는 볼리비아, 파라과이와, 서쪽으로는 칠레와 접한다. 23개 군을 관할한다.

아르헨티나 전역과 연결되는 철도· 도로· 항공망을 갖추고 있다. 볼리비아와 칠레의 항구 안토파가스타까지 철도로 연결되며 볼리비아 국경 근처에 있는 베르메호 계곡 상류에는 정유공장과 유전이 있다.

토착민 거주 비율이 높은 곳으로, 주도인 살타에 인구의 1/3이 거주한다. 관광명소로 200km의 살타 포도주의 길(Ruta del vino de Salta)이 조성되어 있고, 해발 3,773m에 칠레의 안토파가스타까지 이어지는 구름속의 기차(Tren a las Nubes)가 있다.[3]

자연환경

서쪽은 아타카마 고원으로 칠레와 국경선을 마주하고, 북쪽은 후후이주, 북동쪽은 고온다습의 신열대구 지역인 융가스(Yungas) 밀림 지대로 볼리비아와 경계를 이룬다. 주 서부는 해발 3,500m의 광대한 염전 평지인 아타카마 고원과 접하며 높이 치솟은 안데스 산계가 오리엔탈 산맥으로부터 케브라다스(깊고 넓은 협곡으로 [[안데스 산맥] 최고봉에 이르는 통로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를 거쳐 골짜기 지대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골짜기 지대는 동쪽으로 안데스의 낮은 들과 저지대 평원인 차코로 연결되며 이처럼 동쪽으로 경사진 서부 베르메호 강을 비롯한 여러 작은 강들이 이 지역을 지나 차코 평원으로 흘러간다. 고원은 소수의 코야 인디언들의 고향이다. 북부와 중부에는 바리투 국립공원과 엘레이 국립공원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이 두 곳은 차코 평원과 안데스 산맥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아열대 우림으로 뒤덮여 있어서 대부분 접근하기 어렵다.

날씨는 따듯하고 건조하며, 연 평균 756mm의 강수량과 평균 16.4°C의 온도로 여름에는 평균 20.4°C 그리고 겨울에는 평균 10.8°C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1월~2월은 연중 비가 가장 많이 오는 계절이다. [4]

역사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에 현재 살타 지방에는 수많은 토착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칸어를 사용하는 키르메스(Kirmes)와 휴마와카스(Humahuacas)를 포함하여 다양한 부족을 형성했다. 아타카마는 차코 지역의 푸나와 마타코스 사이에서 생활했다. 이 지역에 발을 디딘 최초의 정복자는 1535년 디에고 데 알마그로 였다. 에르난도 데 레르마는 오로페사의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 백작 총독의 명령에 따라 1582년에 산 펠리페 데 레르마를 설립했다. 도시의 이름은 후에 '산 펠리페 데 살타'로 변경됐다. 1650년까지 도시에는 약 500명의 주민이 거주했다. 1774년에 살타와 타리하 사이에 산 라몬 데 라 누에바 오란이 설립되었다. 1783년 도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살타 델 투쿠만의 수도는 산미겔 데 투쿠만에서 살타로 이전되었다. 이 영토는 1813년 살타 전투에서 스페인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1826년 페루 부왕령의 공격을 가끔 받았다. 볼리비아는 1826년 아르헨티나 독립 선언 이후 발생한 아르헨티나 내전을 이용해 타리하를 합병했다. 1834년 후후이는 살타에서 물러나 독립주가 되었다. 살타의 국경은 1900년에 더욱 축소되었고 야쿠이바는 볼리비아에 패했다. 로스 안데스의 중앙 정부는 산 안토니오 데 로스 코브레스를 수도로 1902년에 설립되었으며 살타는 16세기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들어오는 이주민들의 관문이었다. 1943년 아타카마 고원의 로스안데스 준주가 해체됨에 따라 살타주는 이전의 산안토니오데로스코브레스 주와 파스토스그란데스주를 흡수하게 되었다.[5]

산업

주 서부지역에서는 붕사와 소금이 채굴된다. 또한 금· 은· 철광석 등도 소량 매장되어 있다. 고도에 따라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주요산물은 담배· 포도· 옥수수 등이며 살타 시 남쪽에 있는 레르마 계곡에서 재배된다. 레르마 계곡의 후라멘토 강에는 큰 수력발전소가 있다.

식민지 시대에 큰 목축시장이 섰던 곳으로 이때 이후로 지금까지 상업 중심지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오늘날 경제는 다양한 형태의 농업·제재업·축산업·광업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살타의 2006년 경제 규모는 51억 4,100만 달러, 1인당 4,764달러로 전국 평균보다 45% 낮은 것으로 추산된다다. 2012년 경제는 306억 1,300만 페소(약 67억 4,300만 달러) 또는 1인당 23,971페소(약 5,280달러)로 추산된다. 제조업은 살타에서 경제에 20%를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농업 및 그 파생 산업은 주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남아 있으며 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담배, 사탕수수, 포도 재배가 가장 중요하며 이 지역 수출품의 대부분을 생한다. 기타 작물로는 옥수수, 콩, 감귤류, 바나나, 토마토가 있다. 사탕수수는 살타에 있는 공장에서 처리된 후 아르헨티나와 전국으로 배송된다.

살타

살타(Salta)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위치한 살타주의 주도이다.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따라 인구 46만 4천 678명이 거주를 하며, 아르헨티나의 규모 면에서 여덟번 째에 해당하는 도시이다. 1582년 투쿠만의 총독 에르난도 데 레르마가 산펠리페데레르마라는 이름으로 세웠다. 1813년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때 스페인 왕의 군대가 패전하고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에게 항복한 곳이기도 하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성당을 비롯한 식민지시대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식민지시대의 건축양식을 가미한 현대식 건물도 많다.

레르마 계곡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해발 1,152m에 자리를 잡은 안데스산맥의 도시이다. 산 마르틴 미겔 데 구에메스 공항이 시내의 남동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투쿠만, 후후이, 코르도바, 그리고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와 정기편이 운항되고 있다. 날씨는 따듯하고 건조하며, 연 평균 756mm의 강수량과 평균 16.4 °C의 온도로 여름에는 평균 20.4 °C 그리고 겨울에는 평균 10.8 °C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1월~2월은 연 중 비가 가장 많이 오는 계절이다. 봄이 되면 살타는 종종 혹독하고 긴 먼지 폭풍으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한다.

해마다 9월에는 '기적의 축제'가 열린다. 이는 1692년 강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성상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자 멈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또한 6월 17일에는 1814~1821년 스페인 정부에 대항한 가우초 지도자 마르틴 궤메스 장군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살타의 도시 중앙에는 18세기, 19세기, 20세기에 걸친 인상 깊은 건축물들이 있다. 《7월 4일 광장》 주변에 시계 방향으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대성당》과 프랑스식의 《현대 예술 박물관》, 전 시청사였고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카빌도》가 있고 잉카 문명의 유적을 전시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고산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광장은 갤러리로 둘러 쌓여 있고, 그 아름다움은 종종 TV 광고의 배경으로 등장하게 한다. 2004년 방영된 시바스 리갈 TV 광고가 대표적인 작품이다.[6]

관광

구름으로 가는 열차(Train to the Clouds, Tren a las Nubes)

살타에서 출발하여 해발 4,000m를 넘나들며 험준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넘어가는 철도가 있다. 1921~1948년까지의 장기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되었는데, 살타 부근에서 채굴된 광물을 칠레의 항구로 운송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최고 높이가 4,220m에 이르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철도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된 도로가 생기고 항공 운송이 발달하면서 철도의 중요성이 떨어지게 되어 현재는 관광용으로 운행되고 있다.

열차는 21개의 터널, 13개의 고가도, 31개의 다리를 달리며 구름을 향해 끝없이 올라간다. 40km 지점에서부터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 주는 토로 계곡(Quebrada del Toro)이 시작되며,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해발 2,675m의 푸에르토 타스틸(Puerto Tastil), 길을 돌아 나오는 디에고 데 올마르고(Diego de Almagro) 등을 지나 3,774m의 산 안토니오(San Antonio)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살타에서 출발하여 15시간에 걸친 여행 끝에 돌아오는 왕복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티켓은 살타 시내의 5월 9일 광장 근처에 밀집해 있는 여행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1인당 $120이며, 4월에서 11월까지만 운행한다. 12월에서 3월에 이르는 여름 기간에는 비로 인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차는 매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1~2회 정도 운행하고 있으며, 오전 7시에 출발하여 밤 10시쯤 살타로 되돌아 온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살타주〉, 《위키백과》
  2. 아르헨티나/행정구역〉, 《나무위키》
  3. 살타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살타(Salta)〉, 《스타투어》
  5. 살타주 Salta〉, Academic Accelerator
  6. 살타〉,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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