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월드컵(World Cup)은 국제 축구 연맹(FIFA,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이 주최하는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대항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이다. 월드컵은 4년마다 개최되며, 전 세계의 축구 국가대표팀이 참가하여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이다.
목차
개요
월드컵은 세계선수권을 겨루는 국제적인 운동경기의 상배(賞杯)나 선수권대회, 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축구경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축구는 월드컵축구대회라 하여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로 4년마다 열리는데, 제1회 대회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당시 연맹회장인 J.줄리메가 제공한 줄리메컵이 이 대회에서 3번 우승한 브라질에게 영구히 넘어갈 때까지는 줄리메컵 세계선수권대회라고도 하였다. 그 뒤 FIFA에서 우승컵을 제공하여 FIFA월드컵이라고도 한다.
배구의 경우도 세계선수권대회와 쌍벽을 이루는 대회이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최하여 남자월드컵대회는 1965년부터 4년마다, 여자는 1973년부터 4년마다 열리고 있다.
골프는 1953년에 캐나다컵으로 시작되었으며 프로 2명으로 된 국가별 팀 대항전인 스트로크 플레이가 월드컵이라 불리고, 스키는 1967년부터 열리는 알펜종목 종합경기, 하키는 국제하키연맹 주최로 1971년부터 2년마다 열리는 토너먼트대회가 월드컵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1]
역사
이전의 국제 대회들
세계 최초의 A매치는 1872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대 잉글랜드의 경기였으며, 1884년에 시작된 첫 국제 대회인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영국 정기전)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이 대회는 1984년까지 이어졌다.) 이때 축구는 영국과 아일랜드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세기가 지나 다른 지역에서도 축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1900년, 1904년, 1906년 하계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이 대회에서 별도의 메달은 수여되지 않았다.
월드컵의 역사는 FIFA가 1904년에 설립된 이후로 FIFA가 주관하며 올림픽과는 별개로 국가대항 축구 대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1906년에 스위스에서 있었다. 하지만 FIFA의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이 대회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올림픽 대회가 아마추어 팀들 간에 계속 경쟁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가운데 1909년, 토머스 립튼은 토머스 립튼 트로피 선수권 대회를 토리노에서 개최한다. 립튼 선수권은 각기 한 국가를 대표하러 나온 개인 클럽간(국가 대표팀간이 아닌)의 대회였다. 대회는 때때로 첫 번째 월드컵이라고 묘사되곤 했으며,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스위스의 일류 프로 클럽팀이 주로 참가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이 대회에 관여하려 않았으며, 프로팀들을 보내달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립튼은 카운티 더럼에 있는 아마추어 팀인 웨스트 오클랜드를 잉글랜드 팀을 대표하여 대신 초대했다. 웨스트 오클랜드는 대회에서 우승했고, 1911년의 대회에서도 성공적으로 타이틀을 방어, 대회 규칙에 따라 트로피를 영원히 보유하게 되었다.
1914년에, FIFA는 올림픽에서의 축구 대회를 '세계 아마추어 축구 선수권대회'로서 승인해주었고, 대회의 관리를 맡게 되었다. 그 결과 1920년 하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의 대륙 간 축구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이집트와 13개의 유럽 팀들이 참가하였다. 금메달은 벨기에가 차지하였다.
1928년에 FIFA는 올림픽과는 별개로 직접 주관하는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FIFA는 첫 번째 FIFA 월드컵 개최국을 1924년 하계올림픽과 1928년 하계올림픽의 축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1930년에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우루과이로 결정한다.[2]
첫 번째 월드컵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있는 센테나리오 경기장. 첫 번째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장소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32년 하계올림픽에서는 개최국인 미국에서 미식축구의 인기 탓에 축구의 인기가 낮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계획이 없었다. 또한, FIFA와 IOC의 아마추어 선수의 지위에 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축구는 올림픽에서 제외되었다. 이어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쥘 리메는 첫 번째 월드컵 대회를 1930년 우루과이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각 국가의 축구 협회들은 대회 참가 초청을 받았지만, 유럽 지역의 팀들에는 우루과이가 대서양을 횡단해야 하는 먼 나라였기 때문에, 큰 지출과 오랜 여정이 불가피했다. 그런 이유에 따라 대회 2달 전까지도 팀을 보내겠다는 확약을 한 유럽 국가는 없었다. 결국, 쥘 리메는 유럽 팀들을 한 팀이라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우루과이는 모든 체류비와 차비를 출전팀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끝에 여비 및 체류비용이 공짜라는 점과 쥘 리메의 눈치를 봐서 벨기에, 프랑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가 대회 참가에 응했다. 이리하여 유럽에서 4팀, 북중미에서 2팀, 남미에서 7팀, 총 13개 팀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월드컵 개막식은 두 경기가 동시에 열렸으며, 프랑스와 미국이 각각 멕시코를 4 - 1로, 벨기에를 3 - 0으로 꺾고 승리했다. 월드컵 사상 첫 번째 득점은 프랑스의 루시앙 로랑이 기록했다. 우루과이는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93,000명의 관중 앞에서 아르헨티나를 4 - 2로 꺾으며 첫 번째 FIFA 월드컵 우승 팀이 되었다.[2]
월드컵 대회가 맞은 시련
초창기 월드컵 대회가 직면했던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대륙 간 장거리 여행의 어려움이었다. 첫 번째 대회가 우루과이에서 열렸을 때에는 유럽팀들이 장거리 여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많은 팀이 불참했다면, 반대로 유럽에서 열린 두 번째, 세 번째 대회에서는 남미 팀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대회에 불참하였다.
두 번째는 전쟁 문제로, 네 번째 대회는 원래 1942년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1936년 8월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23차 FIFA 총회에서 독일이 공식적으로 개최 신청을 했다. 곧이어 브라질도 월드컵 개최를 신청하였다. 1939년 6월에는 아르헨티나도 개최 신청에 참여했다. 하지만, 제4회 대회의 개최국이 결정되기 전인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이 탓에 다음 대회인 1946년 대회도 자동으로 무산되었다.
종전 후인 1946년 7월 26일 룩셈부르크 시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제4회 대회를 1949년 브라질에서, 제5회 대회를 1953년 스위스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개최국이 결정된 다음날, 대회 준비를 이유로 개최가 한 해씩 미뤄져 제4회 대회는 1950년, 제5회 대회는 1954년 개최되게 되었다.[2]
시련 이후 계속되는 성장
1950년 FIFA 월드컵은 처음으로 영국의 팀들이 참가한 대회였다. 영국의 일부 팀들은 그들과 전쟁했던 나라들과의 대결하기를 꺼렸고 또 그들의 팀들이 다른 나라의 축구에 영향을 주는 것을 항의하고자 1920년에 FIFA에서 탈퇴했으나, 그러나 FIFA의 초청에 따라 1946년에 다시 가입했다. 추가로 1950년 월드컵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시각과 동일한 시각에 개막되었다. 그리고 1950년 대회에서는 또한, 제1회 대회의 우승국이었던 우루과이가 이전 두 대회의 참가 거부 끝에 복귀했다. 우루과이는 이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우승했고 이 대회는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 하는 역사상 유명한 경기로 후에 남게 되었다. 우루과이에 패배한 브라질은 그 굴욕을 참지 못해 유니폼의 색깔이 변경되었다.
1934년부터 1978년 대회까지는 1938년 대회에서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예선 통과 후에 흡수됨에 따라 15개 팀의 참가로 치러진 경우와, 1950년 대회에서 인도, 스코틀랜드, 터키가 기권해서 13개 팀의 참가로 치러진 경우를 제외하면 총 16개의 팀이 본선에서 경쟁을 치렀다. 가장 많은 참가를 한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과 남미에서 온 국가들이었으며 일부 소수의 북중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팀들이 참가했다. 이들 팀은 대부분 쉽게 유럽 팀들과 남미 팀들에 패했다. 1982년까지 유럽과 남미를 제외하고 1라운드를 벗어난 팀들은 1930년 대회에서 준결승에 들었던 미국, 1938년 대회에서 8강에 들었던 쿠바, 1966년 대회에서 8강에 들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70년 대회에서 8강에 들었던 멕시코가 전부였다.
본선 무대는 1982년에 이르러 24개 팀으로 늘어났고 이때 조별리그를 적용함에 있어 조3위팀끼리의 승점 차이로 4팀을 진출시키는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1998년에는 32개 팀으로 늘어나며 이때부터 조 3위는 무조건 탈락했는데, 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북중미 팀들의 더 많은 참가를 가능하게 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이들은 최근 예선 기준으로 0.5장의 티켓만을 배분받아 본선 진출을 완전히 보장받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들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팀들이 늘어나고 있다. 멕시코는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8강에 들었으며 카메룬은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8강에, 불가리아는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대한민국은 2002년 FIFA 월드컵에 준결승이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2002년 대회에서는 그 외에 세네갈과 미국이 8강에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과 남미 팀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예로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8강에 든 팀이 오직 그들이었음이 이를 반증한다. 이와 같은 특정 지역의 편중 현상은 때로는 월드컵을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럽, 남미의 지역 대회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며, 그 밖의 대륙들에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2006년 대회의 예선에는 198개 팀이 참가했으며 2010년 FIFA 월드컵에는 204개 팀이 본선 진출을 위해서 예선에 참가했고. 2014년 브라질에서 개최된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이 참여한 207개 국가가 예선에 참여했다.[2]
다른 FIFA 대회들
여자 축구에서 FIFA 월드컵과 동등한 대회라 할 수 있는 FIFA 여자 월드컵은 1991년에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여자 대회는 규모와 이력 면에서 남자 대회보다 작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다. 경기 참가자들의 숫자가 2007년 대회에서는 120팀으로, 1991년 대회의 참가팀들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다른 스포츠들과는 다르게, 올림픽에서의 축구는 FIFA 월드컵이 생성된 이래로 크게 중요도가 높은 대회는 아니다. 최근에 이 대회에는 23세 미만의 선수들만이 참가하며, 23세 이상의 선수는 한 팀에 3명씩 참가할 수 있다.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은 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1년 전에 해당 연도 월드컵 본선 개최국에서 열리는 대회로 다가오는 월드컵의 예행연습에 해당한다. 이 대회는 FIFA 대륙 연맹 대회에서 우승한 6개의 팀과 FIFA 월드컵 우승 팀, 개최국 등 모두 8개 팀이 참가한다.
FIFA는 또한 유소년 축구(FIFA U-20 월드컵, FIFA U-17 월드컵, FIFA U-20 여자 월드컵, FIFA U-17 여자 월드컵), 클럽 축구(FIFA 클럽 월드컵) 그리고 풋살(FIFA 풋살 월드컵)과 비치사커(FIFA 비치사커 월드컵)와 같은 축구 변형의 국제 대회를 주관하고 있다.[2]
트로피
1930년부터 1970년까지 쥘 리메 컵이 월드컵 우승 팀에 수여되었다. 원래 이것은 단순히 '월드컵(World Cup)' 혹은 '쿠프 뒤 몽드(Coupe du Monde)'라고 불렸지만, 1946년에 월드컵 대회 창시자인 FIFA 회장 쥘 리메의 이름을 따 다시 트로피의 이름을 다시 지었다. 1970년에, 브라질이 FIFA 대회에서 3회 우승을 함으로써 그들이 영구 소유할 권한을 얻었다. 그러나 그 트로피는 1983년에 도난당했으며 이후 되찾지 못하고 절도범들에 의해 팔려 용해되어, 현재는 복제품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1970년 이후에 FIFA컵으로 알려진 새 트로피가 디자인되었다. 7개 국가에서 온 FIFA의 전문가들은 53개의 제출된 모델들을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실비오 가자니가의 작품을 선정했다. 새 트로피는 36센티미터 높이에 18캐럿 금으로 만들어졌고 6.175kg의 무게를 지녔다. 기본 바탕에는 준보석의 공작석 2층을 포함했으며 반면에 트로피의 아랫부분은 1974년부터의 FIFA 월드컵 우승국과 조각된 연도를 새길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자니가의 트로피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았다.'선은 기본으로부터 솟아, 나선 모양으로 오르며, 세계를 수용하려 뛰어오른다. 이 꼼꼼하고 역동적으로 조각된 몸매는 두 선수가 승리의 감동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이 새 트로피의 원물은 FIFA의 소장품이며, 도난을 대비하여 23만 달러의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다. 월드컵 우승 팀의 주장이 수여받고 나서 대표팀 감독하고 선수들이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는데, 그것은 도금한 모조품이다. 아르헨티나, 독일(서독), 이탈리아, 브라질이 두 번째 트로피를 두 번씩 소유한 바 있으며 프랑스가 한 차례씩 소유한 바가 있다. 이 트로피는 장식판에 우승 국가명이 모두 새겨질 2038년까지 존속되며, 그 이후에는 세 번째 트로피를 제작할 예정이다.[2]
개최국 선정
초창기 월드컵은 FIFA 평의회에서 개최될 국가를 배분하였다. 축구에서 두 중심축이었던 유럽과 남미 사이에는 배로 3주나 여행해야 했기 때문에 지역 선정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첫 번째 월드컵은 단 4개의 유럽 팀만이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다음 두 번의 월드컵은 모두 유럽에서 열렸다.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은 월드컵이 두 대륙 간에 순환개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중 두 번째로 유럽에서 개최되도록 결정이 났던 프랑스에서의 1938년 FIFA 월드컵은 논쟁거리였다. 그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이 대회에 불참하였다.
원래는 1942년에 월드컵이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하여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FIFA는 쥘 리메 컵이 나치 독일에 몰수당할 것을 걱정해야만 했다. 당시 FIFA 부회장이자 이탈리아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오토리노 바라시는 나치로부터 쥘 리메 컵을 몰수당하지 않기 위해 로마에서 몰래 자신의 집으로 쥘 리메 컵을 가져온 뒤 신발 상자에 넣고 이 상자를 침대 밑에 숨겼다. 전쟁으로 인하여 1950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될 때까지 월드컵은 개최되지 못하고 있었다.
1958년 FIFA 월드컵 이후에 FIFA는 미래의 대회 참가 거부나 논쟁을 피하고자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이 매번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형태를 취하도록 했으며 이것은 1998년 FIFA 월드컵까지 유지되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FIFA 월드컵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대회이며 또한 2개국 이상이 공동 개최한 첫 대회이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아프리카 나라가 된다. 2014년 FIFA 월드컵은 브라질에서 개최되며 이는 1978년 FIFA 월드컵 이래로 처음으로 남미에서 열리는 대회가 되며, 또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연속적으로 개최되는 첫 사례가 된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유럽과 남미에서만 개최되다가 그 이외의 지역의 월드컵 개최에 대해서도 신중한 논의가 된 끝에 1970년 FIFA 월드컵에 멕시코를 개최국으로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 이외의 지역에서 월드컵 개최가 시작되었으며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미국이 개최를 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유럽과 미주 지역 이외의 대륙에서 월드컵을 개최하자는 논의가 진행되어 2002년 FIFA 월드컵에 아시아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개최를 하게 되었고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개최하게 되었다.
개최국은 현재 FIFA 집행위원회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단기이양식 선거 방식 아래 행해진다. 개최 희망국은 FIFA로부터 유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요소와 준비단계에 대한 설명이 들어간 개최 협약(Hosting Agreement)을 받는다. 유치 후보국의 협회에서는 입후보 공식 확인을 위한 확인서를 받는다. 그 후에, FIFA는 해당 국가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유치 조건을 만족하는지를 알아본 후 그 국가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된다. 월드컵 대회를 개최할 국가를 누가 할지는 현재 해당 대회의 개최 6 ~ 7년 전에 결정된다.
2010년과 2014년 월드컵에서, 본선 대회는 대륙 간 순환 개최를 원칙으로 해서 그 대륙에 속한 국가들만이 대회 유치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2006년 FIFA 월드컵 개최국 선정을 위한 투표에서, 독일이 남아공을 이기고 개최하게 되면서 생긴 여러 논란으로 말미암아,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은 2018년 이후로는 폐기되며 그로 말미암아 이전 두 대회를 개최했던 대륙(아프리카, 남미)을 제외한 2018년 FIFA 월드컵은 러시아에서 개최되며 2022년 FIFA 월드컵은 서남아시아(중동) 지역의 카타르에서 개최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2014년 대회 개최국 선정에서 벌어졌던 브라질의 단독 후보와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이유가 부분적으로 있다.[2]
형식
- 예선전
- 참가팀: 월드컵 예선에는 FIFA에 가입된 모든 국가가 참가할 수 있다. 현재 FIFA 회원국은 약 211개국이다. 예선은 각 대륙별 축구 연맹이 주관하며, 각 대륙별 출전권을 놓고 경쟁한다.
- 대륙별 예선 구조: FIFA는 세계를 6개의 대륙 연맹으로 구분하여 예선을 진행한다:
- 아시아(AFC): 대한민국, 일본, 이란 등
- 유럽(UEFA):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 아프리카(CAF):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
- 북중미(CONCACAF): 미국, 멕시코 등
- 남미(CONMEBOL):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 오세아니아(OFC): 뉴질랜드 등
- 본선 진출권 배정: 대륙별 예선 결과에 따라 FIFA가 각 대륙에 할당한 본선 진출권에 맞춰 국가들이 본선에 진출한다.
- 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총 32개국이 본선에 진출했으며, 각 대륙의 진출권은 아래와 같았다.
- 아시아: 4.5장
- 유럽: 13장
- 남미: 4.5장
- 북중미: 3.5장
- 아프리카: 5장
- 오세아니아: 0.5장 (대륙 간 플레이오프로 결정)
- 플레이오프: 일부 대륙은 본선 진출을 위해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 예를 들어, 오세아니아 1위 팀과 남미 5위 팀이 본선 티켓을 놓고 단판 승부를 벌인다.
- 본선 대회
- 참가팀: 본선 대회에는 총 32개 팀(2026년부터 48개 팀으로 확대)이 참가한다. 주최국은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한다.
- 조별리그: 참가 32개 팀이 4개 팀씩 8개 조로 나뉜다. 각 조에서 리그전 형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 승리: 3점
- 무승부: 1점
- 패배: 0점
- 각 조의 상위 2팀이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동률 시 순위는 골득실 차, 다득점, 상호 전적 순으로 결정된다.
- 결선 토너먼트:ㅜ 16강부터는 단판 승부로 진행된다.
- 정규시간(90분) 동안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30분) 및 승부차기로 승자를 결정한다.
- 패자는 탈락하며, 승자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 단계: 16강 → 8강(준준결승) → 4강(준결승) → 결승전. 준결승에서 패한 두 팀은 3 · 4위전을 치른다.
- 결승전: 결승전은 본선 대회의 마지막 경기로, 최종 2개 팀이 세계 챔피언 자리를 두고 겨룬다. 승리 팀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수여받으며,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 특별한 점
- 2026년부터 형식 변화: 본선 참가국이 48개 팀으로 확대된다. 16개 조(3개 팀씩)로 구성되며, 각 조의 상위 2팀이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 주최국 혜택: 주최국은 예선을 면제받고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한다.
- 공정성과 조정: 월드컵 조추첨은 FIFA의 공인된 방식에 따라, 실력과 지역 분포를 고려해 균형 잡힌 조 편성을 목표로 한다.
수상
- FIFA 월드컵 대회가 끝난 후 FIFA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에서 결정하는 상으로 다섯 종류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골든볼 (Golden Ball): 월드컵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 골든부트 (Golden Boot): 월드컵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 골든글러브 (Golden Glove): 월드컵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1994년 야신상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으며 2010년 대회부터 골든글러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FIFA 영플레이어상 (FIFA Young Player Award): 월드컵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21세 이하의 최우수 신인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2006년에 베스트 영플레이어상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으며 2018년 대회부터 FIFA 영플레이어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FIFA 페어플레이 트로피 (FIFA Fair Play Trophy): 월드컵 대회 동안 최고의 페어 플레이 기록을 세운 팀에게 수여한다. 1970년에 제정되었다.
- FIFA 월드컵 대회 기간 중 FIFA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에서 결정하는 상이 한 종류 있다.
- 맨오브더매치 (Man of the Match): 월드컵 대회 매경기마다 최고의 활약을 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 FIFA 월드컵 대회가 끝난 후 팬투표로 결정하는 상으로 두 종류가 있다.
- 최고의 골 (Goal of the Tournament): 월드컵 대회 최고의 골을 선정하여 득점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 최고의 인기팀 (Most Entertaining Team): 월드컵 대회 최고 인기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 폐지된 상
- 올스타팀 (All-Star Team)을 1994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공식적으로 선정하였다.[2]
상금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상금
- 우승(Winner)- $42,000,000
- 준우승(Runner-up)- $30,000,000
- 3위(3rd place)- $27,000,000
- 4위(4th place)- $25,000,000
- 8강 탈락(Quarter Final)- $17,000,000
- 16강 탈락(Round of 16)- $13,000,000
- 32강 조별 리그 탈락(Group Stage)- $9,000,000[3]
대한민국 대표팀과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아시아 독립 국가 대표팀 중에서 최초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처음 진출했으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통산 11회 본선 진출과 10회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서 1위, 전 세계적으로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본선 월드컵에서 총 승점 31점을 얻었으며, 2026 북미 월드컵 기준 전승 우승 승점 24점을 넘었다.
이와 같이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 대표로서 수 차례 참가했으나, 1998년 대회까지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총 4점을 얻었으나,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한국은 심지어 월드컵에서 최다 점수 차이로 패배한 기록을 갖고 있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 16강 조별리그에서 헝가리 9 - 0 한국이었다. 다만, 이 결과는 당시의 한국으로서는 상당히 선전한 것이었다. 지역 예선에서 힘겹게 일본을 꺾고, 16개국 본선에 진출을 확정한 한국 선수들은 직항노선도 없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3일 걸리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배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유럽으로 가려고 했으나 항공표가 없어 미군 화물기를 전세 내고, 결국 경기 하루 전에야 도착했다. 그나마도 바로 간 것도 아니고 짐짝이 가는 경로를 타면서 이나라 저나라 경유해서 간 것이다.
따라서 시차적응, 현지에서 적응훈련, 상대 팀에 대한 정보 분석 등 경기에 대한 준비를 할 여력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상대인 헝가리는 페렌츠 푸스카스를 주축으로 한 매직 마자르로 대표되는, 당시 세계 최강의 강팀으로 가장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였고, 실제로 준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이었다. 해외 기자들은 10 - 0에서 20 - 0 이상을 예상하고 있었고 5 - 0 정도로 경기가 벌어지자 몇몇 기자들은 취재를 포기하고 드러누워 잠자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겨우 9 - 0으로 헝가리가 이겼다고 하자 잠을 자던 기자들이 놀랄 정도였다. 홍덕영 골키퍼가 온 몸이 멍 투성이일 정도로 막았던 결과 수십 개의 유효 슛을 다 막고 단 9개를 놓친 것이다.
홍덕영 골키퍼는 이날 경기에 대해 "푸스카스의 슛은 정말 강해서 위잉 소리가 났고, 맞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라고 술회했다. 실제로,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몇몇 관중들은 듣보잡 나라의 골키퍼가 잘한다고 사인까지 받아갔다.
이후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은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지역예선 참가신청서를 분실하는 바람에 지역예선에 참가조차 못했고, 1962년 칠레 월드컵도 아시아는 당시 강호였던 유고슬라비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고 결국 16개국 본선행이 좌절되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북한 대표팀의 전력이 막강하다는 소문에 지레 겁먹고 예선에 불참하였고, 1974년 서독 월드컵은 아시아+오세아니아 합동예선에서 호주와 홈 앤드 어웨이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홍콩으로 자리를 옮겨 중립구장 경기를 치른 끝에 결국 16개국 본선 진출 티켓을 호주에 내주고 만다.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으나 하필이면 만나는 팀마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네덜란드, 멕시코, 스페인, 벨기에 등 한 가닥 하는 강팀들이었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 24강 조 편성이 심각하게 꼬이는 바람에 두 우승팀인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를 동시에 만나는 기괴한 경험을 당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1982년도 우승팀, 아르헨티나는 1978년도 우승팀이자 이 월드컵 우승팀이었다. 이렇게 한국은 첫 진출과 두 번째 진출에서 같은 조에 우승후보가 두 팀이나 들어왔다.
결국 매회 월드컵 진출에도 불구하고 1승도 못 올렸던 것이 한국의 월드컵이었다. 그러다 2002년 일본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여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본선 첫 승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여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에서는 토고를 상대로 사상 첫 원정 승리를 거두고, 준우승팀 프랑스와 무승부 승점 1점을 거두는 등 원정 최고 승점 4점을 기록하였으나, 32강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에서 2대0으로 패배하여 너무 아깝게 월드컵 17위로 16강 진출은 무산되었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조재진은 스위스전 패배 이후 "동국이 형만 있었어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라고 인터뷰를 했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2강 조별리그에서는 그리스를 상대로 이정수가 전반 7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려 앞서나갔고 박지성이 후반 7분에 쐐기골을 터뜨려 2:0으로 격파했다. 이정수의 선제골은 한국이 월드컵에서 최단 시간에 득점한 골이었다. 하지만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선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는 졸전을 벌이며 1:4로 대패했다. 3차전 나이지리아를 상대로는 이정수와 박주영의 프리킥 골에 힘입어 2:2로 무승부로 나이지리아를 탈락시켰는데 동시간에 벌어진 아르헨티나 대 그리스에서 아르헨티나가 2:0 으로 그리스를 이겨 한국은 1승 1무 1패의 성적, 그리스는 1승 2패의 성적, 아르헨티나는 3승의 성적이 되어 한국이 그리스를 제치고 조 2위 자격으로 사상 첫 원정 2라운드(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 뒤 16강 상대 우루과이를 상대로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였으나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루이스 수아레스의 역습에 잇달아 허를 찔리면서 1:2로 패배하여 탈락(15등)하고 도전을 마쳤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 이란, 호주와 함께 32개국 본선 진출에 성공은 했는데, 하필 본선 진출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동반 진출한 이란에 패한 아픈 기억이 있다. 동시에 전북 현대 감독으로 돌아갔던 당시 감독 최강희의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이기도 하였다. 32개국 본선 조 추첨 결과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같은 조가 되었다. 조의 강호인 러시아에 1 - 1무승부로 승점 1점을 획득하였으나, 알제리, 경기가 시작되자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알제리에게 4 - 2로 패하고, 벨기에한테 마저 0:1로 패하여 승점 1점 1무 2패 27등으로 16강 진출은 실패였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선 천신만고 끝에 아시아 예선을 통과해 32개국 본선에 올랐지만, 피파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뢰프 감독의 독일과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 지역예선에서 이탈리아를 탈락시키고 올라온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과 함께 32강 죽음의 조에 속했다. 1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선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경기를 운영한 탓에 별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0:1로 패배했으며 2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선 1차전에 비해 좀 더 나은 경기력을 보이며 분전했지만 끝내 1:2로 패배해 20년 전의 복수를 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전 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2:0으로 승리하며 피파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광탈(22등)시키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비록 스웨덴이 멕시코를 3:0으로 이기면서 이 두 팀이 16강에 올라갔고, 대한민국은 월드컵 19위로 아쉽게 마쳤다. 그래도 2018월드컵 직전 2017년 U20월드컵에서 최다우승국 아르헨티나도 이기고 A매치 평가전에서 콜롬비아도 2:1로 이기고 2017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도 격파 복수하며, 오히려 생각해보면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많았던 월드컵이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출범이래 최초로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로만 월드컵을 준비했다. 준비 과정 속에서 아시안컵 우승 실패와 한일전 연패 등 여러 고비가 있었고, COVID-19까지 겹쳐 대회 준비에 큰 차질을 빚는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순탄하게 월드컵 최종예선을 뚫고 본선에 올라갔으며,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라는 상당히 어렵고 혼전이 예상되는 32강 조에 들어갔음에도 4년 전 대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하지만 대회 직전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의 치명적인 안와골절 부상이 생겼고, 대회 직전까지 계속된 이강인 선발 논란도 대표팀을 흔들었다. 그러나 32강 조별리그 1차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 사상 역대급 경기력을 보이며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0:0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해 지난 독일전에 이어 역대 월드컵 우승팀에 연속으로 승점을 획득하였고, 대표팀은 여론을 급 반전시켰다. 반드시 잡아야 했던 2차전 가나전에서 그만 난타전 끝에 가나의 골 결정력에 무너지며 2:3으로 져 16강을 포기하는 분위기였으나, 이번 대회에도 3차전 호날두의 포르투갈 전에서 추가시간 황희찬의 결승골로 기적적인 2:1 승리를 챙기며 기어코 승점 4점 1승1무1패를 만들었다. 같은 시간 열렸던 가나와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승리했으나 다득점에서 한국을 넘어서지 못해 한국은 4년 전과는 다르게,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비록 16강전에선 3일을 쉬고 경기하는 등 어려운 조건과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서 만난 브라질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1:4 대패 탈락(16등) 당했지만, 백승호가 기록한 만회골은 기가막힌 원더골로 대회 종료 후 대회 베스트 골 후보에도 올라가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 4년 전과 조건과 상황 전개는 비슷했지만 4년 전 월드컵 19위에 이어 16위로(16강) 두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 19위권과 독일, 이탈리아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월드컵에서 한국만이 갖고 있는 기록은 최단 시간 실점(10.8초) 같은 지우고 싶은 기록도 있지만, 그동안 조별리그의 조를 알파벳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최초로 A~H조에 모두 속해 본 기록도 있으며, 가장 긴 기간의 공백을 거치고 월드컵에 다시 출전한 기록을 이동국 선수(1998년 출전 - 2002년 불참 - 2006년 불참 - 2010년 출전)가 갖고 있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 우승팀 가운데 잉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과 월드컵 본선에서 최소 한번 이상 만났으며, 준우승이 최고 성적인 대표팀으로 범주를 넓히면 체코(구 체코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과 모두 한번씩 만난 적이 있다. 본선에서 한국과 가장 많이 만난 월드컵 우승 / 결승 진출 경력이 있는 나라는 독일(1994년 24강 C조, 2002년 4강전, 2018년 32강 F조)과 우루과이(1990년 24강 E조, 2010년 16강전, 2022년 32강 H조)로 3번씩 만났으며, 독일의 경우 헝가리, 튀르키예와 경기를 치러 당시 특이한 대회 방식으로 독일과는 만나지 않았고 1954년에도 같은 16강 조별리그 2조에 편성되었다. 2010년에 우승을 달성하는 스페인과도 3번(1990년 24강 E조, 1994년 24강 C조, 2002년 8강전), 아르헨티나(1986년 24강 A조, 2010년 32강 B조), 이탈리아(1986년 24강 A조, 2002년 16강전)와는 2번, 프랑스(2006년 32강 G조), 브라질(2022년 16강전)과는 1번 만났으며, 역대 월드컵 준우승국인 헝가리(1954년 16강 조별리그 2조), 네덜란드(1998년 32강 E조), 스웨덴(2018년 32강 F조)과도 모두 1번씩 만났다.
맞대결 상대 전적은 독일 1승 2패, 아르헨티나, 멕시코에는 모두 2패씩을 기록하고 있으며, 스페인과의 전적은 2무 1패, 우루과이와의 전적은 1무 2패, 이탈리아와는 1승 1패, 포르투갈과는 2승, 프랑스와의 전적은 1무, 브라질, 헝가리, 네덜란드, 스웨덴에는 모두 1패씩을 기록하고 있다. 1954년, 1998년, 2014년을 제외하고는 역대 월드컵 우승팀과 최소 한번 이상씩 격돌했으며, 그 외 범위를 넓히면 4위가 최고 성적인 러시아, 3위가 최고 성적인 벨기에, 2014년 14위(16강) 1회가 최고 성적인 알제리와 한 조였던 2014년을 제외하고는 역대 월드컵 준우승팀들을 모두 한 번 이상씩 붙어봤다.[3]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