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우엘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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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우엘레주(프랑스어: Haut-Uele)는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3][4]
개요[편집]
오트우엘레주의 면적은 89,683㎢이며 인구는 2,242,500명(2020)이다. 주도는 이시로이며 동쪽과 남쪽으로는 이투리주, 남서쪽으로는 초포주, 서쪽으로는 바우엘레주와 접하며 북서쪽으로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북쪽으로는 남수단과 국경을 접한다. 오트우엘레 지역은 우엘레 강(Uele River)의 상류 유역에 위치하여 그 이름을 따왔다.
오트우엘레, 바우엘레(Bas-Uélé), 이투리(Ituri), 초포(Tshopo) 주는 과거 오리엔탈주가 해체되면서 분리된 결과로 형성되었다. 오트우엘레는 이전 오트우엘레 지역(Haut-Uélé District)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졌다.
오트우엘레 주의 주요 도시로는 니앙가라(Niangara), 둥구(Dungu), 파라제(Faradje), 왓사(Watsa), 룽구(Rungu), 이지로(Isiro), 왐바(Wamba)가 있다.
역사[편집]
오트우엘레 지역은 1912년 3월 28일 왕실 법령(Arrêté Royal)에 의해 신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콩고는 22개의 지역으로 나뉘었다. 1912년 지도에는 이전 우엘레 지역이 오트우엘레와 바스우엘레(하우엘레, Bas-Uélé) 지역으로 나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오트우엘레는 북쪽으로 프랑스령, 동쪽으로 영국령, 남쪽으로 이투리(Ituri) 및 스탠리빌(Stanleyville) 지역, 서쪽으로 바스우엘레와 접하고 있었다. 오트우엘레 지역은 1913년 신설된 오리엔탈(Orientale) 주의 일부가 되었다.
킬로-모토는 콩고민주공화국 북동쪽 끝에 위치한 지역으로, 1903년 정부 탐사팀이 이투리 강(Ituri River)에서 금을 발견한 곳이다. 모토(Moto)는 오트우엘레 주에 속하고, 킬로(Kilo)는 이투리 주에 속해 있다.
킬로 광산(Kilo mine)은 1905년에, 모토 광산(Moto mine)은 1911년에 개장되었다. 금은 강 자갈을 체로 거르거나 직접 채굴하는 방식으로도 채굴되었다. 1919년, 정부는 킬로모토 광산공사(Régie Industrielle des Mines de Kilo-Moto)라는 자율 기관을 설립했다.
1919년 말, 당시 식민지 장관 루이 프랑크(Louis Franck)는 조르주 물라에르(Georges Moulaert, 전 에콰퇴르 주지사)에게 킬로-모토 국영 광산을 맡겼다. 이 지역은 적대적인 환경, 부족한 교통 및 통신망, 열악한 운영 여건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물라에르는 도로, 운송, 의료 지원, 보급품 및 작물 개선뿐만 아니라, 광산 시설, 충적 및 잔적 광상 채굴, 탐사 및 연구에 힘썼다.
1920년부터 1924년 사이, 이 회사는 828km의 도로를 건설했으며, 많은 금속 다리를 세웠다. 또한 345km의 전신 및 전화선을 설치했다. 1924년 솔레니아나(Soleniana)에서 1,500마력(1,100kW)의 수력 발전소가 개설되었으며, 분쇄 공장이 전력화되었다. 콩고 지역 내의 열악한 운송 체계, 특히 마타디-레오폴드빌 철도(Matadi-Léopoldville Railway)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회사는 우엘레 강에서 나일강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개척하여 면화, 커피 및 기타 지역 생산물을 운송했다.
1926년, 이 공사는 상업 회사로 전환되어 킬로모토 금광 회사(Société des Mines d’Or de Kilo-Moto)가 되었다. 분쇄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었으며, 1930년까지 두 광산(주로 킬로 광산)에서 연간 거의 5,000kg(11,000파운드)의 금이 생산되었다. 물라에르는 회사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7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물라에르는 킬로모토의 금 생산량을 증가시켰지만, 그의 방법은 논란이 되었다. 특히 강제 노동자 모집이 문제가 되었다. 1918년 강제 노동자 수는 10,012명이었으며, 1939년에는 40,000명을 초과했다.
1932년 알렉시스 베르트랑(Alexis Bertrand)은 킬로-모토 금광에서의 노동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35%에서 50%가 금광 노동을 위해 강제 징집되었으며, 이는 노동력 위원회(Manpower Commission)가 설정한 공식 상한선인 10%를 크게 초과한 수치였다. 이는 공공의 논란을 일으켰다. 물라에르는 "자신의" 회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지만, 비판은 194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933년, 바스우엘레와 오트우엘레는 다시 합쳐져 우엘레 지역(Uele District)이 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스탠리빌(Stanleyville) 주의 일부가 되었다. 1954년까지 스탠리빌 주는 오리엔탈(Orientale) 주로 개명되었으며, 우엘레 지역은 다시 바스우엘레와 오트우엘레로 나뉘었다.
1955~1957년 지도에는 오트우엘레 지역이 북쪽으로 프랑스령, 남동쪽으로 이투리 지역, 남서쪽으로 스탠리빌 지역, 서쪽으로 바스우엘레 지역과 접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면적은 89,700km²였으며, 이는 오리엔탈 주의 전체 면적인 중 일부를 차지했다.
1962년 7월 27일, 오리엔탈주(Orientale Province)의 행정권이 중앙 정부로 이관되었다. 이후 오리엔탈 주는 키발리-이투리(Kibali-Ituri), 우엘레(Uélé), 오트콩고(Haut-Congo)의 세 개의 새로운 주로 분할되었다. 그러나 1966년 12월 28일, 오리엔탈주는 다시 통합되었다.
두르바 광산(Durba Mine)은 콩고 민주 공화국 오트우엘레 주에 위치한 금광으로, 킬로-모토 녹색암대(Kilo-Moto greenstone belt) 내에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앵글로골드 아샨티(AngloGold Ashanti)와 랜드골드 리소스(Randgold Resources) 간의 합작 투자로 키발리 금광(Kibali Gold Mine) 개발이 이 광산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998년에서 2000년 사이, 두르바 및 인근 왓사(Watsa) 지역에서 불법 금광 노동자들 사이에 마버그 바이러스(Marburg virus)와 라븐 바이러스(Ravn virus)가 동시에 유행하여 154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128명이 사망했다.
2008년 12월 24일부터 27일까지, 우간다 반군 조직인 주님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LRA)이 오트우엘레 지역의 여러 마을을 공격하여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
마콤보 학살 (Makombo Massacre)은 2009년 12월 14일부터 17일까지 오트우엘레 지역의 마콤보(Makombo) 마을과 그 일대에서 발생했다. 인권 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 HRW)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321명이 목숨을 잃었다. HRW는 주님의 저항군(LRA)이 이번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나, LRA 측은 이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다.
2015년, 오리엔탈주는 다시 분할되어 바우엘레(Bas-Uélé), 오트우엘레(Haut-Uélé), 이투리(Ituri), 초포(Tshopo) 주가 신설되었다.
사회[편집]
콩고민주공화국은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한 나라이면서 대외적으로도 극히 불안정한데, 콩고민주공화국의 우간다, 르완다 등 이웃한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극히 꺼리며 르완다 내전 이후의 후투족 문제로 관계가 극히 나쁜 르완다의 독재자 폴 카가메가 콩고 동부 지역의 불안정을 배후지원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2012년 말에도 투치족 반군인 M23이 정부군을 대파한 뒤 고마 시를 점령했다가 UN의 경고로 물러난 적이 있는데, 이 세력의 배후 지도자가 폴 카가메의 측근인 르완다 국방장관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때문에 최빈국 탈출은 커녕 안정화도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콩고민주공화국(DRC)의 기아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아일랜드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아지수(GHI)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은 2016년 자료의 부족으로 세계기아지수를 측정할 수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눈여겨봐야할 국가이다. 2013년부터 2014년 조사에 따르면 DRC의 발육 부진 아동 비율은 43퍼센트로 매우 높고 44퍼센트로 조사된 2001년 이래 사실상 변동이 없다. 영유아사망률은 9.8퍼센트로 이번 보고서의 131개국 가운데 영유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상위 10개국에 해당한다. 더욱이 허약 아동은 8퍼센트에 이른다. 미국 국제개발청(USAID)에 의하면 "반복하는 분쟁, 그에 따른 국내 이재민, 개선된 영농 지식과 기술 부재, 곡물과 가축 질병 만연, 부실한 인트라, 젠더 불평등, 출산율 증가를 비롯한 여러 요인이 DRC의 식량 안보를 위협한다.
국가가 가난해서 취급이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일단 사회가 혼란스러운데 치안은 유지해야 하다 보니 경찰들은 범죄자를 닥치는 대로 잡아다 교도소에 집어넣고 있다. 그 결과 2020년 9월 수감 시설이 가득 차다 못해 미어터지고 있으며, 1인당 죽 두 숟갈로 겨우 연명한다는 인권단체의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우간다의 반군 ADF는 동부 교도소의 죄수들을 탈옥시켰다.
2023년 기준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의 취약 국가지수는 107.2점으로 4위를 기록했는데, 이게 얼마나 막장인 상황이냐면 콩고민주공화국보다 점수가 높은 나라가 소말리아, 예멘, 남수단 단 3개국밖에 없다. 제일 높았던 2013년의 111.9점(당시 순위는 2위였고, 1위는 소말리)에 비해 4.7점 줄어들었고 순위는 2위에서 4위로 2계단 낮아졌다.[5]
문화[편집]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많은 토속종교를 통해 부족은 회화·조각·음악·춤·공예·직물·의상 등과 같은 전통예술을 발달시켰다. 발생 지역의 특색에 따라 조각품들을 나눌 수 있는데, 수도 킨샤사는 문화생활과 예술을 권장하고 이를 발달시킨 창조적인 곳으로 미술대학은 회화·조각·건축·세라믹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국립예술학원은 전통음악과 연극을 가르친다. 링갈라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시·연극·소설이 급속히 발전하였고, 다른 민족언어에 의한 작품활동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과학공상문학의 발달은 대학과 과학재단,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다른 큰 도시에도 미술관과 공공도서관이 있다. 여러 다른 문화와 문명이 어우러진 독특한 대중음악은 아프리카에 널리 알려져 여러 가지 댄스 스텝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밖에 축구·수영·복싱·농구·레이싱보트 등의 스포츠가 발달하였다.[6]
행정구역[편집]
- 둥구(Dungu)
- 파라제(Faradje)
- 니앙가라(Niangara)
- 룽구(Rungu)
- 왐바(Wamba)
- 왓사(Watsa)
- 바그벨레(Bagbele)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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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오트우엘레주〉, 《위키백과》
- 〈오트우엘레주〉, 《나무위키》
- "Haut-Uélé", Wikipedia
- "Haut-Uele District", Wikipedia
- 〈콩고 민주 공화국〉, 《위키백과》
- 〈콩고민주공화국〉, 《나무위키》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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