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필더
미드필더(midfielder)는 축구나 하키 따위에서, 경기장의 가운데 부분에 위치하여 공격 및 수비 역할을 하는 선수이다.[1]
목차
개요[편집]
미드필더(midfielder)는 축구에서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서 플레이하는 선수이다. (상대적 위치는 대략 오른쪽 그림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다.) 태클 등을 통해 상대편의 공을 빼앗는 것, 공을 우리 편의 것으로 계속 만드는 것, 공을 공격수에게 배급하는 것, 간혹 득점을 하는 것 등이 미드필더의 주요 임무이다.
미드필더 중에는 좀 더 수비적인 임무에 치중하는 미드필더가 있는가 하면, 공격수 못지않게 공격에 참여하는 미드필더도 있다. 한 경기에서 어떤 팀이 몇 명의 미드필더를 운용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팀의 포메이션이나 각 플레이어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 팀 내 미드필더들을 묶어서 미드필드(midfield)라고도 부른다. 훌륭한 미드필더는 전투적이어야 하면서 동시에 창의적이어야 한다. 미드필드의 지원을 잘 받지 못하는 공격수들은 공격 기회를 많이 놓친다. 미드필드의 지원을 잘 받지 못하는 수비수들은 힘들게 수비를 해야 한다. 미드필더가 축구 경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보다도 경기의 승패 결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드필더들은 축구 경기장 안에서 뛰는 선수들 중 가장 많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선수들이다. 경기장에서 활약하는 범위가 크기 때문이다. 때때로 수비수들과 같이 수비도 해야 하고, 공격수들과 보조를 맞추어 공격도 해야 한다. 따라서 공격수 못지않게 명 선수들의 대다수가 미드필더다.[2]
미드필더 종류[편집]
중앙 미드필더[편집]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는 팀의 전술에 따라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공격과 수비를 연결하는 일을 하며, 상대편이 볼을 점유하고 있을 시에는 수비도 해야 한다. 이렇기에 중앙 미드필더는 유동적인 플레이를 하며, 패스 능력과 힘을 적절히 갖춘 균형잡힌 선수가 많다. 정중앙에 위치한 포지션으로 경기장 전체를 둘러볼 수 있고, 그에 따라 팀의 경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포지션은 흔히 "엔진 룸" , "중원의 사령관" 등으로 불린다.
중앙 미드필더는 팀이 공을 가지고 있을 경우, 공격 진영으로 공을 패스하거나, 공을 가지고 움직여 공간을 창출하기도 한다. 공격 진영에 같은 편 선수가 공격을 하고 있을 때, 뒤따라 들어가 공격 작업에 도움을 주며, 간간히 슈팅을 날려 득점을 노리기도 한다.
상대방이 공을 가지고 있을 경우, 중앙 미드필더는 자신의 진영 방향으로 내려앉아 수비에 가담한다. 중앙 미드필더가 수비에 가담함에 따라, 상대방은 공격 작업을 펼칠 공간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 박스-투-박스 미드필더
"박스-투-박스"(Box-to-box) 유형의 중앙 미드필더는 상대 진영 "박스"에서 아군 진영 "박스"까지 활동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한다. 기본적인 역할로 공격과 수비간의 고리 역할을 하기도 하며, 수비 진영에 깊게 내려와 상대팀 공격작업을 방해하고, 2선 침투를 통해 득점상황을 창출하는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활동량과 체력이 좋으며, 태클과 패스, 볼배급 능력이 뛰어나다. 즉, 공격과 수비 모두 뛰어난 유형의 미드필더이다. 예를 들면 박지성, 주드 벨링엄, 은골로 캉테 등이 있다.[2]
수비형 미드필더[편집]
수비형 미드필더(영어: Defensive midfielder)는 중앙 미드필더보다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수비에 집중된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수비진 앞에 서서 상대편의 공격을 차단하고 공을 배급하는 등, 1차 수비 저지선이자 공격의 시발점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브라질식 포르투갈어 "볼란테"(포르투갈어: volante)나 남아메리카식 스페인어 "볼란테 데 마르카"(스페인어: volante de marca)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이 말들은 "방향타"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어로 "트링쿠"(포르투갈어: trinco)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자물쇠"라는 뜻이다. 1994년 월드컵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둥가도 "트링쿠"라고 불렸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무시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현대 축구 경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포지션이다. 이 포지션은 매우 전문화된 포지션이며, 매우 적은 수의 선수들만이 이 자리를 제대로 소화해낸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가장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선수는 과거 첼시 FC, 레알 마드리드, 파리 생제르맹 FC 소속의 클로드 마켈렐레일 것이다. 첼시 FC와 레알 마드리드 및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었을 때, 그는 자기 편 수비수 4명의 앞쪽 위치에서 뛰면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상대편의 공격 움직임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정확히 상대편에 태클을 가하였다. 또한 "절대 실수가 없는" 짧은 패스는 그를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때 팀의 "공격 절차"(modus operandi)는 "마켈렐레가 공을 빼앗은 뒤, 지네딘 지단에게 패스한다"였다. 마켈렐레의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은 종종 "마켈렐레식 역할"이라고도 불렸다.
- 중앙 하프백
과거에는 미드필드 서드에 위치하여 상대방의 공격을 1차적으로 저지하는 하프백(Half back) 포지션이 있었다. 이는 미드필드에서 수비적 임무를 가진 근원적인 역할로 알려지고 있다.
- 홀딩 미드필더
홀딩 미드필더(Holding midfielder) 또는 딥-라잉 미드필더(Deep-lying midfielder)는 팀의 수비진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은 수비에 집중하기 위해 짧고 간단한 패스가 선호되지만, 팀의 사정에 따라 롱 패스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태클을 시도하여 볼 소유권을 탈취하는 것에 더욱 집중된 역할이며, 탈취한 볼을 다른 선수들에게 배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로 인해 더 공격적인 역할의 선수들은 볼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공격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수비적인 역할만이 뛰어난 선수가 선택되기도 하지만, 다른 역할도 충분히 소화하면서도 수비적인 능력이 탁월하여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감독 마르셀로 비엘사가 이 역할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홀딩 미드필더처럼 수비진과 가깝게 위치하나, 수비적인 능력보다는 패스 능력이 뛰어나며, 중원의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볼 배급을 담당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가리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Deep-lying playmaker)라 한다. 이탈리아어로는 레지스타(이탈리아어: Regista)라고 불린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는 공을 소유하면서 팀의 템포를 총괄하는 역할을 최선의 임무로 가진다. 이후 짧고 간단한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공격 작업의 기초를 다지면서 느리지만 정확한 볼 배급을 통해 템포를 조절하기도 한다.[2]
공격형 미드필더[편집]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는 미드필드진에서 전진 배치되어, 공격을 이끄는 미드필더를 말한다. 이탈리아어로는 트레콰르티스타(이탈리아어: Trequartista)라 불리며, 이는 경기장의 3 / 4 위치에 서있는 선수를 뜻한다. 독일어로는 "체너"(독일어: zehner) 로 불리는데, 이는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가 10번을 달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약간 중앙쪽에 위치하면, 영미권에서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홀(영어: Hole)이라고 부른다. 때때로는 이 용어가 깊숙히 위치한 중앙 공격수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주로 10번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에, 10번 포지션이라고도 불리며 J리그에서는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선발 멤버가 1번 ~ 11번, 대기 멤버가 12 ~ 16번을 착용할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가 9번을 달았고 1994년 K리그에서도 공격형 미드필더가 9번을 착용했다.
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선수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려면 매우 좋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 패스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하며, 그를 받쳐주는 좋은 시야를 필요로 한다. 볼의 소유를 늘리기 위해 개인적인 기술과 드리블 스킬을 크게 요구하기도 한다. 공격적인 위치에 서기 때문에, 슈팅 스킬 또한 요구된다. 또한 경기전반을 조율할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가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한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만큼, 대부분의 경우 공격형 미드필더는 팀의 주축이다.
- 전진 플레이메이커
전진 플레이메이커(Advanced playmaker)는 팀 공격의 중심이 되는 선수로, 주로 공격진 중앙 "홀" 자리에 위치한다. 이 용어는 딥-라잉 공격수(영어: Deep-lying forward)와 혼용된다. 전진 플레이메이커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보다 앞 쪽에서 플레이한다. 이 경우 상대 수비진들의 간격이 상대적으로 더 좁은 상태에서 플레이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진 플레이메이커는 조금더 공격적인 기술과 빠르고 창의적인 침투패스 또는 크로스 능력이 크게 요구된다. 때로는 직접 수비진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돌파를 시도하기 때문에, 뛰어난 드리블 스킬도 요구된다. 또한 공격 진영에 가깝게 위치하기 때문에 슈팅 능력도 필요하다. 이 자리에 위치한 선수들은 이탈리아어로는 판타지스타(이탈리아어: Fantasista)라 불리며,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는 엔간체(스페인어: Enganche)라 불린다.
- 펄스 공격형 미드필더
이 용어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였으며, 4-3-1-2 포메이션의 "1" 자리에 위치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수비 진영 쪽으로 깊게 움직이는 역할을 뜻한다. 이들은 경기장 3 / 4 위치에 서다가도 움직여서, 상대방 수비진의 붕괴를 꾀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들은 전진 플레이메이커의 자리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오가며, 높은 전술 이해도와 뛰어난 활동량을 요구 받게 된다.[2]
측면 미드필더[편집]
측면 미드필더(Side midfielder)는 공격과 수비에 균형을 갖춘 중앙 미드필더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나, 경기장 양 측면에서 위치하는 역할군이다. 이들은 공격시 공격진으로 낮은 패스를 보내는 데 주 임무를 맡고 있으며, 수비시에는 상대방의 크로스를 차단하기 위해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한다. 측면 미드필더 역할은 윙어보다 더 뛰어난 주력이 요구되며, 공격과 수비에 있어 균형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한다.[2]
윙어[편집]
윙어(Winger)는 4-4-2, 4-5-1, 4-2-3-1 포메이션에 배치 될때는 보통 미드필더로 분류 된다.(4-3-3, 3-4-3 포메이션에 배치되는 윙어는 보통 공격수로 분류 된다.)
윙어는 터치라인쪽으로 옆쪽에 넓게 배치된 미드필더를 말한다. 스탠리 매튜즈나 지미 존스톤과 같은 왕년의 선수들은 W자 모양 포메이션에서는 공격수로 분류되었었다. 예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나 아웃사이드 레프트라고 불렸다. 하지만 축구 전술은 30년간 변화를 겪었다. 윙어는 좀 더 수비쪽으로 내려간 필드 포지션이 되었다. 윙어의 경우 스트라이커의 역할도 가능한 미드필더가 주로 담당한다.
양쪽 측면 넓은 곳에서 상대편의 풀백의 수비를 피해 컷-백이나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윙어의 역할이다. 윙어는 드리블, 스피드, 개인기, 크로스, 패스, 킥력이 뛰어나며, 오늘날 훌륭한 윙어(측면 미드필더)는 더글라스 코스타, 윌리안, 윤빛가람, 프랑크 리베리, 아르연 로번, 사디오 마네, 손흥민, 마르코 로이스 등이 꼽히고 있다.
예전에는 윙어는 터치라인 쪽에서 공격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수비진영으로 돌아오거나 수비를 하지는 않았었다. 이 점은 1966년 FIFA 월드컵 때부터 바뀌었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알프 램지(Alf Ramsey)은 전통적인 윙어 없이도 결승전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 팀은 당시 "윙 없는 불가사의"(Wingless Wonders)라고 불렸다.
이런 점에서, 현대 축구의 윙어들은 더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들은 수비도 해야 하며, 상대편을 뒤쫓아와서 볼을 빼앗아야 한다. 중앙 공격수나 스트라이커에게 공을 차 주거나 크로스를 올리는 일 외에 말이다. 때때로, 윙어들은 중앙으로 나와 커버를 하거나 공격을 해야 하기도 하며, 측면쪽으로도 움직여야 한다.[2]
역할[편집]
- 공격 지원
- 패스 연결: 공격수에게 공을 전달하거나 측면으로 공을 전개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이다.
- 골 기회 창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창의적인 패스와 플레이로 공격 상황을 만든다.
- 슈팅: 적절한 기회에 직접 슈팅으로 득점에 기여한다.
- 세트피스 참여: 프리킥, 코너킥, 혹은 페널티킥 상황에서 공격을 주도한다.
- 수비 지원
- 태클과 공 탈취: 상대 선수에게서 공을 빼앗아 역습 기회를 만드는 역할이다.
- 위험 지역 차단: 수비진 앞에서 상대팀의 공격을 방어하고 공간을 좁힌다.
- 경기 템포 조절: 급한 상황에서는 공을 안정적으로 돌리며 수비가 정비할 시간을 확보한다.
- 경기 조율 및 템포 컨트롤
- 볼 소유율 유지: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정확한 패스로 공을 소유한다.
- 팀의 연결 고리: 공을 수비에서 공격으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 전술 실행: 감독의 지시를 경기장에서 구현하며, 상황에 맞게 빠르게 대처한다.
- 위치에 따른 세부 역할
- 공격형 미드필더(AMF): 공격에 무게를 두고 패스와 슈팅을 통해 골을 노린다.
- 수비형 미드필더(DMF): 팀의 후방을 보호하고 상대의 공격 루트를 차단한다.
- 중앙 미드필더(CMF): 균형 잡힌 플레이로 전방과 후방 모두를 지원한다.
- 측면 미드필더(WMF): 사이드에서 크로스와 드리블로 공격을 전개한다.
중요성[편집]
- 팀의 중심 역할: 미드필더는 팀의 중심에서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며, 공격과 수비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팀의 전체적인 조직력과 전략 실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 경기의 템포 조절: 미드필더는 공을 배급하며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유지하고, 상황에 맞춰 경기를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공수 전환의 핵심: 미드필더는 공수 전환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해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고, 팀의 방어를 강화한다.
- 공격 기회 창출: 공격형 미드필더는 골 찬스를 창출하고, 어시스트를 통해 팀의 득점을 돕는다. 이는 팀의 득점력 향상에 큰 기여를 한다.
- 수비 안정성 제공: 수비형 미드필더는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고, 수비 라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팀의 수비 안정성을 제공하고, 상대의 득점을 방지한다.
- 경기 상황 분석 및 대응: 미드필더는 경기 중 상대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이에 맞춰 적절한 대응을 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전략적인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며, 팀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다.
- 팀워크와 협동 강화: 미드필더는 팀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팀워크와 협동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팀 전체의 조직력이 향상되고, 경기에서의 효과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미드필더는 팀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며,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포지션이다. 따라서 미드필더의 역할과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팀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술[편집]
- 패스 기술
- 정확한 패스: 짧은 패스와 긴 패스 모두 정밀하고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능력.
- 스루 패스: 상대 수비 라인을 뚫는 창의적인 패스.
- 스위치 플레이: 측면에서 측면으로 공을 전환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패스.
- 원터치 패스: 빠르게 경기를 전개하거나 상대의 압박을 벗어날 때 유용한 기술이다.
- 볼 컨트롤
- 퍼스트 터치: 공이 발에 닿는 순간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 플레이의 기회를 만든다.
- 드리블: 상대를 따돌리고 공을 유지하며 공격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기술이다.
- 볼 프로텍션: 상대방의 압박을 받을 때 공을 보호하며 시간과 공간을 확보.
- 경기 시야와 의사결정 능력
- 필드 시야: 경기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적절한 위치로 패스를 보내는 능력.
- 의사결정: 짧은 시간 안에 패스, 드리블, 슈팅 등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판단력.
- 포지셔닝: 팀 전략에 맞게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이상적인 위치를 유지.
- 수비 기술
- 태클: 상대가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 효과적으로 공을 빼앗는 기술이다.
- 차단: 패스 경로를 예측하여 상대의 공격 기회를 끊는 능력.
- 압박: 상대에게 시간을 주지 않도록 근접하여 플레이를 방해한다.
- 공격 기술
- 슈팅: 득점을 위한 정교하고 강력한 슛 기술이다.
- 크로스: 측면에서 공을 배급해 득점 기회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 중거리 슛: 경기 흐름을 바꾸는 장거리 슛 능력.
- 체력 및 신체 기술
- 지구력: 경기 전체 동안 폭넓게 뛰며 일정한 플레이를 유지하는 체력.
- 속도: 빠른 상황에서 상대를 따돌리거나 역습에 가담하는 스피드.
- 피지컬: 공중볼 싸움, 몸싸움 등에서 밀리지 않도록 신체적 균형과 힘.
- 전술 이해도와 창의성
- 전술 수행: 팀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실행한다.
- 창의적 플레이: 상대방의 예측을 깨는 비정형적이고 독창적인 플레이.
미드필더는 단순히 특정 기술 한두 가지를 잘하는 것보다 종합적인 기술과 경기 이해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팀의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고, 경기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승리에 기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축구 공격형 미드필더[편집]
- 구자철
- 생년월일: 1989년 2월 27일
- A매치 기록: 76경기 19골
-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 주 소속팀: FC 아우크스부르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탄탄한 기본기와 영리한 공간 지각 능력을 활용한 기회 창출 능력과 페널티 박스 침투 능력을 통해 공격 포인트를 쌓아서 구파드라고 불렸다. 2007년에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2010 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도움왕을 석권했으며 이후 2010-11 시즌 후반기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볼프스부르크에 합류했으며 이후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었다가 볼프스부르크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부진한 활약을 펼쳐 마인츠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특히 2015-16 시즌 후반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IM WEITEREN KREIS(리그 내 경쟁는 수준) 등급 5등을 받기도 했다. 이 등수는 해당 시즌에 무려 마리오 괴체, 티아고 알칸타라, 막스 마이어, 카가와 신지와 같은 선수들보다도 높은 등수였다. 대표팀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2011 아시안컵에서 득점왕과 올스타팀을 석권했으며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타냈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마지막 독일전 승리에 공헌하며 월드컵의 부진을 끊어냈다. 2019 아시안컵이 끝나고 은퇴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구단 최고의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이재성
- 생년월일: 1992년 8월 10일
- A매치 기록: 67경기 9득점
-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 현 소속팀: 마인츠
현세대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판단력이 우수해 기술을 화려하게 사용하진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간단한 방향 전환과 팬텀 드리블로 상대를 벗겨내며 활동량과 수비 가담도 적극적이며 유사시에는 박스 침투도 적극적인 현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다. 전북 현대에서 데뷔해 K리그 4회 우승을 이룩했으며 2016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공헌했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연속 선정되었으며 2015년에는 영 플레이어상을, 2017년에는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이후 2. 분데스리가의 홀슈타인 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현재는 1. 분데스리가의 마인츠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021-22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공격형 미드필더 부분 내셔널 클래스 10등을 받았다. 분데스리가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순위다. 대표팀에서는 슈틸리케호에서 처음 뽑혔으며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세 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으며 벤투호에서도 핵심 선수로 중용받고 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조국의 16강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 박창선
- 생년월일: 1954년 2월 2일
- A매치 기록: 34경기 9득점
-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20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양발을 모두 활용한 정확한 패스와 가공할만한 슈팅력, 그리고 간결한 탈압박 스킬을 모두 겸비한 마에스트로라 평가받았다. 실업리그인 포항 제철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1979년 대표팀에 데뷔해 1984 아시안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참가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월드컵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이후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K리그에서는 1983년에는 포항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리그 도움왕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84년에는 대우로 이적해서 리그 우승에 공헌하고 MVP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K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한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 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 이영무
- 생년월일: 1953년 7월 26일
- A매치 기록: 85경기 27득점
-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5kg
-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지구력이 강한 선수로 평가받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드넓은 활동반경을 보여줬으며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뛰어났던 선수로 평가받는다. 포항제철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대표팀에서는 1978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1980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KFA 올해의 팀에 6회 선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한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 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한국 최초로 '기도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 고종수
- 생년월일: 1978년 10월 30일
- A매치 기록: 38경기 6득점
- 신체조건: 키 175cm
-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0년대 하반기 대한민국 축구계를 뒤흔들던 앙팡 테리블로 윤정환, 최문식과 함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테크니션으로 활약했으며 번뜩이는 창의성과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는 교묘한 패스는 물론이고 특히 왼발 킥력이 대단해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통했다. 그리고 최문식, 윤정환하고는 다르게 경합 능력도 나쁘진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6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했으며 1998년과 1999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1998년에는 리그 MVP와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고 1999년에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리그와 두 개의 리그컵, 그리고 슈퍼컵을 우승하며 4관왕에 올랐으며 특히 아디다스컵 3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2000년과 2001년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표팀에서도 1997년 1월 18일에 노르웨이전을 통해 국가대표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1주일 후에 치러진 뉴질랜드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연소 데뷔골 기록을 세웠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활약했고 히딩크호 초반에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2001년에 일어난 십자인대 파열과 개인의 불성실함이 겹쳐지며 고종수는 전성기에서 내려오며 천재는 몰락했다. 롱런했으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선수였다.
- 황보관
- 생년월일: 1965년 3월 1일
- A매치 기록: 37경기 10득점
- 신체조건: 키 178cm
- 주 소속팀: 유공 코끼리 (現 제주 유나이티드)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중거리 슈터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전반 43분에 프리킥 기회를 얻어 최순호의 볼을 받아찼는데, 무려 114km/h의 캐넌 슛을 넣었다. 이후로 황보관 하면 캐논 슛, 캐논 슈터 하면 황보관일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상대 골키퍼는 바르셀로나 역대 최고의 골키퍼 안도니 수비사 레타였으며 이탈리아 월드컵 때 베스트 골 5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1988 아시안컵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전승을 거두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유공에서도 활약하며 1988년 K리그 신인상과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으며 1989년에는 유공의 유일한 K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1994년에는 리그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일본의 일본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에 이적하여 활약하다 은퇴하고 그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대표팀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 신태용
- 생년월일: 1970년 10월 11일
- A매치 기록: 23경기 3득점
-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선수생활 대부분을 일화 천마에서만 보낸 천마의 왕으로 뛰어난 테크닉과 영리한 판단력을 활용한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플레이메이커로 전방에 볼 배급하는 능력도 뛰어났고,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득점력 또한 훌륭하였던 선수로 세트피스에도 굉장히 능했다. 일화에서의 업적은 K리그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는데 두 번의 왕조 시절을 모두 주전으로 경험했으며 박종환 체제에서는 리그 3연패와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준우승 각 1회 경험했으며 차경복 체제에서도 리그 3연패와 2004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에 공헌했다. 이 과정에서 신태용은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정에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회 연속으로 선정된 것을 포함해 총 아홉 번 선정되었으며 1992년에는 신인상, 1996년에는 리그 득점왕, 1995년과 2001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다만 플레이 스타일상 전권이 주어저야 빛을 발하는 선수라 대표팀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있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아예 소집도 되지 못했다. 요약하자면 K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라 할 만 하지만 대표팀 업적이 없기에 위상에 비해 평가가 낮았던 선수다.
- 박상인
- 생년월일: 1952년 11월 15일
- A매치 기록: 70경기 16득점
- 신체조건: 키 175cm
- 주 소속팀: 할렐루야 독수리
대한민국의 요한 크루이프라고 불렸던 선수로 데뷔 초에는 마른 체구를 약점으로 지적받았지만 이를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극복했으며 경기를 설계하는 능력과 뛰어난 창의성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한 우수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한국상업은행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하다가 1975년부터는 이차만을 밀어내고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KFA 올해의 팀에 무려 다섯 번이나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이적을 타진했으나 네덜란드 정부의 정책에 의해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대신 서독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로 이적했으나 부상과 현지 적응 실패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할렐루야 독수리의 초대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리그 베스트에 선정되었다, 이후 현대 호랑이에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 김두현
- 생년월일: 1982년 7월 14일
- A매치 기록: 62경기 12득점
-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양발을 모두 잘 쓰며 뛰어난 킥력과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선수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지원하는 완성형 공격형 미드필더로 팬들은 그를 한국의 제라드라 부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합류했다. 이후 고종수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2004 시즌 K리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차범근 감독 부임 이후 중앙 미드필더나 측면 수비수를 전전하는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성남으로 이적했다. 2005년 성남으로 이적해서는 3회 연속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특히 2006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 WBA에서는 팀의 챔피언쉽 우승에 기여하고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으나 부상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린 이 후에 국내로 복귀했다.
- 윤정환
- 생년월일: 1973년 2월 16일
- A매치 기록: 40경기 3득점
-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3kg
- 주 소속팀: 부천 SK (現 제주 유나이티드)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로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빠르면서도 정확하며 창의적인 패싱력, 그리고 우수한 킥력을 보여줬으나 동시에 약한 피지컬 능력으로 강도 높은 압박에는 고전했다. 동아대학교 시절에 이미 대표팀에 뽑혔으며 졸업하고 유공에 입단해 발레리 니폼니시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K리그 역사상 화려함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니포 축구를 보여줬으나 이후 세레소 오사카에서는 노정윤과 모리시마 히로아키에게 밀려났다. 대표팀에서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에는 소집되어 4강 신화를 경험했으나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 이차만
- 생년월일: 1950년 9월 30일
- A매치 기록: 50경기 6득점
- 신체조건: 키 171cm
-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1970년대 초반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키는 작았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악착같은 근성,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과 영리한 움직임을 겸비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72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가 방한해서 경기했을 때 뛰어난 체력과 수비력을 겸비했기에 그들을 마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1년과 1972년 KFA 올해의 팀으로 선정되었으며 실업리그 시절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훌륭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는 박상인과 이영무라는 더 훌륭한 미드필더가 있어서 대표팀에서 오래 활약하지는 못했다.
- 박병철
- 생년월일: 1954년 11월 25일
- A매치 기록: 55경기 7득점
-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 주 소속팀: 해군 축구단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했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힘이 넘치고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으며 특히 킥력이 뛰어나 세트피스 상황을 도맡아 처리했으며 롱 스로인에 아주 능해 30m 이상의 쓰로인으로 또 하나의 공격 루트를 만들어냈다.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한 이래 대표팀에서도 계속 활약했으며 1974 아시안 게임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독일의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이 그를 노렸지만 병역 문제로 입단하지 못했고 해군 축구단에 입단한 뒤 홍콩에서 활약했다. 대표팀 합숙 도중 무단이탈을 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문정식 감독과는 사이가 나빠 대표팀 소집을 거부한 전적도 있으며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에는 홍콩에서 활약했고 선수 생활 막바지에 럭키 금성으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 최문식
- 생년월일: 1971년 1월 6일
- A매치 기록: 38경기 9득점
- 신체조건: 키 174cm
- 주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해 1992 시즌 K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1993 아시안컵 우승에도 공헌했다. 다만 포항이 아시아 무대에서 위용을 뽐낼 때 상무로 입대해 그 영광을 같이 누리진 못했다. 프로 데뷔 직후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에 뽑혀서 활약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도 명단에 뽑혔지만 전술적인 이유로 주전으로 기용되지는 못했다.
- 남태희
- 생년월일: 1991년 7월 3일
- A매치 기록: 54경기 7득점
-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6kg
- 주 소속팀: 알 두하일 SC
카타르에서 이름을 날렸던 대한민국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신체 능력은 뛰어나지 못하지만 볼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며 드리블 능력만큼은 2010년대 대한민국 선수 중 최고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선수이다. 울산 현대 유스팀과 레딩 유스팀에서 활약하다가 발랑시엔에서 프로 입단을 했으며 발랑시엔을 떠난 이후에는 줄곳 카타르 리그인 알 두하일과 알 사드에서 활약하며 카타르 스타스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16-17 시즌에는 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2011년부터 활약했으나 2014년까진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해 구자철과 김보경에게 밀렸다. 하지만 슈틸리케 체제에서는 구자철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지만 이후 신태용호에서는 구자철과 이승우, 문선민에게 밀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다. 벤투호에서도 자주 선발되었으나 월드컵이 다가오자 다른 2선 자원에 밀려나며 월드컵과는 악연으로 끝날 비운의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 김보경
- 생년월일: 1989년 10월 6일
- A매치 기록: 38경기 4득점
-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 주 소속팀: 전북 현대
2010년대에 활약한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윙어다. 드리블이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볼컨트롤 능력이 뛰어나며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으며 카디프 시티에도 진출해 활약했다. 아시아로 돌아와서는 전북 현대에서 맹활약했으며 특히 2019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으며 2021 시즌에는 K리그 도움왕을 이뤄냈다. 유망주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서 2010 남아공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한 경기도 출전하지는 못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주전으로 나섰으나 부진한 활약을 보여줬다. 이후 대표팀과는 멀어졌다.[3]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미드필더〉, 《위키백과》
- 〈미드필더〉, 《네이버 국어사전》
- 토르난테,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 《티스토리》, 2022-04-23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