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성
히메지성(Himeji Castle , White Heron Castle, 姫路城)은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 있는 성으로, 17세기 일본 성곽을 대표하는 목조건축물이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성벽이 불에 타지 않도록 백색의 회벽을 발라두어 하쿠로성(白鷺城)이라고도 부른다.
히메지성의 주소인 '히메지시 혼정 68번지'는 일본의 주소 중 천황의 거처인 고쿄에 이어 두 번째의 면적을 자랑한다. 근대에는 육군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했었다.
시대극이나 영화 등의 현지 촬영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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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히메지성은 일본 성곽 건축 최전성기의 양식과 구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성으로서, 천수각의 우아한 모습 때문에 일명 백로성(白鷺城)으로도 유명하다. 천수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의 성은 모두 12곳이며 그중 천수각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곳은 히메지성, 마츠모토성, 이누야마성, 히코네성, 마츠에성 다섯 곳뿐이다.
히메지성은 17세기 초에 방어 체계를 갖춘 성곽으로 만들어졌으며, 총 8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성곽을 둘러싼 일대는 벚꽃과 단풍의 명소로 유명하며, 벚꽃과 단풍속에 우뚝 선 백로와 같은 성은 아름답지만 이러한 모습 뒤에 철저한 방어 체계와 보호 장치를 갖춘 튼튼한 요새로서의 진면목이 감춰져 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히메지성은 1333년경에 처음 지어졌으며,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수각을 증축하였다. 그리고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위 이케다 테루마사(池田輝政)가 개축을 시작하여 1609년에 완성하였다. 현존하고 있는 건물의 대부분은 이때 지어졌다. 지속적으로 증·개축된 이유는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나무로 지어진 히메지성은 불에 의한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화력(火力)을 이용한 무기가 발달할 때마다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히메지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흰색의 회벽칠도 불에 강한 회반죽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방어를 위한 장치로, 성벽을 따라 해자(垓子: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를 설치해 적의 접근을 막고 미로(迷路)를 만들어 놓았다. 또한 적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성벽을 부채꼴로 만들어 놓는가 하면 천수각으로 가는 길 곳곳에 함정을 만들어 두었다. 기록에 의하면 총과 화살을 이용해 숨어서 공격할 수 있는 장소가 무려 2,522곳이었다고 하며, 현재 287곳이 남아 있다. 히메지성의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은 복도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구조는 일본의 성들 중 유일하다. 소천수각에서 대천수각으로 통하는 복도는 좁고 구불구불하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도록 배치하여 침략자가 당황하는 심리적 효과를 노렸다.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성들은 잦은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후 재건되었지만, 히메지성만은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철저하게 방어체계를 갖추고, 성을 끊임없이 개축하였기 때문이다.
- 천수각과 그외
일본의 성에서 다층으로 이루어진 누각 부분은 천수각이라고 하며, 사진에서 보이는 가장 높은 천수각을 대천수라고 한다. "히메지 성"은 주위의 해자와 기타 건물들을 모두 다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사실 대천수의 크기 자체는 엄청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돌로된 기단의 높이가 14.85m 며 목건축 부분 높이가 31.5m) 언덕의 높이가 45.6m로 주위보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유독 크게 보인다. 히메지시 어디서나 성이 보일 정도. 히메지 역에서 내리면 히메지 성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대로 끝에 새 하얀 천수각이 서 있는 모습으로 처음 접하기 때문에, 실제로 방문하는 여행객에게 매우 강렬한 경험을 안겨준다.
대천수는 직경 1m 정도인 두 개의 거대한 나무 기둥에 의해 지탱이 되고 있다. 이를 심주라고 하며, 히메지성 내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심주에 의존하는 구조는 아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진행된 해체/복원 작업에서 심주 중 하나의 썩은 밑 단을 절단해서 교체하였고, 제거된 심주 부분은 근처의 히메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외벽은 화재를 막기 위해 전부 흰 회칠을 하였고, 이 때문에 백로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외벽을 모두 회칠을 해서 나무 기둥이 보이지 않기에 외관을 신경 쓰지 않고 벽 뒤로 나무 기둥을 촘촘하게 박아넣어 내구성도 상당한 편이다. 벽을 자세히 보면 각종 총안구가 뚫려 있어 성 밑을 돌아 침입하려는 적을 감시하고 사격할 수 있게 해 놓았으며 천수각으로 가는 진입로 역시 적을 빙 둘러서 지연시키는 요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사실 영주의 성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은 군사용 시설이기 때문에 내부는 일부분을 빼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화려하다기보다는 깔끔하다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외관만큼은 높은 건축물의 층 사이로 비례미를 살려 지붕을 배치한 모습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우아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편집]
건축 시기엔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아카마츠 가문이 전국시대에 쌓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가 되었는데 히데요시는 본거지를 오사카 성으로 옮기고 히메지를 동생 도요토미 히데나가, 측근 키노시타 이에사다 등에게 맡겼다. 에도 막부 시대에는 히메지번의 중심지가 되었다. 히메지 성은 간선도로인 서국가도(西国街道)를 감제하고 서국의 도자마 다이묘들을 감시하는 요충지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인 이케다 테루마사의 이케다 가문, 도쿠가와 가문의 대표적인 후다이 측근들인 혼다, 사카키바라, 사카이 가문, 쇼군의 친족인 마츠다이라 가문 등 여러 가문의 다이묘들이 히메지성의 성주를 맡았다. 히메지 번은 에도 막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번주 가문이 자주 바뀐 번 중 하나였는데, 히메지가 워낙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히메지 번주가 될 때마다 막부가 다른 곳으로 전봉시키고 나이가 찬 다른 다이묘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절에는 검은 색 성이였으나 이케다 가문이 부수고 현재의 새하얀 히메지성을 지었다
대천수 옆의 망루 중 하나가 센히메의 화장료(지참금)으로 지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집간 딸을 과부로 만든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혼다가와 재혼시키면서 미안한 마음에 지참금을 왕창 주었다.
사실 이 히메지 성은 도쿠가와 막부의 중추였던 에도(도쿄)로 통하는 중요 방위 거점 가운데 하나로서 건축된 성으로, 따라서 큰 손상을 입을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살아남은 케이스라고 한다. 특히 격동의 막부 말기에 히메지 영주였던 사카이 가문은 막부 편에 섰기 때문에 토막파와의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영주가 에도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동안 성에 남아있던 가신들의 결정으로 토막파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바람에 전투 없이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사실 에도 시대부터 히메지 성은 막대한 무게로 인해 지반이 침하되면서 기울어지게 되었고, 기둥과 들보 등이 변형될 정도 였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지반의 침하를 막기 힘들었고, 히메지 성은 50만석 규모였던 이케다 시절에 큰 틀이 완성된 거성이었기 때문에 15만 석 정도의 히메지 번을 소유한 다이묘들은 히메지 성의 유지에도 예산이 빠듯하여 작은 수리를 하며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히메지 번은 상습적인 재정난에 시달렸고 농민들은 과도한 세금으로 자주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1874년 폐성령이 내려서 히메지 성도 민간에 팔려 해체될 뻔했지만, 해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작업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국 그의 소유권은 무효가 되었다. 히메지 성은 육군으로 넘어가 보병 제10연대가 히메지성에 주둔하게 되었고, 이때 대부분의 성채를 철거당하고 화재로 소실된 건물도 있었다.
1877년 정도가 되자 남아있는 성에 대한 보존 움직임이 일었고, 1년 뒤 육군의 건축을 담당하던 부서의 나카무라 시게토 대좌가 상부에 요청해 나고야 성과 히메지 성의 남아있는 건물들에 대해서 보존하게 된다. 그러나 육군의 예산으로는 이 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지역 유지들이 메이지 정부에 탄원하여 국고 보조금을 지원받아 "메이지 대수리"라 불리우는 대대적인 수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성이 기울어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1934년에 니시노마루에 있는 와타리 망루가 비로 인해 석축 등이 붕괴된 것을 계기로 "쇼와 대수리"라고 불리우는 대규모 수리가 시작되었다. 우선 천수각을 제외한 나머지 부속 건물들을 수리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이 한참인 1944년 이르러서는 쇼와의 대수리는 중지된다. 미군의 대규모 폭격을 하던 시기에는 히메지 성의 대외 인지도가 없었던 터라 미군에서 지정한 폭격 금지 대상(문화사적) 리스트에도 포함되지 않아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할 위기에 놓였었다. 그러나 야간 폭격이 끝나고 날이 밝은 뒤에 보니 거의 손상을 입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어 주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주더라는 일화도 있다. 사실 소이탄 폭격을 받았지만 아성 망루에 떨어진 소이탄이 불발탄인 덕에 파괴를 면했던 것이었다.
1950년부터 쇼와 대수리는 재개되었고, 1955년에 이르러서 천수각를 제외한 모든 건물의 수리가 완료된다. 1956년부터 천수각의 해체 수리에 들어갔는데, 천수각의 기울어짐을 해결하기 위해 완전히 건물을 분해한 뒤, 썩은 부재를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이었다. 성이 기울어지는 원인이었던 주춧돌은 제거되고 철근 콘크리트를 새로운 주춧돌로 박아 넣었다. 그리고 썩어버린 서쪽 심주를 교체할 나무를 찾았지만 효고현 가나시타 신사에서 발견된 거대한 전나무 역시 아래는 썩고 위가 휘어 쓰지 못했고, 1959년에 이르러서야 기후현에서 맞는 전나무를 찾았지만 벌목하는 과정에서 부러져 버리고, 할 수 없이 옆에 있던 다른 큰 나무를 베었지만 이동하다 부러졌다. 그래서 효고현에서 발견된 나무와 기후에서 발견된 나무를 이어 서쪽 심주를 만들었다. 다만, 원래 서쪽 심주 역시 2가지 나무를 엮어 만든 것이었다.
또한 건물을 짓누르는 주요 원인인 기와의 무게를 줄여 총 무게가 6200톤에서 5700톤까지 낮아졌고, 내진성을 위해 금속 부재들도 새롭게 사용했다. 그러나 석축은 별 관계가 없어 수리하지 않았다. 천수각의 수리는 1964년에서야 완료되었다. 천수각만 수리하는 데 약 5억 3천 엔이 들었는데, 태평양 전쟁 전의 수리비까지 물가를 고려해 환산하여 합치면 1964년 당시 돈으로 약 10억 엔에 해당된다고 한다.
2010년부터 2015년 3월까지 "헤이세이 대수리"라는 이름의 해체 수리를 진행하였고 2015년 3월 27일 개장되었다. 헤이세이 대수리 이후 2015년 새로이 개장된 모습은 그야말로 하얗기 그지없다. 지붕 기와까지 하얀색 일변도라서 백로(시로사기)성이 너무 하얀 (시로스기) 성이라고 까지 불리울 정도다. 한동안 히메지 시민들의 아침 인사가 '성이 참 하얗네요'라고 한다는 스레까지 세워질 정도였다. 이는 원래의 공법대로 복원을 해서 기와까지 회칠을 하다 보니 생긴 일로 4~5년 지나면 색이 바래면서 자연스러운 색깔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기와가 하얀 것은 기와까지 전부 회칠한 것 때문이 아니라, 바람으로부터 기와가 날아가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이음새를 전부 회반죽으로 덮어서 그런 것. 그런데 이것이 워낙 두껍다 보니, 시야각 때문에 아래쪽에서는 지붕이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실제 기와는 까만 기와.
구조[편집]
기본 배치[편집]
전형적으로 제곽식 평산성이다. 천수는 히메야마 산 중심에 있으며, 그 주위를 여러 건물과 성벽으로 둘러쳐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히메야마 산의 북쪽을 기점으로 좌측선회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선회반경은 다시 내 구역, 중간 구역, 외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내 구역의 범위가 히메지 성의 범위로 인식하고 있다. 중간 구역, 외 구역에는 성하 마을이 입지해 있기 때문에 이 구역이 히메지 성의 소가마에(総構え)에 해당된다.
내 구역의 내부는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니시노마루, 데마루의 5중 구조로 되어있다. 내 구역 밖에도 미즈쿠루와, 고시쿠루와, 오비쿠루와 등이 있다. 또, 이들 성문은 이로하 순으로 명명되어 좀 더 세밀하게 구역을 나누고 있다. 현재 산노마루는 광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데마루의 일부는 히메지 동물원에 속해있다.
이케다 데루마사가 축성한 연도는 정확히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의 중간 시점이었고, 그런 이유로 실전위주의 방어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화려하고 웅장하여 서국 쇼군으로 불리는 이케다 데루마사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1615년 에도 막부에 의한 일국일성령에 따라 새로운 성을 축성하거나 성을 개축할 수 없게 되어 쇼군의 명령으로 지어진 에도성과 나고야성 등을 제외하고는 히메지성과 같은 규모에 성은 지어지지 않았다.
히메야마 산 북부에는 축성 이전부터 원시림이 존재해, 예전부터 혼마루로부터 원시림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현시점에서 통로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산노마루부터 니시노마루의 석벽 밑에는 사기야마구치 문이 내측해자로 연결되어 있다.
히메야마 산의 서쪽에 있는 센바 강(船場川)은 내측해자 가까이에서 흐르고 있어 해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강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예부터 여기를 수운으로 이용했었다.
통로와 문[편집]
통로는 미로와 같이 구불구불하거나 넓어졌다 좁아졌다하여 천수가 위치한 쪽으로 곧바로 전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본래의 지형과 하시바 히데요시가 성주로 재임한 시절의 성의 방어라인이 살아있다고 생각된다. 문도 한사람만 드나들 정도로 좁거나, 용도를 모르는 장소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여하튼 앞으로 나가기 어려운 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방어를 위한 것이고 적을 분산시켜 좁은 길에서 각개격파를 하기 위한 고안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현재 성의 출입구인 히시노 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이노 문, 로노 문, 하노 문의 순으로 가는 길이 천수에 빨리 도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히시노 문으로부터 오른쪽에 있는 루노 문으로 가는 쪽이 빠르다. 루노 문은 토사로 묻어 숨길 수 있는 우즈미 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적에게 불의의 타격을 입히려고 만들어진 문이라 사료된다. 하노 문부터 니노 문에 이르는 통로는 적병이 성을 방어하는 측에 등을 보이지않으면 전진하기 어렵다. 그리고, 호노 문은 좁은 쇠문이다. 그 후에도 대천수에 도달하려면 천수군 주위를 돌지 않으면 안 된다.
천수[편집]
히메지성의 천수는 현존해있는 12곳의 천수 중 하나이다.
히메지성의 천수는 히메야마 산 정상에 놓인 천수대 위에 건립된 것으로 1580년 봄 하시바 히데요시가 삼층천수를 건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이케다 데루마사에 의해 해체되어 이누이 소천수가 세워질 때 그 부재로 사용되어 현재 모습을 띠고 있다.
천수의 구조는 동서에 두 심주로 지탱되는 5층6계 지하1층인 7층의 대천수와 3층인 소천수 3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수와 천수 사이에는 2층인 와타리 망루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양식을 연립식이라고 한다. 건축시기와 구성으로 볼 때 후기 망루형에 속한다. 전체는 백색의 회벽으로 되어 있어 방화, 내화, 총탄의 방어와 미관상의 이유도 있다고 본다.
천수의 외관은 다른 성의 천수와 비교해도 매우 다채롭다. 다양한 하후를 볼 수 있으며 소천수에는 화두창을 볼 수 있다. 화두창은 후기 망루형 천수인 히코네성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누이 소천수의 화두창은 미완성을 강조하기 위해 격자가 없다.
히메지성의 천수는 히메야마산(표고 45.6m) 정상에 건립되었고, 히메지성 자체 높이는 석벽이 14.85m, 건물이 31.5m로 도합하자면 해발 92m가 된다. 천수의 총중량은 대략 5,700t이다. 예전에는 6,200t이었지만, 《쇼와 대수리》때 기와 등을 경량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천수각 안에는 히메지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니시노마루[편집]
니시노마루(西の丸)에는 와타리 망루인 나가쓰보네(長局), 그리고, 그 북단에 위치한 게쇼 망루(化粧櫓)가 있다.나가쓰보네는 시녀인 지조(侍女)들의 방이다. 게쇼 망루는 혼다 다다마사가 이세 구와나번에서 하리마 히메지번으로 이봉되었을 때, 며느리인 센히메의 게쇼료(化粧料)[8] 10만 석으로 1618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센히메는 니시노마루 안에 있는 주쇼마루(中書丸)와 산노마루(三の丸)의 무사시노 어전(武蔵野御殿)을 거처로 삼았다. 현재 두 건물은 소실되었다. 게쇼 망루(化粧櫓)에는 이름 그대로 화장품(化粧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고시쿠루와, 미즈쿠루와[편집]
천수 북쪽에 있는 고시쿠루와(腰曲輪)에는 농성을 위한 우물과 곡물 창고인 고메구라(米蔵)와 소금 창고인 시오구라(塩蔵)가 있었다. 덧붙여 평상시에 사용되던 창고는 히메야마 산 주위에 있었다.
천수의 밑은 암반으로 우물을 팔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천수와 고시쿠루와 사이에는 미즈쿠루와(水曲輪)를 두어, 미즈 일문(水一門)부터 미즈 오문(水五門)까지 문을 설치하였다.
고시쿠루와 안에는 호노 문 내측에 기름 벽(油壁)이라고 불리는 토담이 있다. 백색 회벽인 다른 담과 달리 차색(茶色)인 것이 특징이다. 만드는 방법과 그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고 그중 히데요시가 성주였을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라키리마루[편집]
본래 성의 방어와 사격 등으로 사용되던 장소였지만, 어스레한 분위기 탓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사료된다. 실제 할복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고, 애당초 성안에서 죄인 등을 할복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방어시설[편집]
성벽의 담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다. 이것을 사마(狹間)라고 하는데 일종의 사격용 구멍이다. 대체로 사각형으로 된 것은 야사마(矢狹間)이며 그 외의 것은 뎃포사마(鉄砲狭間)이다. 야사마는 활을 사용해 적을 공격하는 구멍이며, 뎃포사마는 조총을 사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구멍이다. 또, 천수의 벽에도 사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건물에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돌과 끓은 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이시오토시(石落し)가 설치되어 있다.
그 밖의 특징적인 구조물[편집]
건물과 담의 지붕에 있는 기와 등에서 역대 성주로 역임했던 가문의 문장들을 볼 수 있다. 이케다 가문의 호랑나비 문양, 도요토미 가문의 오동나무 문양, 혼다 가문의 아욱 문양 등이다. 그중에서 열십자 문양의 기와도 있다.
성주의 거관[편집]
애당초 성주의 거관은 천수대 아래에 있는 혼마루로 비젠마루(備前丸)로 불리고 있다. 이는 이케다 데루마사의 소령과 연관된 이름이다. 그러나, 비젠마루는 산 정상에 있는 탓에 불편하였고, 혼다 다다마사가 히메지번으로 이봉되었을 때 산노마루에 혼조(本城)라는 거관을 지어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시대의 성주 사카키바라 마사미네가 요시와라 유곽으로부터 다카오다유를 낙적(落籍)[10]시켜 살계한 니시야시키(西屋敷)가 있었다. 현재 니시야시키 터는 히메지성의 정원인 고코엔(好古園)으로 정비되었다.
현재 산노마루의 본조(本城)가 있었던 자리는 정원인 센히메보탄엔(千姫ぼたん園)으로 정비되었고, 무카이야시키(向屋敷)가 있던 자리는 산노마루 광장으로 정비되었다. 이 산노마루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처 및 이벤트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중간 구역, 외 구역[편집]
중간 구역에는 무가 저택이 있었고, 외 구역에는 하급무사와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였다. 현재 히메지시 중심부에 남아 있는 마을 이름에서 그 마을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일례를 들자면 가누치 정(鍛冶町), 고야 정(紺屋町)[12] 등의 장인 마을과, 고메야 정(米屋町), 시오 정(塩町) 등의 상인 마을, 고쇼 정(小姓町)[15] 다카조 정(鷹匠町) 등의 신분과 관련있는 마을, 가미데라 정(上寺町), 시모데라 정(下寺町) 등의 사찰 관련 마을 등이 있다. 에도 시대에 이렇게 성곽 안에 많은 마을이 입지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와 같이 도시를 둘러싼 성곽이 있는 경우를 소가마에(総構え)라고 한다. 그 밖에 소가마에가 유명한 성으로는 에도성과 오다와라성이 있다. 오늘날 중간 구역과 외 구역에는 해자와 석벽의 일부가 남아있고, 국도 372호(国道372号) 주변에는 다케노몬 교차로(竹の門交差点), 노자토 길(野里街道) 인근에는 노자토몬 우체국(野里門郵便局)라는 형태로 문의 이름이 남아있다. 외 구역 남쪽에는 산요 본선 히메지역 부근에까지 달하고 있다.
그 외에도 히메지성 주소지인 히메지 시 혼 정 68번지(本町68番地)는 주위에 경찰서, 고등학교, 미술관등이 있다. 번지로는 고쿄의 도쿄도 지요다구 지요다 1번지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혼 정 68번지는 내 구역 및 중간 구역에 해당되며 메이지・다이쇼 시대에는 육군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했었다. 1980년대 이후 이 일대는 정비되거나 재개발되어 다채로운 문화시설과 관광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관광[편집]
히메지성은 어마어마하게 넓다. '우치구루와'라 불리는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안의 부지 면적은 약 23헥타르. 대략 도쿄 돔의 5배 정도의 엄청난 면적이다. 그 중, 약 반 정도가 현재 공원으로서 이용되고 있으며 누구라도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치구루와 안에서도 '천수각'(성을 상징하는 건조물)을 중심으로 북쪽 에어리어는 유료 에어리어로 지정되어 있다.
입구를 빠져나와 언덕을 올라 가다 보면 보이는 것이 히시노 문. '토도산 시대'의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야구라 몬'(흙담이나 돌담 위에 지어진 건축물의 문)과 같은 형식의 문(門)으로 성 안에서 가장 큰 문이라고 한다. 성 안에는 이 히시노 문 이외에 '이노문', '로노 문' 등, '이로와쥰'(일본어 가나 47자의 표기 순서, 한글의 '가나다라'에 상응)을 사용하여 이름을 붙인 여러 문들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문을 빠져 나오면 왼쪽에는 니시노마루, 그리고 오른쪽 안쪽에는 '혼마루', 천수각이 보인다. 성 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는 하나 천수각까지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여기 저기에 보이는 성루나 문, 돌담 등은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진 것들로 이 하나 하나의 건조물들은 높은 역사적 가치와 일본 고유의 정취를 자아낸다. 수 많은 TV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히메지성.성 안에는 온통 역사적 정서가 넘쳐나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많은 건조물 중에서 역시나 메인은 천수각. 히메지성의 대천수는 지면으로부터 45.6m의 높은 건조물로 돌담이 14.85m, 건조물 본채가 31.5m, 해발로 계산하면 약 92m 높이로 우뚝 솟아 있어 성내 어디에서라도 대천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천수를 메인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성 안의 여러 정취와도 맞물려 각도에 따라 조금씩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성 입구에서 히시노 문을 빠져나와 똑바로 걸어간 곳에 위치한 이노문 부근. 문을 통과하여 오른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모든 천수각을 전망하는 것이 가능하다. 웅장하고 역동감 있는 대천수의 모습을 전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비센마루'. 비센마루는 원래 혼마루(성의 중심이 되는 성곽)의 일곽으로 성주 이케다 테루마사가 살았던 장소이다. 대천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지만, 메이지 15(일본 연호 1882)년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넓은 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니시노마루'정원! 성 안의 서쪽 부지에 위치한 니시노마루에는 센히메 유카리의 '케쇼야구라'(성루)와 '무샤다마리'(출진하는 무사를 모아 군대를 편성)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현재 이 곳은 소나무나 진달래 꽃이 피어 있는 등, 잘 가꾸어진 일본 정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정원 너머로 보이는 천수각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히메지성은 밖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수각, 니시노마루, 성루 등,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꼭 가봐야 할 곳은 천수각 내부. 이케다에 의해 세워진 현수각은 하나의 대천수와 3개의 소천수가 성루로 연결된, 연립식 천수라 불리는 구조로 세워져 있다. 모든 천수각은 입장이 가능하며 대천수는 최상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최상층에서 바라본 경치는 정말 최고. 히메지성의 대천수는 전망대 역할까지 하고 있어 아름다운 히메지 시가지를 전망하는 데 최적의 장소다.
그리고 일본의 성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샤치호코(궁전이나 성곽의 지붕 양단에 장식된 머리는 호랑이 같고 몸통은 물고기 모양의 장식물). 성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본래, 수컷과 암컷이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나 히메지성의 샤치호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쪽 모두 암컷이다.
성 안에는 또 다양한 전시와 볼거리들이 있다. 성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센히메 유카리의 성루가 있는 것 외에 성 안에서 시중드는 시녀들이 있던 장소인 니시노마루에 가면 이곳도 천수각과 동일하게 건물 안의 견학이 가능하다. 길게 쭉 뻗은 복도가 압권! 히메지성의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포인트. 흥미롭고 다양한 전시, 건물 안에 설치된 장치 등을 견학할 수 있는 것도 천수각과 동일하다.
다음은 성내 중앙에 위치한 니노 문'으로 이동. '쥬우지몽가와라'라 불리는 십자문 기와가 있는데 카톨릭 신자였던 구로다 간베에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는 '관련이 없다' 등 여러 설들이 쏟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돌담의 매력에 대해 알아본다. 역사와 함께 확장을 거듭해 온 히메지성. 서로 다른 시대의 돌담들이 혼재되어 있어 다양한 돌담들을 볼 수가 있다.
돌담은 시대에 따라 쌓아 올리는 방법이 달랐으며 쌓아 올릴 돌이 부족하여 밤에 등불을 이용하여 석관(돌의 관)의 돌을 유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돌을 모았다고 한다. 다음 구전 이야기는 돌이 부족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돌담의 돌을 모으는 데에 고심을 하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마을에서 떡을 팔던 할머니가 자신이 사용하던 돌 절구를 헌상하였다'이처럼 돌담을 보면서 일본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히메지성을 방문하면 아울러 꼭 들러야 하는 곳이 히메지성 니시오야시키 정원 '코오코엔'이다. 코오코엔은 히메지성 서쪽에 있던 무사 가문의 저택이 철거된 후, 발굴 조사에 의해 확인된 저택이나 통로의 잔존물을 살려 지어진 정원이다. 이 곳은 총 9개의 정원으로 구성(토담으로 구획되어 있다)되어 있으며 운치 있는 경치를 즐길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명소다. 코오코엔의 입장료는 어른 (18세 이상) 300엔, 소인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150엔 (전부 부과세 포함).
입장료[편집]
- 입성료 : 어른(18세~) 1000엔, 소인(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300엔
어플이용[편집]
성 안을 즐기는 법 또 하나는 '히메지성 대발견 어플' 전용 어플을 사용하면서 산책하기이다. '히메지성 대발견 어플'은 보다 즐거운 히메지성 산책을 위해, 최근 화제의 AR기술을 도입하여 만든,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어플이다. 먼저 자신의 단말기(스마트폰, 테블릿)로 어플을 다운로드 한 후, 인스톨 한다. 그리고 성 안 여기 저기에 설치된 간판의 AR포인트 마크에 단말기를 갖다 대면 그 곳과 관련 된 해설 동영상이 나오는 등,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교통[편집]
- JR 서일본 히메지역 하차 도보로 20분
- 신키 버스(神姫バス) 〈히메지성 오테문 앞(姫路城大手門前)〉하차.
-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신키 버스의 〈히메지성 루프 버스(姫路城ループバス)〉가 운영된다.
이벤트[편집]
- 시로의 날 (4월 6일)
1990년부터 행사가 열린다. 이날에 한해서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보통 비공개된 부분이 공개되고, 그 밖에도 많은 이벤트가 열린다. 이맘때 히메지 성 안의 벚꽃이 피며 지역을 대표하는 꽃놀이 장소 주목받고 있다.
- 히메지성 축제 (8월 초순)
히메지성 다키기노가 산노마루 광장에서 열리며, 〈성의 여왕〉등의 퍼레이드가 오테마에 대로에서 벌어진다.
주변 문화 시설 및 관광명소[편집]
- 효고 현립 역사박물관 - 히메지성 등 일본 전국의 성곽을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다.
- 히메지 시립 미술관 - 애당초 육군 건물이었고, 후에 히메지 시청 건물로 사용되었다.
- 일본 성곽 연구센터 - 시립 성내 도서관이 병설되어 있다.
- 코우코엔 - 히메지성의 정원으로 명칭은 사카이 가문이 설립한 번교 〈고코토(好古堂)〉에서 따왔다.
- 가로야시키아토 공원 -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 오테마에 공원
- 시로토피아 기념공원
- 히메지분가쿠칸
- 오토코야마 덴만궁・센히메 덴만궁
- 이타테효즈 신사
- 주니쇼 신사
- 히메지 시립 동물원
- 시오다 온천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히메지성 홈페이지 - https://www.city.himeji.lg.jp/castle/index.html
- 〈히메지성〉, 《위키백과》
- 〈히메지 성〉, 《나무위키》
- 〈히메지성〉, 《두산백과》
- 〈히메지조〉, 《일본의 건축》
- 〈히메지 성〉,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 〈국보 히메지성에서의 역사 탐방. 히메지성 & 코오코엔의 볼거리 및 즐기는 방법〉, 《라이브재팬》, 2019-09-16
- 정승열 여행작가, 〈정승열의 힐링여행 2 127. 히메지城〉, 《금강일보》, 2022-08-16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