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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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박물관(梵蒂冈博物馆, Vatican Museums, 이탈리아어: Musei Vaticani) 또는 바티칸미술관은 로마의 비알레 바티카노 바티칸 시 내부에 있는 세계 최대급 규모의 박물관(미술관)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세워진 광대한 전시관에는 수세기에 걸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바티칸박물관은 16세기에 교황 율리오 2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바티칸박물관과 통하는 방문 경로에는 시스티나 성당과 라파엘로가 장식한 서명의 방이 있다.
2015년 기록을 보면, 바티칸 미술관에는 한 해에 600만명이 방문하였다.
바티칸 미술관으로 입장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인데, 그 입구가 이탈리아와 바티칸의 국경이다.
개요[편집]
바티칸박물관은 바티칸 시내에 위치한 미술관(박물관)이다. 물론 따로 건물 하나에 있는 게 아니고 그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을 포함해서 바티칸 내에 있는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명칭이다. 비(非) 인도유럽어족 명칭으로는 바티칸 미술관의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인도유럽어족 명칭을 보면 '박물관'을 단수(Museum / Museo / Museum / Musée / Museo / Museu / Museum)가 아니라 복수(Musea / Musei / Museums / Musées / Museos / Museus / Museen)로 표기한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대가들이 남긴 걸작 르네상스 회화들과 역대 교황들이 수세기에 걸쳐 수집한 막대한 미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건 일본에서 지정한 것이라 다른 나라에서는 다르게 지정 되기도 하며 한국에서도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바티칸 대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라든지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언급하기도 하는 등 차이가 있다. 사실 이건 공식적인 지정이 아닌 임의 지정에 불과한 것으로 그리 신경쓸 것은 아니다.
단일 박물관이 아니라 여러 박물관과 갤러리가 하나로 묶여 있는 형태라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때문에 미술품을 감상하는 안목보다 근력과 지구력이 중요한 박물관이다. 국제학생증을 지참하면 할인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2022년 1월 현재 8유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지원되므로 관심있는 방문객이라면 이용하도록 하자. 타 박물관에 비하면 조금 비싸다(7유로). 하지만 내용물이 충실하므로 대여할 만 하다.
역사[편집]
1506년 1월 14일,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 포도밭에서 라오콘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율리오 2세는 교황청에서 교황을 위해 일하고 있던 줄리아노 다 상갈로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현장으로 보냈고, 이들이 라오콘을 매우 높게 평가하자 포도밭 주인으로부터 라오콘을 구입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교황은 자신의 거처인 사도 궁전에 딸린 벨베데레의 안뜰에 라오콘을 진열하고 일반에 공개해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이때를 바티칸 미술관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교황청에서도 2006년 미술관 창설 500주년을 기념해 바티칸 네크로폴리스 발굴 현장을 영구 개방했다.
본격적으로 미술관이 확장된 것은 교황 클레멘스 14세와 교황 비오 6세의 후원을 받으면서였다. 1771년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고대,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품을 수집한 것을 토대로 후임 교황 비오 6세가 소장품을 확대해 두 교황의 이름을 따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이라고 명명했다.
교황 비오 7세 때는 키아라몬티 미술관과 브라치오 누오보가 신설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때는 1836년 에트루리아 미술관 및 1839년 이집트 미술관이 각각 개관했다. 교황 비오 9세 때인 1854년 비오 그리스도교 미술관이 개관되었으며 교황 비오 11세 때인 1932년, 보르자 아파트에 있던 기존의 회화관(피나코테카)이 새로운 건물을 지어 재개관했다. 교황 바오로 6세 때인 1973년 현대 종교 미술 컬렉션이 사도 궁전 내 보르자 아파트에 개관했다.
구성[편집]
조각 미술관[편집]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편집]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라오콘을 구입한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고고학이 성행하면서 곳곳에서 발굴된 유물과 여러 기증자들이 교황에게 기증한 유물, 교황들이 구입한 유물 등이 누적되어 소장품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과 같은 개념으로서의 미술관이 바티칸에 탄생한 것은 교황 클레멘스 14세(1769-1774 재위)가 1771년 미술관을 설립하고 후임 교황 비오 6세(1775-1799 재위)가 건축가 미켈란젤로 시모네티(Michelangelo Simonetti, 1724-1781)의 설계에 따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미술관 건물을 확장시키면서부터였다. 이 때문에 두 교황의 이름을 붙여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797년 2월 19일에 체결된 톨렌티노 조약에 따라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에 소장되었던 걸작 예술품들이 프랑스로 강탈당했고 2년 후인 1799년에는 비오 6세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대에 프랑스로 납치되어 그곳에서 선종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1815년 빈 체제가 성립되고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757-1822)가 외교적으로 노력하여 예술품 대부분이 돌아왔다.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은 시스티나 성당과 총 54곳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시스티나 성당은 미술관의 가장 끝 자락에 있기 때문에 방문객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려면 먼저 전시관들을 모두 둘러보아야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전시관들은 아래와 같다.
- 그리스 십자형 전시실: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모후 성녀 헬레나 그리고 그의 딸 콘스탄차의 석관이 전시되어 있다.
- 원형 전시실: 몇몇 모자이크와 상(像)이 전시되어 있다.
- 조각상 전시실: 《잠자는 아리아드네》와 《메안드루스》와 같은 저명한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는 또한 《바르베리니 칸델라브룸》이 있다.
- 흉상 전시실: 흉상 몇 개가 전시되어 있다.
- 가면 진열실: 이 이름은 빌라 아드리아나에 세운 전시실 바닥에 있는 몇몇 가면을 그린 모자이크 그림에서 유래하였다. 벽을 따라 《삼미신》과 같은 유명한 조각상들이 보인다.
- 뮤즈 전시실: 아폴로 신과 아홉 명의 뮤즈 여신상들이 이곳에 있다. 조각상들에는 저명한 그리스 조각가들이 표시되어 있다.
- 동물 전시실: 몇몇 동물 조각상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키아라몬티 미술관[편집]
이 미술관의 이름은 1800년대 초에 이곳을 세운 교황 비오 7세가 교황에 선출되기 전 그의 성씨인 키아라몬티에서 유래하여 붙여진 것이다. 미술관의 측면은 조각상 몇 개와 석관들 그리고 소벽들이 진열된 커다란 아치형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라파엘 스턴이 세운 새 윙 브라치오 누오보에는 아우구스투스 조각상, 나일 강 같은 중요한 조각상들이 진열되어 있다. 키아라몬티 미술관의 또 다른 부분인 마옥속 전시실에는 3,000개가 넘는 비석과 비문이 있는데 그 종류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시관이다. 하지만, 이곳은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대개 관람이 불가하다.
그레고리오 이교도 미술관[편집]
그레고리오 이교도 미술관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1844년 5월 16일 라테라노 궁전에 설립되었다. 로마와 로마 근교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었으며 1960년대에 라테라노에서 바티칸으로 옮겨진 후 1970년대에 들어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지금의 자리에서 개관했다. 소장품은 고대 그리스부터 로마 제국 후기의 조각품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리스의 원본을 로마 때 모각한 작품도 있다.
그레고리오 에트루리아 미술관[편집]
1837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초기 소장품은 1828년 테베레 강 남서쪽에 위치한 라티움에서 출토된 에트루리아 유물이 근간이었다. 1870년 교황령을 상실한 이후 발굴을 통한 유물 확보가 어렵게 되자 수 차례에 걸친 구입과 기증을 통해 소장품의 숫자가 증가했다.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22개의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이집트 미술관[편집]
1839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창설한 미술관으로, 고대 로마 때 이집트에서 가져온 유물,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티볼리에 지은 빌라 아드리아나에서 출토된 이집트 관련 유물, 19세기에 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유물 등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내부는 9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끝에 있는 전시실 두 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키아라몬티 전시관[편집]
키아라몬티 전시관(Museo Chiaramonti)은 브라만테가 만든 복도이며 이곳에는 의외로 기원전의 작품에서 기원후 1,2세기에 걸친 오래된 작품들이 많다. 키아라몬티(Chiaramonti)는 1800~1823년에 교황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1807년에 안토니오 카노바의 계획으로 이 복도에 1000개가 넘은 조각물을 전시했다. 이곳의 조각물은 지금도 이탈리아 고대사와 복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피오클레멘티노 전시관[편집]
피오클레멘티노 전시관은 교황인 클레멘트 14세(1769~1774)와 피오 6세(1775~1799)가 만든 전시관이다. 그리스 시대의 작품부터 로마를 거쳐 1800년대까지의 다양한 조각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조각물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원작들이다.
회화관(피나코테카)[편집]
'피나코테카(pinacotèca)'라는 단어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미술관, 화랑을 의미한다. 현재의 회화관은 1932년 10월 27일에 개장한 건물로 바티칸 미술관을 구성하는 건물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에 지어졌다. 이 건물은 교황 비오 11세의 의뢰를 받은 건축가·건축사학자 루카 벨트라미(Luca Beltrami, 1854.11.13~1933.8.8)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했다. 내부에는 18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예술품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초기 소장품은 교황 비오 6세가 18세기 후반에 수집한 그림 118점밖에 없었으나 점점 숫자가 늘어나 현재는 그림이 460점에 달한다. 그 중에는 조토 디 본도네, 프라 안젤리코, 멜로초 다 포를리, 피에트로 페루지노, 라파엘로 산치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베첼리노, 파올로 베로네세,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등 이탈리아 예술사에서 대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현대 종교 미술 컬렉션[편집]
현대 종교 미술 컬렉션은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개관되었으며, 전세계 250여 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800여 점의 작품이 6개 섹션으로 구분되어 55개의 전시실에서 전시중이다. 이곳에는 오귀스트 로댕,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오딜롱 르동, 조르주 루오,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프랜시스 베이컨,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 현대 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종교적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선교 민족학 박물관[편집]
선교 민족학 박물관은 1925년 희년을 맞아 교황 비오 11세의 명으로 1926년 11월 12일 개관했다. 개장 1년 후 1927년 12월 21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옆에 있던 라테라노 궁전으로 박물관을 옮겼고, 1963년 라테라노에서 바티칸으로 유물을 옮긴 후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의 명으로 현 위치에 박물관을 새로이 개관했다. 초기 전시품은 전세계에서 수집한 유물 10만여 점에서 엄선한 4만여 점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이후 수집과 기증이 반복되어 현재는 10만여 점이 넘는 컬렉션으로 전시품이 증가했다. 내부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네 전시실로 구성된다.
비오 그리스도교 미술관[편집]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조각상, 석관, 금석문 등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라테라노 궁전에 있었으나 바티칸으로 옮겨졌다.
지도의 복도[편집]
지도의 복도는 바티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이 복도는 길이는 약 120m, 너비는 6m이다. 1578년에 착공에서 1580년에 완성했다. 이 복도 양벽에 이탈리아의 지도가 지역별로 그려 있다.
바티칸의 방들[편집]
- 소비에스키의 방
- 임마쿨라타 콘체지오네 방
- 라파엘로의 방들
- 콘스탄티누스의 방
- 키아라스쿠로의 방
- 엘리오도로의 방
- 서명의 방
- 보르고 화재의 방
시스티나 예배당[편집]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에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의 주문으로 착공하여 1483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시스티나'라는 말은 이 성당을 만든 식스투스 4세의 이름에서 유례한다. 이 시스티나 예배당은 추기경 회의를 하는 곳으로 교황을 뽑기도 하며 피신처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밖에서 보면 요새 형태의 모습을 띤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바치오 퐅텔리가 설계를 했고 조반니 데 돌치가 건축했다.
-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
- 모세의 일생 벽화예수의 일생 벽화
미켈란젤로와 천장화<천지 창조>[편집]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 이 프레스코 그림은 아주 힘든 방식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어쨋든 미켈란젤로는 1508년 5월 10일, 그의 조수들과 함께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간다. 그는 그림들 역순서대로 그렸는데 혹 잘못하지 않을 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천장을 9개의 틀로 나누었고, 다시 34개의 면으로 나누었다.
제단 쪽에서부터 '창세기'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그릴 작정이었는데 그의 첫 그림은 입구 쪽에 있는 '술취한 노아'였다. 전체 그림은 주제는 천장 중앙은'창세기',그 주변은 '12인의 무녀와 예언자' 삼각형 형태의 벽과 반월형 벽면은 '그리스도의 조상', 그리고 네 모퉁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려 넣었다.
제단화(최후의 심판)[편집]
미켈란젤로(1475~1564)는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그린 뒤 20년이 지나서 교황 클레멘트 7세(1523~1534)에게 다시 한번 더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마저 그려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실제 작업은 1536년에 바오르 3세(1534~1549)의 명으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여 1541년 10월 13일에 이 그림을 완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역시 미켈란젤로 혼자 그렸다는 사실이다. 이때 미켈란젤로의 나이는 61세의 고령이었다. 물론 그 후로도 그는 28년의 삶을 더 살았다.
또한 이 그림을 벽화라는 개념 때문에 기존의 천장화는 모든 장면을 구분해서 그려야 했으나 이 그림은 하나의 구도안에 유기적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로 인해 먼 하늘을 바라보듯이 그림 전체가 허공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바티칸 미술관의 주요 작품[편집]
- 카라바조가 그린 《거룩한 매장》(1602-1603)을 비롯한 몇몇 그림.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성 예로니모의 초상화.
- 프라 안젤리코, 조토 디 본도네, 라파엘로, 니콜라 푸생, 티치아노 베첼리 등 화가들의 작품들.
-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가져 온 붉은 대리석으로 만든 교황좌.
- 초기 그리스도인 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과 교리상의 석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의 비문을 비롯한 로마 시대의 조각상과 묘석, 비문 등.
- 《아테네 학당》으로 대표되는 라파엘로와 그 제자들의 작품들이 있는 라파엘로의 방.
- 니콜리나 예배당
- 시스티나 성당
- 지도 전시실: 벽면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의 지시로 탁발수사인 페루자의 이냐치오 단티가 그린 이탈리아 전역의 지형도가 있다. 지도 전시실의 위치는 벨베데레의 안뜰 서쪽이다. 전시실의 길이는 120m이다. 이곳에는 이냐치오 단티가 3년 만에 완성한 40개의 패널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치 천장의 장식들은 체사레 네비아, 지롤라모 무치아노와 같은 매너리스트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바티칸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museivaticani.va/content/museivaticani/en.html
- 〈바티칸 미술관〉, 《나무위키》
- 〈바티칸박물관〉, 《두산백과》
- 〈바티칸 미술관〉, 《위키백과》
- 좋은아침, 〈바티칸 박물관 투어 후기, 아쉬움이 크게 남았던 바티칸 투어,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네이버블로그》, 2022-12-24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