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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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와주(인도네시아어: Provinsi Jawa Barat)는 인도네시아 자와섬 서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3]
개요[편집]
서자와주의 면적은 35,377㎢이며 인구는 49,572,392명(2023)이며 주도는 반둥이다. 위쪽으로 자카르타와 붙어 있으며, 자카르타의 위성도시 격인 브카시와 데폭이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중앙자와주와 접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로서 반둥 도시권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서자와주에 위치한 최대 도시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인 브카시이다. 브카시의 인구는 300만 명 정도이다. 하지만 도시권을 기준으로 하면 반둥이 훨씬 거대하며, 반둥 도시권은 무려 800만명을 넘겨서, 인도네시아 전체로도 3위의 규모를 가진다.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판다를 보유한 동물원이 이 지역에 있다.
서부자바주의 토착 원주민은 순다족으로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통주택은 반튼주와 같이 카스푸한(Rumah Kasepuhan)이라고 부르고, 전통춤은 쿠푸-쿠푸춤(Tari Kupu-kupu), 자이퐁안춤(Tari Jaipongan), 크툭 틸루춤(Tari Ketuk Tilu) 등이 있고, 전통 무기로는 쿠장(Kujang)이라는 칼로서 여러 번의 곡선모양이 발달된 칼이다. 전통음악으로는 앙클룽(Angklung), 가물란(Gamelan), 르밥(Rebab) 등이 있다.[4]
자연환경[편집]
동남아시아에 연장되어있는 얕은 바다인 순다 대륙붕(Sunda Shelf)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해수면이 100m 이상 낮아진 빙기에는 서로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바섬 남부를 제외한 다른 섬들간의 수심은 얕은 편이다. 서쪽의 수마트라섬과는 순다 해협(Sunda Strait)을 통해 분리되어 있으며, 북쪽의 보르네오섬과는 자바해(Java Sea, Jawa Sea)로 서로 떨어져 있다. 동쪽의 발리섬은 발리 해협(Bali Strait)을 통해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자바섬 남부에는 인도양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위치해 있으며, 자바섬 남쪽 해안을 따라 깊은 순다해구가 지난다. 순다해구는 서쪽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서부터 수마트라섬 남단을 거쳐 자바섬 남단을 자니 소순다열도 남단에서 끝나는 해구로 그 깊이가 약 7,290m에 이르는 인도양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해구다.
적도 근방으로 열대기후를 보이며 연중 기온변화가 크지 않다. 다만 산맥의 배치로 인해 동쪽과 서쪽, 고산과 저산지대의 강수량이 다소 차이가 난다. 자바섬의 서쪽과 산지 일원은 연중 고루 비가 내리는 편으로 쾨펜의 기후구분상 열대우림기후(Af)로 구분되며, 자바섬의 북부와 동부 일원은 이보다는 비가 덜 내리는 열대계절풍기후(Am)으로 구분된다. 고산지대의 경우에는 다소 온도가 떨어져 온대 기후로 분류될 수 있는 지역도 있다. 예를 들어 서부 자바 고산지대인 파라얀간(Parahyangan)일대는 연 강수량이 4,000mm를 초과하나, 자바섬 동북부의 해안지대는 연 강수량이 900mm정도다. 우기는 주로 11월에 시작하여 4월에 끝나며, 우기가 아니더라도 스콜 형태의 강우가 오후에 내리는 경우가 잦다.
연평균기온은 지역에 따라 22~29℃를 보인다. 북쪽 인구 밀집 지역은 상대적으로 더 더운 날씨를 보이며,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 낮 최고기온이 34℃ 이상을 보이기도 한다. 남부 해안은 북부 해안지대에 비해서 다소 서늘한 편이며, 고산지대는 열대기후로 보기 어려운 온화한 혹은 냉량한 기온분포를 띄기도 한다.[5]
역사[편집]
동남아시아 고대사의 중심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자바섬이다. 인도문명을 원천으로 하는 인도네시아 고대문화를 '힌두 자바 예술' 혹은 인도네시아 고대사를 '힌두 자바기'라고 부르는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와 자바'가 예부터 그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자바 고대사는 7세기 이전 서부자바 시대, 8세기에서 10세기 초반까지를 중부자바시대, 10세기 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동부자바 시대로 크게 구분된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고대왕국은 중부자바시대의 사일렌드라 왕국이다. 사일렌드라 가문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일설에는 남부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에 말라요-폴리네시아 인종집단이 건설한 푸난이 쇠퇴하면서 그 세력의 일부가 중부 자바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산악의 영주'를 뜻하는 '사일렌드라'라는 이름이 '푸난(Punan)'과 일맥상통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듯하다.
8세기 후반에 사일렌드라 왕조은 도서부와 대륙부 동남아시아를 동시에 호령한 막강한 제국이었다. 그 위력이 현재에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바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는 크두 평원에 토대를 쌓고, 2,500㎢에 달하는 정사각형 면적에 높이 30m에 이르는 웅장한 사원이다. 이 사원은 인도의 대승불교 사원과 전혀 다른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사이렌드라 통치자들은 보로부두르 사원을 힌두-불교의 성지인 메루산(수미산)으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부자바시대와 동부자바시대를 잇는 왕국이 마타람 왕국이다. 856년 산자야 가문의 피카탄이 중부자바의 지배권을 되찾으면서 마타람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지역에 힌두교가 다시 융성하기 시작했고, 마타람은 보로부두르 사원 동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프람바난 힌두 사원군을 건설하며 번영을 구가했다. 마타람은 일명 신독 왕(재위 929~948) 재위 시절에 동부자바의 브란타스강 유역으로 천도하였다. 10세기에 접어들면서 치열해진 마타람과 스리비자야 간의 무역 경쟁이 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브란타스강은 천혜의 항구들인 말라카, 순다해협과 말라카 군도 사이에 점증하는 향료무역을 연결하는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10세기 후반에 동부자바의 마타람은 해상교역에 본격적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쌀 곡창지대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다음으로 고대 동부자바시대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크게 구분되는데, 전반기에는 케디리왕조, 후반기에는 싱가사리왕조와 마자파힛 왕조 등 많은 왕조의 흥망성쇄의 역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싱가사리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국가 공동체의 원형을 구축한 마자파힛 왕조의 기초를 다진 중요한 국가로 평가된다.
인도네시아 통합의 역사를 시작한 주역은 싱가사리의 마지막 왕으로서 왕호가 '시바부다'인 커르타나가라(Kertanagara, 재위 1268~1292)였다. 이때부터 인도네시아 전통 국가의 영향권이 자바를 넘어 현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공간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365년에 승려인 프라판차(Prapancha)가 집필한 마자파힛의 역사서는 1268년에 즉위한 커르타나가라의 통치시절부터 기록을 시작하였고, 그는 인도네시아 군도를 아우르는 원대한 국가건설을 시작하였고, 1294년에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의 원형을 제공한 마자파힛 왕국이 건설되었다.
이슬람교 전파는 자바를 포함한 말레이세계의 문명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꼽을 만하다. 이슬람은 늦어도 13세기 말경 북부 수마트라 지역에 정착한 다음, 14세기부터 15세기 초 사이에 동부 말레이반도, 동부와 북부 자바의 해안지역 그리고 브루나이로 확산했다. 그러나 16세기 초까지도 자바섬에는 대부분 힌두-불교가 더 영향력이 더 컸다. 그러나 1527년 마자파힛을 무너뜨린 중국계 가문은 데막의 라덴 파타로 이슬람교로 개정한 중국 상인의 혈통이었다.
이슬람의 영향이 확대되고 있는 시기에 이어서 외부세계인 유럽의 영향도 자바에 미치기 시작했다. 유럽세력 중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는 1605년 암본을 점령하고 포르투갈 세력을 추방할 만큼 힘이 강력했다. VOC는 기독교를 무슬림보다 우대하면서 동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VOC는 바타비아(자카르타의 옛 이름)을 점령하고, 자바섬 전체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당시 중부자바의 마타람 왕조 후예인 술탄 하멩쿠부워노 3세의 장남인 디포네고로는 VOC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 대표적인 영웅이다. 1825년에서 1830년까지 5년간 지속되었던 네덜란드 VOC에 대한 봉기는 일명 '자바전쟁'이라고 불리운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네덜란드 식민지는 1941년 일본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인도네시아도 1945년 일본식민지로부터 독립하였다.
인도네시아 독립은 일본 패망이라는 외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스스로 독립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독립운동이 20세기 초부터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45년 3월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독립준비위원회(BPUPKI)를 설립하였고, 독립을 향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내적인 준비와 일본 패망이라는 외적인 상황에 맞물려 1945년 8월 17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한 이후 네덜란드가 다시 인도네시아로 들어왔고,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재점령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전쟁을 인도네시아는 '혁명전쟁'이라고 부른다. 1949년 12월에서야 인도네시아 독립이 완성되었다. 인도네시아는 혁명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 신생독립국가로서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6]
반둥[편집]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섬에 위치한 주도로, 서부 자와주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자카르타(Jakarta), 수라바야(Surabaya)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140㎞ 떨어진 서부 자바섬에 위치한 도시로,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반둥은 서부 자바주(이하 서자바주)의 주도로, 서부 자바섬의 행정 및 경제의 중심지이다. 자카르타, 수라바야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자카르타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반둥은 해발 고도 768m에 위치하여, 다른 인도네시아 지역보다 연중 기온이 시원한 편으로 평균 기온이 23.5°C이다. 이러한 기후적 특성과 지리적 근접성으로 반둥은 서부 자바섬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다. 북쪽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은 고도 1,050m(3,445피트)이고, 남쪽에서 가장 낮은 지점은 해발 675m(2,215피트)이다.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이다. 반둥은 화산산으로 둘러싸인 강유역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수도를 바타비아(Batavia, 현 자카르타)에서 반둥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 계획은 지속되지 못하였고,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 서자바주의 주도로 지정되었다. 반둥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대학 중 하나인 반둥공과대학교(Institut Teknologi Bandung, 1920년 개교)의 소재지이며, 이 대학은 인도네시아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대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반둥은 독립 당시 전투가 일어난 곳으로 인도네시아 근대 민족주의 발흥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이다. 1955년에는 제3세계 비동맹운동을 상징하는 반둥회의가 개최되었다.[7]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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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서자와주〉, 《위키백과》
- ↑ 〈서부자바〉, 《나무위키》
-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자바섬 도시구조 및 행정〉,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자바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자바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반둥〉,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서자와주〉, 《위키백과》
- 〈서부자바〉, 《나무위키》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자바섬 도시구조 및 행정〉,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자바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자바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반둥〉,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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