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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라고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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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위치

로스라고스주(스페인어: X Región de Los Lagos)는 칠레 남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

개요[편집]

로스라고스주의 면적은 48,583.6㎢이며 인구는 767,714명(2012)이다. 주도는 푸에르토몬트이며 4개 현(양키우에 현, 오소르노 현, 칠로에 현, 팔레나 현)을 관할한다. 동쪽으로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은 태평양에 면한다. 북쪽에는 해안산맥 등이 뻗어 있고, 남쪽은 코르코바도만(灣)에 맞닿아 있다.[2]

자연환경[편집]

로스라고스주는 서안 해양성 기후가 나타난다. 서안 해양성 기후(西岸海洋性氣候)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온대 기후에 속하는 기후이다. 주로 남북위 40˚~ 60˚사이인 대륙 서안에서 나타나는 기후로, 여름은 비교적 선선하고 겨울은 비교적 따뜻하며, 연교차가 작다. 대체로 습윤하여 연중 강우량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후가 발생하는 까닭은 기압의 배치와, 난류가 흐르고, 편서풍이 부는 것 때문이다. 습윤한 기후 때문에 안개가 자주 낀다. 대도시와 문명이 발달하기 좋은 곳으로, 실제로 대규모 공업단지와 대도시가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쾨펜은 서안 해양성 기후를 가장 따뜻한 달이 22˚C 이하이고, 10˚C 이상인 달이 네 달 이상이면, Cfb로, 10˚C 이상인 달이 네달 미만이면 Cfc로 구분하였다. [3][4]

역사[편집]

19세기 말엽 산티아고 정부는 아라우카니아 병합 당시 마푸체인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면서 남쪽 지역도 장악했다. 1881년 칠레는 아르헨티나와 조약을 맺어 마젤란 해협에 대한 칠레의 영유권을 확정했다. 아타카마 사막의 초석을 두고 벌어진 태평양 전쟁(1879~1884) 때 페루와 볼리비아와 싸워 볼리비아를 내륙으로 밀어내고 거의 국토의 1/3 넓이의 새 북쪽 땅을 얻었다. 또한 칠레가 볼리비아로부터 점령한 영토(아타카마 사막)에는 초석이 풍부하여 칠레의 번영에 기여했다.

1891년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 분배를 놓고 일어난 칠레 내전이 일어났고, 칠레는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내전은 해외 투자자와 강한 연줄이 있던 에드워드 가문처럼 지역 산업 발전과 막대한 칠레의 은행 이자의 혜택을 입은 자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래서 칠레 경제는 과두정 정부의 기득권을 지키는 체제로 퇴보했다. 1920년대에 중산층과 노동계급이 성장해 개혁주의자 대통령 아르투로 알레산드리 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보수적인 의회 때문에 좌절됐다. 알레산드리 팔마의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식 정부로 변질되었다. 1920년대 마르크스주의 집단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발흥했다.

1924년 루이스 알타미라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칠레는 1932년까지 정치적 불안정을 겪는다. 이 시기 10개 정부중 가장 오래 지속된 정부는 1925년 잠시 권력을 잡았다가, 다시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사실상 독재정권을 수립한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 장군의 정부였다. 그러나 이는 라틴 아메리카 다른 국가에서 빈번했던 군사 독재의 잔인함과 부패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고, 수십년 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정권에 비할 바도 못 되었다. 이바녜즈 델 캄포는 비록 이념 성향이 모호하고 변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권력을 양도해 30년이 넘도록 대다수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2년 헌정 질서가 복원됐고 강력한 중산층 정당인 급진당이 부상했다. 이후 20년간 급진당은 연정의 주요 세력이었다. 1952년 유권자들은 이바녜스 델 캄포를 다시 6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선출했다. 1958년 호르헤 알레산드리가 이바녜스 델 캄포를 승계해 칠레 보수 정치를 다시 민주적으로 전환했다.

1964년 기독교 민주당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돼 주요 개혁 정책을 폈다. "자유하의 혁명"을 슬로건으로 프레이 정부는 사회 경제 정책, 그 중 특히 교육, 주택, 그리고 농업 노동자의 조합화 등 농업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1967년 프레이는 좌우파 양측의 반대에 부딪혔다. 좌파에서는 그의 정책이 불충분하다고 보았고, 우파가 보기에는 너무 과도하다고 본 것이다. 프레이 정부 임기 말에 그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으나 기독교 민주당이 당초 바라본 목표를 완수하지는 못했다.

1970년, 칠레 공산당 후보인 파블로 네루다와 단일화를 이룬 인민연합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는 36.62%를 득표해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아옌데 대통령은 곧바로 사회 제도 개혁에 착수하는데, 이는 칠레의 부를 독점하는 소수의 자본가들과 칠레경제를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목축업자들을 지배하던 스위스 네슬레 등)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아옌데 대통령은 자본가들이 독점한 부의 일부를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함으로써 극심한 빈부의 격차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또한 미국 광산 회사 아나콘다가 소유한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을 국유화하여 외국계 기업들에 의한 국부 유출을 막고자 하였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 정부는 국제 구리 값을 폭락 시키고 칠레 경제는 공황을 겪게 된다. 또한 미국 CIA에서는 세계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어선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껴 아옌데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을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칠레 국민들은 사회개혁을 실천한 아옌데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그러자 칠레 자본가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해고와 가축도살을 통한 실업과 식량난을 조장했으며, 친미파 장교들이 지배하던 군부에서는 쿠데타 음모를 꾸몄다. 그럼에도 아옌데 대통령은 국가전복음모를 꾸민 군부를 견제하기보다는, 국민투표로 국민의 심판을 받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군부에서는 질 것이 뻔한 게임에 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폭력으로 나라를 뒤집기에 이른다.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군은 공군 장성 출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필두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호크기를 동원해 라 모네다(칠레의 대통령궁)를 폭격하는 와중에 아옌데는 대(對)국민 선언을 라디오를 통해 전하고서는 기관총으로 피노체트 군에 저항했으나 결국 자결했다. 정권을 탈취한 피노체트 및 장성들은 훈타라고 불리는 삼인 체제를 설립하고 곧 피노체트의 독재가 시작된다. 피노체트는 16년간의 군부독재기간동안 정치적 반대자들을 학살, 고문 등의 국가범죄로 탄압했다.

1989년 민주화 운동의 압력을 받아 치루어진 선거에서 패배한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은 물러났다. 이는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아가면서 진행된 민주화 운동의 성과였다.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 협력체 소속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이 연립정권 형식으로 집권했다. 2010년 대선에서 야권 보수 후보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당선되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나, 2014년 3월 11일 미첼 바첼레트가 재선되었고, 현재는 집권 여당인 칠레 사회당이 정권을 재창출 하였다. 현재는 가브리엘 보리치가 칠레의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극좌 정치를 하게 되는 주인공이 된다.

사회[편집]

칠레는 여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처럼 성이 개방적이다. 청소년 시절에 성관계를 갖는 걸 평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 대화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가족끼리 성교육 소재를 넘어 성적 취향이나 소재들로 대화하는 것도 흔하다. 칠레의 사회계층 간 괴리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인데, 이는 문화 요소에서도 나타난다. 중-상류층 가정의 경우, 문신, 복장, 남녀 교제 등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지닌 부모들이 다수 존재한다. 윗 문단에 언급된 내용이 속칭 '날라리'를 뜻하는 플라이떼(Flaite)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민자, 서민계층과 중상류층의 특징은 스포츠, 옷차림, 직업, 피부색, 언어구사 등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를 희화화한 El Cuico Negro(어두운 피부색의 도련님)이라는 꽁트도 있다. 상류층의 전형적인 삶을 유지하지만, 피부색이 어두운 주인공이 고충을 토로하는게 주 내용이다. 특히 관광지가 위치한 산티아고 센트로, 퀸타 노르말, 한인촌이 위치한 레콜레따의 경우 현지의 중산층보다는 이민자, 서민계층이 다수 거주하는 구역이며, 이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지는 칠레의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다 주로 중상류층이 거주하는 구역은, 동쪽의 비타쿠라, 프로비덴시아, 뉴뇨아, 라 레이나, 라스 콘데스, 로 바르네체아, 라 데에사 등으로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일단 동쪽으로 가게 되면 도시 풍경부터 달라진다. 산티아고 주민들 사이에는 이탈리아 광장(Plaza Italia)가 위치한 바케다노(Baquedano) 역을 기점으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도 우스갯소리로 존재한다.

현지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 학생들에 따르면, 칠레 청년들은 대부분 나이를 먹어갈수록 성과 사랑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택한다고 한다. 이는 사랑이 현실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삶의 측면을 중요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칠레 대중 또한 소득에 비해 턱없이 높은 물가 때문에 성인이 되어도 부모와 같이 사는 캥거루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관계를 하더라도 임신과 육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현재 칠레의 사회적인 모습은 더욱더 기존 선진국의 사회상을 닮아가는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칠레는 혼인절차가 까다로운 편인데, 공무원이 결혼식 장소에 출장을 나와서 혼인서약을 주관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결혼식을 올릴 날짜와 시간을 6개월 전부터 관공서에 미리 예약해야 하며, 이미 예약되었거나 애초에 예약을 할 수 없는 날짜와 시간대에는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 이후 혼인을 증명할 증인을 데리고 결혼식 1개월 전 쯤에 다시 관공서를 방문해서 증인을 등록해야 한다. 또한 결혼식날 혼인서약을 할 때 앞으로 부부사이에 형성되는 재산의 처리 방법을 공유 / 개별소유 / 공유+개별소유 중의 한가지로 미리 결정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만일 배우자 한쪽이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통역할 사람이 있어야 하며, 통역할 사람은 해당 언어의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합당한 통역능력이 있음을 공증받아야만 한다.

가톨릭 국가로서 이혼이 불법이었다가 2004년에야 합법이 되었다. 아메리카에서 이혼법이 없는 마지막 나라였고 이혼을 위해 이혼소송이 아닌 혼인무효소송을 냈어야만 했다. 이혼법이 제정된 현재에도 이혼에 합의한 경우에는 1년의 별거기간을 거쳐야 하고, 한쪽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3년을 기다려야 하며 60일 이상의 삼담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법제도의 영향으로 혼인을 하기보다는 동거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의외로 팔레스타인계 주민들이 힘을 쓰는 편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데다가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가 팔레스타인계 자본인 경우가 흔하며, 정계진출도 활발하다. 또한 팔레스티노라는 자체축구팀도 존재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칠레계 자본이 팔레스타인 경제의 밑천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는데, 현재까지 통제가 풀리지 않고 있으니 현재로써는 머나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5]

교통[편집]

푸에르토몬트는 팬아메리칸하이웨이와 칠레 종단철도의 종착역이다. 수송은 거의 수로(水路)에 의존한다.

엘 테푸엘 국제공항[편집]

칠레 남부 로스라고스주(州)의 주도 푸에르토몬트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거리에 위치한다. 북부 파타고니아 지방과 몬테베르데 유적지로 통하는 관문이다. 1960년 4월 개항했으며, 푸에르토몬트 공항(Aeropuerto de Puerto Montt)으로도 불린다. 공항 코드는 PMC(IATA), SCTE(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활주로는 2,650mx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란항공(LAN Airlines)·스카이항공(Sky Airline)의 2개사가 있으며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 산티아고(Santiago), 발마세다(Balmaceda), 콘셉시온(Concepción)등의 국내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교통편으로는 도심을 연결하는 V-720번 도로가 인접한다.[6]

산업[편집]

주요 농산물은 감자·밀·귀리·과일 등이며, 쇠고기·낙농제품 등의 생산도 활발하다. 제재업을 비롯하여 제철·생선통조림 등의 공업이 이루어지며, 양키우에호(湖)를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로스라고스주〉, 《위키백과》
  2. 두산배과: 로스라고스주〉, 《네이버 지식백과》
  3. 칠레〉, 《위키백과》
  4. 서안 해양성 기후〉, 《위키백과》
  5. 칠레〉, 《나무위키》
  6. 두산배과: 엘 테푸엘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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