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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4644&cid=42635&categoryId=42635 파하르푸르]〉, 《미술대사전(용어편)》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4644&cid=42635&categoryId=42635 파하르푸르]〉, 《미술대사전(용어편)》 |
2023년 4월 21일 (금) 16:33 판
파하르푸르(Pahaṛpur)는 방글라데시 라주샤히주(州)의 작은 역 자마르간주의 서쪽 5km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히말라야 남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수도원 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소마푸라 불교 유적으로 알려진 파하르푸르의 불교 유적(Ruins of the Buddhist Vihara at Paharpur)은 팔라 왕조의 황제 다르마팔라(Dharmapala, 770~810)가 건설하였다.
이 수도원은 사각형의 형태로, 안뜰 중앙부에 바닥이 십자 모양으로 설계된 거대한 사원이 있고, 북쪽에 입구가 딸린 정교한 복합 건물이 서 있다. 네 면의 담을 따라 총 177개의 승방이 있는데, 북쪽에 45개, 다른 세 면에 각각 44개가 있다. 이러한 설계와 석재 조각, 점토판 장식 등은 이 건물의 종교적 기능을 반영한 것으로, 이는 캄보디아와 자바(인도네시아) 불교 건축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약 11㏊에 이르는 고고학적 유물의 전체 건물에는 외부의 각 면이 275m 이상 되는 사각형의 정원이 있으며 두께 약 5m, 높이 약 3~5m의 높은 담이 있다. 점토판에 조각을 새겨 건물을 장식하였으며, 점토판에는 부처와 힌두교의 신들, 동물과 사람 등이 그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파하르푸르는 이 일대에서 불교의 중심지로 발달하여 순례자가 17세기까지 이어졌다.
출토된 유물은 1956년~1957년에 완성된 소규모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라즈샤히(Rajshahi)의 바렌드라(Varendra) 연구 박물관에도 발굴된 유물들이 일부 전시되어 있다. 전시되고 있는 유물은 점토판과 다양한 형태의 신과 여신의 형상, 도자기, 동전, 비문, 장식용 벽돌, 기타 점토로 만든 작은 물건들이다.
1985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소마푸라 마하비하라(Somapura Mahavihara)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지만, 불교, 힌두교 유적도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중에 파하르푸르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교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소마푸라 마하비하라(Somapura Mahavihara)가 있다. '위대한 수도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대승불교가 꽃피던 시절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있던 5개의 승려 교육 기관 가운데 한 곳이다. 이 승원은 불교 진흥기인 7세기경 인도 팔라 왕조 시절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12세기까지는 전 세계의 승려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소마푸라 마하비라(Somapura Mahavira)는 12세기까지 지식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다. 이 유적은 종교적 기능을 완벽하게 적용하여 설계된 곳으로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의 간결하고도 조화로운 선과 다양한 조각 장식은, 멀리 캄보디아의 불교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팔라 왕조(Pala dynasty)는 750년부터 1174년경까지, 인도 북동부 지역(벵골 지역과 비하르 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지배한 불교 왕조다. 수도는 파탈리푸트라였다.
7세기 후반에 바르다나 왕조가 멸망한 후, 벵골 지역과 비하르 지역은 무정부 상태에 빠져 북동쪽 인도의 프라티하라 왕조와 데칸의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침입도 있었고, 이 지역은 물고기의 법률로 알려진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각지 명사들의 공식적인 선거로 750년에 고팔라(750~780)가 왕으로 선출되었다.
이 왕가의 조상들은 명료하지 않다. 라자푸트라 왕조가 그 조상을 신화와 사자의 영웅으로 미화시키는 것에 비해 조상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 크샤트리아도, 브라만도 아닌 바이샤나 수드라 계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팔라 왕조의 역대 왕은 불교를 보호하였고, 당시의 북부 벵골에는 비하라(사원)가 많았기 때문에, 이후의 비하르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바로 이곳에서 8세기 후반에 인도 철학의 거장 샨타락시타와 대밀교 수도승 파드마 삼바바 등을 불교 사절로 티베트에 파견했다. 팔라 시대의 불교는 밀교가 번성하여 소위 '탄트라 불교'였기 때문에, 티베트 불교도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또한 예술을 보호하였기 때문에, 회화, 조각, 청동 주물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불교 미술에서는 '팔라식 불상'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그 예술은 '팔라파'와 '동방파'라고 하며 뛰어난 기교와 단아한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다.
7세기 인도는 순수불교가 쇠퇴하면서 탄트라불교(밀교)가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되던 시기다. 밀교는 날란다대학의 동쪽 지역인 비크람쉴라와 파하르푸르에서 찬란한 꽃을 피웠고, 티벳으로도 전파되었다. 따라서 이곳은 탄트라 불교의 진귀한 유적지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인도는 수행에 의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바라문교의 여러 신들이 습합되고 또 수호주(守護呪) 따위가 독송되고 있었다. 7세기에 들어와서 화엄경 등 대승불교의 경전을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와 기타 민간종교의 주법(呪法)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밀교가 성립되었다.
초기불교에서는 금지되었던 세속적 주술이나 비의(秘儀)가 차차 인도 불교 속에 침투되었는데, 특히 재가신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승불교에는 그 경향이 강하여 대승경전 속에 다라니라고 부르는 주문이 삽입되고 후에 이것이 하나의 독립된 경전으로 발전한다. 한편, 부처의 법신이라는 가르침도 그 범신적 경향으로 신비주의와 연결된다. 이리하여 대승불교의 새로운 전개로서 금강승이라고 부르는 밀교의 교의가 성립되고, 7세기경 그 교의를 설한 <대일경>이나 <금강정경>이 나타났다. 이러한 밀교는 자기수행이라는 면이 적고, 현실긍정적이라는 면에서 대중들에게 급속히 확대되었으나, 현세의 행복추구가 동시에 쾌락추구라고 하는 도덕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후에는 남녀의 결합을 신성시하는 좌도밀교(左道密敎)를 낳아 인도불교 멸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밀교는 힌두교의 일파인 시바의 여신 샤크티(性力)를 숭배하는 샤크티파와 결부되어 성(性) 숭배 신앙과 겹쳐서 비외(卑猥)스러운 성적비의(性的秘儀)에 떨어지는 수가 많았다.
더불어 12세기말부터 13세기 초에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여 불교의 중심지였던 비하르지 방을 점령하고 밀교의 본거지였던 비크라마시라 사원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많은 승려를 죽였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내외적으로 쇠퇴가 촉진되어 인도 땅에서 쇠망하게 되었다. 파하르푸르의 불교문화도 12세기 이슬람의 침입으로 승려들이 몰살당하면서 멸망했다.
건축 및 구조
콜카타 대학과 인도 고고국에 의해 1925~1934년에 발굴됨. 8세기 방글라데시 땅을 불교가 지배하던 시절 지어진 높이 24m, 면적 8만5000㎡ 규모다. 길이와 너비 모두 300m에 이르는 정사각형 모양을 갖췄으며 두꺼운 벽돌로 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원 중앙에 탑이 있고, 주위로 177개의 승원이 이를 감싸고 있다. 대승원 각 면의 중앙부에는 출입문이 있고, 내부에는 승려들의 방과 식당, 주방, 사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조각이 새겨진 점토판으로 장식돼 있어 당시 문화를 짐작하게 해준다. 3층 및 2층 일부가 소실돼 온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기단부에 남아 있는 수천 장의 점토판만으로도 농민, 음악가, 무용가 등 당대의 인물과 소박한 삶의 형상을 엿볼 수 있다.
인근에는 320년쯤 인도 찬드라굽타가 세운 마우리아 왕조의 거점 도시 마하스탄가르가 있다. 성벽만 남은 이 유적지는 5m 높이의 붉은 벽돌 장벽이 남북 1525m, 동서로 1370m가량 된다.
관람
지금은 유적과 유물만 남아 있고 당시 웅장한 건물은 터만 남아 있어 옛날 영화를 기억하게 한다. 고고학단이 이곳에서 479년이 적힌 굽타왕조의 동 그릇을 발굴하였고, 이 승원터의 마지막 건물이 팔라왕조 2대왕인 다르마팔라 (770~810)왕이 불사했다는 기록도 찾아냈다. 정확한 승원의 시작은 알 수 없다.
방글라데시 한 학자는 부처님이 이곳에 다녀가셨다고 한다. 나란다 대학이 부처님 전생담과 사리불존자 고향인 것처럼 이곳도 부처님 발자취와 관련이 있어 보이나,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소마푸라 터는 정사각형으로 남북 281m x 동서 280m이다. 4면 방향에 해자가 있고 그 안쪽 해자를 따라 177개(한방규모 4.26 x 4.11m)의 승방이 2층 규모로 성을 이루듯 지어졌다. 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안쪽 공간을 보호하게끔 형성되어 있다. 2층 승방은 지붕이 있으나 현재는 1층에 터만 남아 있다. 안쪽 큰 공간은 탑과 스투파 등 다른 중요 건물들과 부엌, 우물, 사무실 등의 건물이 별도로 있으며, 정 중앙엔 높이 5층이 있다. 1층 크기가 남북 112.4m x 동서 95.78m이다. 이 규모는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대탑 크기다.
현재는 3층과 그 위로 벽돌을 쌓아 두었다. 3층의 네 방향의 각각의 감실은 부처님을 모셨다. 팔라왕조는 주변 불교 국가들 중 미얀마에 많은 불교 영향을 줬다. 특히 미얀마의 탑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얀마 대탑을 상상해보면 대략 이 탑의 구성을 알 수 있다. 각층 탑면에는 신상에 여러 동물상이 부조되어 있고 탑돌이 하듯이 돌게 되어 있다. 탑의 구조는 만다라 양식이다.
- 파하르푸르 소마푸라박물관
파하르푸르 소마푸라승원터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그중 최고의 전시관은 딱 한존 모셔진 불상관이다. 불상의 미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소로 힘든 여정의 피로를 위로하는 니르나바의 미소다.
- 찾아가는 길
수도 다카에서 250km 거리. 조이푸르하트(Joypurhat)에서 내려 12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봉고 정도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도로가 협소하다. 조이푸르하트에서 오토릭샤를 대절해가도 된다.
- 세계 대탑과 비교
방글라데시 파하르푸르대탑으로 112.40m*95.88m(10,777㎡)규모이다.61,040㎡(218m*280m) 승원터 가장자리에 177개 승방이 감싸고 있고 그 중앙에 탑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대탑(9c) 일명 족자카르타 대탑으로 111.5m*111.5(12,433㎡)규모이다. 한 면 100만개 안산암, 4km회랑, 1,500부조상 432개 불상 꼭대기층 72상으로 화엄경 십지세계와 입법계품을 형상화하고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 대탑이다. 215m x 187m(40,205㎡)로 1층은 힌두교 대서사시 마하야나신들상이며 3층에 4방향에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 소마푸라 마하비라 공식 홈페이지 - https://sompur-mahavihara.business.site/?utm_source=gmb&utm_medium=referral
- 〈파하르푸르의 불교 유적〉, 《유네스코와 유산》
- 〈파하르푸르〉, 《미술대사전(용어편)》
- 〈파하르푸르의 불교유적〉, 《두산백과》
- 〈“인도 나란다 대학에 버금가는 파하르푸르 소마푸라 승가학교”〉, 《주간불교》, 2015-03-24
- 〈우리가 몰랐던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숨 쉬는 방글라데시〉, 《현대로템》, 2019-03-12
-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숨쉬는 '야외박물관'〉, 《네이트 뉴스》, 2019-06-17
- 성연재 기자, 〈신비로움 간직한 미지의 유적들〉, 《연합뉴스》, 2019-07-12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