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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5일 (화) 17:47 판
황학루(黄鹤楼, 黃鶴樓, huáng hè lóu)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양쯔강 강변에 있는 유명한 역사적 누각으로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 삼대명원》의 하나로 손꼽힌다.
각 층마다 보이는 풍광이 다르며, 황학루의 꼭대기에서는 양쯔강을 가장 잘 조명할 수 있다. 외양은 고대의 황학루이지만, 잦은 파괴와 중수로 인해 최근에 중수되어 현재는 내부에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상세
황학루는 강남 원래 후베이 우한의 사산(蛇山)이 튀어나온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상전'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오나라 황무 2년인 223년에 건립되었는데 장강에 있는 누각으로 창상을 지나는데 오랜 세월속에서 30여차례나 훼손도어서 다시 건축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1884년 8월 한양문 밖에서 불이 나서 100여년이 지난 1984년이 되어서야 다시 건립되었는데 사산서쪽끝의 고관산(高观山)의 서쪽 언덕위에 세워져서 현재 엘레비이터가 설치되어 이를 통하여 오를 수 있다.
장강대교의 경창철로와 분로인교(分路引桥)의 사이에 있는 삼각형의 지대에 있고 5층 건물로 높이는 51.4m로서 옛 터인 리강(离江)으로부터는 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장강대교를 지을 때 황학루의 옛 자리를 차지하여 지었다. 예전 자리로부터 1 Km정도가 떨어져 지어 졌으며 옛 누각은 3층 건물로 28m 정도였다고 하나 신축되면서 더욱 더 높아졌고 산도 높게 솟아 기세가 웅위하고 시야가 확 트여 사방이 잘 보인다.
황학루 내부의 밑층에는 넒은 대청이 있고 천정은 10여m 정면벽 위에는 한폭의 벽화는 흰 구름의 황학의 도자기로 만들어졌고 7m 높이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는데, "상쾌한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어오고 구름과 안개가 천지를 쓸어가는 것 같네. 커다란 강이 동으로 흘러가고 파도는 고금의 근심을 씻어 내네(爽气西来,云雾扫开天地撼;大江东去,波涛洗净古今愁)" 라고 노래하고 있다.
황학루의 건축은 각층에는 크고 작은 방이 여럿 있는데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는데 이 누각에는 이름에 걸맞게 누각 층 내외에 있는 그림이 선학(仙鹤)이 주가 되고 구름무늬와 화조, 용과 봉황이 도안으로 그려져 있다. 1층의 대청 정면의 담벽에는 한폭의 흰구름과 황학이 주제로 거대한 도자기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사방 벽에도 역대 황학루에 관한 유명한 시사가 실려 있고 중요 문헌과 역대 황학루를 그린 그림의 복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2층 대청정면 벽위에는 대리석에다 새긴 당대의 염백근(阎伯瑾)이 찬하여 쓴 《황학루기(黄鹤楼记)》가 있고 황학루의 흥망성쇠에 대한 연혁과 유명인에 대한 일화가 새겨져 있다, 황학루의 양측에는 2폭의 벽화가 있는데 1폭은 손권의 '축성을 하다(孙权筑城)' 으로 황학루와 무창의성이 탄생하게 된 역사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한 폭은 '주유 연회를 베풀다(周瑜设宴)' 로서 삼국의 인물들이 남긴 황학루에서의 활동을 그린 것이다.
3층 벽화는 당송의 명인을 수놓은 초상화(绣像画)로서 최호(崔颢),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등의 것이다. 그리고 4층은 병풍에 의해 몇 개의 방으로 나뉘어지는데 안에는 유명인의 글과 그림이 있고 구입할 수도 있다. 꼭대기 층의 대청에는《장강만리도(长江万里图)》등 여러권으로 된 것, 벽화 등이 있다. 그리고 걸어서 밖으로 나가면 5층대청의 주랑에서 눈을 들어 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이곳은 높이가 강면에서 무려 90m나 된다고 한다. 황학루는 사산 일대의 벽이 황학루 공원이 되고 주위에 수많은 화초와 나무가 심어져 있고 아직도 패방(牌坊), 정자 등의 건축물이 있고 시비가 있는 주랑이 있는데 수많은 역대 유명한 시인의 작품의 돌과 사산일대의 고대경물이 남아 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황학루는 무한의 상징물이 되었다.
황학루의 역사는 삼국시대에 강에 가까이 있는 산꼭대기의 누각을 세우는데 군사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후세에는 점차로 문인의 모임 장소로 변화가 되고 손님을 위해 베푸는 연회가 열리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으며 친구나 연인을 만나거위한 장소가 되는가 하면 시와 노래를 지었고 경치를 보며 유람하는 곳이 되었다. 역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최호, 이백, 백거이, 가도(贾岛), 하랄(夏竦), 육유(陆游), 양신(楊愼), 장거정(張居正)등 모두 이곳에서 유람하고 시부를 읆고 지었다
문학
황학루는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그 천하절경을 노래했다. 역대 명사로는 최호(崔顥),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가도(賈島), 육유(陸遊), 양신(楊慎), 장거정(張居正) 등이 문예를 뽐냈으며, 그 중 8세기의 유명한 시인 최호의 시 등이 걸려 있다. 최호의 시는
- 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 黃鶴一去不複返,白雲千載空悠悠
- 晴川曆曆漢陽樹,芳草萋萋鸚鵡洲
- 日暮鄉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 옛사람 황학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이곳엔 황학루만 남았구나.
- 황학은 한번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흰구름만 천 년을 멀리 떠가네.
- 한양수는 날갠 시냇가에서 빛나고, 앵무 섬에는 방초 가득하구나.
- 날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안개 피어나는 강 위에 수심 잠기네.
후에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 눈을 내려 오초의 하늘을 보니 가슴에 품은 생각이 확트이고 붓을 들어 시를 쓰려 하다가 오히려 최호가 지은 시를 보니 스스로 부끄런 생각이 들어서, 눈앞에 절경이 있어도 (시구를) 얻지 못하고 최호가 지은 시만이 머리위에 있네(眼前有景道不得,崔颢题诗在上头")라고 할 뿐이었다. 이백은 한마디 말을 하고는 붓을 집어 던졌다 하는데 이로 인해 최호의 시는 명성을 더하였다.
그리고 이곳 황학루에는 적잖은 전설들이 담겨져 전하는데, 그 중 극은록(極恩錄)에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황학루는 원래 신씨가 개설한 주점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한 도사가 그녀의 주점을 찾아서 술을 청하는데 신씨는 그의 범상한 모습을 보고서는 그에게 외상술을 주었다. 반년동안 외상술을 얻어 마시던 그는 외상을 갚을 수 없자 은덕을 갚는다며 귤껍질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벽에다가 한 마리 학을 그렸는데, 그 모양이 춤을 추듯 아름답다고 알려지면서 이곳의 장사도 날로 번창하였다.
그런데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 그림 속의 학도 춤을 추었다 소문이 전하여지면서 주막집은 인산인해가 되어서 신씨는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10년 후, 도사가 다시 찾아 왔는데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 불자 벽속의 학이 날아오지 이 학을 타고 날라 가버렸다 한다. 신씨가 그걸 보고 황학과 도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누각을 짓고는 이름을 황학루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영상
지도
참고자료
- 〈황학루〉, 《위키백과》
- 〈황학루〉,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 〈우한 황허러우〉, 《두산백과》
- 김정호 기자, 〈우한의 역사를 간직한 황학루, 호수공원 동호와 문화관광 지음호〉, 《경인매일》, 2019-07-17
- 역사탐구인, 〈중국의 4대명루(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관작루)〉, 《네이버 블로그》, 2015-01-08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