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만모터카
호프만모터카(Hoffman Motor Car)는 1946년 맥스 호프만(Max Hoffman)이 설립한 미국의 자동차 수입 회사이다. 1930년부터 맥스 호프만 자동차 딜러로 활약했으며 처음에는 미국에서 자동차를 수입해 유럽에 팔았다. 그러나 유럽이 전쟁에 휘말리기 직전인 1941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보석상으로 일하며 돈을 모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웠다. 맥스 호프만은 호프만모터카를 통해 유럽산 자동차를 미국에 들여와 팔았다. 수입한 브랜드만 해도 폭스바겐, 재규어,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 BMW, 알파로메오, 피아트 등 상당히 많다. 맥스 호프만은 위대한 현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고용해 호프만오토쇼룸을 지었으며 현재는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있는데 메르세데스-벤츠 북미 지사가 사용하고 있다. BMW사업이 종료되면서 호트만모트카 자동차사업도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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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호프만모터카는 미국 동부 폭스바겐의 수입 및 딜러였다. 또한 60년대 중반부터 1975년 북미의 BMW에 사업을 매각할 때까지 BMW의 수입업자이자 유일한 유통업자이기도 했다. 알파 로미오(Alfa Romeo) 역시 1950년대 중반부터 호프먼모터카에 의해 미국으로 수입되었다. 줄리에타 스파이더는 맥스 호프만의 요청에 의해 태어났다. 1961년 알파 로미오는 미국으로 자동차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포르쉐 356 1955년형 "스피드스터"는 표준형 356의 저렴한 레이서 버전이 미국에서 잘 팔릴 것이라는 호프만의 제안의 결과였다. 주말 레이싱, 버킷 시트, 미니멀 폴딩 탑을 쉽게 탈거할 수 있는 낮고 거친 앞유리로 순식간에 히트를 쳤다.
호프만모터카 설립자 맥스 호프만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르쉐를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거상이다. 1950년대부터 독일 브랜드의 미국 독점 수입권을 이용해 미국 자동차 업계와 독일차 업계 사이에서 '큰 손'으로 활약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팔릴만한 자동차를 제조사에 요청해 미국 시장을 위한 특별 모델 만든 일화로도 유명하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완전히 벗어나 경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자동차 수요 대비 공급은 아주 모자랐다. 그리고 유럽산 물건이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 미국의 10대 수입품은 모두 유럽제였고. 따라서 유럽산 자동차를 미국에 수입해서 팔기에는 최적의 시대였다.
맥스 호프만은 이 때를 이용해 다양한 브랜드를 미국에 들여왔다. 그의 손을 거친 브랜드만 해도 폭스바겐, 재규어,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 BMW, 알파로메오, 피아트 등 상당히 많다. 그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 미국에 수출할 특별한 자동차를 본사에 제의하기도 했다. 물량을 보증할테니 신차를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예가 BMW 507과 벤츠 300SL이다.
메르세데스-벤츠 300SL은 본래 경주를 위해 태어났다. 300SL은 '밀레 밀리아', '르망 24시' 등 다양한 자동차 경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주목한 호프만은 300SL의 도로용 버전을 요구했다. 벤츠는 총 1,400대의 300SL을 생산했고, 이 중 1,000대를 미국에서 팔았다. 당시 가격은 7,295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7,280만 원이다. 경주차를 양산차로 바꿔놓은 300SL을 1,000대 씩이나 판 건 당시 미국에 스포츠카 붐이 일어서다. 그래서 맥스 호프만은 BMW에게 아주 멋진 '로드스터'를 요구했다. 이를 수락한 BMW는 자사 최초의 2인승 로드스터인 '507'을 선보였다. 수려한 디자인과 BMW 특유의 주행 성능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오늘까지도 BMW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 모델이었다.
하지만 판매는 시원치 않았다. 1956년 당시 호프만은 507의 판매가격을 5,000달러(현재 환산 가치 약 5,000만 원) 정도로 판매가를 예상했는데, 정작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1만달러(현재 환산가치 약 1억 원)에 팔아야 했다. 결국 507은 3년간 252대 생산에 그치는 굴욕을 맛봤다. 이후 체질을 개선한 BMW는 3시리즈의 선조인 1600, 2000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호프만은 자동차 판매로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독점 수입권을 다시 자동차 회사와 거래하며 돈을 벌었다. 이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략 변화에 기인한다. 단순히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를 딜러에 맡기기보다, 직접 북미 시장에 진출해 자동차 판매와 더불어 여러 사업을 펼치는 쪽이 더 이익이 된다는 부분에서다.
일례로 메르세데스-벤츠는 1957년 호프만의 수입권을 200만 달러(현재가치 약 200억 원)를 주고 되샀다. 이후 호프만은 다른 브랜드를 하나씩 정리하고 BMW에 집중했다. 1950년대부터 BMW의 수입을 시작한 그는 1960년부터 1975년 3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BMW의 독점 공급권을 유지했다.
맥스 호프만은 BMW가 북미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본능적으로 시장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을 수립했다는 표현이 걸맞겠다. 그와 함께한 BMW는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둘은 법정 다툼을 벌였다. 거래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합의에 이르렀다. 정확한 합의 내용은 지금도 알려지지 않았다.
BMW를 마지막으로 자동차 사업을 정리한 맥스 호프만은 평소 관심을 두던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하며 여생을 즐기다 1981년 7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는 북미 자동차 시장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03년에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참고자료[편집]
- "Max Hoffman", Wikipedia
- 안민희 기자, 〈최고의 자동차 장사꾼, 맥스 호프만〉, 《로드테스트》, 2017-05-02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