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망
르망(Lemans)은 1986년 6월에 출시된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의 첫 전륜구동 방식 소형 승용차이다. 오펠 카데트 E를 베이스로 하였다. 차명인 르망은 르망 24시로 유명한 프랑스 서부의 작은 공업 도시 이름인 르망에서 유래되었다. 르망이라는 차명에는 르망 24시의 경주용차처럼 내구성과 성능이 우수한 차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개요[편집]
월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GM 산하 독일의 오펠(Opel)이 개발하고,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 및 대우중공업(대우국민차) 창원 공장에서 생산하여 북미에서 GM 산하의 폰티악이 판매하였던 전륜구동 소형차이다. 1986년 7월부터 1997년 초에 단종 될 때까지 도합 105만 대가 생산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폰티악 로고와 비슷한 르망 고유의 로고를 라디에이터 그릴 위에 부착하여 판매했다. 비록 고유모델은 아니었으나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차량이기도 하다.
오펠의 소형 라인업인 카데트(Kadett) E형을 베이스로 한 차량으로, 본래 배기량 1600/2000cc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가 생산을 맡게 되면서 가격 문제 및 세금 문제로 인해 1500cc로 다운 사이징하여 판매하게 된다. 플랫폼은 GM의 T-플랫폼을 사용하였다.
역사[편집]
르망은 출시와 동시에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오펠이 설계한카데트의 탄탄한 기본기로부터 비롯된 우수한 달리기 성능과 승차감, 그리고 정숙성은 당대의 경쟁자들은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르망은 그 날렵한 이미지의 외모로도 크게 주목 받았다.
르망은 4,260mm의 길이와1,663mm의 폭, 1,362mm의 높이를 가졌다. 휠베이스는 2,520mm로, 이는 당대의 소형 승용차 중 가장 큰 축에 속했다. 르망의 외관 디자인은 전면이 낮고 후면으로 갈수록 치켜 올라가는, 당시로서는극단적인 쐐기형 차체를 지니고 있었다. 이 덕분에 당대의 그 어떤 소형차에 비해서도 한층 날렵하고 역동적인이미지는 물론, 오펠 카데트와 같이 0.32Cd에 불과한공기저항계수를 지니게 되었다. 르망의 스타일은 당시 현대차의 포니엑셀 혹은 프레스토의 고전적인 스타일과확연한 대비를 이루었다.
르망의 심장은 88마력의 성능을 내는 1.5리터(1,498cc) 가솔린 엔진을 주역으로 내세웠다. 이후 96마력의 성능을 내는1.6리터(1,598cc, 르망 TBI) 가솔린엔진이 추가되었으며, 88년도에는 컴퓨터제어 연료분사방식인 TBi 엔진을도입한 96마력 사양의 신형 엔진을 도입했다. 그리고 후대에등장한 고성능 모델인 르망 임팩트와 이름셔(Irmscher)에는 120마력의 2.0리터 엔진이 탑재되었다.
르망의 우수한 주행 성능은 '달리는 즐거움'을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르망의 최고속도는 시속 170km/h에 달했다. 국산차의 최고시속 경쟁이 존재했던 그 당시르망의 톱 스피드는 한참 상위급 차종인 현대차의 쏘나타(165km/h)는 물론, 그랜저(162km/h)마저 앞서는 것이었다. 86년 10월 출시한 3도어해치백 모델 르망 레이서에 이르면, 경량화와 더 낮은 공기저항 계수에 힘입어, 180km/h의 최고속도를 내기에 이른다.
이렇게 스타일과 주행성능 양쪽에서 큰 호평을 받은 르망은 대우자동차 역사 상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모델이기도하다. 르망은 데뷔 첫 해인 1986년에만 1만 6천대를 넘게 판매하였으며 이듬해인 1987년에는 세단형 모델이 4만2천대 가량 판매되면서 프레스토 판매량의 턱 밑까지 쫓아왔다. 그 뿐만 아니라, 3도어 모델인 르망 레이서는 아예 포니엑셀 3도어 모델과 8배 가까이 차이 나는 4,100여대를 팔아 치웠다.
1988년 3월 르망 레이서의 5도어 해치백 버전인 르망 펜타5가 추가되었고 9월에는 최고출력 96마력의 1.6L TBi도 추가되었다. 1989년 2월에는 택시 트림이 추가되었다. 그 해 5월에는 GSE 트림, GLE 트림, LS 트림 등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스포티한 느낌의 GSI 트림으로 바뀌었다. 5도어 모델 역시 포니엑셀의 판매량을 바짝 뒤쫓는 등, 현대자동차의프레스토/포니엑셀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쟁을 펼쳤다. 물론이 과정에서 르망은 꾸준히 개량을 거듭하는 한 편, 신규 트림을 꾸준히 신설하며 상품성을 유지했다.
1990년 3월에는 소폭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4도어 세단 중 GTE 트림은 리어 램프가 6등식에서 4등식으로 변경되었고, 살롱, 스폐셜, 포커스의 3 트림으로 나누어졌다. 같은 해 5월에는 현대 스쿠프에 대응해 르망 GTE에 2,000㏄ 엔진을 장착한 트림인 르망 임팩트가 추가되었다.1991년 2월에는 르망 GSI의 튜닝 트림인 이름셔가 출시되었다.
1991년 10월에 르망은 뉴 르망으로 한 차례의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현대차가 '제3세대 승용차'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내놓은 신형의 '엑셀'에 대응하기 위해서 였다. 뉴 르망은 오펠 카데트의 기본 디자인 기조를 벗어나, 보다 날렵한 형상의 헤드램프와 더불어 기존의 복잡다단한 트림 구분을 GTi, ETi, STi 등의 3종으로 재편하고 실내 디자인 일부도국내 시장의 요구에 맞게 변경을 가했다.
물론, 이 이후에도 르망은 끊임 없이 크고 작은 개량을 가했다. 또한, 90년대 초반부터 GM과의결별을 대비하고 있었던 대우자동차는 92년형 르망에 독자개발한 에스페로의 1.5리터 MPFi 엔진을 탑재한 르망 RTi를 추가했다. 르망 RTi는높아진 동력성능에 대응하여 서스펜션 등을 추가로 보강하는 등의 개량이 더해졌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르망은 현대차가 내놓은 신세대 소형차인 엑셀과도 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94년, 현대자동차가엑셀의 후속 모델인 '엑센트(Accent)'를 내놓으면서 르망의 판매량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독자개발 파워트레인의 우수한 성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까지 내걸고 나온 엑센트는 젊은 구매층을 상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르망과 기아 프라이드의시장 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뺏어 오기 시작했다. 출시한지 8년이 다 되도록 풀 모델 체인지 한 번 없었던 르망으로서는 너무도 벅찬 상대였다.
게다가 대우자동차가 1994년에 내놓은 신형 소형차랍시고 내놓은 씨에로(Cielo)는 기본적으로 르망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불과하여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따라서 대우자동차는 씨에로와 르망을 병행생산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가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신형 소형차, 라노스가 1996년 하반기에 선보이면서 97년 초, 르망은 만 10년 8개월에 달하는 현역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이때까지 생산된 르망은 내수 536,254대, 수출 516,099대로, 총 105만 2,353대가 생산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대우 1.5i라는 차명으로 판매했다.
특징[편집]
폭스바겐 골프를 타겟으로 삼은 카데트를 기초로 한 차답게 단단한 차대강성과 균형잡힌 하체 밸런스로, 고속에서나 코너에서나 경쟁 차종인 현대 엑셀보다 우위에 있었다.
특히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1986년에 출시 당시 국내에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평가 받았었는데, 국내 최초로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을 도입하면서 공기저항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로써는 공기저항 계수가 0.32Cd로 상당히 낮았었다. 대우자동차에서는 이를 물방울 스타일 혹은 유선형 스타일이라고 홍보하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각진 디자인같아 보이지만 당시로써는 상당한 유선형 스타일로 평가 받았었다. 이 덕분에 1980년대 중반에 출시된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판매되었던 각진 디자인의 포니엑셀, 프레스토와 달리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디자인이 크게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었다. 물론 이로 인하여 대우자동차는 1994년에 그냥 앞뒤만 페이스리프트한 씨에로/넥시아를 신차인양 내놓은 실책을 저질르기도 했다.
본래 2000cc까지 엔진이 탑재되는 차를 1600->1500cc로 변경한 탓도 무시할 수 없으나, GM의 압력 때문에 차를 그대로 가져다 팔았던 대우자동차의 상황이 겹쳐, 가볍고 날렵한 평을 받는 라이벌인 현대 엑셀이 공차중량 950kg이었는데 반해 르망은 엑셀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인 935kg 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유럽형 기어비를 그대로 가져온 관계로 현대 엑셀이나 배기량이 한체급 낮은 프라이드 보다도 초반가속이 굼떴다. 대우자동차의 고정 관념인 '스타트는 굼뜬데 고속은 좋다'는 르망부터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현대 엑셀에 밀려 2인자 자리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함께 찾아온 마이카 열풍 덕분에 꽤나 잘 팔려서 대우자동차 입장에서는 상당한 효자 차종이었으며 대우 로얄 시리즈와 함께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계약개시 50일 만에 10,000대를 돌파 하여 '「르망」 자신도 놀랐읍니다' 라고 신문 광고를 낸 적도 있었고, 심지어 북미 수출시장에서는 조립생산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차량 최초로 우수 품질차량 TOP5에 뽑히는 등 그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로 인해 안일해졌던 대우자동차는, 제대로 된 후속도 없이 르망에 외형만 조금 고친 씨에로, 넥시아를 내놓는 무리수를 두어 당시 완전 변경 신차였던 아반떼에게 압살당했다. 실은 그 전에 이미 엑셀보다 한 단계 커져서 르망 사이즈와 같아진 엘란트라에게 고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야심작이라고 내놓은 것이 겨우 씨에로 넥시아였고, 여기에 대한 현대의 답변이 아반떼였던 것이다.
다만 르망의 베이스인 오펠 카데트는 독일 내에서 폭스바겐 골프의 라이벌격 모델이었고 그걸 20년 간 숙성시킨 E형인데 아무리 디튠했다 하더라도, 엑셀과 비교하기에는 레벨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레벨의 차이니 어쩌니 해도 좋은 차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장사를 제대로 못 해 먹은 대우차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르망 이름셔[편집]
르망 이름셔(Irmscher)는 1991년 2월 22일에 출시되고 25일에 시판, 1년만에 단종되어 버린, 비운의 자동차이자 당시 한국의 공도 깡패로 불린다. 3도어 모델과 4도어 모델이 있었으며, 특이하게 5도어 모델은 판매하지 않았다. 애초에 얼마 팔리지 않은 차지만 4도어 세단형 이름셔는 그중에서도 특히 더 희귀한 모델이다.
이름셔는 오펠의 메이커 튜너로서 말 그대로 르망을 이름셔 사에서 튜닝한 것이다. 2000cc는 출시도 하지 않고 1600cc조차 디튠해서 출시된 기존의 르망과는 달리, 2000cc의 배기량으로 현대 스쿠프 터보급의 가속력에 값비싼 제품으로 무장된 하체로 뛰어난 코너링 등으로 이 자동차를 도로에서 이길 한국 차량은 없었다.
르망 왜건[편집]
대우 르망의 왜건형 버전으로 출시될 뻔했으나 베이퍼웨어가 된 차량이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대우 르망〉, 《위키백과》
- 〈대우 르망〉, 《나무위키》
-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대우자동차 르망〉, 《모토야》, 2018-04-17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