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미즈데라
기요미즈데라(Kiyomizu-dera, 일본어: 清水寺, きよみずでら)는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소재한 교토의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사찰이다. '기요미즈데라'는 '청수사', 말 그대로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이다. 정식 이름으로 오토와산 키요미즈데라(音羽山清水寺)로도 불린다. 본존은 천수관음, 개기(창립자)는 엔친이다. 관세음보살을 안치한 33곳 중 관음영지의 16번째 영지이다.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이다.
개요[편집]
기요미즈데라는 현재 교토에 남아있는 사찰 중에서도 드물게 교토가 수도가 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사원이다.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본당(本堂)은 '키요미즈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본당을 등지고 교토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보지만 원래는 본당 안쪽에 있는 본존 천수관음에게 바치는 예(藝)를 위한 공간이었다. 본당에서 가장 중요한 내진(内陣)과 내내진(内々陣)은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본당 측면을 돌아 들어가면 오쿠노인(奥の院)이 나오고 여기에서 본당의 전체 모습이 가장 잘 보인다. 키요미즈란 '맑은 물'이란 뜻인데 이름의 유래가 된 오토와 폭포(音羽の瀧)가 오쿠노인 바로 아래에 있다.
역사[편집]
나라 시대인 778년에 최초의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루는 그가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보양식을 만들고자 사슴을 사냥하다가 산에서 엔친(延鎮)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엔친은 앞서 이 산에 머무르던 교에이(行叡)에 이어 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수행 중이었다. 다무라마로는 엔친을 만난 다음 살생을 뉘우치고 관음보살에게 귀의해 자기 저택을 내놓았다. 후에 다무라마로는 사찰을 크게 중창해 기요미즈데라를 관음신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절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는데, 본당을 비롯한 현재의 건물 대부분은 1633년 도쿠가와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돈을 시주하여 재건된 것이다. 절의 이름은 주변의 언덕에서 단지 내로 흐르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했다.
부속 사찰인 조주인(成就院)의 주지였던 겟쇼는 에도 막부 말기 존왕양이파로 암암리에 활동하다가 탄압을 피해 가고시마로 피신했다. 이후 그는 막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함께 행동하던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바다에 투신해 죽었는데, 어쩐지 사이고는 살아났다.
2008년부터 이어진 헤이세이 대보수 때문에 2017년 5월 1일 기준 본당 건물의 히와다부키를 전면 교체하는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붕 공사를 위해 본당 전체를 목조 비계로 감싸버려서 외부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참고하자. 공사는 2020년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2020년 2월에 철골구조물이 제거되었으며, 사진속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편집]
본당에는 큰 무대가 있고 산 허리에 놓여있는 긴 기둥에 의해 지지되어 있으며, 이 곳에 올라가면 도시의 인상적인 경치를 관람할 수 있다. 당시 에도 시대에는, 유명하거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순례객들이나 참배객들을 위해 거대한 무대와 건물들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을 '기요미즈의 무대로에서 뛰어 내릴 생각으로'라고 표현하는데, 기요미즈데라의 고문서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뛰어 내린 사람은 1694년부터 1864년까지 234명이었고 그 생존률은 85.4%였다. 1872년에 정부가 뛰어내리는 것을 금지하면서 목책을 치는 등 대책을 세우면서 실제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잦아들었다.
본당의 밑에는 오토와 폭포가 있는데, 이 곳에서 오토와 폭포가 세 개의 물줄기로 나누어지면서 연못으로 떨어진다. 방문객들은 이 물을 마실 수 있는데, 이 물에는 치료의 힘이 있다고 여겨진다. 세 개의 물줄기는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상징한다는 풍문이 있는데, 이 세 개의 물줄기 중 오직 최대 두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욕심에 대한 벌을 받아 벌을 받는다는 설이 있다. 다만 기요미즈데라의 공식 웹사이트와 기록에 따라 이와 같은 주장이 증명된 적은 없다.
절 내부에는 지슈 신사를 포함한 몇몇 신사들이 있다. 이 신사는 사랑과 연애의 신인 오쿠니누시에게 봉헌된 신사인데, 남녀 간의 인연을 맺어준다고 하여 유명하다. 지슈 신사에는 18m 간격으로 "사랑의 돌"이라는 돌이 두 개 있다. 눈을 감은 채로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걸어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실패할 경우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기요미즈데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부적들과 향, 오미쿠지(행운의 종이)를 볼 수 있다. 이곳은 특히 축제 때 인기가 있는 장소로, 기요미즈데라 앞에 있는 거리는 축제 기간 동안 전통 축제 음식과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특별 상점들로 채워진다.
2007년에 기요미즈데라는 신 세계7대 불가사의의 21개 후보 중 하나로 올랐으나, 그러나 최종적인 7개 명단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경내[편집]
본당[편집]
일본의 국보로,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기부금을 통해 재건됐다. "시미즈의 무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붕은 요세무네즈쿠리(寄棟造)이며, 외부는 유약칠이 되어 있으며, 본당의 날개는 정면(남쪽면)의 양 옆으로 돌출되어 있다. 요세무네즈쿠리는 우진각 형식의 지붕 형태이며, 지붕 위에는 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발라 만들어진 것이다. 본당의 전반부는 산비탈에 지어졌으며, 139개의 느티나무 기둥이 무대를 지탱하고 있다. 본당 건물에는 못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채로 건립되었다.
관광[편집]
기요미즈데라는 오토와산(音羽山) 중턱의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으로 사원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상 들어서면 탁 트인 전망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본당에서 바라보이는 사계절의 풍경이 절경으로 이름 높다. 사찰 안에는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지슈진자(地主神社)와 마시면 건강, 학업, 연애에 효험이 있다는 오토와 폭포(音羽の瀧)가 있다. 8세기에 오토와 폭포를 발견한 엔친 대사가 이곳에 관음상을 모신 것이 이곳에 절이 생긴 시초라 한다. 기요미즈(淸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면 오토와 폭포의 물을 마셔보자.
사계절 모두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4월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11월 말부터 12월 초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특히 기요미즈데라에서 산넨자카, 네네노미치, 고다이지에 이르는 길은 납작한 돌이 깔린 한적하고 운치 있는 길로, 계절에 따라 다른 정취가 있어 몇 번이나 다시 찾는 사람도 많다.
기요미즈데라에서 산넨자카를 따라 올라가면 니넨자카(二年坂)를 지나 네네노미치(ねねの道)가 나온다. 네네노미치 동쪽으로 고다이지(高台寺)가 있다. 산넨자카(三年坂)는 다이도 3년(808년)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넨자카에는 46개의 돌계단이 있는데 여기에 재미있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곳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믿거나말거나 이야기인데 이를 액땜하기 위한 호리병박을 파는 가게가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기념품으로 호리병박을 판다. 산넨자카는 산네이자카(産寧坂)라고도 하는데 순산을 비는 다이안지(泰産寺)로 향하는 참배로여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교토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요미즈데라는 히가시야마의 유명한 절과 신사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인기가 많은 곳이라 여행자가 많이 찾는 성수기에는 교토 역 버스승강장에서 정규 버스 외에 임시(臨)라고 붙인 버스가 운행된다. 또는 기요미즈데라 방면이라고 붙이기도 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기요미즈데라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kiyomizudera.or.jp/
- 〈기요미즈데라〉, 《나무위키》
- 〈기요미즈데라〉, 《위키백과》
- 〈키요미즈데라〉, 《일본 교토 여행》
- 〈기요미즈데라〉, 《저스트 고(Just go) 관광지》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