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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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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르네상스 시절 주요 미술 작품들이 다수 걸려있다.

800여 년에 걸친 유럽 미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는 특히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르네상스 3대 거장인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회화와 조각품을 비롯하여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보티첼리와 프레스코화의 일인자인 조토는 물론 만테냐, 리피, 포파, 틴토레토, 베로네제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유명한 작가들의 세계가 이곳에서 펼쳐진다. 또한 메믈링, 뒤러, 루벤스, 렘브란트 등 북유럽 출신 르네상스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어 서로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입구에서 배부하는 전시실 배치도를 참고하여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실을 미리 알아두고 심도 있게 관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람방법이다. .

개요[편집]

우피치 미술관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피렌체 역사지구에 있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 중 하나이자 가장 큰 미술관 중 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뛰어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 작품에서 렘브란트의 작품까지 소장품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서 세계 굴지의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우피치(Uffizi)는 이탈리아어로 '집무실'을 뜻하며 미술관 건물은 본래 피렌체 공화국의 행정국이었다. 1560년경 초대 토스카나 대공인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가 피렌체의 행정·사법기관을 한곳에 모으기 위한 건물 건립을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에게 명령하면서 착공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역사는 바사리가 이 건물을 완성한 1560~1574년에 시작되지만, 미술품이 수집된 것은 이보다 이른 시기인 15세기 전반부터 피렌체를 다스린 코시모 일 베키오(1389~1465)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디치가는 이곳을 통치하던 200년 동안 예술가들에게 미술품 제작을 의뢰하고 작품을 수집했다. 코시모 1세 때부터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메디치가의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으로 우피치 궁의 미술품을 물려받은 안나 마리아 로도비카가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했고 그녀의 뜻에 따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14~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뿐 아니라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의 화가, 독일과 프랑스 르네상스 화가들의 중요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장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의 향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조토의 <마돈나>, 다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어린 요한과 함께 있는 예수와 성모>, 카라바조의 <바쿠스> 등이다.

무려 2,5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소장품을 보려면 적어도 한나절은 필요하다. 유명 회화 작품들이 몰려 있는 3층부터 관람하는 것이 좋다. 2층은 소묘와 판화 전시실이며 1층에는 고문서류도 있다. 미술관 한 모퉁이에는 '바사리의 회랑'이라는 긴 복도 모양의 건물이 베키오 다리로 이어져 있다. 베키오 궁전과 아르노 강 건너편의 피티 궁전을 연결하는 이 회랑은 길이가 약 1km에 이르며 세계 최대의 초상화 전시로 유명하다.

우피치 미술관은 1993년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던져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나 그 후 중요한 부분을 개조했다. 워낙 관람객이 많아 몇 십 명 단위로 입장을 허용하니 관람하려면 일찍 가는 것이 좋다. 피렌체는 우피치, 아카데미아, 바르젤로, 산 마르코 미술관 입장권 예매를 실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중 한 곳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2016년에 2백만명이 방문했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은 미술관이 되었다. 성수기 (특히 7월)에는 대기 시간이 다섯 시간에 이른다. 입장권은 사전에 앞서 온라인으로도 구매 가능하며, 상당한 대기 시간을 줄여 준다. 박물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데 사용 하는 방의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개조하고 있다.

역사[편집]

우피치(Uffizi: 이태리어로 관공서, 오피스(Office)라는 뜻) 궁은 16세기 중반에 건축가, 바자리(Giorgio Vasari)에 의한 건축되었다. 이 시기는 투스카니 지역의 첫 대공(Great Duke)이었던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가 집권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다지던 때였는데, 그는 자신의 권력의 심장부 안으로 행정 각료들을 모으기 위해 우피치 궁을 신축하였고, 피렌체 해군을 창설하기도 했다. 우피치 궁은 코즈모 1세의 아들, 프란시스코 대공(Francisco de’ Medici)이 집권하던 1581년에 완공되었다.

궁의 구조는 말 발굽 모양으로 두 건축물과 그 사이를 잇는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즉 시뇨리아(Signoria) 궁과 베키오(Vecchio) 궁 사이에 아르노(Arno) 강이 흐르고 강 위에는 두 궁을 연결해주는 바자리 회랑(Vassari Corridor)이 있는 구조로서, 집과 집무실을 회랑을 통해 오가며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메디치 가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으며 우피치 궁을 지을 당시, 처음부터 건물의 3층에는 예술품을 수집, 전시할 수 있는 방들을 배치했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메디치 가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Anna Maria Luisa)가 1737년 우피치 궁과 예술품들을 기증한 것이 계기이며, 공식적으로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1765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우피치 궁은 기증 후 우피치 미술관이 되었으며 이탈리아의 통일 후 국립미술관이 되었다. 1800년에 소장하고 있던 조각 작품들이 일부를 제외하고 국립 바르젤로 미술관과 국립 고고미술관으로 이관되었으며, 우피치에는 회화 작품들과 고문서, 일부 조각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설립 배경[편집]

미술관 사상 우피치 미술관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오늘날 미술관/박물관의 작품 배치 원칙의 기본을 확립한 곳이 바로 이 우피치 미술관이며, 작품에 이름표를 달아 관람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시작한 곳도 이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16세기 이후 피렌체 문화 예술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우피치 미술관이 세워진 것은 1565년이었다

메디치 가의 코지모 공작은 정부의 권위를 드높이고 보다 효율적인 행정을 위한 새로운 관청의 설립이 필요해지자 당시 뛰어난 미술전기 작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에게 우피치의 건축을 맡겼다. 이탈리아어로 '사무실, 관청'을 의미하는 우피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여기서 연유하고 있다. 그 무렵 피렌체 정부 청사는 베키오 궁에 있었고 메디치 가의 궁정은 강 건너 피티 궁에 있었으므로 이 두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에 우피치를 세워 짧고 효율적인 동선을 구축하여 행정업무를 신속히 처리하기로 하였다.

우피치에서 피티 궁에 이르는 기다란 통로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했던 공중복도처럼 완성되어 '바자리의 복도'로 불렸다. 그러나 바자리는 건물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본탈렌티(Bernardo Buontalenti)가 바자리의 설계에 따라 우피치 건축을 완성했다. 중정원 삼면을 둘러싼 'ㄷ'자형 구조의 우피치 미술관 건물은 위풍당당함이 풍겨나는 르네상스 건축의 백미이다. 피에트라 세레나라고 하는 피렌체 특산 회색 대리석이 풍기는 기품은 피렌체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메디치 가 사람들은 대단한 예술 애호가였다. 훌륭한 작가와 걸작을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은 유럽의 어느 왕실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코지모 2세와 프란체스코 1세는 탁월한 미술품 수집가였는데, 우피치에 공공 미술관 건립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프란체스코 1세였다. 왕실이나 귀족들 대부분이 미술품을 개인 소장품으로 생각하여 자기 집에 꼭꼭 가두어두고 혼자 즐기던 시대에 프란체스코 1세는 위대한 예술품이 공공의 정신적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을 일찍부터 했던 것이다.

프란체스코 1세의 뒤를 이은 페르디난도 1세 또한 뛰어난 미술품 수집가로서 로마에서 추기경으로 재직하던 중 수많은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였고 그 후에도 메디치 집안사람들은 대를 이어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메디치 가의 마지막 대공인 잔 가스토네(Gian Gastone)가 죽은 후 유일한 상속녀이자 로렌 가로 시집간 동생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Anna Maria Ludovica)는 친정에서 상속받은 재산을 시집으로 가져가던 당시의 관습을 깨고 “가족협정”을 체결하여 자신의 전재산을 우피치에 기증하였다. 메디치 가의 재산은 곧 피렌체 시민의 재산이라는 앞선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물론 미술관 관리는 로렌 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로렌 가는 합리적인 지배자였다. 자신들에게 메디치 가만큼의 예술적 안목이 없음을 잘 알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300여 년간에 걸친 메디치 집안의 훌륭한 컬렉션을 더욱 효율적으로 보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메디치 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계속 미술품을 수집하여 미술관에 기증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9세기에 생겨나기 시작한 다른 미술관으로 작품을 분산시킴으로써 지나치게 방대한 작품 수로 인하여 혼란스러워진 전시실을 정리하는 대대적인 작업이 실시되었다. 이 시기에 생긴 미술관이 바로 고고학 박물관과 바르젤로 미술관이었다. 이탈리아 공화국이 관리를 맡게 된 20세기에 들어와서 관리체계는 더욱 방대해졌고, 수많은 사건과 사고로 인해 손상된 작품을 복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그란디 우피치(Grandi Uffizi)' 프로젝트 덕분에 많은 미술품이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

구조[편집]

현재 우파치 미술관에는 3층에 걸쳐 45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회화 작품들의 컬렉션이 우수하다. 13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근대적인 미술 작품 배치의 기본을 확립한 미술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 작품에 이름표를 달기 시작한 최초의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작품들은 연대순 배치를 원칙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 컬렉션이 매우 유명하다. 이탈리아 외에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인, 벨기에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은 해외 컬렉션 역시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회화 이외에 로마 시대와 16세기의 조각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우피치에 있는 세 개의 회랑(Corridors)을 따라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에는 건축가 바자리가 우파치 궁을 지을 때 일부 훼손한 피에르 셰라지오 교회(Church of S. Pier Scheraggio)의 로마네스크 양식 유물이 최근 복원되었고, 초기 르네상스의 사실파 화가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의 프레스코 벽화, [유명 인사들(FamousMen)]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의 주요 소장품은 고문서들이다. 2층에서는 17세기 레오폴드 데 메디치 추 기경 때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풍성한 판화와 소묘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3층에는 다양한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

우피치 미술관 건물은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 전시실은 가장 위층에 있다. 전시실은 모두 45개로 동관 맨 안쪽부터 시작된다. 작품은 연대순으로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개성적인 주제의 작품만을 묶어 전시하는 곳도 있다. 1~4 전시실은 고고학 유물과 13~14세기 피렌체 및 시에나 화파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우피치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작품을 볼 수 있다. 5~6 전시실은 고딕 미술이, 7 전시실은 초기 르네상스의 작품이 있다. 8~15 전시실은 작가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특히 보티첼리(양식화된 표현과 장식적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화가)의 작품이 중점적으로 전시된 10~14 전시실은 우피치 미술관의 핵심이다.

15 전시실 또한 르네상스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있는 중요한 전시실이다. 20, 22 전시실에는 뒤러를 비롯한 독일 화가들의 작품과 플랑드르 화파의 작품이 있으며, 25~26 전시실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르네상스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31~32 전시실은 베로네제와 틴토레토를 중심으로 한 베네치아 화파 전시실이고, 30, 33 전시실에는 16세기 이탈리아 중부의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41, 44 전시실은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는 곳이고, 43 전시실에는 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카라밧조의 작품이 있다. 맨 마지막인 45 전시실은 18세기의 회화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작품[편집]

계단을 올라 복도로 들어서면 맨 먼저 복도에 늘어선 흉상들이 보인다. 메디치 가와 로렌 가의 주요 인물들을 조각한 이 흉상들은 18세기에 포지니(Giovan Battista Foggini)와 페델리(Domenico Fedeli)가 제작한 것들이다. 그로테스크풍(인간, 동물, 식물의 공상적인 장식을 결합시켜 그린 그림) 천장화는 1581년에 완성된 것으로, 화려한 벽지를 발라놓은 듯 정교하고 규칙적이다.

1 전시실[편집]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을 비롯한 고대 미술품을 전시한 유일한 전시실인 1 전시실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기원전 5세기에 폴리클레투스(Polycletus)가 제작한 '도리푸루스(Doryphurus)'를 로마 시대에 녹색 현무암으로 모각한 작품이다.

2 전시실[편집]

이탈리아 중세 미술을 얘기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인물인 조토(Giotto, 비잔틴을 극복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템페라화 '오니산티 마돈나(La Madonna col Bambino Gesù Santi e Angeli, Dalla Chiesa di Ognissanti)'는 파도바 출신인 조토가 피렌체에 와서 완성한 작품으로, 당시 종교적으로 강조되던 미적 기준인 좌우대칭과 정해진 구도가 충실하게 구현된 한편 조토 자신의 개인적 스타일을 실험한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깊고 중후하며 동시에 '모던'한 품격을 띠게 되었다. '성 모자상'을 표현함에 있어 종교적 의미만을 강조하는 대신 인간적 관점에서 보다 사실적인 묘사를 하여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 긴장감 넘치는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다.

700여 년 전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물 표현이 섬세하고 입체적이며 거기에 칠해진 선명한 색상은 관람자의 시선을 곧바로 작가가 의도한 지점으로 인도한다. 조토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종교화가인 치마부에(Cimabue/조토의 스승으로 추정되는 13세기 이탈리아 화가로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평가받음)의 '산타 트리니타 마돈나(Madonna in Maestá/ Santa Trinità Madonna)'는 조토의 패널화와 형식과 주제 면에서 유사한 작품으로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 성당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오니산티 마돈나'보다 약 30여 년 전의 작품으로,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 천사들과 묘영법(描影法)으로 처리된 성모마리아의 옷에서와 같이 전체적으로 비잔틴 미술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으나 인물들의 표정이 보다 풍부해진 점은 비잔틴 미술의 엄격하고도 딱딱한 느낌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원근법이 살짝 표현된 왕좌는 비잔틴 미술의 종말과 새로운 양식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 역할을 한다. 이 밖에 조토의 폴립티치 제단화인 '바디아 폴립티치(Politico Badia)'와 토스카나 지방 출신으로만 알려진 작가들의 측면 패널화인 '십자가(Crucifisso)'를 비롯한 중세의 종교 미술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3 전시실[편집]

수태고지, 시모네 마르티니 1333년

피렌체와 이웃한 도시국가였던 시에나(Siena)는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비옥한 토지 덕분에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와 경쟁하며 일찍부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2 전시실 옆에 조그맣게 딸린 3 전시실에는 14세기에 활동한 시에나 화파 작가들의 종교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중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의 '수태고지(Annunciazione)'는 화려하고 우아한 5겹 폴립티치 제단화로서 13세기 미술의 어둡고 장중함에 비해 확실히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경쾌하되 경박하지 않고 화사하되 천박하지 않은 뛰어난 시적 감수성이 그림으로 표현된 이 작품은 시에나 화파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미술 평론가들은 엄정한 피렌체의 그림이 '산문散文'이라면 감수성이 뛰어난 시에나의 그림은 '시詩'라고 비교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시에나에서 활동한 또 다른 작가로 피에트로와 암브로조 로렌체티(Pietro e Ambrogio Lorenzetti, 시에나 화파와 피사노, 조토에게 영향을 받아 독특한 화풍을 완성한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형제)가 있다. 동생인 암브로조의 '성 니콜라스의 생애(Four Stories from the life of San Nicolas)'는 네 개의 작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트립티치의 일부이다.

특히 두 번째 그림이 인상적인데, 선명하게 표현된 푸른 바다는 작은 그림의 공간성을 극대화시켜 관람자의 시야를 답답하지 않게 한다. 또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는 서서히 르네상스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음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형인 피에트로의 제단 장식화 '베아타 우밀타(Beata Umiltà)는 동생의 작품에 비해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명확한 구도와 뛰어난 원근감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조각조각 분리된 그림을 모아놓은 것으로, 작은 패널 한 개에 각기 상이한 내용들이 묘사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다 보고 나면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4 전시실[편집]

14세기 피렌체 화파의 그림은 아직 옛 전통이 남아 있긴 하지만 조토가 혁신적으로 스타일을 발전시킨 후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 발전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였다. 순교 성인들과 성모마리아를 그린 조반니 다 밀라노(Giovanni da Milano)의 '오니산티 폴립티치(Politico Ognissanti)'는 분리되어 걸려 있다. 작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에서는 사실적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롬바르디아(Lombardia) 화풍이 강하게 느껴진다. 인물들의 태도와 몸짓은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고 표정 또한 더욱 풍부해졌다. 북부 이탈리아 화풍의 영향을 받은 피렌체 화가 조티노(Giottino/조토의 공방에 속한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고딕 화가)는 다양한 색상 선택과 세부 묘사를 즐겨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에타Pietà'구도를 느슨하게 하는 대신 십자가에서 내려진 죽은 예수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정 표현에 역점을 두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하였다.

5~6 전시실[편집]

뾰족한 장식이 특징인 고딕 양식은 미술과 건축 전 분야에 걸쳐 유행하며 15세기 초반까지 전 유럽을 휩쓸었다. 5~6 전시실은 고딕 미술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 14~15세기 이탈리아 움브리아파의 화가)의 '동방박사의 경배(Adorazione dei Magi, 1423)'는 황금색의 틀에 화려한 색상으로 그린 제단화로, 놀랄 만큼 정교하고 사실적인 그림과 보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롬바르디아의 국제적 고딕 양식과 토스카나의 자연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된 걸작이지만 아직 르네상스 미술이 갖는 혁신적인 미덕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시실 오른쪽 벽을 장식한 대형 작품 '성모 대관(Incoronazione di Vergine)'은 로렌초 모나코(Lorenzo Monaco/시에나 출신으로 피렌체에서 활동한 14~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의 최고 걸작이다. 수도사였던 모나코는 이 작품을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에서 시봉하던 때 완성하였다. 고답적인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서 시에나 미술의 특징인 섬세한 선과 추상적인 색상 표현을 접합시킨 놀라운 작품으로, 작품에서 서서히 르네상스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트립티치의 뾰족한 외곽선은 고딕 양식을, 그림의 둥근 테두리는 기존 제단화의 전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보다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정제된 세련미가 느껴지는 '동방박사의 경배(Adorazione dei Magi)' 또한 모나코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테바이드(La Thebaide)'는 종교적 주제를 나타내고 있지만 종교적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림 동화책을 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이 그림의 작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베아토 안젤리코(Beato Angelico)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80×2216cm의 가로로 긴 대형 작품으로 수도원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산중 수도원에 칩거 중인 수도사들의 생활을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한 화면에 표현한 이 작품은 고딕 미술의 특징인 내러티브 기법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나타냄과 동시에 현실 세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표현하였다. 초현실주의 화가 샤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7 전시실[편집]

썸네일|300픽셀|산 로마노 전투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작이라면 우선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투시도법의 기하학적 표현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한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의 '산 로마노 전투(La Battaglia di San Romano)'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시에나-밀라노 연합군과 맞서 싸워 이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승리의 주인공인 피렌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메디치 가에서 의뢰하여 제작되었다. 전쟁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세 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우피치에 한 점, 루브르에 한 점, 그리고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한 점이 전시되어 있다.

먼 부분을 단축시킨 뛰어난 원근법 (구도바닥의 창을 이용하여 원근법 효과를 극대화함)와 추상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전투 중인 말과 기수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은 창과 트럼펫의 보조 장치로 더욱 큰 효과를 낸다. 어둡게 기하학적으로 처리되어 딱딱해 보이기 쉬운 배면의 언덕에 도망치는 병사들과 동물들을 그려 넣어 지루한 감을 없애고 생생한 전투 장면이 되도록 배려한 면도 돋보인다. 7 전시실 한쪽에서 낯익은 초상화 두 점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미술 관련 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두 사람은 '우르비노 공작 부처(Ritratti del Duchi di Urbino)'로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의 딥틱 작품이다.

우르비노 공작은 젊은 시절 마상 장창 경기에서 오른쪽 눈을 잃고 코까지 다쳐 뭉개진 이후 언제나 왼쪽 얼굴만 나오는 초상화를 그리게 했고, 자연스레 부인은 오른쪽만 그려 서로 마주 보게 했다고 한다. 당시의 귀족 초상화의 전통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이 두 작품은 인품이 좋았던 공작 부부의 덕망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풍경화로 작게 처리한 배경은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사실은 두 사람의 측면 모습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초기 르네상스가 배출한 걸출한 또 한 명의 스타는 프라(Fra는 이탈리아어로 가톨릭 수사(修士)를 일컫는 말) 안젤리코(Fra Angelico, 도나텔로와 마사초의 영향을 받았으며 입체적 구도와 균형 잡힌 조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조토의 후기 스타일과 채색 필사본의 전통을 바탕으로 그 위에 르네상스의 옷을 입혀 성직자의 신분에 걸맞은 종교적 열정과 고귀한 영감으로 가득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조토처럼 성당이나 수도원의 프레스코 벽화를 많이 그렸지만 한편으로는 제단화 작업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성모 대관(Incoronazione della Vergine)'에 나타난 섬세한 인물 묘사와 색감은 청빈하고 소박한 수사의 경건한 독실함이 빚어낸 화려한 천상의 세계라고 할 만하지만 여러 유파의 영향을 받는 동안 혼란에 빠져버린 느낌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이 작품의 원근법과 인물 배치는 아주 뛰어나지만 비현실적으로 묘사된 인물은 사실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 모자(Madonna col Bambino)'의 푸른색과 붉은색은 몇백 년이라는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강렬한 색상은 바탕의 황금색과 어우러져 더욱 화려한 느낌을 준다.

8 전시실[편집]

15세기 중반에 활발하게 활동한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 프라 안젤리코와 마사초의 영향을 많이 받은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수도사이자 화가)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성모 대관(Incoronazione della Vergine)'은 그의 대표작으로,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표현된 색상과 마리아의 머리 위에 씌워진 베일의 투명함과 인물의 그림자 때문에 정지된 인물들에게서 움직임이 감지되는 듯한 절묘한 인상이 특징이다. 또한 포즈와 표정이 모두 다른 등장인물과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공간 배치에서 리피 특유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작품 '성 모자와 아기천사들(Madonna col Bambino e due Angeli)'은 리피가 죽기 2년 전에 완성한 것으로, 우아한 인물 배치와 공간 감각이 뛰어난 배경 묘사는 보티첼리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티첼리의 대표작 '봄'은 바로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하게 되었다.

9 전시실[편집]

필리포 리피와 보티첼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폴라이올로(Antonio e Piero del Pollaiolo) 형제의 그림에서는 날카로운 구도와 동적인 인물 표현을 강조한 예리한 특징이 있다. '세 명의 성인들(Santi Vincenzo, Giacomo e Eustachio)'의 대범한 구도와 당당한 인물 묘사에서 자신만만한 르네상스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닥에 세 개의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성인을 한 사람씩 배치함으로써 버려지는 여백이 없도록 배려했다. 폴라이올로 형제에게서 그림을 배운 보티첼리의 초기 소품 '유디트의 귀환'과 '홀로페르네스의 시체 발견'에는 동적인 인물 묘사와 선을 강조한 구도와 같이 폴라이올로 형제의 영향이 눈에 띄는 동시에 보티첼리만의 개성이 스며 있다.

10~14 전시실[편집]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르네상스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보티첼리(Botticelli)라고 불리는 산드로 필리페피(Sandro Fillipepi)의 두 작품 '봄(Primavera)'과 '비너스의 탄생(Nascita di Venere)' 연작이다. 리피와 폴라이올로, 그리고 베로키오의 스타일을 고루 받아들인 후 자신만의 시적(詩的) 감수성을 결합하여 걸작을 탄생시킨 보티첼리는 당시 피렌체에 유행하던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모두 메디치 가에서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의뢰한 작품이다. 보티첼리의 초기 걸작 중 으뜸인 '봄'은 당시의 시인 폴리치아노(Poliziano)의 시 '라 조스트라(La Giostra)'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그림의 무대는 비너스의 영토이다. 맨 오른쪽에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잔뜩 부푼 입으로 바람을 불고 제피로스의 아내이자 꽃의 요정 플로라가 그에게 살짝 붙잡혀 있다. 하늘하늘 비치는 플로라의 옷이 바람에 나부끼고 입에서는 꽃잎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옆에 꽃으로 치장을 한 여인은 '봄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플로라이고, 가운데에 서 있는 주인공은 비너스이다.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자주 보았던 관능적인 비너스가 아니라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한 비너스이다. 비너스가 갖는 관능미는 왼쪽에서 춤추는 모습의 세 명의 미의 여신이 대신 표현해 준다. 그 옆으로 사자신使者神 머큐리가 이방인들의 접근을 막겠다는 듯 막대기를 쿡쿡 찌르며 서 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봄 동산에 변화를 가져다줄 인물로 비너스의 머리 위를 귀엽게 날아다니는 큐피드가 있다. 배경 역할을 하는 숲과 꽃잎이 흩뿌려진 바닥과는 대조적으로 인물들은 밝고 경쾌하게 표현되어 마치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티첼리는 육체적 관능미를 천박하지 않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는데, 중세에는 금기시되었던 육체의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정신의 세계를 한 차원 높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 보티첼리 관능미학의 절정은 '비너스의 탄생'이다. '봄'과는 달리 이 그림은 배경도 밝고 경쾌하게 움직이고 있다. 푸른 하늘과 연녹색의 물, 분분히 흩날리는 꽃잎은 그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상만으로도 충분히 걸작 대접을 받을 만하다.

'비너스의 탄생'은 보티첼리의 세계관이 모두 녹아 있는 작품이다. 우라누스 신의 생식기와 바닷물이 합쳐져 생겨난 거품 속에서 탄생한 비너스를 중앙에 두고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아우라가 힘껏 입김을 불어 육지로 밀어주고 육지에서는 시간의 여신이 옷감으로 비너스를 감싸려는 듯 두 팔을 내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는 정신과 물질의 결합으로 탄생한 존재로 해석되는데, 이런 식으로 탄생한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후 세례를 받았듯이, 시간의 여신은 마치 세례를 베푸는 듯한 동작으로 비너스의 머리 쪽으로 옷감을 가져가고 있다. 이로써 보티첼리는 형식은 신화를, 의미는 종교를 빌려 미를 추구함에 있어 자유로움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15 전시실[편집]

베로키오 &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스도의 세례'

육체가 갖는 관능미를 성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한 보티첼리가 한량이었다면, 그림과 조각, 기계, 의술, 천문, 음악에 두루 능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수태고지(Annunciazione)'는 베로키오의 제자였던 젊은 시절의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그의 특징인 강렬한 긴장감이 결여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그린 것 같은데, 피렌체식 저택과 꽃잎이 깔린 잔디밭에 성모마리아가 앉아 있고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할 것임을 알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이 갖는 신선함, 새로움, 혁명성이 숨어 있다.

즉 종교적 주제의 그림이 성전이 아닌 평범한 장소를 배경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잔디밭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있으며 천사의 후면과 마리아의 후면이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한쪽은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과 닮았으며, 다른 한쪽은 북부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마리아 앞에 놓인 정교하게 조각된 대리석 강론대는 베로키오 스타일을 띠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배면의 사실적인 풍경이다. 다 빈치 이전의 작품들은 배경이 비현실적이거나 대상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표현되었지만, 다 빈치에 이르러서는 배경 또한 그림의 당당한 주체이면서 동시에 주제 대상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동방박사의 경배(Adorazione dei Magi)'는 스케치만 완결하고 색상 표현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작품이지만 구도와 대상의 표현이 갖는 총체적인 실체감이 손에 잡힐 듯 뛰어난 작품이다. 기존의 도상학적 전통은 깡그리 무시하고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중심으로 피라미드형 인물 배치와 사실적으로 표현된 배경 간의 유기적 조화에 역점을 두었다. 한편으로 꿈속인 듯 몽롱한 색조를 띤 전체 화면은 지성과 감성이 이뤄내는 조화를 극대화시켜준다.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다 빈치 이후의 서양 미술은 마침내 과학적, 실증적 접근방법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표출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다 빈치의 작품이 갖는 혁명성은 같은 전시실에 있는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페루지노(Perugino)의 '성모와 성인들(Madonna e Santi)'이나 시뇨렐리(Luca Signorelli)의 '삼위일체(La Trinità)' 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페루지노와 시뇨렐리 모두 뛰어난 화가였지만 종교적 추상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 빈치의 진보적인 세계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었다. 한편 다 빈치와 스승인 베로키오(Verrocchio)가 함께 제작한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Battista di Criso)'에서는 젊은 천재와 노대가의 고집이 부딪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멋진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다 빈치가 맡은 부분은 배경과 앞쪽의 두 아기천사들이다

16 전시실[편집]

15 전시실 뒤로 나 있는 지도의 방(Sala delle Carte Geografiche)은 옛 지도와 천장화 및 다 빈치의 소품 두 점과 플랑드르 화가 반 데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의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Deposizione)'을 비롯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8 전시실[편집]

강론단, 주교좌라는 뜻의 라 트리부나(La Tribuna)라 불리는 이 전시실은 팔각형의 실내와 돔형 천장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메디치 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페르가몬(Pergamon)에서 출토된 고대 조각을 모각한 '레슬링 선수들'을 비롯한 5점의 조각품과 메디치 집안 사람들의 초상화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정면에 놓여 있는 '메디치가의 비너스(Medici Venus)'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로마 시대에 모각한 것으로, 팔라티나 미술관의 비너스의 방에 있는 '이탈리아 비너스'의 원형이다

초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의 '아들 조반니와 함께 있는 똘레도의 엘레오노라의 초상(Ritratto di Eleonora di Toledo col Figlio)'으로서, 당시의 지배자인 코지모 1세가 무척이나 사랑한 아내와 아들 조반니를 그린 것이다. 그 감촉이 손에 잡힐 듯이 섬세하게 묘사된 엘레오노라의 드레스와 양 볼에 홍조를 띤 어린 조반니의 귀여운 모습 이면에는 빛과 색을 완벽하게 표현할 줄 아는 대가의 손길이 숨어 있다.

20 전시실[편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북유럽 화가로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뒤러(Albrecht Dürer)를 빼놓을 수 없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중에서도 만테냐와 벨리니의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선명하고 미묘한 색상의 대비, 정확한 구도로 표현된 폐허, 그리고 인물의 극적인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적이라 할 수 있는 풍부한 감정 표현과 낭만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한편 뒤러는 독일의 고딕 전통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초상(Ritratto di Fadre)'은 뒤러가 스무 살도 채 안 되어 그린 작품으로, 플랑드르 스타일이 강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구도와 표정에서 이미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은 또 다른 독일 화가로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가 있다. 뒤러와는 달리 매너리즘에 보다 가까운 크라나흐의 작품은 스타일보다는 대상의 세부 묘사에 치중한 것이 특징이다. '아담과 이브(Adamo ed Eva)'는 조금 도발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긴장감과 우아함을 잃지 않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20 전시실[편집]

르네상스 미술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큰 위치를 차지한 베네치아 화파는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로부터 시작되었다. 원근법 구도, 공간과 대상의 조화, 시원시원한 화면 구성 및 섬세한 색상과 빛의 효과 등 벨리니 회화의 특징은 베네치아 회화의 기본이 되었다. 매혹적이고도 신비로운 '우화(Allegory)'는 벨리니의 대표작으로, 몽환적이고도 마술적인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마취시키는 듯한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이 나타내는 바는 정의 또는 낙원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데, 화려한 무늬가 있는 공간에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리고 성인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면과 날카로운 바위산이 그려진 배면을 갈라놓은 호수는 낙원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는 경계 역할을 한다. 벨리니의 제자였으며 베네치아 회화를 더욱 풍부하게 한 조르조네(Giorgione)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발전시킨 스푸마토(Sfumato) 기법(바림법, 외곽선을 흐릿하게 겹쳐 나타내는 회화기법)에 색조를 가미시킨 독특한 스타일을 사용하여 회화의 시적 중요성을 강조한 작가이다. '솔로몬의 심판(Judgement of Solomon)'은 젊은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아직 명확한 인물 묘사와 같은 전통적 요소가 남아 있지만 배경이 되는 풍경을 화면 상당 부분에 배치함으로써 인물만큼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23 전시실[편집]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출발점으로 삼고 이탈리아 회화사상 새로운 구도인 대각선 구도를 창시한 코레조(Correggio, 본명은 안토니오 알레그리 Antonio Allegri)는 우아하고 섬세한 인물 묘사로 유명하다. '아기예수의 경배(Adorazione di Bambino)'는 코레조의 대표작이자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간접조명을 받은 듯 연하고 부드럽게 비추는 빛 아래에서 아름답고도 상냥한 표정의 성모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이 그림은 대각선 구도가 주는 안정감과 부드럽게 처리된 윤곽선, 새벽녘인 듯한 어스름한 배경 등 다 빈치의 작품 요소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23 전시실을 지나 제2복도, 즉 중앙 복도에 이르면 앞뒤로 멋진 광경이 동시에 펼쳐진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기다란 우피치 미술관의 회랑을 양쪽으로 한 채 저 앞에 베키오 궁의 웅장한 모습과 시뇨리아 광장이 보이고, 돌아보면 아르노 강 건너편의 피티 궁이 바라다보인다. 또한 여기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조각품이 몇 점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큐피드와 프시케Amore e Psiche'라는 작품이 시선을 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로마 시대에 모각한 이 작품은 사랑의 신 큐피드와 그가 사랑한 소녀 프시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25 전시실[편집]

조각가로 유명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는 회화에 있어서도 비상한 재능을 보인 또 하나의 르네상스기 천재였다. 그의 대표작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지만, 우피치에 소장된 '성 가족(Sacra Famiglia)'도 간과할 수 없는 걸작이다.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아뇰로 도니(Agnolo Doni)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은 둥근 화판에 그렸다고 해서 '도니 톤도(Doni tond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유일한 패널화로서 인물의 형태와 공간, 긴장감과 화면에 표현된 인물의 크기가 보여주는 놀라운 구도는 마치 조각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조각과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내적 역동성이 꿈틀대는 특징이 있으며, 여기에다 경쾌하고 투명하며 다른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련된 질감을 가진 색상이 더해졌다. 이 그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배면의 벌거벗은 군상이다. 마치 튼튼한 기둥처럼 작품 전체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이 군상은 배경의 풍경을 극히 간단하게 생략하여 허전해진 부분을 메워줌과 동시에 관람객의 시선이 작품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의도적 장치이다.

26 전시실[편집]

성모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중 가장 인자한 표정의 성모상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의 '오색 방울새의 성모(La Madonna del Gardellino)'이다. 이 작품은 피라미드 구도가 주는 안정감과 고요한 표정의 성모마리아와 천진난만한 아기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리드미컬한 자세가 이루는 정靜과 동動의 조화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다. 이러한 점이 단순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복잡함을 띠는 다 빈치의 그림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라파엘로의 작품이 갖는 기본적 차이점이다. 이 그림은 친구인 로렌초 나지(Lorenzo Nasi)를 위하여 그린 작품인데, 주택 붕괴 사건으로 인하여 손상된 것을 일일이 붙여 복원하여 지금도 그림 전체에 자잘하게 금이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라파엘로의 초상화에서는 플랑드르와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이 느껴진다. '자화상(Autoritratto)'과 '레오 10세 초상(Ritratto di Leo X)', 그리고 '엘리자베타 곤차가 초상(Ritratto di Elisabetta Gonzaga)'이 대표적이다. '자화상'과 '엘리자베타 곤차가 초상'은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반면 '레오 10세 초상'은 당시의 화풍을 모두 응용하여 완성한 뛰어난 작품이다.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조반니 데이 메디치레오 10세의 당당하고 품위 있는 모습과 섬세하게 그려진 사물과 붉은색은 인문주의적, 쾌락주의적 특성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미 바로크적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28 전시실[편집]

극도로 섬세하고 싸늘하게 표현된 색상이 나타내는 탄탄한 구도가 자연스러운 사실성을 강조하고 여기에 빛의 효과를 부여하여 차가운 느낌을 완화시킨 베네치아 회화의 특징이 이 전시실에서 느껴진다. 빠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한 사람이라면 16세기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티치아노(Tiziano Vecellio)의 대표작 '우르비노의 비너스(Venere d'Urbino)'에게서 낯익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바로 인상파의 시대를 연 작품인 마네의 '올랭피아'의 원형이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화면의 반을 차지한 채 앞에 벌거벗고 누워 있는 여자는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이 당당한 모습이다. 금빛을 받아 빛나는 몸은 하얀색 시트 위에서 더욱 밝게 보이고 손에 든 붉은 꽃은 쿠션 색깔과 일치하여 화려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누워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비너스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난 후 비너스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둘로 나누어진 배경 반쪽에도 분명히 그림이 존재한다. 하녀로 보이는 듯한 두 여인이 옷장을 뒤지고 있는 모습 뒤로 석양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은 공간감각을 더욱 넓게 확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티치아노는 뛰어난 초상화가이기도 했는데, '플로라(Flora)'는 티치아노의 이상형인 여인을 여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우아하고 감성적인 작품이고, 우르비노 공작을 그린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라 로베레의 초상(Ritratto di Francesco Maria della Rovere)'은 인물의 외적 묘사뿐 아니라 내적 성품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낸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동시대 베네치아 화파의 또 다른 작가로 피옴보(Sebastiano del Piombo)를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 '아도니스의 죽음Morte di Adonie'에서 볼 수 있는 나체상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색감은 조르조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31 전시실[편집]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정점에는 베로네제(Veronese, 본명은 파올로 칼리아리 Paolo Caliari)가 있었다. '성 가족, 성 바르바라와 성 조반니노(Sacra Famiglia con S. Barbara e San Giovannino)'는 베로네제 말년의 작품으로 풍부한 느낌을 주는 인물 배치와 구도, 치밀하면서도 따스한 색감이 작품을 고상하고 기품 있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미묘한 빛의 효과로 투명하고 맑은 색과 날카로운 그림자를 표현하여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강조한 베로네제의 스타일은 후에 카라밧조로 이어져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밑바탕 역할을 하게 된다.

32 전시실[편집]

색상 표현의 대가 틴토레토의 '레다(Leda e il Cigno)'는 여러 면에서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비견되는 작품이다. 누드 여인을 중심으로 한 대각선 구도와 그림자 속인 듯 어슴푸레한 분위기가 극적인 면을 강조하는 한편 자유로운 붓 터치로 표현한 색상은 틴토레토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41 전시실[편집]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에 와서 수년간 티치아노, 베로네제, 만테냐,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의 모든 것을 공부한 루벤스는 마침내 르네상스를 뒤잇는 사조인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가 되었다. 화가이면서 동시에 외교관이었던 직업 때문이었을까, 루벤스의 그림에는 국제적인 감각과 여유로움이 넘쳐흐른다. 루벤스 회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풍만한 몸매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자신의 첫 아내를 그린 '이사벨라 브란트의 초상(Ritratto di Isabella Brandt)'은 부드러움과 지성, 친숙함과 감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초상화이다. 루벤스의 눈에 비친 여인의 아름다움은 깎아놓은 듯한 예쁜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온화한 성품과 기질에 있었던 것이다.

43 전시실[편집]

이삭의 희생

17세기는 바로크의 세기였다.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인물은 빛과 그림자에 관한 한 도사였던 카라밧조(Caravaggio,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지 Michelangelo Merisi)이다.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는 '이삭의 희생Il (Sacrificio di Isaaco)'이 있다. 정확하고 우아한 구도와 정제된 선의 표현, 빛 그 자체로 느껴지는 뛰어난 색채 처리 등 대가의 면모가 모두 녹아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하여 빛으로 강조한 인물들의 표정이 사실성을 높여 오히려 극적으로 보이고 공간도 실제보다 넓게 느껴진다.

카라밧조의 이러한 개성은 다른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에서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특히 성서 속의 영웅적 여성인 유디트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Giuditta e Oloferne)'에서는 적장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의 냉정하고도 확고한 표정이 압권이다. 동일한 주제로 그린 남자 화가들의 작품에는 여성의 살인행각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흔적이 남아 있는 데 비해 젠틸레스키는 복수를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냉정함과 철저한 사전계획 등 보다 실제적인 면을 부각시켜 더욱 공감이 간다.

특히 적장의 목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은 섬뜩한 느낌이 들 만큼 사실적이다. 때로는 사실적 표현이 더욱 극적일 수 있음을 이 작품이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림 속의 유디트는 젠틸레스키의 얼굴 그대로라고 한다. 젠틸레스키의 미덕은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여성을 표현한 데 있다. 남자 화가들이 나타낸 여성들의 아름다움은 다소곳함, 우아함, 피상적 미모에만 있는 반면 젠틸레스키가 주장하는 아름다움은 억압적인 현실에 대항해 투쟁으로 획득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갖는 처절한 아름다움이었다.

44 전시실[편집]

평생 유복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루벤스와는 달리 렘브란트(Rembrandt)는 가난과 개인적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행한 화가였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남겨놓음으로써 자신의 일생이 어떤 궤적을 따라 흘러왔는가를 기록했는데, 44 전시실에 있는 세 점의 '자화상(Ritratto)'이 바로 그것이다. 젊은 모습의 렘브란트에게서는 베레모를 쓴 순진해 보이는 표정의 청년에게서 호기심과 의욕이 느껴지지만, 두 번째 자화상에는 고집스럽게 꽉 다문 입에서 인생의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에 대한 열망은 포기 못한다는 듯 옆으로 향한 눈에서 빛이 뿜어 나오고 있다. 마지막 자화상은 말년에 이른 노화가의 관조하는 듯한 표정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배경도 점점 어두워져 간다.

45 전시실[편집]

카날레토(Canaletto, 평생 사실적인 베네치아 풍경을 그린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의 '팔라초 두칼레(Palazzo Ducale)'를 비롯한 베네치아 풍경화와 과르디(Guardi)의 풍경화, 티에폴로(Tiepolo)의 '리날도(Rinaldo)' 시리즈와 같은 1700년대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과 고야(Goya), 샤르댕(Chardin), 파브르(Fabre)와 같은 외국 화가들의 작품이 두루 전시되어 있다.

부대시설 & 주변 까페[편집]

매표소에서 서적과 간단한 기념품을 함께 판매한다. 안내서적은 €10 €16 €29의 세 종류가 있고, 작품사진으로 만든 달력은 €8, 엽서는 €1 이다.

45 전시실 옆에 까페테리아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와 차, 간단한 식사 종류를 구비하고 있는데 바Bar에서 서서 먹는 경우엔 저렴하지만 두오모의 거대한 돔을 바라보며 밖의 테라스에 앉아서 먹을 경우 바 가격의 2배 정도를 내야 한다. 밖에 마련된 벤치에는 앉아도 되니 벤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것도 방법! 커피 €1 ~ €3 토스트 €3 ~ €5 먹고 가(Eat and Go, Via Bacche Reccia 3)라는 재미난 이름의 레스토랑은 셀프서비스 식으로 운영되는 뷔페 레스토랑인데 까페를 겸하고 있다. 창가 좌석에 앉으면 아름다운 시뇨리아 광장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프리모 피아토 €8, 세콘도 피아토 €10, 샐러드 €8이다.

주변 볼거리[편집]

우피치 미술관과 이웃한 베키오 궁(Palazzo Vecchio)은 피렌체의 메디치 집안이 궁으로 쓰던 곳이다. 장중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의 탑이 시뇨리아 광장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 앞으로 청동으로 만든 다비드 모상模像과 해신상(Nettuno)이 있다. 베키오 궁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안뜰이 나오고, 1층의 저택에는 메디치 집안의 화려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업무시간은 월~토 11:30~16:30 며 요금은 €9 베키오 궁과 카펠라 브란카치 (Cappella Brancacci) 연계 티켓 €8 400여 년 전에 세계 최초로 오페라가 공연되었던 시뇨리아 광장은 시민들의 축제가 자주 열리는 곳이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은 물론 봄 축제와 각종 종교행사 때면 이곳은 가장행렬과 불꽃놀이, 패러글라이딩 쇼가 펼쳐지는 잔치마당이 된다.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가면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므로 기회를 놓치지 말자. 미술관 뒤로 강변도로가 펼쳐져 있고, 조금 서쪽으로 걸어가면 오래된 다리라는 뜻의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가 보인다. 이 다리는 상가를 겸하는 곳으로, 수백 개의 보석상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저 멀리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하고 서 있는 다리 자체도 멋지지만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보석 구경을 하며 다리를 건너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미술관 정보[편집]

  • 이 름 :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 위 치 : 이탈리아, 피렌체 / Piazz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 전화번호 : 055 294 883
  • 설 립 : 1765년
  • 관람객규모 : 약 200만 명(2016년)
  • 사진촬영 : 절대 불가
  • 오디오 투어 :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어 €5 (2인용 €7)1시간 30분 소요
  • 업무시간 : 08:15~18:50 Closed 매주 월,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 입장료 : €12
  • 교통 : 도보: 중앙역 앞 우니타 이탈리아나 광장(Piazza dell'Unita Italiana) 앞의 번화가 판차니 거리(Via Panzani) 끝까지 가면 체레타니 거리(Via de Cerretani)로 이어지는데 이 거리 끝에 두오모 광장이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뻗은 칼차이우올리 거리(Via dei Calzaiuoli)를 지나 시뇨리아 광장(Piazza Signoria) 뒤로 우피치 미술관이 보인다. 기차역에서 15분 소요
  • 기타 :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데다 한 시간에 일정 수만 입장시키므로 성수기에는 오래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전화로 예약하고 예약비 €4 를 더 내면 원하는 시간에 바로 입장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예약비는 관람객 수에 상관없이 횟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 명일 경우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동영상[편집]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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