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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자동차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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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s1208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4월 8일 (목) 10:2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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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자동차

새나라 자동차는 1962년 8월 경기도 부평(현재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재설립된 자동차회사이다. 현재 한국GM의 전신이다. 설립 당시 연산 6천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세우고 그 해 11월부터 61년식 닛산의 블루버드 P301형을 SKD(Semi-Knock-Down)부품수입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블루버드는 새나라자동차라는 이름으로 1962년 11월부터 1963년 5월까지 2,700여대를 조립판매했다.

역사

5·16 군사 정변 이후 정부는 국가재건 방안의 하나로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말만 보호육성법이지 정반대로 시행되었다.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에 명시된 외산자동차 및 부품의 수입금지가 골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 박노정에게 닛산 자동차를 반제품으로 수입하여 조립, 생산하는 새나라 자동차의 설립을 허가했다.

옛 국산자동차 공장을 부지로 해서 공사가 착공되기도 전에 정부는 새나라 자동차에 닛산 블루버드 완제품 400여대의 면세수입을 허가했다. 400대중 150대는 외국인관광용, 250대는 일반관광용으로 면세 수입되었으나 당초 목적과 달리 들여와서는 전량 택시로 전환되었다.

이후 새나라 자동차는 일본 닛산과 손잡고 1962년 8월 경기도 부평 지금의 GM자동차 공장 부지에 연산 6천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조립공장을 세웠다. 현재 한국GM의 전신이다. 여기에서 1962년 11월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새나라는 닛산의 블루버드 부품을 도입해 조립한 차였다.

이 수입 차는 모처럼 우리 손으로 자라나던 국산 자동차산업을 붕괴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새나라 자동차는 제3공화국의 4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크게 사회문제가 되었다. 당시 공화당을 창당한 군사정권은 정치자금 조달 목적으로 새나라자동차에게 한국 내 자동차 판매에 대한 특혜를 약속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새나라자동차는 1년 만에 퇴장당하는 비운의 차가 되고 말았다. 1963년 5월까지 2천700여대를 생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성된 일본산 자동차 2천 여 대를 관세 없이 수입해 시중 업자에게 팔아 넘겨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수입 가격은 1대에 13만원인데 25만원에 팔아 약 2억 5천만 원의 이익을 취했다. 물론 이 돈은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이 새나라 사건이 자동차산업에 미친 부작용도 컸다. 오원철에 따른면, "자동차공업도 수공업적으로나마 버스나 '시발'차가 국산화되어 사용되고 있었으니, 이것을 기초로 해서 서서히 발전시켜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차를 완제품으로 들여왔으니 국내에는 일감이 없어져 버렸다. 이 일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은 완전히 일본에 내주어야 했고 우리나라는 상당기간 자동차산업의 불모지가 되어 버렸다."

결국 '새나라'에 악전고투하던 '시발'마저 같은 해에 회사 간판을 내리게 되어, 이후 기술자립의 싹이 잘린 한국 자동차산업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기술 의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로써 '새나라'자동차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악역이었다는 오명을 안게 된다.[1]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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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익희 세종대 교수, 〈억척으로 엮어낸 자동차산업(1)...시발, 새나라, 신진 자동차〉, 《조선펍》, 201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