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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자동차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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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자동차공업㈜
새나라자동차공업㈜
새나라자동차

새나라자동차공업㈜은 1962년 8월 경기도 부평(현재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재설립된 자동차 회사이다. 간략히 새나라자동차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GM의 전신이다. 설립 당시 연산 6천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세우고 그 해 11월부터 61년식 닛산블루버드 P301형을 SKD(Semi-Knock-Down)부품수입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블루버드는 새나라자동차라는 이름으로 1962년 11월부터 1963년 5월까지 2,700여대를 조립판매했다. 설립자는 재일교포 박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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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나라자동차 블루버드
새나라자동차 준공식
박정희 의장의 새나라자동차 공장 준공식 참석
새나라자동차공업주식회사 작업광경(1963)
새나라자동차 택시사양

5·16 군사 정변 이후 정부는 국가재건 방안의 하나로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말만 보호육성법이지 정반대로 시행되었다.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에 명시된 외산자동차 및 부품의 수입금지가 골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 박노정에게 닛산 자동차를 반제품으로 수입하여 조립, 생산하는 새나라자동차의 설립을 허가했다.

옛 국산자동차 공장을 부지로 해서 공사가 착공되기도 전에 정부는 새나라자동차에 닛산 블루버드 완제품 400여대의 면세수입을 허가했다. 400대중 150대는 외국인관광용, 250대는 일반관광용으로 면세 수입되었으나 당초 목적과 달리 들여와서는 전량 택시로 전환되었다.

이후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과 손잡고 1962년 8월 경기도 부평 지금의 GM자동차 공장 부지에 연산 6천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조립공장을 세웠다. 현재 한국GM의 전신이다. 여기에서 1962년 11월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새나라는 닛산의 블루버드 부품을 도입해 조립한 차였다.

이 수입 차는 모처럼 우리 손으로 자라나던 국산 자동차산업을 붕괴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새나라자동차는 제3공화국의 4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크게 사회문제가 되었다. 당시 공화당을 창당한 군사정권은 정치자금 조달 목적으로 새나라자동차에게 한국 내 자동차 판매에 대한 특혜를 약속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새나라자동차는 1년 만에 퇴장당하는 비운의 차가 되고 말았다. 1963년 5월까지 2천700여대를 생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성된 일본산 자동차 2천 여 대를 관세 없이 수입해 시중 업자에게 팔아 넘겨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수입 가격은 1대에 13만원인데 25만원에 팔아 약 2억 5천만 원의 이익을 취했다. 물론 이 돈은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이 새나라 사건이 자동차산업에 미친 부작용도 컸다. 오원철에 따른면, "자동차공업도 수공업적으로나마 버스나 '시발'차가 국산화되어 사용되고 있었으니, 이것을 기초로 해서 서서히 발전시켜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차를 완제품으로 들여왔으니 국내에는 일감이 없어져 버렸다. 이 일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은 완전히 일본에 내주어야 했고 우리나라는 상당기간 자동차산업의 불모지가 되어 버렸다."

결국 '새나라'에 악전고투하던 '시발'마저 같은 해에 회사 간판을 내리게 되어, 이후 기술자립의 싹이 잘린 한국 자동차산업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기술 의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로써 '새나라'자동차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악역이었다는 오명을 안게 된다.[1]

현재 대한민국에 운행 가능한 차량은 물론, 잔존하는 차체는 전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와서 1964년 제3공화국 국회에서 재일교포 박노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제기했으나, 이 시점에서 박노정은 이미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에 조사는 무산되었다.

새나라

1962년부터 1963년까지 닛산 블루버드 차량을 들여와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을 통해 생산했던 소형차이자 국산차계의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던 차종이였다. 새나라자동차 출범 당시,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닛산에서 판매하던 1세대 블루버드 모델을 초기에는 400대[1]를 수입을 해 오다가 이후 같은 해 9월부터는 조립공장의 완성으로 반제품 형태로 들여온 후 조립 생산하는 방식을 통해 '새나라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파워트레인은 1.2L 가솔린 I4 엔진이 적용되었으며, 55마력을 냈고, 3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완성차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미국제 지프차를 기반으로 드럼통으로 차체를 만든 영운기 형태의 시-ㅂㅏ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고, '새나라 양장 미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차이가 컸기 때문에 점점 기술력을 길러가던 국제차량제작소를 망하게 한 원인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후술할 4대 의혹 사건이 일어난 결과,새나라자동차 역시 법정관리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고, 국제차량제작소가 사라진 같은 해에 사라지면서 대한민국의 국산차 시장이 거의 아작난 수준까지 되어버렸으며, 1990년대~2000년대부터 독자적인 디자인의 차량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의 기술을 전수받거나 배지 엔지니어링을 통해 판매해야 했을 정도로 국산차 시장의 퇴보가 이루어진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설립과정에서 블루버드의 수입 판매에 관련하여 당시 정부의 특혜시비 의혹, 탈세 등과 같은 사실이 드러나 각종 의혹에 휘말리게 되었고, 1963년 7월에 한일은행의 법정관리 처분을 받게 되었다.

또한 '자동차 보호법'에 의해 내국세, 수입관세 등을 전부 면제받으면서도 규정 가격보다 차량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이후 신진공업에 인수되었다.

각주

  1. 홍익희 세종대 교수, 〈억척으로 엮어낸 자동차산업(1)...시발, 새나라, 신진 자동차〉, 《조선펍》, 2016-10-07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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