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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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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POSCO) 로고와 글자

㈜포스코는 대한민국의 대기업이자 포스코그룹의 모회사로 제강 및 합금철 제조업체이며 1968년 4월 정부 주도로 주식회사 포항종합제철(주)이 설립됐다. 2018년 기준으로 포스코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자산총액 기준으로 6위의 기업 집단으로 자산총액은 약 79조 7천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대기업 집단이며,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1]

개요

(주)포스코의 전신은 1968년 4월 정부의 건설 계획과 고(故) 박태준 회장의 주도로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주)이다. 설립 당시 국영기업으로 설립되었으며, 초대 사장은 박태준이 맡았다. 대일청구권 자금과 일본은행 차관으로 1기 제철소를 준공하였다. 2000년 10월 민영화를 완료하고, 2002년 3월 포항종합제철에서 (주)포스코로 상호를 변경한다. 박태준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5 · 16 쿠데타에 가담한 '혁명군인' 출신이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 상공담당 최고의원을 지낸 뒤, 1967년 텅스텐 수출업체 대한중석 사장을 맡고, 1968년 포항종합제철 초대 사장에 취임하였다. 주력 사업은 철강, 이외에 트레이딩, 건설, 에너지, ICT 등의 인프라 분야와 에너지저장소재(ESS), 경량소재 등의 신성장 사업에 진출해 있다. 전 세계 자동차 10대 중 1대는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을 사용한다. 2017년 세계에서 조강생산량 5위에 올랐다. [2]

역사

포스코 창업기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제 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1967년~1971년)에 철강공업의 다각적인 전략성이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장기적인 철강공업 육성계획이 수립되었다. 이에 따라, 1963년에 5개국 8개사의 연합체인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이 결성되면서 1968년까지 예비협정, 기본협정, 추가협정의 세 차례에 걸쳐 협상이 이루어진다. KISA와의 협상이 진행되면서 1967년 7월 포항이 제철소의 입지로 결정되었고 같은 해 9월 대한중석이 종합제철사업의 주체로 선정된다. 이어 1968년 4월 1일 대한중석을 모태로 하여 포항제철이 창립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15억 원(75%) 대한중석이 1억 원(25%)을 출자해 1968년 4월 1일 설립자본금 4억원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는 국영기업으로 운영된다. 박태준은 대한중석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창업 인력 39명과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의 창업식을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개최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는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한 자금은 KISA에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해가 다 가도록 제대로된 자금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당시에 세계은행의 한국 담당자인 영국인 자페가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결국 박태준은 1969년 1월 KISA의 모기업인 코퍼스의 포이 회장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밤 늦은 시각까지 포이에게 한국의 상황과 제철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지만 사업면에서 단호한 포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KISA로부터 차관을 조달하는데 실패하고 포이측의 배려로 하와이의 휴식을 취하게 된 박태준은 이 기간동안 자금을 동원할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대일 청구권자금이다. 당시 8천만 달러 정도의 대일 청구권자금이 남아있었고, 일본은 자금을 제공하면서 돈의 용처를 명시해두었으나 그것을 바꿀 수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박태준은 전원합의체라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일본의 내각을 집요하게 설득하여 결국 일본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이후에 1968년 부터 1992년까지 현금출자 2341억 원, 대일청구권 자금 128억 원, 현물출자 150억 원 합 2205억 원을 출자하였다. 조강기준 연산 103.2만T 규모의 포항종합제철은 1973년 7월 3일 준공식을 거행한다. 포항종합제철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중화학공업의 상징적 존재였다.

포항제철의 발전

철강 일관작업 형태의 포항제철은 1976년 5월 제 2기 설비확장공사를 준공, 조강기준 연산 260만T 규모로 확대되었고 1978년 12월에는 조강기준 연산 550만T 규모의 제 3기 설비확장공사를 준공한다. 1981년 2월 조강기준 연산 850만T 규모의 제 4기 설비확장공사를 준공했는데, 제 3기 준공 당시 철강수요의 지속적인 증가추세 전망으로 제2 제철 공장의 건설계획이 수립 또는 추진되었다. 1987년 5월 조강기준 연산 270만T 규모의 광양 제 1기 설비공사가 완공되었고 1988년 10월에는 동일규모의 제 2기 설비 공사가 준공된다. 포항종합제철은 포항의 일관제철소에 이어 광양에 제 1기, 2기 설비를 완공 또는 가동 시키고 있어 설비 능력의 확대에 주도적 역할은 했다. 포항종합제철은 현재 진행하는 중인 조강기준 연산 270만T 규모의 광양 제 3기 설비확장사업을 1990년 중에 완공하고 조강기준 연산 330만T 규모의 광양 제 3기 설비확장사업을 1990년 중에 완공하여 조강기준 연산 330만T 규모의 제 4기 설비확장 사업이 1992년 완공되어 조강자급률을 더욱 증가시키게 된다. 포항제철은 1994년 3월에 김만제 전 부총리를 4대 회장으로, 김종진 부사장을 7대 사장으로 선임함으로써 창립 후 처음으로 외부 인사에 의한 최고경영진을 구성한다. 김만제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포항제철은 경영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체제변환기를 맞는다. 김만제는 1994년 4월 창립 26주년 기념사에서 조직의 유연성, 민주성, 투명성에 입각하여 녹색경영철학을 제창했다.

민영화, 그 이후의 포스코

1998년 7월 3일 정부는 정부 및 산업은행 보유지분 26.7%를 인당 3%의 한도로 내외국인에게 분산 매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 및 산업은행 보유지분이 여러차례 분할하여 매각되었다. 2000년 10월 산업은행이 보유하던 지분 36%를 매각하여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2002년 명칭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로 변경한다. 2003년에 부임한 이구택 회장은 4년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높이고, 주가도 2003년 3월에 9만 9000원대에서 2007년 30만원을 훌쩍 넘겨 놓았다. 또한 2006년부터 철광석 산지인 인도에서 유례없는 국외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던 그는 포스코를 세계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뉴욕, 런던, 도쿄 증권시장에도 포스코 주식이 상장되어 있다. 포스코에 대하여 2007년 아르셀로 미탈 그룹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여, 포스코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약 1조 원에 달하는 돈을 소비하며 자사주를 매입하였다. 결국 아르셀로 미탈의 적대적 합병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포스코가 당시 합병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외국인 지분이 60%를 상회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우호주식을 확보하기 위해 2006년 10월 신일본제철과 지분 2%를 상호 매입하기로 하는 약정을 체결하고, 2008년 국민은행과 3천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맞교환한다.

현황

2018년 7월 제 9대 최정우 회장의 취임과 함께 회사는 새로운 경영비전 'With POSCO'를 선포한다. 'With POSCO'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 고객,공급사, 협력사 등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가치를 추구하는 Business With POSCO와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Society With POSCO 그리고 신뢰와 창의의 기업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People With POSCO를 제시한다. 단순 이익 추구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완수해 가야 하는 '기업시민'으로써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포스코는 7년만에 최고 수익을 갱신한다. 오랜 적자 속에서 나왔던 흑자이며 이후 새로 취임한 회장의 현장 경영 원칙에 따라 중요 부서가 광양과 포항으로 이동된다. 서울로 가지고 갔던 전 회장과는 다른 행보이다. 2019년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고 등 여러 지자체에서 제철소의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하여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업계는 철강산업 전반적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이 날 위기에 처했다며 강하게 반발을 하는데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이번 조치로 보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8000억원의 손실을 예상하였다. 환경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제철과정에서 생기는 오염물질을 저감시설 없이 블리더를 통하여 공기 중에 배출해왔다는 민원을 넣었고, 지자체는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블리더 말고는 대체제가 없기에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

연혁

  • 1968년 04월 : 포항종합제철(주) 창립
  • 1970년 04월 :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착공
  • 1972년 04월 : 후판공장 준공(07. 31. 후판제품 첫 출하)
  • 1973년 06월 : 포항 1고로 첫 출선
  • 1973년 07월 : 조강연산 103만 톤의 포항제철소 1기 준공
  • 1977년 02월 : 포항 1냉연공장 준공
  • 1981년 02월 : 포항 4기(조강연산 850만 톤) 설비 종합준공. 정부투자기관에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
  • 1986년 12월 : 포항공대 개교
  • 1987년 05월 :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종합준공
  • 1988년 06월 : 주식 상장 (국민주 1호)
  • 1989년 11월 : 포스데이타 설립
  • 1990년 12월 : 광양제철소 3기 설비 준공
  • 1992년 12월 :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조강연산 2,080만 톤)를 완성
  • 1994년 05월 : 신세기통신 설립
  • 1994년 06월 : 포스코경영연구소 설립
  • 1994년 10월 : 뉴욕 증시 상장
  • 1994년 12월 : 포스코개발 설립. 포항 방사광가속기 준공
  • 1995년 11월 : 신제선공장(코렉스) 준공
  • 1996년 01월 : 대일청구권자금 상환 완료
  • 1997년 02월 : 중국 장가항포항불수강 설립
  • 2000년 01월 : 신세기통신 매각
  • 2000년 10월 : 민영화 완료
  • 2002년 03월 :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주)포스코로 상호 변경
  • 2003년 11월 : 포스코차이나 출범
  • 2006년 06월 : 광양제철소 6CGC(자동차강판 650만 톤 체제 구축) 준공
  • 2008년 09월 : 최대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 준공
  • 2009년 08월 : 멕시코에 자동차 강판용 공장인 포스코-멕시코 CGL(용융아연도금강판공장) 준공
  • 2010년 01월 : 포스코플랜텍(포철산기와 포철기연 통합), 포스코 ICT(포스데이타와 포스콘 통합) 출범
  • 2010년 10월 : (주)대우인터내셔널 인수
  • 2012년 03월 : 베트남 스테인리스냉연공장 준공
  • 2013년 06월 : 광양 1고로 내용적 6,000m3 규모의 세계 최대 고로로 재탄생
  • 2013년 04월 : 중국 광동성에 연산 45만 톤 규모의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공장을 준공
  • 2014년 02월 : 포스코기술대학 개교
  • 2014년 06월 : 차세대 고내식 강재 포스맥 개발
  • 2015년 01월 : 인도 마하라슈트라 냉연공장 준공
  • 2016년 08월 : 브라질 CSP(Companhia Siderurgica do Pecem) 제철소 준공
  • 2016년 08월 : 태국 용융아연도금강판공장(CGL: Continuous Galvanizing Line) 준공
  • 2016년 08월 : '기가스틸' 시대 선포
  • 2017년 06월 : 철강사 경쟁력 8년 연속 세계 1위
  • 2018년 01월 : 인공지능 기반 초정밀 도금기술, 철강부문 국가핵심기술 지정
  • 2018년 04월 : 중국의 고급 강건재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솔루션마케팅센터 출범
  • 2018년 07월 : 제9대 최정우 회장의 취임 [2]


주요 인물

사업 분야

주요 기술

특징

로드맵

각주

  1. 포스코〉, 《나무위키》
  2. 2.0 2.1 (주)포스코〉, 《네이버 지식백과》
  3. 포스코〉, 《위키백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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