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아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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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아스주(브라질 포르투갈어: Estado de Goiás)는 브라질 중부 브라질 고원 지대에 위치한 주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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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고이아스주의 면적은 340,086km²이며 인구는 7,206,589명(2021)이다. 마투그로수주, 마투그로수두술주, 미나스제라이스주, 바이아주, 토칸칭스주와 이웃하고 있다. 주도이자 최대 도시는 고이아니아이다.
고이아스주는 서울과 시차가 정확히 12시간이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는 원래 이 주에 속해있었으나 브라질리아 건설 이후 연방 직할구로 독립했다. 17세기에 사금(砂金)과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이후 입식(入植)이 진척되어, 1889년에 주가 되었다. 그러나 남동부 1,100m의 고원에 신설된 수도 브라질리아를 포함하는 연방지구를 제외하고는 인구가 희박하고, 특히 토칸칭스·아라과이아 두 강의 유역은 개척전선지대로 미개척지역이 넓어, 지금도 아마존 인디언이 원시생활을 하고 있다.[3]
자연환경[편집]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700∼1,100m의 고원을 이루어, 브라질 고원 위치하고 있으며, 파라나강의 지류인 파라나이바강, 상프란시스쿠강의 지류, 그리고 아라구아이아강, 토칸칭스강 및 그 지류들이 고이아스주에서 시작하여 각각 남쪽, 동쪽, 북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하천들의 유역에는 관목림(灌木林)지대가 많다. 대부분의 지대가 열대성 대초원으로 덮여 있으며, 강가 주위를 중심으로 열대성 숲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목축업 상승 및 농경지 개발에 의하여 대초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북부는 열대우림지역이고, 남부는 관목이 섞인 캄포세라도라고 부르는 초원지대로, 건계와 우계의 구별이 있는 기후는 고지대 아열대성 기후이며, 연중 22도에서 26도사이의 기온을 유지한다. 연 10~3월은 우기(여름철), 4~9월은 건기(겨울철)이며 연 강수량은 1700mm정도이다.
역사[편집]
17세기에는 브라질 사람들이 대부분 동남부 해안 지역에 살았다. 하지만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이 발견되고 사람들이 금을 찾아 브라질 내륙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다. 첫 장착지는 고이아스벨류(Goias Velho)라는 마을이었으며 이 마을은 현재 고이아스로 불리고 있다.
미나스제라이스 지역에서의 금의 발견은 많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브라질 내부로 들어가게 하였다. 1682년 상파울루 사람 바르톨로메우 부에누 지 실바가 아라구아이아 강 지류에서 금을 발견하여 많은 개척자들이 금을 찾아 고이아스 지역으로 들어온다. 그가 설립한 정착지 산타안나는 식민지 마을 고이아스벨류가 되며 1933년 지금의 주도 고이아니아가 계획되어 설립되기까지 고이아스 주도가 된다. 1822년 브라질 제국의 한 지방이 되며, 1889년 주로 승격된다.
1891년 브라질 헌법에 국가의 수도는 브라질 고원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1965년 브라질 수도가 들어설 지역으로 고이아스가 지정되고, 1960년 공식적으로 수도 이전이 된다.
600,000㎢에 달하는 광활한 영역에 따른 불편함에 따라 북부지역 분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마침내 1989년 고이아스 북부지역이 분리되어 토칸칭스주가 된다.
산업[편집]
목축업과 농업이 주요 산업이다. 특히 목축업은 고이아스주의 총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2000년 통계에 따르면 1800만 마리 소가 고이아스에서 사육되고 있는데, 이는 인구 4명당 한마리의 소가 있는 양이다. 이는 브라질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양으로 목축업은 고이아스 주에서 중요한 경제 활동이다. 농업도 중요한 경제 영역인데 고이아스주 GDP의 21%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탕수수, 콩, 옥수수, 토마토, 쌀, 목화 등이 생산된다. 천연 광물 또한 주요한 생산물로 니켈, 망간, 코발트, 철, 금, 은 등이 생산된다. 고이아니아와 아나폴리스는 고이아스 주의 상공업 중심지로 식품가공업 및 제약 공장들이 있다.
주요도시[편집]
고이아니아[편집]
브라질 중서부에 있는 고이아스주의 주도이며, 수도 브라질리아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200㎞ 떨어져 있다. 고이아스주의 옛 주도였던 고이아스 벨류시를 대신해서 1930년대에 건설된 계획도시로서, 고이아스 벨류 주변의 사금광이 고갈되자, 주의 다른 지역과 접근성이 더 우수하고 기후 조건도 좋은 고이아니아를 새 주도로 고르게 되었다.
중서부 지방에서는 브라질리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이며, 브라질에서 인구 1인당 가장 넓은 녹지 면적을 가지고 있어, ‘공원의 도시’로도 불린다. 또한 상파울로와 리우데자네이루랑은 달리 브라질에서 치안이 매우 안정된 지역이다.
위성 지도로 보면 도심 곳곳으로 녹지가 잎맥, 혈관처럼 파고들어있는 모습을 하고있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여기처럼 약간의 징그러움 및 혐오감을 들게 할 수 있다. 악명높은 고이아니아 방사능 유출 사고가 여기서 발생했다.
아파레시다지고이아니아[편집]
고이아스주의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주도인 고이아니아의 위성도시이기도 하다. 고이아니아, 아나폴리스에 이어 세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고아이스 주의 도시이기도 하다. 2022년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C 북부리그 소속인 AA 아파레시덴시의 연고지이다.
고이아스벨류[편집]
고이아스주 중앙부의 해발 500m 지점에 위치한다. 1727년 식민지 개척자들이 설립했으며, 18세기와 19세기의 골드 러시 시대에 번영을 누렸다. 또한 내륙 식민지 지역의 중심지였으며, 브라질 공화국 성립 후에는 고이아스 주의 주도였다. 그러나 금이 고갈된 데다가, 주도도 1937년 150km 떨어진 지점에 새로 건설된 고이아니아로 옮겨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2001년 유네스코에서 이 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아나폴리스[편집]
브라질리아와 고이아니아 사이에 위치하며 고이아스 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브라질 중서부 지역의 중요한 산업 및 물류 중심지이다. 18세기 중반, 금광 산업의 성행으로 광산을 찾아 떠돌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착했다. 1887년 12월 15일, 산타나다스안타스(Santana das Antas)라는 이름으로 처음 마을이 세워졌고 1907년 7월 31일, 현재의 도시명인 아나폴리스가 되었다. 해발 1,017m에 위치하며 열대사바나 기후(Aw)를 보인다. 여름엔 비가 많이 내리고 겨울엔 매우 건조하고 춥다.
고이아스 역사 지구[편집]
고이아스 역사 지구는 브라질 고이아스주에 있는 식민 역사도시 유적이며 도시의 건축물과 그 배치가 중앙아메리카의 기후, 지리, 문화적 제약에 적응해온 좋은 예로, 200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도시 건물의 배치와 건축 양식의 측면에서 볼 때, 고이아스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the Town of Goiás)는 남아메리카 중부 지역의 기후와 지리, 문화적 제약을 훌륭하게 적응 발전시킨 유럽풍 도시의 뛰어난 본보기이다. 고이아스는 지역에서 나는 재료와 기술을 충분히 사용하고 예외적인 설정을 절제함으로써 남아메리카 식민 정착지의 특징적인 도시 구조와 건축 양식의 발전을 보여 주고 있다. 도시 건물의 배치를 보면 지역 조건에 맞게 적응된 광산 도시가 유기적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건물과 민간건물은 지역의 재료와 건축 양식을 일관되게 사용한 덕분에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이아스 마을의 기원은 브라질 내륙을 탐험하였던 공식 원정의 역사와 다소 밀접한 관련이 있다. 페르난두 디아스 파이스(Fernando Dias Pais)가 지휘한 탐험대는 1673년~1681년에 미나스(Minas) 지역을 탐험하였고, 바르톨로뮤 부에누 다 실바(Bartolomeu Bueno da Silva)가 지휘한 또 다른 탐험대는 1682년 고이아스 지역을 탐험하였다. 그 후 쿠이아바(Cuiabá)와 리우베르멜루(Rio Vermelho)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포르투갈 당국은 고이아스 금광들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지방 정부를 보강하기로 결정했다. 1739년 상파울루 총독은 고이아스의 빌라 보아(Vila Boa)에서 이름을 가져온 산타나(Santana)를 선택했다. 광산 도시는 그것에 작은 행정 구역을 추가하여 크기가 두 배가 되었다. 1748년 고이아스는 새로운 하부 행정 단위의 본부로 선정되었다. 첫 번째 총독은 1749년~1755년에 보통 마을을 작은 주도로 변화시킨 동 마르코스 데 노롱야(Dom Marcos de Noronha)였다. 최초의 건축물 중에는 광산에서 나온 금을 주조하던 푼디상(Fundição, 1750), 총독의 저택, 군대의 막사 등이 있었다. 카마라(Câmara) 및 카데이아(Cadeia) 건물의 건축, 도로의 개선, 카리오카(Carioca) 및 차파리스 데 카우다(Chafariz de Cauda) 분수의 건설 및 극장의 건축 등을 포함하여 마을은 계속하여 개발되었다.
1782년에는 오늘날까지 전해진 구조를 가지고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도시 종합 계획안을 마련했다. 1770년 불가피하게 금광 채굴이 쇠퇴하면서 고이아스는 장기간에 걸친 경제 침체를 겪었다. 1935년~1937년에 행정적 지위를 잃었지만, 마을의 모습은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다.
고이아스의 마을은 리우베르멜루라는 작은 강을 따라 2개의 언덕 사이에 건설되었다. 오른쪽 제방 지역은 북서쪽 언덕을 향한 급경사로 인구 밀집 지역이며, 전통적으로 노예를 위해 마련한 로사리오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남동쪽 언덕에 가로막힌 왼쪽 제방 지역은 산타나의 교구 성당, 총독의 저택, 병영, 푼디상 주택을 포함하고 있고, 샤파리스 광장 쪽으로 확장되어 있으며, 샤페우두파드레(Chapeu do Padre) 언덕을 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역사적인 주거 구역과 개성 있는 시장이 발견되었다.
이 마을은 건물의 비율과 유형 때문에 건축물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동시에 건축의 역사는 18세기의 고전적 건물에서 19세기의 종교 건축물까지 스타일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고이아스는 19세기부터 최근까지 장기간 경제 침체를 겪어 왔다. 그래서 그런지 1933년에 고딕 재현 스타일로 로사리오 성당을 재건한 것 말고는 현대에 마을의 주요 부분을 개축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이아스는 자연 환경을 포함하여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18~19세기 광산 마을의 모습을 보여 주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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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고이아니아〉, 《나무위키》
- 〈고이아스벨류〉, 《나무위키》
- 〈아파레시다지고이아니아 〉, 《나무위키》
- 〈아나폴리스(브라질)〉, 《나무위키》
- 〈고이아스주〉, 《위키백과》
- 〈고이아스〉, 《나무위키》
- 〈고이아스주〉, 《네이버 지식백과》
- 〈고이아스 역사 지구〉, 《유네스코와 유산》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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