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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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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치바
쿠리치바 위치

쿠리치바(브라질 포르투갈어: Curitiba)는 브라질 파라나주주도이다.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190만 명으로 브라질 남부지방(South Region)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가 큰 도시이다. 1인당 녹지면적이 세계보건기구 권고치의 4배 이상인 55m²이 되어 세계적인 생태환경도시로 알려져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개최지 중 한곳으로 FIFA 제작 도시 소개 영상이 있다.[1]

개요[편집]

쿠리치바는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파라나주의 주도로, 해발고도 935m에 위치하며 주의 정치와 경제 중심지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남서쪽으로 약 800㎞, 상파울루에서 약 400㎞ 떨어져 있다. 원래 이 도시 경제는 남쪽의 가축 농장과 북쪽의 시장 사이인 입지 조건 때문에 가축 교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쿠리치바’는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이전에 거주하던 투피(Tupi)족의 언어로 ‘소나무가 많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쿠리치바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1850년대부터 유럽 이민자들이 밀려왔는데 주로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지 출신이었으며, 쿠리치바의 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오늘날 쿠리치바에는 외국인 이민자가 적으며, 그나마도 중동이나 남아메리카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브라질 국내의 다른 주에서 많은 이주자들이 몰려왔다. 그래서 현재 쿠리치바 인구 중 대략 절반은 이 도시 태생이 아니다. 쿠리치바는 도시 계획을 통해 친환경적인 도시를 조성함으로써, 시가지의 바람직한 발전뿐 아니라 도시의 사회, 문화, 교육, 환경 문제까지도 해결하고자 하였다. 쿠리치바의 도시 계획안은 세계 여러 도시에 영향을 미쳤으며, 선진국 도시가 아닌 개발도상국의 도시로서 그러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쿠리치바의 교통 및 환경 정책은 우리나라의 버스 전용 차선과 광역 버스 정책 등에도 본보기가 되었다. 쿠리치바는 1970년대까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었다. 하지만 건축가 출신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가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목표로 철저한 도시 계획을 시행하면서, 현재는 생태환경도시의 본보기로 주목받고 있다. 쿠리치바에는 브라질 최초의 대학인 파라나 연방 대학교(브라질 포르투갈어: Universidade Federal do Paraná)가 있으며, 이 대학이 들어선 1913년에 도시에 최초로 노면 전차가 부설되었다. 쿠리치바는 1995년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에 의해 세계 12개 모범도시로 선정되어 '희망의 도시'로 명명되었으며, 유엔(UN)에서 '지구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쿠리치바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남서쪽으로 약 800㎞, 상파울루에서 약 400㎞ 떨어진 브라질 남부 도시로 파라나주의 주도이다. 수리적인 위치는 남위 25°25′, 서경 49°16′이고, 면적은 435㎢이다. 쿠리치바에는 아투바강, 벨렝강, 바리기강, 파사우나강, 히베이랑두스파딜랴스강, 이구아수강 등 크고 작은 6개의 강이 시가지를 흐르고 있다. 모든 강은 나뭇가지 모양의 여러 배수 구역을 형성한다. 쿠리치바는 19세기 중엽부터 시가지를 흐르는 여러 강의 홍수를 방지하고 배수를 원활하게 유지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였다. 홍수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공 호수를 조성하여 강우 때 하천의 물을 최대한 담도록 도모하였다.

쿠리치바는 아열대 기후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 고도가 해발 900m 안팎으로 높아, 온난한 해양성 기후 또는 고산 지대의 아열대 기후가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은 16.5℃이고, 연강수량은 1,400㎜ 정도이다. 강수량은 월 120~170㎜이며, 연중 온화하고 다습한 기후가 나타난다. 쿠리치바는 연중 브라질 대륙에 발달한 고온 건조한 기단과 남극으로부터 내려오는 한랭 전선의 영향을 받는다. 여름에는 열대 폭풍이 지나며, 겨울에는 남극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역사[편집]

쿠리치바 지역에 처음 포르투갈 인들이 온 것은 1600년대 중엽 금을 찾아서였다. 쿠리치바는 1693년에 세워졌는데 1842년 도시로 지정되었고, 1853년 파라나주의 주도가 되었다.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파라나주의 기후는 유럽의 기후와 비슷하여 농업 이민자들의 주요 목적지가 되었다. 초기 이민자들 중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네덜란드 인들은 주로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인들은 상업과 제조업에 종사하였다.

1853년부터 1886년 사이 2만여 명의 유럽인들이 파라나주에 정착하였으며, 이후 아시아중동인들이 정착하였다. 1890~1896년 동안에는 28,000여 명이, 1907~1914년 사이에는 27,000여 명이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1940년대까지 외국 이주민의 유입이 지속되어 쿠리치바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문화 도시를 이루게 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외국인의 유입보다는 브라질 국내에서의 이주가 주를 이루었다.[3]

경제[편집]

쿠리치바는 대도시인 상파울루와 이남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18세기에 커피, 축산물, 차, 목재 등을 취급하던 상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중간 거점이었으며 상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번영하였다. 쿠리치바의 상업적 입지는 1885년 이 도시와 파라나구아(Paranaguá)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초기 상업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쿠리치바는 20세기 들어 목재, 커피, 가죽, 마테 차 재배 등의 산업이 발달하였다.

쿠리치바 경제가 본격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파라나주의 커피 생산에서 얻은 이익을 주도인 쿠리치바의 발전에 재투자하면서 부터였다. 1970년대에는 수출 작물 재배 및 농산물 가공 산업이 발달하였고, 관련 서비스업도 성장하였다.

쿠리치바는 친환경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공업 단지의 영향으로 경제 활동 인구의 5분의 1 가까이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1973년 초 쿠리치바 공업지구(CIC)가 조성되면서 공업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쿠리치바 공업지구는 유해한 산업 활동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심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40㎢ 정도 규모로 건설되었다. 자연 녹지에 둘러싸인 친환경적인 공업 단지로, 주택과 교통 및 서비스 부문이 결합되었다.

쿠리치바는 1980년부터 소규모 산업과 비공식 경제 부문에 행정 및 재정 지원을 시작함으로써 시의 경제적 기반을 다져 나갔다. 즉 전기, 전자, 컴퓨터, 생명 공학, 정보 통신 등 환경 영향이 적은 산업을 적극 유치하였다. 대기 및 수질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법령을 제정하여 시행하였으며, 국가 및 국제적 환경 규제를 수용하는 기업에게만 입주를 허가하였다. 쿠리치바 공업지구에는 1973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어 1997년까지 약 500개의 기업이 입주하였다. 1999년에는 쿠리치바의 외곽인 상조세두스피냐이스(São José dos Pinhais)에 르노-닛산 자동차와 아우디 자동차 공장이 건설되어 도시의 고용 증대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오랜 기간에 걸친 도시 계획과 친환경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는 쿠리치바에 다국적 기업의 지점과 생산 공장을 유치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91년에 발효된 남미공동시장(Mercado Comun del Sur, MERCOSUR)의 영향으로 브라질 경제가 발전하면서 제조업에 기반을 둔 쿠리치바의 경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4]

교통[편집]

대중교통[편집]

쿠리치바의 교통 체계는 대중교통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쿠리치바는 건설과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드는 지하철 대신 버스 중심의 광역 대중교통 체계를 조성하였는데, 지표면에 지하철과 유사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 나아가 버스를 지하철처럼 빠르고 편안한 교통수단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자 하였다. 이는 버스 전용 차로제와 여러 등급의 버스 노선 개발로 이어져, 도로를 추가로 확장하지 않고 기존 도로 공간을 활용하여 낮은 비용으로 교통의 효율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도심의 역사적 유산과 경관도 보존할 수 있었다.

쿠리치바는 도시 중심을 X자형으로 연결하는 간선 도로망을 3중 도로 시스템으로 설계하였다. 도로 중앙에는 급행 버스를 위한 2개의 역류 버스 전용 차선이 있고, 이 도로 양쪽으로 자동차 차선이 설정되었다. 이 도로에서 한 블록 떨어진 차선은 2개의 일방통행로, 즉 중심지로 향하는 일방 도로와 중심지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일방 도로로 구성되었다. 또한 버스를 운행하는 지역과 거리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분류하고, 색을 확연히 다르게 칠하여 주민들이 알아보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정류장을 원통형으로 만들어 승하차 때 버스를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고, 버스 정류장에 들어서면서 요금을 내도록 하여 승차 시간을 단축하였다. 간선 도로에는 승객을 대규모로 수송할 수 있는 굴절 버스를 투입하였으며, 시내버스를 24시간 운행하였다.

보행자[편집]

쿠리치바의 교통 정책은 도로에서 차량보다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시민을 우선으로 하여, 일찍이 자전거 도로망이 갖추어지고 보행자 중심의 도로가 구축되었다. 자전거 도로망은 1977년에 구축되었으며, 레저용과 통근 통학용으로 구분된다. 또한 보행자 전용 도로도 잘 갖추어져 있는데, 최초의 보행자 거리로 지정된 곳은 도심에 있는 보카말디타(Boca Maldita) 거리이다. 이 거리는 1970년대 초에 시민들의 집회 장소로 이용되던 곳으로, 거리 미술제나 자유로운 연단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이후 도심의 여러 도로가 보행자 전용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역사 보전 지구에 설치된 한 개의 지하보도 외에는 도시 전체에 지하도와 육교를 설치하지 않아 일반 보행자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교통 약자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항공[편집]

쿠리치바에는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했던 아폰수 페나(Afonso Pena)의 이름을 딴 아폰수페나 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다. 브라질의 다른 도시들과 연결된 국내선이 운항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지로 가는 국제선이 있으며 마이애미,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등지로 연결되는 화물 노선이 운항되고 있다.[5]

친환경적 도시 개발[편집]

쿠리치바의 도시 개발 계획은 1800년대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50여 년간의 도시 공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세심한 계획이 현재와 같은 도시 쿠리치바를 이루었다. 쿠리치바의 도시 개발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1943년의 아가시 계획(Agache Plan)과 1966년에 세워진 계획이며, 이후의 계획은 도시 환경, 빈곤, 교육, 문화재 등 도시 전반에 걸쳐 쿠리치바를 지속 가능한 도시로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쿠리치바의 도시 계획 사례는 개발 도상국의 도시로서 여러 도시에 영항을 미쳤다는 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쿠리치바는 식민 시대에 건설된 다른 도시들과 같이 특별한 도시 계획이 없이 건설되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후 1857년 파리와 워싱턴 D.C.의 계획을 담당했던 프랑스 도시계획가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해에 쿠리치바도 프랑스의 도시계획가인 피에르 톨루아(Pierre Taulois)를 도시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당시 새로이 파라나 주의 주도로 지정된 쿠리치바는 도시의 고질적인 홍수와 배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톨루아는 쿠리치바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이탈리아 계획가 안토니오 페루치(Antonio Ferucci)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페루치는 1885년 완성된 철로 및 기차역 앞에 도시의 중심 광장을 설치하고, 이를 따라 800m에 이르는 대로를 설치하였다. 이 대로는 쿠리치바 시가지 발전의 중심축을 형성하였으며, 가로망의 중심축이 되었다.

20세기 초엽에 이탈리아 계획가 구아이타(Guaita)는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과 시의회 건물 등 도시의 주요 건물을 계획하여 건설하였으며, 시장과 도심 공원을 배치하였다. 이 시기에 오늘날과 같은 쿠리치바 시가지의 기본 구조가 마련되었고, 이후 1940년대까지 도시 구조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1943년 쿠리치바는 프랑스 출신 건축가인 알프레드 아가시(Alfred Agache)에게 도시 계획을 맡겼다. 아가시 계획으로 알려진 이 사업은 수인성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도시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도시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중엽까지 쿠리치바의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아가시 계획은 프랑스식 대로를 건설하고, 폭우에 대비하는 체계를 마련하였으며, 신축 건물의 최소한의 간격 유지 의무를 제정하였다. 또한 미래 도시의 주요 건축물을 위해 미개발 녹지를 남겨 둔 점도 중요한 특징이었다. 아가시 계획은 이후 쿠리치바의 도시 계획에 영향을 미쳤으며, 잘 짜인 도시 계획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가시 계획은 1960년대 초까지 고수되었으나, 도시 인구가 급증하고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계획을 재정비해야 했다. 1960년대 파라나 연방대학교의 도시 및 건축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 계획이 시작되었다. 1965년 책임자 호르헤 빌헬름(Jorge Wilhelm)은 향후 도시 성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동북 및 서남 방향의 교통축을 X자 모양으로 구상하였다. 이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 쿠리치바 도시계획연구소(Instituto de Pesauisa e Planejamento Urbano de Curitiba, IPPUC)가 구성되었다. 쿠리치바 도시계획연구소의 책임자였던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가 1971~1975년까지 시장을 역임하면서 도시 계획은 새로운 추진력을 얻어 대부분의 사업들이 완성되었다.

1980년대에는 도시 계획의 목표가 물리적·경제적 변화에서 사회적 변화로 옮겨져 학교, 의료 시설, 식품 및 주택 프로그램을 통한 복지 중심의 계획으로 바뀌었다. 이후 쿠리치바 시는 서구의 도시 재생 경향과 비슷하게 예술과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 계획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도시민 생활의 중심 기능을 부활시키고, 문화와 역사적 유산을 보전하며, 낙후된 건물을 재활용하는 로프트 개발 방식을 도입하여 그에 따른 일련의 사업들이 시행되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쿠리치바〉, 《위키백과》
  2. 쿠리치바(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쿠리치바〉, 《요다위키》
  4. 쿠리치바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5. 쿠리치바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6. 쿠리치바의 친환경적 도시 개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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