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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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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칼리 위치

칼리(스페인어: Cali)는 콜롬비아 서부 바예델카우카주에 있는 도시이다. 정식명칭은 산티아고데칼리(스페인어: Santiago de Cali)이며 바예델카우카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223만 명으로 콜롬비아에서 도시로 면적으로는 두 번째, 인구수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1]

개요[편집]

칼리는 콜롬비아 남서부, 서코르디예라산맥의 카우카계곡 서쪽, 해발고도 950m 고지에 위치한다. 바예델카우카주의 주도로, 서부 콜롬비아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1954년 콜롬비아 최대의 농업지대인 카우카강 유역 종합개발 본부가 이곳에 설치되면서 급속히 인구가 늘었다. 시는 1536년 7월 25일에 창립되었으며 7월 25일은 성 야고보의 축일로, 산티아고데칼리(스페인어: Santiago de Cali,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이름)라는 정식명칭이 붙어 있다. 산간 분지의 고립된 위치에 있어 발전이 다소 늦어졌으나, 20세기 중반 카우카강 유역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어 보고타메데인 다음가는 콜롬비아 제3의 도시가 되었다. 카우카강 유역 개발사업으로 여러 댐이 건설되었고, 칼리는 그 수력발전을 이용한 다양한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재배되는 사탕수수, 커피, 목화 등도 거래된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수출항 부에나벤투라에 가까워 그 항구에서 수출되는 산물의 대부분이 집하되며 직물, 약품, 향료, 시멘트, 피혁 등의 공업도 발달하였다. 칼리는 콜롬비아의 스포츠 중심지로 팬아메리칸 게임과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제9회 월드게임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개최하였다.[2]

명칭[편집]

칼리(Cali)라는 이름은 콜롬비아 원주민의 문화를 가리키는 말인 칼리마(Calima) 또는 칼리마스(Calimas)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리의 정식 명칭은 산티아고데칼리(Santiago de Cali)이다. 이는 산티아고, 즉 예수의 제자인 성 제임스(Saint James,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라고도 함)를 기리는 7월 25일 축일과 관련이 있다.

지리 및 기후[편집]

칼리는 콜롬비아의 서남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는 외항 부에나벤투라(Buenaventura)가 자리 잡고 있는데, 부에나벤투라는 콜롬비아의 태평양 연안 중 가장 큰 항만 도시이다. 콜롬비아의 북해안, 즉 카리브해 연안에는 바랑키야(Barranquilla), 카르타헤나(Cartagena), 산타마르타(Santa Marta)와 같은 큰 항만 도시들이 분포하지만, 태평양 연안에는 부에나벤투라가 사실상 유일한 항만이다. 칼리의 총면적은 약 560㎢이며, 이 중 도시화된 지역이 120㎢ 정도를 차지한다. 칼리는 안데스 산지 사이를 흐르는 카우카강(Cauca)의 상류 유역에 입지해 있다.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지는 콜롬비아 영토 내에서 세 갈래의 산맥으로 나뉘는데, 가장 서쪽에 옥시덴탈산맥(Cordillera Occidental), 동쪽에 오리엔탈산맥(Cordillera Oriental), 그리고 이 두 산맥 사이에 중앙 산맥(Cordillera Central)이 대체로 남북 주향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다.

카우카강은 옥시덴탈산맥과 중앙 산맥 사이에 발달한 하천이다. 칼리 시가지의 서쪽으로는 옥시덴탈산맥의 일부분인 파라요네스데칼리(Farallones de Cali, ‘칼리의 바위 산지’)를 비롯한 산지가 펼쳐져 있으며, 도시의 동쪽으로는 카우카강이 흐르고 있다. 칼리의 북쪽과 남쪽 방면으로는 카우카 의 유역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시가화(市街化)된 구역은 평탄한 지형이지만, 도시화되지 않은 서쪽은 산안토니오(San Antonio)와 라로마데라크루스(La loma de la Cruz) 산 등이 분포하는 산악 지역으로, 이곳에서 발원한 아과카탈(Aguacatal) 강이 카우카 강으로 유입되고 있다. 칼리의 평균 해발고도는 약 1,000m이며, 칼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파라욘스(Farallons)이고 가장 낮은 지역은 오리엔테(Oriente)이다. 칼리는 산지와 하천 유역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고도차가 상당히 크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칼리의 기후는 열대 사바나 기후(Aw 기후)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은 24.5℃이다. 칼리는 적도와 가깝기 때문에 연중 최한월 평균 기온이 18℃ 이상이고, 연교차가 매우 작다. 그러나 ‘여름’에 해당하는 건기에는 낮에 34~36℃까지 상승한 기온이 밤에 18~19℃까지 떨어지며, ‘겨울’에 해당하는 우기에는 낮에 28~29℃까지 상승한 기온이 밤에 16~17℃까지 떨어져 일교차가 상당히 크다. 칼리 서쪽에 자리한 산맥이 태평양의 습윤한 바람을 차단하기 때문에, 도시 지구 안에서도 산지에 가까운 곳은 다른 곳에 비해 더 건조하다. 칼리 시가지의 연 강수량은 910㎜로 다소 적은 편이다. 칼리는 실질적으로 1년에 두 번 우기가 나타나는데, 한 번은 3~5월이며 다른 한 번은 10~11월이다. 칼리에서 적설량이 관측된 것은 1979년과 1983년 두해뿐이다.

역사[편집]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전, 칼리에는 많은 토착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부족 대부분은 카리브 해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카우카강과 서부 산지 사이에서 원주민 부족이 맨 처음 살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오늘날 롤다니요(Roldanillo)와 칼리 사이에 해당한다. 지금의 사르살(Zarzal)과 부갈라그란데(Bugalagrande) 근처에 위치한 페스카도르(Pescador) 강 연안에는 가장 큰 원주민 부족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1535년 황금의 땅 엘도라도(El Dorado)를 찾기 위해 콜롬비아에 도착한 세바스티안 데 벨랄카사르(Sebastián de Belalcázar)는 카우카강 계곡을 따라 진입하다가 1536년에 칼리를 발견하였고, 토착 부족들과의 전투 끝에 칼리를 정복하였다. 벨랄카사르는 오늘날의 비헤스(Vijes)와 리오프리오(Riofrio) 마을 근처에서 북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우선 정착하였다가, 1537년에 도시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몇 년 뒤인 1540년에는 칼리보다 날씨가 더 쾌적한 포파얀(Popayán)으로 식민지 주재소를 옮겼다.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엥코미엔다(encomienda)를 통해 토착 부족민들을 교화하고, 원주민 아내를 두었다. 18세기까지 칼리 일대의 대부분은 대농장인 아시엔다(hacienda)가 차지하였고, 대농장 소유주들은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면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였다. 18세기 말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칼리의 인구는 약 6,500명이었는데, 이 중 아프리카계 노예가 1,100여 명이었다. 당시의 대농장들은 카냐베랄레호(Cañaveralejo), 치피차페(Chipichape), 파소안초(Pasoancho), 아로요온도(Arroyohondo), 카냐스고르다스(Cañasgordas), 리모나르(Limonar), 멜렌데스(Meléndez)와 같이 오늘날 도시 내 행정 구역의 기원이 되었다.

1810년 칼리의 주민들은 에스파냐의 통치를 반대하고, 자신들의 의회를 구성하였다. 포파얀의 총독이었던 미겔 타콘 이 로시케(Miguel Tacón y Rosique)는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칼리는 카우카강 유역의 다른 도시들과 연합하여 1811년 2월 1일 포파얀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후 에스파냐의 왕실 군대와 독립군 사이에 많은 전투가 일어났다. 1819년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가 보야카 전투(Batalla de Boyacá)에서 에스파냐 왕실 군대를 물리친 후에도 카우카강 유역에서는 전투가 계속되었고, 1822년에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3]

경제[편집]

전통적으로 칼리를 포함한 바예델카우카주(Valle del Cauca)는 플랜테이션 농장이 경제의 중심이었으며, 생산물들은 외항 부에나벤투라(Buenaventura)를 통해 반출되었다. 19세기의 칼리는 주민의 수가 약 2만 명밖에 되지 않은 매우 조용한 도시였다. 도시 주위는 플랜테이션, 목장, 공유지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주요 생산품으로는 가축, 사탕수수, 쇠고기, 설탕, 치즈 등이었다. 또한 태평양 연안의 금광을 기초로 한 광업도 이루어졌다. 1890년에는 시장(Plaza de mercado)이 만들어졌고, 이는 지역의 상업 발전의 기원이 되었다.

20세기 초 칼리의 경제는 설탕 생산에 집중되었는데, 대규모의 농지를 최소한의 노동력을 들여 이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 결과 도시의 비옥한 토지 상당 부분을 소수의 농장과 그 지주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도시의 구조와 권력 관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칼리는 부에나벤투라 항까지 이어지는 철도 건설 등을 통해 상업의 결절지로 부상하고자 하였다. 1930년대에 가스, 맥주, 출판, 담배, 직물, 화학, 초콜릿, 건축 자재, 가죽, 가구 등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설립되어 칼리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외자 유치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의약 산업에 특화를 이루었는데, 이를 통해 1940~1960년 동안 카우카강 유역에 제약 연구소들이 입지하게 되었다.[4]

교통[편집]

칼리의 주요 공항은 알폰소보니야아라곤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Alfonso Bonilla Aragón)으로, 도시에서 동북쪽으로 약 17㎞ 거리의 팔미라(Palmira)에 위치하고 있다. 이 국제공항은 콜롬비아에서 여객 수송량과 화물 수송량이 많은 공항으로 손꼽힌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길고 좁은 계곡에 입지해 있으며, 약 4,000m 높이의 산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렉타아팔미라(Recta a Palmira)로 알려진 고속도로를 통해 칼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중교통 수단인 마시보인테그라도데옥시덴테(Masivo Integrado de Occidente, MIO)는 버스 중앙 차로와 굴절 버스를 기반으로 많은 수의 승객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는 것이 특징이다. 택시는 여행객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 중 하나로 비교적 값이 싸고 안전한 편이다.[5]

관광[편집]

칼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역사적인 지역이다. 칼리의 도심에는 메르세드 성당(Iglesia de Merced)과 에르미타 성당(Iglesia de Ermita) 등 유서 깊은 성당들이 자리하고 있다. 칼리는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 역사 지구로 볼 수 있는데, 특히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카이세도 광장(La Plaza de Caicedo)이 가장 유명하다. 카이세도 광장은 산프란시스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 시립 극장, 메르세드 성당과 가까이에 있으며, 다른 관광 명소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982년에 세워진 칼리의 탑(La Torre de Cali)도 이 도시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이다. 칼리의 탑은 42층의 호텔, 사무실, 주거 복합 건물로 조성되었다. 또한 칼리에는 상징적인 조각물들이 많은데, 시내의 한 언덕 위에 위치한 예수상(Monumento a Cristo Rey), 칼리의 설립자인 벨랄카사르의 동상(Monumento Sebastian de Belalcazar), 세 개의 십자가(Las tres Cruces) 등이 유명하다. 이 중 세 개의 십자가는 부활절 직전 성주간(Holy Week) 동안의 순례 장소가 되고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칼리 (콜롬비아)〉, 《위키백과》
  2. 칼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칼리〉, 《요다위키》
  4. "Cali", Wikipedia
  5. 칼리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6. 칼리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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