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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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영어: Auckland, 마오리어: Tāmaki-makau-rau)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뉴질랜드의 옛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오클랜드 광역권(영어: Auckland metropolitan area)의 인구는 146만 명이다. 오클랜드는 1840년부터 1865년까지 뉴질랜드의 수도였고, 북섬 남단의 웰링턴으로 천도한 현재도 상공업의 중심지이자 뉴질랜드의 관문을 맡고 있다.[1]
개요[편집]
오클랜드는 오클랜드반도 기부(基部)에 해당하는 지협상(地峽狀)에 있으며, 지형은 복잡하여 좁은 타마키지협에 의하여 북쪽의 와이터마타, 남쪽의 마누카우의 두 항구로 나누어진다. 오클랜드의 마오리 이름은 타마키 마카우라우(Tamaki Makaurau)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많은 부족이 탐내며 서로 침략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840년 와이터마타 해안의 백인 천막취락이 기원이며, 시 이름의 유래가 된 인도 총독 오클랜드에 의하여 도시의 바탕이 이루어졌다. 개척 초기에는 북섬이 그 중심이 되어 있었으므로 교통의 요지를 이루는 이곳도 급속한 발전을 보였다. 국토 전체로서는 북쪽에 치우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1865년까지 뉴질랜드의 수도였다. 1865년에 북섬 남부의 웰링턴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오클랜드는 그 자치권을 잃었다. 와이터마타항은 천연의 양항으로서 내외 항로의 중심이며 조선소, 해군기지가 있다. 기후가 온난하여 태평양에서의 해상, 항공 교통의 요충이며 그 때문에 웰링턴으로 수도가 옮겨진 뒤에도 뉴질랜드의 현관으로서 번영하였다. 오클랜드에 있는 주요 학교로는 오클랜드 대학교, 오클랜드 공과대학교, 매시 대학교, 오클랜드 그래머 스쿨 등이 있으며 공원, 운동장 등의 문화시설도 많다. 마오리족(族)에 관한 자료가 풍부한 전쟁박물관(1929), 16세기 이전의 인쇄본 등을 소장한 공공도서관(1887), 시립미술관(1888)이 유명하다. 부근에 간헐온천, 호수, 진귀한 화산지형 등 관광자원이 많다.[2]
지리[편집]
하우라키만이 오클랜드를 감싸고 있으며, 이곳에는 많은 섬들이 있다.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섬 중 하나인 랑이토토섬은 화산으로 만들어진 화산섬이며, 와이헤케섬은 와이너리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 주요 섬으로는 모투이헤섬, 카와우섬, 조류 보호 지역인 티리티리마탕이섬 , 야생의 신비가 있는 그레이트베리어섬이 위치하여 있다.
오클랜드시는 실제적인 오클랜드의 중심이다. 뉴질랜드의 모든 도시는 여러 개의 작은 소도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주요지역으로는 다운타운이 있는 시내 중심(CBD)를 비롯, 쇼핑 상점이 많은 뉴마켓,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은 폰손비, 역사적인 건물과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 파넬 등이 있다.
오클랜드시에서 하버 브릿지를 통해 연결되는 노스 쇼어 시의 주요 지역으로는 타카푸나, 밀포드, 알바니 등이 있다. 타카푸나는 특히 한국인이 많은 곳 중 하나로, 타카푸나 비치가 있어 전망이 아름답고 비교적 중산층 이상급이 많이 있는 곳이다. 알바니는 최근 개발된 일종의 계획도시로, 큰 쇼핑몰이 있다.
역사[편집]
오클랜드지협은 1350년경에 마오리족이 정착했으며, 풍요롭고 비옥한 땅으로 평가되었다. 주로 화산 봉우리에 많은 파(요새 마을)가 만들어졌다. 1700년대 초까지, 응가 오호(Ngā Oho), 응가 리키(Ngā Riki), 응가 이위(Ngā Iwi) 등 부족 연합인 테와오화(Te Waiohua)는 오클랜드 지협에 주요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되었다. 연맹은 1741년경 최고 추장인 키위 타마키(Kiwi Tāmaki)가 나티 화투아 하푸 테 타오우(Te Waha-akiaki) 추장 테 와하아키 아키(Te Waha-akiaki)에 의해 전투에서 살해되면서 끝났다. 이 지역의 마오리족 인구는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 약 2만 명으로 추정된다. 18세기 말 노스랜드에서 시작된 총기의 도입은 세력균형을 뒤흔들었고 1807년부터 시작되는 파괴적인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무기가 부족한 부족들은 여러 지역으로 피난처를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계 뉴질랜드인들의 정착이 시작되었을 때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마오리족이 적었다.
1840년 3월 20일, 응아티 화투아가 농사를 짓던 마누카우 항구 지역에서, 최고 책임자인 아피하이 테 카와우(Apihai Te Kawau)는 테 티리티 오 와이탕기(Te Tiriti o Waitangi 조약의 테레오 마오리 번역)에 서명했다. 응가티 화투아는 응가푸히로부터 영국인의 보호와 왕관과 교회와의 호혜적 관계를 추구했다. 조약에 서명한 직후 나티 화투 아 오라케이(Ngāti Whātua Ōrākei)는 와이테마타 항구의 토지 3,500에이커(1,400헥타르)를 새 뉴질랜드 주지사 윌리엄 홉슨(William Hobson)에게 전략적으로 선물했다. 오클랜드는 1840년 9월 18일에 설립되어 1841년 뉴질랜드의 수도로 공식 선포되었고 1842년 아일랜드만의 러셀(현재의 올드 러셀)로부터 행정권이 이양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1840년 포트 니콜슨(더 늦게 웰링턴으로 개명)이 남섬과 인접하여 행정수도로서는 더 나은 선택으로 여겨졌고, 웰링턴은 1865년에 수도가 되었다.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후, 오클랜드는 1876년 지방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오클랜드 지방의 주요 도시로 남아 있었다.
1840년대 중반 호네 헤케(Hōne Heke)의 계속되는 반란에 대응하여 정부는 퇴역했지만 체력이 좋은 영국 군인과 그 가족이 오클랜드로 이주하여 수비대 군인으로서 항구 정착지 주변에 수비선을 형성하도록 장려했다. 1848년 최초의 펜시블이 도착했을 때 북부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런 다음 서쪽의 항구 마을인 오네훈가(Onehunga)에서 동쪽의 호윅(Howick)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외곽 방어 도시가 남쪽에 건설되었다. 4개 정착지에는 각각 약 800명의 정착민이 있었다. 남자들은 긴급 상황에 대비해 완전히 무장했지만 땅을 뚫고 도로를 건설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1860년대 초, 오클랜드는 마오리 왕 운동에 대항하는 기지가 되었고 그곳에 주둔한 1만 2천 명의 제국 병사들이 지역 상업을 강하게 활성화시켰다. 이로 인해 남부를 향해 와이카토 지역으로의 도로 건설이 계속되면서 파케하(유럽 뉴질랜드인)의 영향력이 오클랜드에서 확산되었다. 이 도시의 인구는 1841년 1,500명에서 1845년 3,635명으로 상당히 빠르게 증가했고 그 후 1864년에는 12,423명으로 증가했다. 성장은 주로 항구 주변과 과밀 및 오염 문제로 인해 상업이 지배하는 다른 도시와 유사하게 발생했다. 오클랜드의 전직 군인 인구는 다른 정착지보다 훨씬 많았다. 인구의 약 50%가 아일랜드인으로 이는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또는 뉴플리머스의 대다수의 영국인 정착민과 큰 대조를 이루었다. 초기 정착민의 대다수는 뉴질랜드로의 저렴한 통행권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트램과 철도 노선은 20세기 초반 오클랜드의 급속한 팽창을 형성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의 교통 체계와 도시 형태는 점점 자동차에 의해 지배되었다. 간선도로와 고속도로는 도시 경관의 특징과 지리적으로 구분되는 특징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노스 쇼어, 남쪽의 마누카우시와 같은 교외 지역의 성장을 초래하는 대규모 확장을 허용했다.
1980년대 중반의 경제 규제 완화는 오클랜드의 경제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많은 회사들이 그들의 본사를 웰링턴에서 오클랜드로 이전했다. 오클랜드는 이제 국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클랜드는 또한 관광 급증으로 인해 뉴질랜드 해외 방문객의 75%가 오클랜드 공항을 통해 입국하게 된 덕을 보았다. 오클랜드 항구는 2015년 국내 컨테이너 무역의 31%를 처리했다.
1986년 정부의 이민 정책이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을 허용하기 시작했을 때 도시 오클랜드의 모습은 바뀌었다. 이로 인해 오클랜드는 모든 인종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다문화 도시가 되었다. 1961년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마오리족과 태평양 섬 사람들은 오클랜드 인구의 5%를 차지했고, 아시아인들은 1% 미만이었다. 2006년까지 아시아 인구는 오클랜드의 18.0%, 중심 도시에서 36.2%에 달했다. 홍콩, 대만, 한국에서 새로 입국한 사람들은 그들이 군집한 지역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했고, 다양한 이민자들은 교외에 이슬람 사원, 힌두 사원, 할랄 정육점, 민족 음식점을 소개했다.[3]
교통[편집]
오클랜드의 많은 시민들이 자가용, 또는 버스, 페리, 통근열차 등으로 출퇴근을 한다. 뉴질랜드는 전반적으로 대중교통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오클랜드만큼은 비교적 편리하게 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도시고속도로는 적어도 왕복 4차선이며 시내 구간은 8차선까지 넓어진다.
대중교통의 경우 오클랜드 교통공사가 운영하는 버스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제한적인 서부, 북부, 동쪽의 섬, 중심부와 이어주는 페리와 서부, 중심부, 남부를 잇는 도시철도 노선도 운영중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노선 별로 천차만별이지만 주요 노선 출퇴근 시간 배차간격은 3~7분정도 이며, 평시 배차간격은 15분~30분, 비주요 노선은 출퇴근 시간에도 30분씩하는 노선이 많다. 금요일과 주말에는 심야버스도 운영중이다.
오클랜드 근교에 오클랜드 국제공항이 있다. 경유편으로는 도쿄 나리타공항을 거치는 에어뉴질랜드(인천 - 나리타 구간은 코드셰어하는 아시아나항공 또는 김포국제공항에서 ANA 이용), 홍콩을 거치는 캐세이패시픽항공, 방콕을 거치는 타이항공, 싱가포르를 거치는 싱가포르항공, 대만을 거치는 중화항공과 에어뉴질랜드, 쿠알라룸푸르를 거치는 말레이시아항공, 시드니를 거치는 콴타스와 에어뉴질랜드 등이 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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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오클랜드 (뉴질랜드)〉, 《위키백과》
- ↑ 〈오클랜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오클랜드〉, 《요다위키》
- ↑ 〈오클랜드(뉴질랜드)〉,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오클랜드 (뉴질랜드)〉, 《위키백과》
- 〈오클랜드(뉴질랜드)〉, 《나무위키》
- 〈오클랜드〉, 《요다위키》
- 〈오클랜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오세아니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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