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페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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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페(Santa Fe)는 아르헨티나 산타페주의 주도이다. 공식 명칭은 산타페 데 라 베라 크루즈(Santa Fe de la Vera Cruz)이고 인구는 약 40만 명이며 대도시 인구는 65만 명으로 아르헨티나에서 8번째로 큰 도시 지역이다.[1]
개요[편집]
산타페는 아르헨티나 북동부, 파라나강과 살라도강이 합류하는 지점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북서쪽 500km 지점에 있는 상공업도시로, 외양선박의 소항가능점에 위치하는 하항이다. 산타페에서 파라나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167㎞ 지점에 위치한 로사리오(Rosario)의 인구는 약 130만 명으로 산타페시 인구의 세 배가 넘는 주의 최대 도시이다. 1573년 에스파냐인에 의하여 건설된 아르헨티나 최고(最古)도시의 하나로, 예수회 교단(敎團)의 전도사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또한 인디오에 대한 전위(前衛)지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53년에는 공화국 헌법회의가 이 곳에서 개최되었다. 운하, 철도가 집중된 교통의 요지로, 비옥한 팜파스의 농축산물을 집산한다. 제분, 낙농제품, 냉동육, 케브라초 추출물(타닌), 착유(搾油), 제지, 주석, 구리제련 등의 공장이 있다. 산타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아르헨티나 유수의 도시인 만큼 교육 기능이 발달하였다. 1919년에 개교한 리토랄 국립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l Litoral)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국립 공과대학(Universidad Tecnológica Nacional)의 산타페 캠퍼스, 산타페 가톨릭 대학교(Universidad Católica de Santa Fe) 등의 교육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시 내에는 다수의 박물관과 극장 등의 문화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1922년에 개관한 로사갈리스테오데로드리게스 주립박물관(Museo Provincial de Bellas Artes Rosa Galisteo de Rodríguez)은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의 산타페주에 관한 민속 및 역사적 자료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명성이 높다. 프리메로데마요 시립극장(Teatro 1ro de Mayo, 5월1일 시립극장)은 음악과 무용 등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산타페의 대표적인 극장이다. 시내에는 산타페 천체관측소(Santa Fe Centro de Observadores del Espacio)가 있으며, 이 밖에도 다수의 박물관, 미술관, 극장, 유적지 등의 문화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가의 동쪽 끝에 있는 마요 광장에는 17~18세기의 유서 깊은 교회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다. 산타페는 아르헨티나에서 손꼽히는 문화도시이자 관광도시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음악이 발달한 도시이다. 콜롬비아와 파나마 민속춤인 쿰비아(Cumbia)의 선율이 20세기 후반 들어 산타페 음악가들의 손에서 재창조되면서, 산타페 쿰비아(Cumbia Santafesina)라는 산타페에 연원을 둔 음악 장르가 생겨났다. 산타페 쿰비아는 남아메리카 현지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록, 재즈, 헤비메탈 분야에서 아르헨티나 대중음악의 산실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산타페는 아르헨티나 동북부 내륙의 팜파스(Pampas) 평원의 도시로,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서북쪽으로 약 475㎞, 산타페주의 최대 도시인 로사리오(Rosario)에서 북쪽으로 약 167㎞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의 위도는 남위 31°38′으로, 남아메리카에서는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와 비슷한 위치에 있고, 북반구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상하이(上海), 일본의 규슈(九州) 남단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도시는 살라도(Salado) 강 서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하항(河港)이다. 살라도강은 아르헨티나의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는 파라나강(Paraná)의 지류로서, 도시의 동쪽 약 18㎞ 지점에서 파라나강에 합류한다. 산타페는 팜파스 상에 위치하여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형을 나타낸다. 시가지는 전반적으로 고도가 낮고 시내에는 다수의 소택지(沼澤地)가 있어 홍수에 취약한 편이다. 도시의 동북쪽에는 살라도 강이 길고 큰 호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를 ‘세투발(Setúbal) 호’라고 부른다. 세투발 호는 평균 수심 3m, 최대 수심 28m에 이르며, 수심이 깊은 지점에는 항구가 들어서 있다. 세투발 호에는 현수교가 가설되어 있는데, 이는 1928년에 완공되었다가 1983년 홍수로 붕괴된 이후 2002년에 재건된 것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산타페는 아열대 습윤 기후(Cfa)와 아열대 동계 건조 기후(Cwa)의 점이지대에 속한다. 이런 연유로 문헌이나 기후 지도에 따라 Cfa 기후 또는 Cwa 기후로 각기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산타페의 연평균 기온은 19℃이며, 최난월인 1월의 평균 기온은 26.3℃로 무척 덥고, 최한월인 7월의 평균 기온은 11.5℃로 온화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990㎜ 정도이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여 6~8월의 겨울철에는 월 강수량이 30㎜ 미만이지만, 10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는 매달 100㎜ 안팎의 비가 고르게 내린다. 건기에도 강수량이 아주 부족하지는 않기 때문에 습도가 연중 80%에 가까울 정도로 높다.
역사[편집]
산타페는 1573년에 후안 데 가라이(Juan de Garay)에 의해 건설되었다. 가라이는 폐허로 내버려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재건한 인물로, 라플라타(La Plata) 식민지 영역의 확장을 꾀하던 에스파냐 원정대의 지도자였다. 이때 그가 세운 산타페의 위치는 오늘날 산타페에서 북쪽으로 85㎞ 정도 떨어져 있으며, 현재의 카야스타(Cayastá) 시에 해당한다. 이곳은 파라나 강의 지류인 산하비에르(San Javier) 강의 지속적인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잦았기 때문에, 치수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는 도시로서의 입지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산타페는 결국 1651∼1653년에 걸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1660년 무렵에는 파라나 강에 무역항이 들어섰으며, 이를 계기로 산타페는 남아메리카 농축산물의 운송과 유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내륙 항구도시로 발전해 갔다.
아르헨티나 독립 운동이 이루어지던 시기인 1813년에는 인접한 산로렌소(San Lorenzo)에서 남아메리카 독립의 영웅인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장군이 지휘하는 라플라타 독립군과 에스파냐 식민지군 사이에 전투(산로렌소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양측 모두 2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한 소규모 전투였지만, 산 마르틴 장군이 아르헨티나 영토에서 벌인 유일한 전투이자 고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상징성 때문에 오늘날 아르헨티나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후 1814년에는 산타페 주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분리되면서 주도가 되었다.
1852년에는 아르헨티나 각 지역의 대표들이 산타페에 모여 제헌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듬해 5월 1일에는 산타페 시 의회에서 남아메리카 최초의 헌법이기도 한 아르헨티나 헌법이 공표되었다. 이로써 산타페는 헌법의 요람(Cuna de la Constitución)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도시의 정식 명칭은 에스파냐 어로 ‘진실한 십자가에 대한 신성한 믿음’이라는 뜻의 산타페데라베라크루스(Santa Fe de la Vera Cruz)이다.[3]
교통[편집]
산타페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발달한 팜파스의 도로 및 철도 교통 결절지이다. 인근 지역과의 교통이 편리하며, 철도의 경우 산타페 화물 수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시내버스 노선도 잘 발달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산타페 시가지 인근의 살라도강과 본류 파라나강 사이에는 운하가 놓여 이를 통한 해상 교통도 발달한 편이다. 내륙 항구는 농축산물의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산타페에서 서남쪽으로 17㎞ 거리의 근교에는 산타페 공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우세비에호 공항(Aeropuerto de Sauce Viejo)이 있다. 주로 국내선을 운항하며, 산타페 주에서 운영한다.[4]
관광[편집]
산타페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는, 1852년에 이루어진 제헌 회의 및 1853년에 공표된 아르헨티나 헌법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헌법거리(El Camino de la Constitución)가 있다. 시 남동부에 위치한 이 거리를 따라 헌법이 공포된 산타페 지방의회(Legislatura de la Provincia de Santa Fe) 건물, 아르헨티나 제헌 기념일인 5월 1일을 따서 명명한 프리메로데마요 시립극장, 베인티신코데마요 광장(Plaza 25 de Mayo) 등 아르헨티나 헌법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다. 맨처음 헌법을 제정하고, 발표했던 건물은 1909년에 해체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세워진 지금의 지방의회 건물은 프랑스풍과 그레코로만풍의 건축 양식을 절충한 흰색 건물이다. 이처럼 헌법 거리를 따라 헌법 관련 기념물 및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는 양상은, ‘아르헨티나 헌법의 요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산타페의 지역 정체성을 잘 드러내 준다.
이외에도 헌법 거리에는 박물관, 유적, 호텔 등이 다수 위치해 있다. 대표적인 랜드 마크로는 주립박물관, 아르헨티나 독립 초기 산타페를 다스리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맞서 연방주의를 이끌었던 에스타니슬라오 로페스 장군의 저택(La Casa del Brigadier General Estanislao Lopez)이 1670년에 완공되었고 1942년에는 국가 지정 사적지가 된 로스밀라그로스 성당(Iglesias de Nuestra Señora de los Milagros), 1864년에 완공된 카르멘 대성당(Basilica de Nuestra Señora del Carmen) 등을 들 수 있다.
산타페의 동쪽을 흐르는 파라나강은 시의 랜드 마크이자 휴식 장소이며 관광 자원이다. 파라나 강변의 경관은 산타페 시에서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을 정도이다. 더욱이 산타페 시내는 조경이 매우 잘되어 있어서, 각종 수목과 화초가 우거진 시내 경관과 파라나 강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강변은 공원 및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이를 따라 고풍스러운 카페, 바,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다. 파라나 강과 강변은 낚시, 수상스키 등의 각종 수상 레저 활동, 수렵 등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산타페 항구와 현수교는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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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산타페 (아르헨티나)〉, 《위키백과》
- ↑ 〈산타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산타페(아르헨티나)〉, 《요다위키》
- ↑ "Santa Fe, Argentina", Wikipedia
- ↑ 〈산타페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산타페 (아르헨티나)〉, 《위키백과》
- 〈산타페(아르헨티나)〉, 《요다위키》
- "Santa Fe, Argentina", Wikipedia
- 〈산타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산타페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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