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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우제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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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우제도주(인도네시아어: Provinsi Kepulauan Riau)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중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3]

개요[편집]

리아우제도주의 면적은 21,992㎢이며 인구는 1,685,698명(2010)이며 주도는 탄중피낭이지만 실질적 중심지는 바탐이다. 과거에는 리아우주의 일부였지만 2004년 7월 리아우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리아우제도주는 대부분 리아우 제도 본토, 링가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구역인 리아우 제도는 바탐섬, 빈탄섬, 탄중피낭시 등이 위치하여 인구의 대부분이 리아우 제도에 모여산다. 하지만 핵심구역 말라카 해협 보다 남중국해와 가까운 지역인 아남바스 제도, 나투나 섬도 포함된다. 기름 많이 나오는 구역 짬처리 역사적, 지리적인 문화는 다르지만 같은 주로 묶여있다. 리아우 제도는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로 부유한 주이다.

지리상 말라카 해협 길목에 있고, 말레이 반도보르네오섬 사이 가운데에 절묘한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컨테이너선이 붐비는 곳이다. 다른 해상 요충지인 싱가포르와도 가깝고 남중국해 영토분쟁 지역인 스프래틀리 군도와도 가깝다. 중국의 9단선 주장과도 가까워 중국을 견제하고 있을 정도.

리아우 제도는 광물자원(보크사이트), 에너지 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 바다 자원이 풍족하다. 인종이 다양해 말레이인, 자바인, 화교 등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다.

본래는 스리위자야 제국의 일부였지만 망하면서 조호르의 땅이 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인도네시아보다는 말레이시아에 더 가까운 지역이다.[4]

어원[편집]

리아우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존재하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세 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 이 지방의 강을 가리키는 포르투갈 이름인 리오 강(Rio River)의 변형이라는 설이다. 1514년 포르투갈 군의 탐사대가 이 지역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던 왕국과 말라카 술탄령의 몰락에 따라 소득세를 회피하려고 했던 술탄 마흐메드 샤의 추종자들을 추적해서 시아크 강을 탐사했다.

두 번째 이론은 바닷 공기를 의미하는 현지어인 리아히(riahi)의 변형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다.

세 번째 이론은 당시 인기를 얻고 있었던 노랫꾼 리오흐(rioh)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는 설이다.

자연환경[편집]

열대우림기후 지역으로 다양한 생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빙하기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간빙기에는 분리된 섬의 특성상 유라시아 남부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생태환경과 종 구성을 보인다. 또한 인도양 방향의 산악 지대는 고산의 생태구조를 보인다. 특히 수마트라 북동 해안의 일대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탄 습지 우림(Peat Swamp forest)이 발달하여 있다. 산림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산림 지원의 확보와 농경지 확대를 목적으로 급격하게 파괴되었다. 현재는 원래 수준의 50% 정도 수준의 열대우림만이 남아 있다. 섬 환경으로 육지의 유사 종보다 크기가 작은 특성을 가졌던 수마트라 호랑이, 수마트라 코뿔소, 수마트라 코끼리, 오랑우탄 등의 종이 서식지를 잃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수마트라 북동 해안의 일대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탄 습지 우림(Peat Swamp forest)이 발달해 있다. 이탄 습지 우림이 전지구적 탄소 순환과 생태계 보호에 핵심적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개발지인 수마트라섬 일대에 대한 개발지를 확보하고, 쌀 수확량을 늘리고자 하는 인도네시아 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왔다. 그 이외의 산림도 목재 채취와 팜 오일 플랜테이션 개발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산림파괴는 엔소(ENSO, El Niño–Southern Oscillation) 현상과 함께 결합하여, 산불피해 빈도를 늘리고 있다. 수 년에서 수 십년 주기로 발생하는 엔소 현상은 수마트라섬에 가뭄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산림, 특히 파괴된 이탄 습지 우림의 이탄층에 화재를 유발한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과 이탄 습지층에 발생한 산불은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종종 그 빈도와 규모가 커져,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기오염을 일으켜 주변국까지 영향을 주는 연무 현상(haze)를 일으키고 있다.

일부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열대우림기후(Af)를 보인다. 수마트라섬 중앙에 적도가 지나기 때문에, 연중 기온변화가 크지 않다. 고산 지대의 경우에는 다소 온도가 떨어져 온대 기후로 분류될 수 있는 지역도 있다. 강수량은 대부분 연 1,000~4,000mm 정도이며, 산세가 험한 인도양 방향의 강수가 비교적 많고, 안다만해와 자바해 연안이 다소 적다. 연평균기온은 지역에 따라 22~29℃를 보이며, 공통적으로 연교차에 비해서 일교차가 크다.[5]

역사[편집]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의 확산이 시작된 곳으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이슬람을 확산케 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서기 1250년경 아체 판수르와 라무리 왕국(Kingdoms of Fansur and Lamuri)에 도착했다. 17세기 초 아체의 술탄국은 말라카해협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하며 문화적으로 발달된 국가였다. 아체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와 그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 정부 모두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마트라 동쪽 해안에는 약 1500년경 나구르(Nagur), 아루(Aru), 파나이(Panai), 바탕기우(Batangiou) 등 여러 왕국이 있었다. 이런 왕국들은 농장 소유 기반의 한 가족으로 구성된 작은 왕국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시싱가망가라자(Sisingamangaraja) 후예들에 의해 왕국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왕국은 점차 전역의 영향권을 확대했다. 이에 16세기 북부 수마트라에는 나구르, 시싱가망가라자 왕의 통치하에 있는 바탁(Batak) 왕국, 아루 세 왕국이 있었다. 그러나 세 왕국 간의 전쟁으로 아체, 믈라카, 포르투갈, 미낭카바우 등 외부 영향이 쉽게 유입되었다. 아체의 술탄국은 동부 해안의 이슬람화에 성공했고, 파드리 전쟁의 다른 지역에서도 남부 타파눌리 왕국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세 개의 큰 왕국은 델리, 세르당, 아사한, 랑카트 술탄국, 마로파트, 링가 왕국 등 여러 개의 작은 왕국과 술탄국으로 분열되었다.

서부 수마트라는 1347년 아디탸와르만(Adityawarman)이 세운 파가루융(Pagaruyung) 왕국의 중심지였고, 이 당시 이 왕국은 힌두-불교 문화였다. 16세기에는 이 지역에 처음 온 유럽인은 1523년경에 도착한 파르망티에(Jean Parmentier) 프랑스 여행자였다. 16세기부터 인도,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와의 교역항으로 많은 상인들이 오고 갔던 무역 도시이고, 주된 무역 상품은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와 코코넛이었다. 이후 네덜란드 당국의 통치에 접어들면서 이곳에 네덜란드령 통치 부서가 설립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 원주민들과 네덜란드 고위 관료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고용된 현지화된 화인들도 이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은 현재 파당 중심부에 위치한 강가 주변에 남아있다.

현지의 시아크 족들은 침략해 들어오는 네덜란드 침공에 저항하지 못했다. 네덜란드 군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회사의 주도로 탄중피낭에 있는 리아우에 거주지를 만듦으로써 시아크 족의 영토를 좁혔다. 주민들은 수마트라 연안 지역을 감시했다. 네덜란드와의 계약에 의해 시아크 족 술탄은 개입할 수 없었다. 시아크 족의 영향력은 수마트라 동해안의 전략 지역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이후 말라카 해협을 지배하는) 간의 긴장에 의해 더욱 약화되었다. 시아크 족의 술탄은 사이크 영토를 1873년 7월에 맺은 조약에 의해 네덜란드에 이양하였고, 권력은 네덜란드인이었던 벵칼리스(Bengkalis)에게 넘어갔다. 동 시기에 인드라지리도 네덜란드의 영향력을 받기 시작했으며(1938년까지 바타비아의 통제권을 간신히 이어가지는 하지만) 네덜란드의 시아크 점령은 아체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복종하지 않는 해안의 작은 왕국들의 재빨리 제거해 갔다. 결국, 네덜란드는 리아우 링가의 술탄 압둘 라흐만 무아즈잠 샤마저도 1911년 2월에 탄핵했다.

리아우는 일본군 침공기에 주요 점령 대상이 되었다. 렝갓은 1942년 3월 31일에 점령되었다. 리아우의 나머지 지역은 일본군의 통치에 빠르게 편입되었다.[6]

인종[편집]

말레이인은 전체 인구의 35.6%가 말레이인으로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 지방의 지배적인 민족 집단을 형성한다. 이 지역은 말레이 세계의 일부로 간주된다. 말레이 인의 소수 집단으로는 오랑라우트 족(Orang Laut)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다. 오랑라우트 족은 풍부한 해양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현재는 보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오랑라우트 족이 육지에 영속적으로 정착했다. 광의적 의미에서 오랑라우트라는 용어는 리아우 링아(Riau-Lingga), 투주섬(Tujuh Island), 바탐섬, 그리고 수마트라 동부 연안과 섬, 그리고 말레이 반도 남부 해안에 정착한 다양한 종족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랑라우트 족은 카누나 보트 하우스에 살고 있는 종족으로 어업이나 해삼과 같은 다른 해양 동물과 같은 주요 생계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하부 경제 모델은 그들의 문화의 특징이다. 오랑라우트 족은 항상 그들의 명예와 정체성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부 이외의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본토와 관련된 일에도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오랑라우트 족들은 애니미즘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조상들을 모시는 풍습과 혼재되어 있기는 해도 일부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다른 인종 집단으로는 다른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이 있다. 리아우 제도는 싱가포르와의 가깝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 출신의 다양한 인종 집단의 용광로가 되었다. 자바 족이 전체 인구의 18.2%를 구성하는 지배적 이민 민족이다. 여기에 정착한 자바 족들은 대체로 식민지 시절 인구 과밀화를 방지하기 위한 신질서 시기까지 시행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인도네시아 화교들은 전체 인구의 14.3%를 차지하는 세 번째로 큰 민족이다. 리아우 제도에 있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화교들은 호키엔이 있으며, 객가인이나 광둥성 공동체도 존재한다.

탄중피낭[편집]

탄중피낭은 리아우제도주의 주도이자 바탐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이다. 리아우링가 술탄국의 수도가 빈탄섬에 있었는데 프녕앗인드라삭티라는 곳이었다. 프녕앗인드라삭티 인근 지역인 탄중피낭도 수도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프녕앗인드라삭티 지역은 탄중피낭 소속이므로 탄중피낭은 옛 수도이기도 하다.

인구가 백만명이 넘는 공업도시 바탐과 다르게 이곳은 해변이 깨끗하고 리조트 등의 시설도 잘 정비되어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싱가포르를 거쳐 이곳으로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많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리아우 제도주〉, 《위키백과》
  2. 리아우 제도〉, 《나무위키》
  3.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4. 두산백과:수마트라섬 도시구조 및 행정〉, 《네이버 지식백과》
  5.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6.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7. 탄중피낭〉,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동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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