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
비소(砒素, Arsenic)는 화학 원소로 기호는 As(←라틴어: Arsenicum 아르세니쿰)이고 원자 번호는 33이다. 독성으로 유명한 준금속 원소로 회색, 황색, 흑색의 세 가지 동소체로 존재한다. 농약·제초제·살충제 등의 재료이며, 여러 합금에도 사용된다.
개요[편집]
비소는 주로 황화물 형태로 여러 광물에 포함되어 있으나 일부 순수한 원소 형태로도 발견된다. 비소는 준금속에 속하며 다양한 동소체가 존재하는데, 그중 산업적으로 중요한 것은 회색 비소이다. 금속 비소는 납과 합금 형태로 자동차 배터리나 탄약을 만드는데 주로 쓰인다. 비소는 주로 규소나 갈륨에 첨가되는 n형 도펀트(dopant)로서 비소화 갈륨(GaAs)과 같은 반도체 화합물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비소와 비소 화합물은 살충제, 목재 방부제, 제초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독성 문제로 사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박테리아 중 일부는 비소 화합물을 호흡 대사 물질로 사용하며 극미량의 비소는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의 필수 영양소지만 필요량보다 많은 경우 비소 중독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를 일으키는 원소 중 하나이다.
비소의 발견, 분리, 생산[편집]
청동기 시대에 비소를 청동에 첨가한 '비소 청동(arsenical bronze)'이 종종 쓰였는데, 이는 청동을 보다 단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기 300년 경 연금술사 조시모스(Zosimos)가 계관석(realgar, α-As₄S₄)을 굽는 과정에서 '비소 구름(비상(As₂O₃)으로도 알려짐)'을 얻고 이를 환원시켜 금속 비소를 얻었다는 기록도 있다. 비소 및 비소 화합물은 독성이 강해 역사적으로 지배 계급들이 서로를 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왕의 독'이나 '독의 왕'으로도 불렸다.
원소 상태의 비소는 1250년 독일의 연금술사인 마그누스(A. Magnus)가 삼황화 비소(As₂S₃)를 비누와 함께 가열하여 처음으로 분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일의 약학자인 쉬뢰더(J. Schröder)가 1649년 비소 산화물을 숯과 함께 가열하여 비소를 얻는 더 자세한 방법을 발표하였다. 1760년 카데 드 가시쿠르(L. C. Cadet de Gassicourt)는 삼산화 비소(As₂O₃)를 아세트산 포타슘(CH₃COOK)과 반응시켜 '카데의 발연액(Cadet’s fuming liquid)'이라 불렸던 최초의 유기-비소 화합물인 카코딜(carcodyl: (CH₃)2As-As(CH₃)₂)을 합성하였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자들이 밭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창백한 얼굴로 보여지기 위해 비소 화합물(주로 As₂O₃)을 식초나 분필에 섞어 먹기도 하였다. MAsS와 MAs₂ (M = Fe, Ni, Co)의 화학식을 갖는 광물과 비소 황화물 광물인 계관석 및 천연 비소가 상업적 원료로 사용된다.
비소는 구리, 금, 납과 같은 다른 금속을 생산하는 과정의 부산물로 얻어지기도 하는데, 광석 제련과정에서 삼산화 비소로 전환되어 회수된다. 정제 후 산화물 형태로 사용하거나 숯과 함께 가열하여 원소 상태로도 얻을 수 있다.
2As₂S₃(s) + 9O₂(g) → 2As₂O₃(s) + 6SO₂(g)
2As₂O₃(s) + 3C(s) → 4As(s) + 3CO₂(g)
비소는 황비철광(FeAsS)의 야금 과정에서도 얻을 수 있는데, 그 광물을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산화 철을 남기고 삼산화 비소가 승화되며, 공기가 차단된 조건에서 가열하여 발생한 증기를 응축시켜 순수한 비소를 얻을 수 있다.
FeAsS(s) → FeS(s) + As(s)
환경 문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소 생산과 정제 공정 대부분이 중단된 상태이다. 2014년 영국과 미국 지질 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전 세계 비소 생산의 70 %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가 모로코, 러시아, 벨기에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비소의 물리 화학적 성질[편집]
비소에는 회색, 노란색, 검정색의 3가지 동소체가 있는데 이중 가장 흔하며 안정한 동소체는 회색 비소로 금속 비소 또는 알파-비소(α-As)라고도 한다. 회색 비소는 층상 구조를 가지고 있어 부서지기 쉽고 상대적으로 낮은 모스 경도(3.5)와 상대적으로 높은 5.73 g/cm³의 밀도를 가진 준금속이지만, 무정형이 되면 띠 간격이 1.2~1.4 eV인 반도체가 된다. 노란색 비소는 왁스처럼 부드럽고, 인 과 비슷한 사면체 As₄ 구조를 갖는다. 노란색 비소는 밀도가 낮고(1.97 g/cm³) 불안정하며, 휘발성이 크고, 독성이 강하다. 비소 증기를 급속히 냉각시키면 고체 상태의 노란색 비소를 얻을 수 있는데 매우 불안정하여 빛을 받으면 회색 비소로 바뀐다. 검은색 비소는 구조적으로 검은 인과 비슷하 고 부서지기 쉬우며 전기를 잘 통하지 않는다.
천연에서 비소는 안정한 동위원소 ⁷⁵As로만 존재하며, 질량수가 60~92 사이의 33개 이상의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인공적으로 합성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안정한 것은 반감기가 80.30일의 ⁷³As이며, 질량수 ⁷⁵보다 작은 동위원소들은 β+ 붕괴를 하고 큰 것들은 β- 붕괴한다. 비소는 대부분의 비금속과 공유 결합 분자를 쉽게 형성하며, 건조한 공기에서는 안정하지만 습기에 노출되면 황금색을 띠고 점차 표면이 검게 변한다.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산화되어 마늘과 비슷한 냄새를 내면서 삼산화 비소를 형성한다. 비소는 진한 질산과 반응하여 비산(H₃AsO₄)을 만들고, 묽은 질산과 반응하면 아비산(H₃AsO₃)을 만들며 진한 황산과 반응하면 삼산화 비소를 만든다. 물, 알칼리 또는 비산화성 산과는 반응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비소는 화합물에서는 -3, 아비산염에서는 +3, 비산염과 대부분의 유기 비소 화합물에서는 +5의 3가지 산화 상태를 갖는다. 가장 간단한 비소 화합물 중 하나인 삼수소화 비소(AsH₃)는 인화성이 크고 독성이 강하다. 삼수소화 비소는 상온에서 천천히 분해되며 250~300 °C에서는 비소와 수소로 빠르게 분해된다. 공기 중에서 쉽게 산화되어 삼산화 비소와 물을 만들고 황이나 셀레늄과도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 무색, 무취의 결정성 산화물인 삼산화 비소와 오산화 비소(As₂O₅)는 흡습성이 있고 물에 녹아 산성 용액을 만든다. 비산은 약산이며 비산염은 지하수의 비소 오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물질이다. 다양한 황화물이 존재하며 웅황((orpiment, As₂S₃)과 계관석은 상대적으로 풍부해 예전에는 페인트 안료로 사용되었다. 아스타틴을 제외하고, 모든 +3 산화 상태의 비소 할로젠화물이 알려져 있다. +5가 산화 상태의 비소는 불안정하여 펜타플로오린화 비소(AsF₅)가 유일한 할로젠화물로 매우 강한 산화제이다.
비소의 산업적 용도[편집]
두 가지 비소 화합물인 파리 그린(Paris Green)과 쉘레 그린(Scheele 's Green)은 발견되면서부터 비소 화합물의 독성이 알려지기 전까지 안료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후 비소 화합물은 1942년 DDT가 발견될 때까지 살충제로 주로 사용되었다. 비소는 특히 미국에서 가금류와 돼지 농장에서 가축의 체중을 늘리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사료 첨가제로 사용된다.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의약품으로도 사용되었는데, 1910년대 초에 도입된 살바르산(Salvarsan)은 최초의 현대적 화학요법제로 성병인 매독에 효과적인 약물이었으며 트리파노소마증(trypanosomiasis)을 치료하는데도 사용된 유기 비소 화합물이다. 1 %의 차아비산 포타슘(KAsO₂)을 함유한 파울러 용액(Fowler's solution)은 백혈병(leukemia), 말라리아(malaria), 무도병(chorea), 매독(syphilis) 등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비소는 비소화 갈륨(GaAs), 비소화 인듐(InAs), 비소화 알루미늄(AlAs) 등과 같은 III족-V족 반도체를 만드는데도 사용되며, 특히 비소화 갈륨은 중요한 반도체 소재로 집적 회로를 만드는데 쓰이며 비소화 갈륨으로 만들어진 회로는 규소로 만들어진 회로보다 비싸지만 속도가 빠르다. 74As 방사성 동위원소는 PET 영상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하기 때문에 종양을 찾기 위한 조영제로 사용된다.
금속 비소는 납 합금 형태로 주로 사용되며 매우 소량의 비소가 첨가된 납 합금은 강도가 높아 자동차 배터리 전극으로 사용된다. 또한 실리콘과 달리 직접 천이 띠간격(direct band gap; 전자가 띠 간격을 넘어서 전이할 때 에너지(E)뿐만 아니라 파수(k)도 맞추어야 하는데 파수가 변화하지 않고 전이하는 현상을 직접 천이라고 한다)을 가지므로, 전기 에너지를 직접 빛으로 전환하는 레이저 다이오드나 LED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또한, 비소는 생물 표본 보존제로도 사용되며 생산된 비소 중 약 2% 정도가 납탄환 및 총알을 만드는 납 합금에 첨가된다.
비소의 독성[편집]
비소는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및 RNA 간섭과 같은 유전적 변화와 관련이 있으며 독성 수준의 비소는 종양 억제 유전자 p¹⁶과 p⁵³의 DNA를 메틸화시켜 발암 위험을 증가시키며, 여러 가지 메커니즘을 통해 ATP 생산도 방해한다. 비소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소변을 통해 비소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면 간암, 전립선암, 피부암, 폐암 및 비강암 이외에 방광암 및 신장암을 일으킬 수 있다.
비소는 급성 중독 시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거나 혈관호흡중추가 마비되기도 하고, 영양장애, 신경염, 흑피종 등이 유발된다. 비소화합물의 독성영향은 화합물의 화학적, 물리적 성질에 따라 좌우되며 특히 삼산화비소(As203)의 인체 중독량은 5~50 mg/70kg, 치사량은 100~300 mg/70kg이다. 비소가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헐거나 염증이 생기며 눈에 들어가면 눈이 아프고 결막염과 같은 염증이 일어난다. 비소가 든 물질을 먹었을 경우 급성중독 증상으로는 식도가 따갑고 화끈거리고 침을 삼킬 수 없고 위와 배가 심하게 아프며 토하거나 설사를 하게 된다. 특히 몸속의 물이 다 빠지게 되어 입이 마르고 혈관이 마비되어 피부가 차가워지며 혈압과 맥박수가 내려간다. 심하면 심장장애 등의 쇼크증상이 나타나 사망하게 된다.
살충, 살균제에 이용되고 있는 비산, 아비산염은 만성중독의 원인이 된다. 또한 비소화합물을 장기간 취급하면 피부가 흑변 또는 각화하며 신경이나 근육의 섬유에 이상을 주는 수가 있다. 만성적으로 중독이 되었을 경우에 처음에는 식욕이 떨어지고 힘이 없어지며 설사, 변비, 구역질이 나타나다가 눈꺼풀이 붓거나 눈에 염증이 생기고 목구멍이 아프며 때로는 콧속에 구멍이 뚫린다. 비소는 동, 납, 철 등의 많은 황화광물 속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제련공장 등에서 작업 중에 비소가 들어있는 먼지나 증기 등을 마시게 되면 만성중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