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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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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로퍼'''(Hyundai Galloper)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현대자동차㈜]]에서 1991년 9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생산했던 [[바디온프레임]] 형식의 [[4WD]] [[SUV]] [[차량]]이자 현대자동차의 첫 [[SUV]] [[차량]]이다. 차명인 갤로퍼는 '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는 뜻을 가진 영어 gallop의 명사형으로, ‘최고의 속력으로 질주하는 궁극의 경주마’를 의미한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미쓰비시자동차]](Mitsubishi Motors) 산하에서 판매됐으며, 파제로 2세대 모델이 갤로퍼의 이름을 달고 일부 국가에서 판매되기도 했다.<ref>〈[https://namu.wiki/w/%ED%98%84%EB%8C%80%20%EA%B0%A4%EB%A1%9C%ED%8D%BC 현대 갤로퍼]〉, 《나무위키》</ref>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오프로드]] 차량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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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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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출시된 갤로퍼는 당시 [[현대자동차㈜]]와 협력관계에 있던 [[미쓰비시자동차]]의 파제로(Pajero)를 들여와 [[현대정공]] 자동차사업부에서 생산한 모델이다. 따라서 완벽히 자체 개발한 차량은 아니다. 갤로퍼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되며 [[2인승]] [[밴]]부터 [[9인승]] 모델까지 다양한 [[라인업]]으로 판매되었다. [[파워트레인]]은 2.5 [[디젤]]과 3.0 V6 [[가솔린]]이 주력이었고, [[LPG]] 차량도 있다.<ref>양봉수 기자, 〈[https://www.autotribu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84 "오래될수록 비싼 갤로퍼, 결국 5천만 원 돌파", 과연 어디까지 오를까?]〉, 《오토트리뷴》, 2023-03-18</ref> 갤로퍼는 뛰어난 내구성과 완성도, 여기에 [[바디온프레임]] 특유의 견고한 [[차체]]와 [[오프로드]] 주행성능까지 겸비해 한국 시장에 [[사륜구동]] [[SUV]] [[차량]]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 갤로퍼 II로 출시돼 2세대 모델로 변경됐으며, 3세대 모델까지 준비했지만 결국 2003년 단종됐다. 한국에서는 단종되었지만 도심형 SUV가 아니라, 오프로드 주행도 가능한 모델이었던 만큼 여전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갤로퍼를 볼 수 있다. 한편 오늘날 갤로퍼는 리스토어 열풍 덕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유의 각진 디자인과 [[올드카]] 감성을 갖고 있으며, [[차박]]과 [[캠핑]] 인기에 힘입어 개인의 개성을 연출한 리스토어 갤로퍼 모델이 증가하는 추세다.<ref>김선웅 기자, 〈[https://www.autoview.co.kr/content/article.asp?num_code=77781&news_section=news 현대 갤로퍼, 20년만에 부활할까?]〉, 《오토뷰》, 2022-09-0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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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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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는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달고 출시된 첫 번째 [[SUV]] [[차량]]이다. 더불어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 [[쌍용 무쏘]](SsangYong Musso)와 함께 국산 [[사륜구동]] [[SUV]]의 대명사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차는 현대자동차가 직접 개발한 모델이 아니었다. 갤로퍼는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내에 있었던 현대정공이라는 회사가 개발하였다. 이 회사는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 [[현대모비스㈜]](Hyundai Mobis)와현대 [[현대위아㈜]](Hyundai Wia) 등의 전신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이 회사의 수장이 바로 지금의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다. 갤로퍼가 기획될 1989년 당시의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는 [[전두환]] 정권이 벌인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가 겨우 해제된 해였다. 이와 함께 당시 대한민국은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로 인한, 이른 바 3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경기가 호황을 이루던 이시기는 삶의 질 향상과 함께 대한민국의 레저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승용차]] 외에 사륜구동계를 갖춘 [[다목적차]]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될 것으로 전망되었고, 새로운 수요를 잡기 위해 현대자동차가 신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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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정주영]] 회장이 현대자동차 대신, 장남인 정몽구 사장이 경영하던 현대정공에 [[신차]] 개발을 맡기게 된다. 이는 당시 [[항공기]], 철도차량, 공작기계 등 기계 전문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던 현대정공에 [[자동차]]까지 맡김으로써 종합 기계 제작사로 거듭나게 하여, 최종적으로 당시 정세영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었던 현대자동차를 정몽구 사장에게 승계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승용차]] 밖에 만들지 못했던 현대자동차의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한 위험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갤로퍼는 기획 당시에는 엠카(M-car)로 명명한 현대정공의 독자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존에 현대자동차에서도 손대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차를 현대정공이 직접 개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정공은 용인 마북리에 연구소를 신설하고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엔진]]과 부품들을 활용, 독자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사륜구동]] [[자동차]]의 [[시제품]]이 완성되었고 이를 미국계 기업의 도움을 받아 성능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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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쓰비시 파제로.jpg|썸네일|300픽셀|'''미쓰비시 파제로'''(Mitsubishi Paj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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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륜구동형 자동차는 당대의 일반적인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강성, 사륜구동 시스템 등, 승용차에 비해 여러가지로 감안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그만큼 설계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또한 최대 수요지인 미국 시장의 요구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많아, 수출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신생 업체에서 쉽사리 손을 댈 수 있을 만한 정도의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당시 정몽구 사장은 무리한 독자개발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제조사의 사륜구동 자동차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꿨다. 이에 현대정공은 당시 현대자동차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에 동사의 1세대 파제로(Pajero)를 면허 생산하는 사업을 제안했다.<ref>박병하 기자,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46 알고 보니 다른 집 자식이다? – 자동차 세계 출생의 비밀]〉, 《모토야》, 2018-04-03</ref> 파제로는 1982년 5월에 첫 발매된 이래 7년 연속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4WD]] 차종으로 자리를 굳힌 차량이다. 일본 내 판매 호조만이 아니라 전 세계 150여개국 수출을 해 좋은 반응을 받았다.<ref>최진희 기자, 〈[https://www.cartech.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63#tbl-em-lnsg3gtw72t6nl70x2 디자인과 승차감이 뛰어난 4WD의 탄생, 현대 갤로퍼]〉, 《카테크》, 2020-07-31</ref> 이렇게 1990년도부터 기술 도입계약을 체결, 생산 설비의 신설하는 등의 준비기간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1991년부터 갤로퍼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차명인 갤로퍼는'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는 뜻을 가진 'Gallop'을 명사화한 것으로, '질주하는 말'을 의미했다.<ref>교양공감팀, 〈[https://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13641 (공감신문) 자동차 네이밍의 숨겨진 의미]〉, 《공감신문》, 2017-03-14</ref> 현대자동차는 갤로퍼를 다목적 승용차로 소개하며 [[마이카]] 붐 및 레저 붐이 일고 있었던 한국 시장으로 진입을 시작했다.<ref name='박병하'>박병하 기자,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83 (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갤로퍼]〉, 《모토야》, 2018-04-0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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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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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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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는 1988년부터 자체 개발이 진행되었으나, 성능과 기술 등이 [[미국]]의 소비자 취향과 거리가 있어서 미쓰비시 파제로를 도입하여 생산하였다. 갤로퍼는 출시 초기에는 [[디젤엔진]]을 탑재한 [[롱바디]] 사양만 스탠다드(5인승)와 엑시드(6인승) [[트림]]으로 출시되었다. 엑시드 트림은 대한민국산 최초의 [[SUV]] [[차량]]으로 3열 [[시트]]를 갖춘 차량이었다. 이후 11월에는 [[자동변속기]] 사양을, 12월에는 터보 디젤 엔진 사양을 순차적으로 투입하였다. [[엔진]]은 73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미쓰비시 아스트론 계열의 4기통 2.5리터 디젤엔진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81마력의 터보 사양, 그리고 93년에는 당대 디젤엔진 최고수준의 출력인 101마력을 내는 터보 인터쿨러 사양도 추가되었다. 그러나 초기 갤로퍼는 판매가 부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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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에 하순에 정식 출시된 갤로퍼는 출시 직후부터 높은 인기를 보였다. 갤로퍼는 10월부터 12월까지의 3개월간 무려 3천대 가까이를 판매하며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가 양분하고 있었던 SUV 시장에 무서운 기세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ref name='위키'>〈[https://ko.wikipedia.org/wiki/%ED%98%84%EB%8C%80_%EA%B0%A4%EB%A1%9C%ED%8D%BC 현대 갤로퍼]〉, 《위키백과》</ref>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무려 2만 4천여 대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장의 [[쌍용 코란도]]및 [[쌍용 코란도|코란도 훼미리]], 그리고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의 점유율을 뛰어 넘었다. 이는 당시 한국 SUV 시장의 약 52% 가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실적이었다. 갤로퍼의 인기 비결로는 이미 전 세계에서 검증을 끝난 SUV계의 성공작, 미쓰비시 파제로를 그대로 조립생산한 차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세대 미쓰비시 파제로는 우수한 주행 성능과 뛰어난 신뢰도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차종이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만큼,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가장 직접적인 경쟁상대였던 쌍용 코란도 훼미리는 갤로퍼에 비해 성능과 품질 모두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갤로퍼의 또 다른 인기 비결로는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교묘하게 활용한 데 있다. 갤로퍼는 분명 현대정공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했다. 또한 현대정공의 이름 대신 현대자동차의 'HYUNDAI' 상표명을 그대로 사용했고, 후기형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는 아예 [[라디에이터 그릴]]에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등에 업은 이 전략은 제대로 먹혀 들어서 갤로퍼가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ref name='박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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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갤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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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등장한 후기형 뉴 갤로퍼는 사각형 [[헤드램프]]의 적용과 더불어 기존의 [[사이드미러]]를 파제로와 같은 깃발형으로 변경하는 등 상품성을 높였다. 갤로퍼 초기형 모델의 사이드미러는 [[상용차]]와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으나 이를 통해 보다 [[승용차]]에 더 가까워졌다. 또한 [[엔진]]과 [[차체]] 크기 등을 기준으로 한 세부 모델의 가짓수를 늘려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 당시 뉴 갤로퍼의 하위 모델 라인업은 무려 20여종에 달했다. [[2인승]]의 [[밴]] 모델을 시작으로 구식 [[지프]](Jeep)의 좌우 대향형 좌석 배치를 차용한 [[9인승]] 모델까지 거느려 다양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엔진 라인업에서는 [[그랜저]](Grandeur)에 사용되었던 미쓰비시 사이클론 계열의 3.0리터V6 SOHC 엔진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갤로퍼는 같은 해 12월까지 누적 생산대수 10만대를 돌파하게 된다. 하지만 꾸준히 잘 나갈 것만 같았던 갤로퍼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었다. [[쌍용자동차]]가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기술을 등에 업고 완성해 낸 [[쌍용 무쏘|무쏘]](Musso)의 출현 때문이었다. 1993년 처음 등장한 쌍용 무쏘는 초기에는 부실한 [[파워트레인]]으로 인한 동력성능 부족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2.9리터 OM602 모델의 도입과 함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기세로 갤로퍼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 차종은 2000년대 초반까지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ref name='박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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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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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공의 갤로퍼는 이후 1997년, 한 차례의 부분 변경을 거치게 된다. 갤로퍼 II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갤로퍼의 최후기형 모델은 V6 3.0리터 SOHC LPG 엔진이 추가됐으며, 보기 드문 [[사륜구동]] [[LPG]] [[차량]]이었다. 또한 V6 3.0리터 SOHC LPG [[엔진]]이 장착된 [[5도어]] [[밴]]도 있었다. 더불어 기존 갤로퍼와는 달리, 전후면부 및 차체 디자인 등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 직선적인 1세대 파제로의 [[차체]]에 곡선적인 감각을 대폭 부여하여 상당히 다른 인상을 내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 변경은 [[롱바디]] 모델에 먼저 가해졌고, [[숏바디]] 모델의 변경 모델은 1998년, 갤로퍼 II 이노베이션이라는이름으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 차들은 현대정공의 자동차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통합 이관되는 2000년도까지 싼타모 등과 함께 현대정공의 손에서 계속 만들어지게 된다.<ref name='박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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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공의 자동차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이관됨에 따라 2000년 5월 22일에 출시된 2001년형은 현대자동차의 [[엠블럼]]이 달리고, V6 3.0L SOHC [[가솔린 엔진]]이 사라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1년 2월에 출시된 [[테라칸]](Terracan)은 갤로퍼 Ⅱ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상급 차종으로 출시됨에 따라 갤로퍼 Ⅱ 역시 한동안 계속 생산되었다.<ref name='위키'/> 그 시기 쌍용자동차는 [[쌍용 렉스턴|렉스턴]](Rexton)을 출시하며 두 회사는 고급 [[SUV]] [[차량]] 자리를 두고 대결을 했다. 2002년에는 [[기아㈜]]에서 [[기아 쏘렌토|쏘렌토]](Sorento)를 내놓자 갤로퍼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1980년대의 감각으로 만든 차였기에 2000년대에 등장한 차들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결국 갤로퍼는 안전성과 [[배출가스]] 규제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2004년 1월에 테라칸에 통합되는 형식으로 단종되었다.<ref>〈[https://m.kbchachacha.com/public/web/magazine/detail.kbc?magazineSeq=19430 갤로퍼, 쌍용차 잡으려 현대가 만든 명마!]〉, 《KB차차차》, 2022-09-0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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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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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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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ko.wikipedia.org/wiki/%ED%98%84%EB%8C%80_%EA%B0%A4%EB%A1%9C%ED%8D%BC 현대 갤로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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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amu.wiki/w/%ED%98%84%EB%8C%80%20%EA%B0%A4%EB%A1%9C%ED%8D%BC 현대 갤로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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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공감팀, 〈[https://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13641 (공감신문) 자동차 네이밍의 숨겨진 의미]〉, 《공감신문》, 20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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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하 기자,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46 알고 보니 다른 집 자식이다? – 자동차 세계 출생의 비밀]〉, 《모토야》,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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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하 기자,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83 (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갤로퍼]〉, 《모토야》,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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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희 기자, 〈[https://www.cartech.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63#tbl-em-lnsg3gtw72t6nl70x2 디자인과 승차감이 뛰어난 4WD의 탄생, 현대 갤로퍼]〉, 《카테크》,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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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m.kbchachacha.com/public/web/magazine/detail.kbc?magazineSeq=19430 갤로퍼, 쌍용차 잡으려 현대가 만든 명마!]〉, 《KB차차차》,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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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웅 기자, 〈[https://www.autoview.co.kr/content/article.asp?num_code=77781&news_section=news 현대 갤로퍼, 20년만에 부활할까?]〉, 《오토뷰》,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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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수 기자, 〈[https://www.autotribu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84 "오래될수록 비싼 갤로퍼, 결국 5천만 원 돌파", 과연 어디까지 오를까?]〉, 《오토트리뷴》,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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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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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 무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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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 코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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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추가 필요}}

2023년 10월 16일 (월) 17:33 판

현대 갤로퍼(Hyundai Galloper)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

현대 갤로퍼(Hyundai Galloper)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현대자동차㈜에서 1991년 9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생산했던 바디온프레임 형식의 4WD SUV 차량이자 현대자동차의 첫 SUV 차량이다. 차명인 갤로퍼는 '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는 뜻을 가진 영어 gallop의 명사형으로, ‘최고의 속력으로 질주하는 궁극의 경주마’를 의미한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미쓰비시자동차(Mitsubishi Motors) 산하에서 판매됐으며, 파제로 2세대 모델이 갤로퍼의 이름을 달고 일부 국가에서 판매되기도 했다.[1]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오프로드 차량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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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1991년 출시된 갤로퍼는 당시 현대자동차㈜와 협력관계에 있던 미쓰비시자동차의 파제로(Pajero)를 들여와 현대정공 자동차사업부에서 생산한 모델이다. 따라서 완벽히 자체 개발한 차량은 아니다. 갤로퍼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되며 2인승 부터 9인승 모델까지 다양한 라인업으로 판매되었다. 파워트레인은 2.5 디젤과 3.0 V6 가솔린이 주력이었고, LPG 차량도 있다.[2] 갤로퍼는 뛰어난 내구성과 완성도, 여기에 바디온프레임 특유의 견고한 차체오프로드 주행성능까지 겸비해 한국 시장에 사륜구동 SUV 차량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 갤로퍼 II로 출시돼 2세대 모델로 변경됐으며, 3세대 모델까지 준비했지만 결국 2003년 단종됐다. 한국에서는 단종되었지만 도심형 SUV가 아니라, 오프로드 주행도 가능한 모델이었던 만큼 여전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갤로퍼를 볼 수 있다. 한편 오늘날 갤로퍼는 리스토어 열풍 덕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유의 각진 디자인과 올드카 감성을 갖고 있으며, 차박캠핑 인기에 힘입어 개인의 개성을 연출한 리스토어 갤로퍼 모델이 증가하는 추세다.[3]

개발배경

갤로퍼는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달고 출시된 첫 번째 SUV 차량이다. 더불어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 쌍용 무쏘(SsangYong Musso)와 함께 국산 사륜구동 SUV의 대명사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차는 현대자동차가 직접 개발한 모델이 아니었다. 갤로퍼는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내에 있었던 현대정공이라는 회사가 개발하였다. 이 회사는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 현대모비스㈜(Hyundai Mobis)와현대 현대위아㈜(Hyundai Wia) 등의 전신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이 회사의 수장이 바로 지금의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다. 갤로퍼가 기획될 1989년 당시의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는 전두환 정권이 벌인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가 겨우 해제된 해였다. 이와 함께 당시 대한민국은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로 인한, 이른 바 3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경기가 호황을 이루던 이시기는 삶의 질 향상과 함께 대한민국의 레저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승용차 외에 사륜구동계를 갖춘 다목적차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될 것으로 전망되었고, 새로운 수요를 잡기 위해 현대자동차가 신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때 정주영 회장이 현대자동차 대신, 장남인 정몽구 사장이 경영하던 현대정공에 신차 개발을 맡기게 된다. 이는 당시 항공기, 철도차량, 공작기계 등 기계 전문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던 현대정공에 자동차까지 맡김으로써 종합 기계 제작사로 거듭나게 하여, 최종적으로 당시 정세영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었던 현대자동차를 정몽구 사장에게 승계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승용차 밖에 만들지 못했던 현대자동차의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한 위험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갤로퍼는 기획 당시에는 엠카(M-car)로 명명한 현대정공의 독자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존에 현대자동차에서도 손대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차를 현대정공이 직접 개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정공은 용인 마북리에 연구소를 신설하고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엔진과 부품들을 활용, 독자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사륜구동 자동차시제품이 완성되었고 이를 미국계 기업의 도움을 받아 성능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미쓰비시 파제로(Mitsubishi Pajero)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륜구동형 자동차는 당대의 일반적인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강성, 사륜구동 시스템 등, 승용차에 비해 여러가지로 감안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그만큼 설계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또한 최대 수요지인 미국 시장의 요구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많아, 수출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신생 업체에서 쉽사리 손을 댈 수 있을 만한 정도의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당시 정몽구 사장은 무리한 독자개발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제조사의 사륜구동 자동차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꿨다. 이에 현대정공은 당시 현대자동차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에 동사의 1세대 파제로(Pajero)를 면허 생산하는 사업을 제안했다.[4] 파제로는 1982년 5월에 첫 발매된 이래 7년 연속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4WD 차종으로 자리를 굳힌 차량이다. 일본 내 판매 호조만이 아니라 전 세계 150여개국 수출을 해 좋은 반응을 받았다.[5] 이렇게 1990년도부터 기술 도입계약을 체결, 생산 설비의 신설하는 등의 준비기간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1991년부터 갤로퍼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차명인 갤로퍼는'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는 뜻을 가진 'Gallop'을 명사화한 것으로, '질주하는 말'을 의미했다.[6] 현대자동차는 갤로퍼를 다목적 승용차로 소개하며 마이카 붐 및 레저 붐이 일고 있었던 한국 시장으로 진입을 시작했다.[7]

출시

초기 모델

갤로퍼는 1988년부터 자체 개발이 진행되었으나, 성능과 기술 등이 미국의 소비자 취향과 거리가 있어서 미쓰비시 파제로를 도입하여 생산하였다. 갤로퍼는 출시 초기에는 디젤엔진을 탑재한 롱바디 사양만 스탠다드(5인승)와 엑시드(6인승) 트림으로 출시되었다. 엑시드 트림은 대한민국산 최초의 SUV 차량으로 3열 시트를 갖춘 차량이었다. 이후 11월에는 자동변속기 사양을, 12월에는 터보 디젤 엔진 사양을 순차적으로 투입하였다. 엔진은 73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미쓰비시 아스트론 계열의 4기통 2.5리터 디젤엔진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81마력의 터보 사양, 그리고 93년에는 당대 디젤엔진 최고수준의 출력인 101마력을 내는 터보 인터쿨러 사양도 추가되었다. 그러나 초기 갤로퍼는 판매가 부진하였다.

1991년 9월에 하순에 정식 출시된 갤로퍼는 출시 직후부터 높은 인기를 보였다. 갤로퍼는 10월부터 12월까지의 3개월간 무려 3천대 가까이를 판매하며 쌍용자동차아시아자동차가 양분하고 있었던 SUV 시장에 무서운 기세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8]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무려 2만 4천여 대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장의 쌍용 코란도코란도 훼미리, 그리고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의 점유율을 뛰어 넘었다. 이는 당시 한국 SUV 시장의 약 52% 가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실적이었다. 갤로퍼의 인기 비결로는 이미 전 세계에서 검증을 끝난 SUV계의 성공작, 미쓰비시 파제로를 그대로 조립생산한 차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세대 미쓰비시 파제로는 우수한 주행 성능과 뛰어난 신뢰도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차종이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만큼,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가장 직접적인 경쟁상대였던 쌍용 코란도 훼미리는 갤로퍼에 비해 성능과 품질 모두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갤로퍼의 또 다른 인기 비결로는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교묘하게 활용한 데 있다. 갤로퍼는 분명 현대정공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했다. 또한 현대정공의 이름 대신 현대자동차의 'HYUNDAI' 상표명을 그대로 사용했고, 후기형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는 아예 라디에이터 그릴에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등에 업은 이 전략은 제대로 먹혀 들어서 갤로퍼가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7]

뉴 갤로퍼

1994년 등장한 후기형 뉴 갤로퍼는 사각형 헤드램프의 적용과 더불어 기존의 사이드미러를 파제로와 같은 깃발형으로 변경하는 등 상품성을 높였다. 갤로퍼 초기형 모델의 사이드미러는 상용차와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으나 이를 통해 보다 승용차에 더 가까워졌다. 또한 엔진차체 크기 등을 기준으로 한 세부 모델의 가짓수를 늘려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 당시 뉴 갤로퍼의 하위 모델 라인업은 무려 20여종에 달했다. 2인승 모델을 시작으로 구식 지프(Jeep)의 좌우 대향형 좌석 배치를 차용한 9인승 모델까지 거느려 다양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엔진 라인업에서는 그랜저(Grandeur)에 사용되었던 미쓰비시 사이클론 계열의 3.0리터V6 SOHC 엔진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갤로퍼는 같은 해 12월까지 누적 생산대수 10만대를 돌파하게 된다. 하지만 꾸준히 잘 나갈 것만 같았던 갤로퍼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었다. 쌍용자동차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기술을 등에 업고 완성해 낸 무쏘(Musso)의 출현 때문이었다. 1993년 처음 등장한 쌍용 무쏘는 초기에는 부실한 파워트레인으로 인한 동력성능 부족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2.9리터 OM602 모델의 도입과 함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기세로 갤로퍼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 차종은 2000년대 초반까지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7]

갤로퍼2

현대정공의 갤로퍼는 이후 1997년, 한 차례의 부분 변경을 거치게 된다. 갤로퍼 II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갤로퍼의 최후기형 모델은 V6 3.0리터 SOHC LPG 엔진이 추가됐으며, 보기 드문 사륜구동 LPG 차량이었다. 또한 V6 3.0리터 SOHC LPG 엔진이 장착된 5도어 도 있었다. 더불어 기존 갤로퍼와는 달리, 전후면부 및 차체 디자인 등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 직선적인 1세대 파제로의 차체에 곡선적인 감각을 대폭 부여하여 상당히 다른 인상을 내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 변경은 롱바디 모델에 먼저 가해졌고, 숏바디 모델의 변경 모델은 1998년, 갤로퍼 II 이노베이션이라는이름으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 차들은 현대정공의 자동차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통합 이관되는 2000년도까지 싼타모 등과 함께 현대정공의 손에서 계속 만들어지게 된다.[7]

현대정공의 자동차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이관됨에 따라 2000년 5월 22일에 출시된 2001년형은 현대자동차의 엠블럼이 달리고, V6 3.0L SOHC 가솔린 엔진이 사라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1년 2월에 출시된 테라칸(Terracan)은 갤로퍼 Ⅱ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상급 차종으로 출시됨에 따라 갤로퍼 Ⅱ 역시 한동안 계속 생산되었다.[8] 그 시기 쌍용자동차는 렉스턴(Rexton)을 출시하며 두 회사는 고급 SUV 차량 자리를 두고 대결을 했다. 2002년에는 기아㈜에서 쏘렌토(Sorento)를 내놓자 갤로퍼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1980년대의 감각으로 만든 차였기에 2000년대에 등장한 차들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결국 갤로퍼는 안전성과 배출가스 규제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2004년 1월에 테라칸에 통합되는 형식으로 단종되었다.[9]

각주

  1. 현대 갤로퍼〉, 《나무위키》
  2. 양봉수 기자, 〈"오래될수록 비싼 갤로퍼, 결국 5천만 원 돌파", 과연 어디까지 오를까?〉, 《오토트리뷴》, 2023-03-18
  3. 김선웅 기자, 〈현대 갤로퍼, 20년만에 부활할까?〉, 《오토뷰》, 2022-09-06
  4. 박병하 기자, 〈알고 보니 다른 집 자식이다? – 자동차 세계 출생의 비밀〉, 《모토야》, 2018-04-03
  5. 최진희 기자, 〈디자인과 승차감이 뛰어난 4WD의 탄생, 현대 갤로퍼〉, 《카테크》, 2020-07-31
  6. 교양공감팀, 〈(공감신문) 자동차 네이밍의 숨겨진 의미〉, 《공감신문》, 2017-03-14
  7. 7.0 7.1 7.2 7.3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갤로퍼〉, 《모토야》, 2018-04-09
  8. 8.0 8.1 현대 갤로퍼〉, 《위키백과》
  9. 갤로퍼, 쌍용차 잡으려 현대가 만든 명마!〉, 《KB차차차》, 2022-09-01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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