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삼성그룹(Samsung Group)은 대한민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이자 최대 재벌 집단이다. 창업주는 호암 이병철 회장이며 1938년 창업한 삼성상회가 모태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가 있었는데, 1997년 건물이 노후화가 진행되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 벽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분의 1로 축소한 청동 모형으로 구성된 작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북구 침산동 옛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자리에 들어선 대구 삼성 창조경제 단지에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이병철 회장이 당시에 살았던 집은 현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1]
목차
개요
삼성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환출자 구조로 되어 있으며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보험㈜을 지배하고 삼성생명보험㈜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삼성전자㈜가 삼성카드㈜를 지배하고 삼성카드㈜가 다시 삼성물산㈜을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이다. 사실상 너무 덩치가 커져 버린 삼성전자㈜를 오너 일가가 직접 지분으로 지배하기 힘들기 때문에 삼성생명보험㈜의의 자금을 이용해 지배하는 구조로 한국의 전형적인 재벌 구조다. 단, 2011년 금융 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의거 순환출자 구조 탈피 선언을 한 바 있으며, 2014년 이건희의 심장마비 입원으로 인해 이건희 유고 상황을 대비 경영권 방어가 필요해지면서 급속도로 지배구조가 변동될 것으로 예측된다. 2010년대에 인터넷 주소 정책이 바뀌면서 기업들도 자체적인 최상의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삼성도 현재 .삼성을 인터넷 주소 관리 기구인 아이칸(ICANN)에 신청해서 승인을 받았고, .samsung은 신청 완료된 상태다. 아마 .samsung까지 승인이 나면 본격적으로 두 도메인을 쓰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1]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의 해체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계열사(관계사)들을 수직적 지배하는 조직으로써,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한편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엔 계열사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공채도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고,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채용하는 체제로 바뀐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이라는 용어는 더 쓸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삼성그룹 홈페이지'나 '삼성그룹 블로그'도 당연히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2017년 4월 3일에는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폐쇄됐다. 2017년 3월 2일에는 그룹 사내 방송이 종료되었고, 3월 3일에는 그룹 기자실이 폐쇄됐다.
다만 삼성 계열사 간의 지분 관계는 여전하기 때문에 그룹이 완전히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세대를 거듭하면서 삼성 계열사 간의 관계가 점점 멀어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삼성의 장래를 밝다고만 보기는 어렵다.[1]
역사
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던 이병철이 현재의 대구광역시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삼성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였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됐다.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으로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삼성이 일류 재벌 집단이라고 하지만, 초창기까지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이다. 전 씨제이그룹(CJ그룹)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삼성과 비교하면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시 별표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액도 올라갔지만 대구(1981년 6월 30일까지 대구는 경상북도였다.)에는 경상북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국수가 있었고, 2위의 풍국면도 있었다.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에 속해 있는 신세계그룹의 국수 오이엠(OEM)회사다. 결국 별표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1]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에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9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1953년 제일제당(현 CJ제일제㈜)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 및 동화백화점을 인수하고,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 전자㈜ 산업 진출을 선언하며 수원 공단 부지를 매입하며 이듬해 삼성전자㈜ 및 삼성산요(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엔이씨(NEC)㈜를 세워 전자 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도전하였으며,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1]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 시스템(현 삼성에스디에스㈜)을 세워 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했다.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숨지자 이건희 부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다.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 백화점과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진출을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팔았고, 2008년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2015년 신)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에스디아이㈜(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에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한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과 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도 문을 닫게 된다.[1]
로고
본사의 워드마크는 타원형과 색상, 'SAMSUNG'이란 글자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전체적으로 삼성을 표현하는 아이덴티티가 반영되어 있다. 또 마크 안의 문자를 영어로 표현하여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발음으로 읽히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타원형의 디자인은 유연성과 단순함을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무대를 상징하는 타원을 비스듬히 처리하여 동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 S와 G의 터진 부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기운이 통하게 하여 세계와 호흡하고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며, A자의 가로지름을 제거하여 개방성을 나타냈다. 영문 로고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정교하게 처리해 기술주의의 고객지향 의지,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기본 색상의 경우, 기존에 써 온 청색을 그대로 유지해서 영속성을 지니도록 했다. 그룹 공통색상인 청색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색으로 고객과 더욱 친숙해지려는 세계 제일주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하고 있다.[1]
1993년 6월, 이건희는 그룹 사내 방송 에스비씨(SBC)의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삼성 세탁기의 라인 작업자가 칼로 불량인 부품을 대충 깎아내서 조립하는 모습으로 삼성 세탁기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후쿠다 다미오가 "삼성그룹은 2류나 다름없다"라면서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경영 방식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개선책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뒤,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꾼다'라는 신경영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삼성의 첫 번째 쇄신은 바로 로고 교체였다. 이전까지 파란 바탕에 사립학교 로고 비스름했던 그룹 로고가 기본이었으나, 반면 삼성전자,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전주제지, 동방생명, 안국화재, 코리아엔지니어링, 한국안전 시스템, 중앙일보, 제일제당 등 일부 계열사는 각기 다른 로고를 쓰는 등 제대로 통일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1989년 이후 삼성생명, 안국화재, 한국안전 시스템 등 일부 계열사가 그룹 로고를 사용했다. 글씨 로고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만든 '일중체'를 썼다. 같은 로고라도 업종에 따라 이니셜을 넣기도 하는데, 제일제당은 로고 중앙에 'C', 제일모직은 'W', 안국화재는 'U', 신세계백화점은 'D', 제일합섬은 'T', 한국안전 시스템은 'V'를 썼다. 이렇게 다양한 로고들은 1993년 3월부로 새로운 로고로 바뀌게 되었는데, 20억의 비용을 들여서 미국 엘엔엠(L&M)에서 직접 디자인했다. 이때 나온 디자인이 바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파란색 타원 속에 SΛMSUNG 이라 쓰인 로고다. 1993년, 이건희가 신경영을 표방하며 변경한 로고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란색 로고다. 그러나 새로운 로고에 그룹 내 고위 임직원들은 단체로 최면에 걸렸는지 엄청난 거부감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특히 안국화재, 한국안전 시스템, 제일제당 등 일부 기업명을 죄다 삼성으로 통일해서 영업에 차질을 입힐 것이라 걱정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많은 기업이 로고와 회사명을 바꾸면서 도색 업체들과 스티커 제작 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맞았었다고 전해진다.[1]
삼성상회 당시의 1번 로고부터 1993년 현재의 씨아이(CI) 통일 전까지 사용했던 삼성의 3번 씨아이, 그리고 1993년 신경영 선언과 함께 변경, 통일된 삼성의 6번 씨아이까지의 변화를 볼 수 있다. 6번은 5번에서 글자 장평을 약간 줄여서 변경했다. 이미지만 보았을 땐 2번, 4번이 마치 삼성그룹 전체의 통일된 씨아이처럼 보여질 수 있으나 1993년 씨아이 통일 전까지는 계열사마다 다른 씨아이를 사용했었고, 2번과 4번은 당시 삼성전자㈜의 씨아이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에서만 사용된 씨아이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2번, 4번 씨아이를 삼성 전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1]
삼성전자㈜는 기존의 씨아이를 사용하지 않고 워드마크를 씨아이로 사용한다고 결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타원형 마크의 짙은 파란색은 경직된 느낌을 줘 혁신을 지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 워드마크는 특정한 색이나 모양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것은 삼성전자의 마케팅에 국한되며 공식 로고를 바꾼 것은 아니다. 이미 삼성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아이씨는 예전부터 워드마크만 사용했기 때문인 것도 있고 다른 세계적인 기업들의 로고도 대부분 글자만 있는 형태의 로고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계열사들의 경우 기존 로고를 계속 사용한다고 한다. 다만 기존 SAMSUNG 로고와 회사명을 위아래로 배치하지 않고 수평으로 배치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수평으로 배치하면서 계열사별로 로고가 회사명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 통일이 안 되어 있다. 삼성전자㈜가 워드마크로 로고를 변경하면서 해외에서 삼성그룹 전체의 로고를 워드마크로 변경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의 인식이 대부분 삼성 하면 삼성전자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한글 서체는 고딕체 계열, 영문 서체는 유니버스(Universe)체 계열을 쓰고 있다.[1]
슬로건 변화
- 1986~1987 : 첨단기술 첨단경영의 상징
- 1988~1992 : 인재와 첨단기술의 삼성
- 1992~1993 : 고마움을 아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사
- 1992 :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
- 1993 : 새시대를 열어가는 국민기업 삼성
- 1993 : 국민과 함께 세계로 도약하는 기업 삼성
- 1994~1997 : 고객과 함께 세계로 미래로 삼성
- 1994~1996 : 세계일류
- 1997~1998 : 믿을 수 있는 친구 삼성
- 1998 : 할 수 있다는 믿음
- 1999 : 새 천년, 새 삼성
- 2000 : 밀레니엄 프론티어 삼성
- 2001~2002 : 디지털 프론티어 삼성
- 2002~2013 : 우리의 대표브랜드 삼성
- 2003~2005 : 함께가요 희망으로
- 2006~2007 : 해피투게더
- 2007 : 고맙습니다
- 2008 : 더 뛰겠습니다 더 땀흘리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 2009~2010 : 두근두근 Tomorrow[1]
연혁
1938년 ~ 1969년: 창업
- 1940년 6월 : 삼성상회, 주식회사 삼성상회로 법인 등록
- 1948년 11월 : 삼성물산공사 설립
- 1953년 8월 : 제일제당 설립
- 1954년 9월 : 제일모직공업 (현 삼성에스디아이㈜) 설립
- 1957년 1월 : 대한민국 최초로 사원공개 채용 실시
- 1958년 2월 : 안국화재 (현 삼성화재해상보험㈜) 인수
- 1963년 7월 : 동화백화점 (현 신세계)과 동방생명 (현 삼성생명보험㈜) 인수
- 1965년 9월 : 중앙일보 창간
- 1965년 10월: 새한제지공업 (현 한솔제지㈜) 인수
- 1966년 9월 :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인해 이병철 회장 은퇴 선언
- 1968년 2월 : 이병철 경영 복귀
- 1968년 11월 : 고려병원 (현 강북삼성병원) 개원
- 1969년 1월 : 삼성전자공업 (현 삼성전자㈜) 설립
1970년 ~ 1992년: 성장
- 1970년 1월 : 삼성NEC (현 삼성에스디아이㈜) 설립
- 1973년 1월 : 제일기획 설립
- 1973년 5월 : 임페리얼 (현 ㈜호텔신라) 설립
- 1978년 4월 : 코리아엔지니어링 (현 삼성엔지니어링㈜) 인수
- 1979년 1월 : 삼성상회 (현 풍국면) 양도
- 1982년 2월 :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창단
- 1985년 5월 : 삼성데이타시스템 (현 삼성에스디에스㈜) 설립
- 1987년 11월 : 19일 창업주 이병철 타계
- 1987년 12월 : 이건희가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 1988년 3월 : 창업 50주년을 맞이하여 제2 창업 선언, 코카(KOCA)카드 (현 삼성카드㈜) 인수
- 1991년 11월 : 신세계백화점 (현 신세계), 전주제지 (현 한솔제지㈜) 계열 분리
- 1992년 11월 : 국제증권 (현 삼성증권㈜) 인수
1993년 ~ 2009년: 신경영 선언
- 1993년 3월 : 제2창업 5주년, 그룹 CI 변경, 삼성종합건설이 작업하던 현장에서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 발생
- 1993년 7월 : 제일제당 (현 CJ제일제당㈜) 계열 분리
- 1994년 11월 : 삼성서울병원 개원
- 1995년 4월 : 제일합섬 (현 도레이케미칼㈜) 계열 분리
- 1995년 12월 : 신공항고속도로(현 신공항하이웨이㈜) 설립
- 1996년 11월 :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재인수
- 1999년 3월 : 중앙일보, 보광 등 9개로 계열 분리
- 2000년 9월 : 삼성자동차 승용차부문 르노삼성자동차에 매각
- 2004년 1월 : 신공항하이웨이㈜ 매각
- 2008년 4월 2: 2일 비자금이 적발되면서 이건희 회장 사퇴, 이수빈 삼성생명보험㈜ 회장이 삼성그룹의 대외대표를 겸하게 됨
- 2008년 11월 : 태평로 사옥에서 서초 삼성타운으로 그룹 사옥 이전
2010년 ~ 현재: 경영 복귀와 위기경영
- 2010년 3월 : 이건희 경영 복귀
- 2012년 7월 : 삼성전자㈜ 엘씨디(LCD)사업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S-LCD가 합병하여 삼성디스플레이㈜ 출범
- 2013년 11월 : 삼성에버랜드의 급식 식자재 사업을 분사하여 삼성웰스토리㈜ 출범, 건물관리사업은 ㈜에스원으로 편성
- 2013년 12월 :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 삼성에스엔에스(삼성SNS)가 삼성에스디에스㈜에 흡수 합병
- 2014년 6월 : 삼성석유화학㈜이 삼성종합화학㈜에 흡수 합병
- 2014년 11월 :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4개사, 한화그룹에 매각 결정
- 2015년 5월 :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
- 2015년 9월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 2015년 10월 : 삼성에스디아이㈜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비피(BP)화학 등 4개사 롯데그룹에 매각
특징
*㈜우리은행과의 관계
- 삼성그룹 사업체는 무조건 ㈜우리은행만을 유일한 거래처 은행으로 취급한다. 그룹 전체가 하나의 은행만을 취급하는 건 굉장히 특이한 경우이다. ㈜우리은행의 실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하는 중이다. ㈜우리은행의 외국 지사 역시 삼성그룹 현지법인의 주거래은행이다. 원래 삼성그룹은 한일은행이 1958년 불하과정을 통해 초기 민영화될 때 한일은행을 소유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한일은행에 모든 거래처를 몰아주고 유지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국 제외하고 외국 파견지점을 보면 다 삼성그룹의 외국 지사가 있는 도시에 같이 파견되어 있다.[1]
그룹 구성
삼성은 계열사라는 명칭 대신에 관계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과거보다 순환출자가 완화되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해소하지 못 하고 있다. 현재는 삼성물산㈜이 산업 부문의 최상당 지주회사, 삼성생명보험㈜이 금융 부문의 최상단 지주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지배구조의 최후 목적은 산업 부문은 삼성물산㈜, 금융 부문은 삼성생명보험㈜으로 금산분리를 이루면서 하나의 지주회사 체제로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난관은 삼성생명보험㈜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있다. 중간금융지주법이 무산되고, 순환출자 해소를 정부가 압박하는 만큼 삼성그룹의 금산분리는 해소 못 하고 있음이 약점이다.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생명보험㈜과 삼성화재해상보험㈜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고 하는데 문제는 지분 가치만 26조 원에 육박한다. 국내에서는 매각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고 판단된다. 결국 외국 세력에 매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도 난감한 상황이다.[1]
전자
- 삼성전자㈜
-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연결 회계정보에 따르면 삼성전자㈜ 계열사만 147개라고 한다. 물론, 이는 한국에 설립된 자회사, 해외의 생산공장, 연구소, 판매, 유통, A/S 법인 등을 모두 합친 숫자이다. 삼성그룹이 주력 업종이다.
- 삼성전자판매 : 1996년 7월 11일에 설립된 곳으로 리빙프라자에서 사명을 변경했다. 삼성디지털프라자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삼성전자서비스 : 삼성전자㈜의 AS센터를 운영하는 회사이다.
- 삼성전자로지텍 : 1998년 3월 27일에 삼성전자㈜에서 분리된 물류회사다. 당초 사명은 토로스물류주식회사였다.
- 세메스 : 반도체 및 엘씨디 제조용 설비 제조 회사다. 1993년 삼성전자㈜와 일본 다이니폰스크린이 합자해 만든 한국디앤에스를 전신으로 한다. 삼성전자㈜가 일본 측 지분을 전량 인수하며 현재의 사명으로 바꿨다. 'SEMES'는 'System Engineering Mega Solution'의 약자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Samsung Electronics MEchatronic Solutions'의 약자로 알려졌다.
- 삼성 메디슨 : 1985년 설립된 메디슨이 전신으로, 의료기기 사업체다. 2010년 12월 삼성전자㈜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 삼성디스플레이㈜
-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이 분리된 자회사이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흡수합병했다. 자회사로 삼성코닝정밀소재를 가지고 있었으나, 2013년 10월 삼성그룹이 보유 지분 전체를 합작사인 코닝에 매각함으로써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벗어났다. 2020년 현재 삼성전자㈜의 자회사이다.
- 삼성전기㈜
- 1973년 삼성산요파츠로 설립된, 전자부품 제조 전문회사로, 이부진의 남편 임우재가 이 회사 부사장직까지 오르다 고문으로 물러났다.
- 스템코 : 1995년 3월 24일에 설립된 삼성전기㈜와 일본 도레이가 만든 회사다. 사명인 'STEMCO'는 'Samsung Toray Electro-Mechanics Co.'의 약자라고 한다.
-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 2012년 코닝과 합작해서 설립한 올레드(OLED) 패널용 유리 기판 제조 업체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와는 달리 그대로 삼성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 코삼테크놀로지 : 2009년 삼성코닝정밀소재와 코닝이 태양전지 유리 기판 개발을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삼성코닝정밀소재를 코닝에 매각하면서 관련 지분을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가 넘겨받았다. 사명의 코삼은 'CorSam'으로 코닝과 삼성의 합성어다.
- 삼성에스디아이㈜
- 이차 전지 및 전자재료(소재) 생산한다. 이차 전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과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2015년 기준으로 전지 사업 부문은 내리 적자를 보는 중이다. 삼성전관에서 1999년 삼성에스디아이㈜(Samsung Display Interface)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사업구조가 바뀌면서 사명에 있던 디스플레이어와는 상관없게 됐다. 그래서 사측은 고유명사 에스디아이(SDI)라고 홍보하고 있다.
- 에스티엠 : 2011년에 토다 공업과 삼성이 합작한 회사로 양극재를 생산하는 계열사이다. 현재는 지분이 전부 삼성에스디아이㈜가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차전지 산업에서 소재를 내재화하기 위해 지속해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 삼성에스디에스㈜ : 한국 최대의 정보기술 기업으로 최고의 에스에스에이티(SSAT) 경쟁률을 자랑한다. 멀티캠퍼스라는 교육기관이 별도로 존재한다. 일반적인 정보기술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4D 업종이다. 구 서울통신기술인 삼성에스엔에스를 2013년에 흡수합병했다. 'SDS'는 'Samsung Data System'의 준말이지만 사측은 고유명사 'SDS'라고 답하는 중이다.
- 멀티캠퍼스 : 삼성그룹 인력개발원에서 기업분할을 통해 설립된 에이치알(HR) 전문기업이다. 2016년 3월 크레듀에서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 시큐아이 : 2000년 3월에 삼성그룹의 물리보안 전문 회사인 ㈜에스원의 자회사로 출범한 네트워크 보안 장비 개발 및 판매 회사다. 2015년 9월에 삼성에스디에스㈜가 ㈜에스원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전체를 인수해서 삼성에스디에스㈜의 자회사가 되었다.[1]
바이오
-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를 위시한 전기, 전자 부문이 고급 세그먼트의 애플이나 저가 세그먼트의 다수 경쟁업체 때문에 넛 크래커의 위기에 몰리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발굴한 5대 신수종사업 투자로 인해 출범했다. 초창기에는 돈 잡아먹는 기계라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제약 사업이 돈 앞에 장사 없는 분야인데다 경영 노하우만큼은 특출난 삼성인지라 2015년 들어 언론 보도를 탈 정도로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제약이라는 상장제약사가 있으나 삼성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도의 제약사다.
중공업·건설
삼성그룹에서 전기, 전자 부문 다음으로 매출 볼륨을 높였다가 갑자기 미움을 받게 됐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국제적인 유가 폭락, 한국 업체 간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으로 인한 건설, 조선업 불황이 사단을 만들었다. 내우외환이 쌍으로 터져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그나마 삼성중공업㈜은 외국발 엘엔지(LNG) 운반선 발주 열풍 덕분에 실적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만 건설업은 저가 수주로 인한 적자 때문에 아직도 깜깜하다.
- 삼성중공업㈜
- 삼성엔지니어링㈜
- 화공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다. 1970년 1월 설립된 코리아엔지니어링을 1978년 4월 삼성그룹이 인수했다.
- 삼성물산 건설부문
- 1977년 통일건설이 인수된 후 삼성종합건설로 재설립되어 1979년 신원 개발에 합병된 후 그 회사를 존속법인으로 했다. 1993년 삼성건설로 사명을 바꿨다가, 1995년 12월 삼성물산으로 합병된 상태다. 아파트 브랜드로는 래미안이 있다.
- 씨브이네트 : 2000년 4월 6일 설립된, 홈네트워크 시스템 개발사다.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 2014년 8월 공식적으로 인수하여 자회사로 뒀으나 그 이전부터 위장계열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1]
금융
삼성그룹의 숨겨진 대들보로,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삼성 그룹을 위기에서 구했다.
- 삼성생명보험㈜
-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계열사이다. 그래서인지 '회장'직도 삼성전자㈜와 함께 그룹 내에서 둘뿐이다. 동방생명이라는 회사였으나, 1963년 삼성에 편입되었고, 1989년 삼성생명보험㈜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지배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로 금산분리법 때문에 차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시 문제 요소 중 하나다. 그 때문에 중간 금융지주회사법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무산되어 골치가 아프다. 금산분리가 실현된다는 전제하에 금융 지주로의 핵심적인 회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에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삼성생명보험㈜ 두 개의 그룹으로 쪼개지고, 한 명 또는 복수의 총수가 삼성전자㈜, 삼성생명보험㈜ 양쪽의 회장을 모두 맡아 관리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당장 삼성생명보험㈜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부터 처리하기 요원한 실정이다.
- 삼성자산운용 : 1997년 4월 삼성그룹과 미국 제이피모건(JP모건) 등이 지분 참여한 삼성제이피모건투신운용으로 설립된 자산운용사이다. 이후 미국 지분이 빠지면서 삼성생명보험㈜이 97% 가까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운용하는 자산규모가 상당하기에 기민함이 떨어져 수익률은 경쟁사보다 낮지만 자산규모 대비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다.
- 삼성카드 : 1978년 '한국신용카드'로 설립된 회사로, 1988년 6월 코카신용카드를 인수하여 삼성신용카드로 변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카드와 삼성캐피털을 합병해서 출범한 회사다. 2007년 6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한국 신용카드사 중 유일한 상장사로 기록되고 있다. 삼성생명이 71.9%로 대주주다.
- 삼성화재해상보험㈜
- 952년 1월 26일 한국안보해상보험으로 설립되었다. 1962년 삼성그룹에 인수되어 안국화재해상보험이 되었고 1993년 삼성화재해상보험㈜이라는 현재 사명으로 바뀌었다. 2000년 1월에 아시아 보험사 1위라는 괴물 같은 기록도 세웠다. 삼성생명보험㈜과 더불어 그룹의 든든한 경제적 역할이다. 삼성생명보험㈜이 자회사로 편입시키기 위해서 지분을 확대하고 있으나 아직 기준인 30%에는 못 미친다.
- 삼성증권㈜
- 1982년 10월 19일 한일투자금융으로 설립되어, 1991년 2월 국제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1992년 삼성에 편입되었다. 증권중개 및 자산관리, 기업금융과 자금운용 등을 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지분을 확대하고 있으나 아직 기준인 30%에는 못 미친다.
- 삼성선물 : 금융투자회사로서, 1992년 국제선물로 설립된 선물회사이다. 1996년에 삼성물산㈜이 인수해서, 1997년 사명을 삼성선물로 변경했다. 삼성증권㈜의 100% 자회사다.
- 삼성벤처투자㈜
- 삼성그룹의 4개 계열사, 전기, 중공업, 전관, 전자가 공동 출자하여 자본금 200억 월 규모로 1999년 10월 22일 설립됐다.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사업을 하는 벤처캐피탈이다.[1]
서비스
- 삼성물산㈜
- 종합물류, 무역, 레저, 건설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 사실상 삼성그룹의 모기업이며 삼성전자㈜ 주식의 4%를 소유한 삼성의 준지주기업이기도 하다. 1938년 이병철이 세운 삼성상회에서 시작했다. 합병과 분할이 여러 번 이루어져 복잡하다.
- ㈜호텔신라
- ㈜제일기획
- 종합 광고대행사로, 한국 1위의 규모다. 2014년부터 계열사별로 흩어져있던 삼성그룹 내의 스포츠들을 모두 여기서 운영하고 있다.
- ㈜에스원
- 보안, 경비 솔루션, 부동산 종합 서비스 업체다. 일본 굴지의 보안솔루션 브랜드 세콤과 합자 형태로 투자되었다. 2010년 기준으로 지분 관계도는 일본 세콤 본사가 24%, 삼성 계열이 20%로 여전히 세콤의 영향력이 높은 편이다. SK텔레콤㈜(SKT), ㈜케이티(KT) 망을 임차해 이동통신망사업자(MVNO) 통신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삼성 계열이라 ㈜에스원 안심폰을 비롯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만 판매, 취급하는 중이다.
- 삼성경제연구소
- 원래는 삼성생명 부설 연구기관이었으나, 1991년 4월에 주식회사 삼성경제연구소로 전환했다. 즉, 현재는 관계사의 부설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엄연한 회사(영리법인)이다. 경영컨설팅 사업 등의 영리사업을 하고 있다.[1]
스포츠
- 야구: 삼성 라이온즈 (제일기획)
- 축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제일기획)
- 배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제일기획)
- 여자 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제일기획)
- 남자 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 (제일기획)[1]
경쟁사
국내 기업
- ㈜엘지
- 1947년 설립되었으며, ㈜LG화학과 LG전자㈜를 주축으로 형성된 대한민국 대기업이다. 경영 투명성과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를 구축했다. 전국에 약 40개의 공장, 전 세계 120여 개국에 147여 개의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기업이 창업할 때부터 삼성과는 경쟁 구도였다. ㈜엘지 창업주인 구인회와 삼성 창업자 이병철은 동문수학한 사이여서 돈독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철은 고향 의령에서 신식공부를 하고자 진주 지수보통(초등)학교로 3학년 편입을 했는데, 이때 구인회와 같은 반이 된 것이다. 둘은 사돈 관계이기도 한데, 구인회의 셋째 구자학 아워홈(OurHome) 사장과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가 혼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은 당초 사업 영역이 다르다 보니 다툴 이유도 없었다. ㈜엘지는 금성사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라디오를 개발한 데 이어 1966년 첫 텔레비전을 선보이면서 전자 회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초기 삼성은 조미료와 모직이 주력이었다. 그러나 삼성이 1968년 일본 기술과 합작으로 전자 시장에 뛰어들면서 관계가 급속히 악화했다.. 씨제이그룹의 명예회장인 이맹희에 따르면, 이병철은 그해 구인회를 골프장에서 만난 자리에서 '삼성도 전자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불쑥 통보했고, 구인회는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전자 사업이 돈이 되니까 뛰어드는 것 아니냐며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고 했다. 이후 두 기업은 신제품으로 경쟁을 펼쳐왔다. 가전 기술력을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그래도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평판 경쟁에 가까웠다.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제품이 빠르게 보급, 확산하는 시기였고, 만드는 대로 팔리던 시대였다는 점도 경쟁이 제항적이었던 이유다.[2]
- 그러나 가전 보급 수준을 넘어 품질 경쟁기에 접어들자 견제가 노골화됐다. 두 기업이 직접적으로 소송전을 처음 벌인 전장 역시 텔레비전이었다. 1992년, 금성사와 삼성전관(현 삼성에스디아이㈜)이 브라운관 텔레비전 시장에서 특허권을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였다. 당시 양사는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일단락된 갈등이 다시 표면화된 게 1990년대 말이다. 1999년 들어서 삼성과 ㈜엘지는 '완전한 평면TV'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다. 고급대형 텔레비전에 사용되는 완전 평면 브라운관은 표면이 평평해서, 기전제품과는 달리 화면 왜곡이 없고 빛 반사가 적어 눈의 피로도가 낮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완전평면 제품은 1990년대 후반 두 기업이 출시한 이래 국내 전체 텔레비전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당시 두 기업이 완전평면 텔레비전 기술을 놓고 각자 자사 기술만이 완전평면이라고 주장하고 경쟁이 심해지기도 했다. 이에 피시(PC)통신 하이텔 하드웨어(HITEL Hardware) 동호회가 어느 쪽 기업 텔레비전이 완전평면인지 놓고 공개시험을 요청하기도 했다.
-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경쟁은 디스플레이 기술력 논란으로 번졌다. 2011년 3D 텔레비전을 구현하는 기술 방식을 놓고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다시 경쟁이 격화됐다. 텔레비전분야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특허권을 둘러싼 싸움은 디스플레이로 번졌는데, 2012년 4월엔 삼성디스플레이㈜와 엘지디스플레이㈜의 기술 공방이 시작됐다. 기술유출혐의로 전현직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연구원과 엘지디스플레이㈜의 임직원이 검거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같은해 9월 갈등은 소송으로 번졌다. 9월 27일 엘지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르 상대로 특허 소송을 내면서 2차전에 접어들었고, 엘지전자㈜는 삼성의 갤럭시 노트와 갤럭시 시리즈가 엘지전자㈜의 핵심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두 기업간 소송은 결국 액정 표시 장치인 엘씨디 기술까지 확대되었다. 12월 같은해, 삼성디스플레이㈜도 지지않고 소송을 제기한다. 엘지전자㈜와 엘지디스플레이㈜를 상대로 엘씨디 시야각 기술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엘지는 엘씨디 패널특허 4건과 제조 공정 특허 건, 모듈 구동 회로 특허 2건을 포함해 자사의 엘씨디 핵심기술 특허 7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엘지는 당사의 레티나 디스플레이(Retina Display) 기술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삼성전자㈜가 ㈜엘지의 기술을 수용했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불리해지자 소송전을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2012년만 해도 국내에선 올레드 텔레비전 생산이 불가능했다. 올레드 소재를 사용한 텔레비전은 2013년에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이후 삼성전자㈜는 손익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레드 텔레비전 사업을 중단했다. 2016년 6월 29일 양자점발광다이오드인 큐엘이디(QLED) 사업에 주력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다 엘지전자㈜ 주도로 올레드 텔레비전 보급이 시작되자 삼성과 ㈜엘지의 텔레비전 전생의 불씨가 또 다시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옮겨붙었다. 2019년 9월 독일 베를린 가전 박람회(IFA)에서는 삼성 8k 텔레비전을 자사 제품과 나란히 진열하는 것으로 저격하는 한편, 큐엘이디 명칭을 고스란히 드러낸 비교광고를 선보이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 이런 경쟁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두 회사의 라이벌 의식과 기술 경쟁이 품질을 끌어 올리는 데 도움이 됐고, 결국 이를 통해 세계 가전 시장을 제패한 만큼 나쁘게 볼 필요 없다는 시각이 있다. 디스플레이 품질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반명 두 기업의 비교광고와 비방 내용이 다른 글로벌 회사가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근거로 쓰일 것이라며 우려하는 반응도 나왔다. 단기적인 갈등은 자극제가 되지만, 장기화할 경우 두 회사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시각이다.[2]
- 에스케이하이닉스㈜
- 에스케이하이닉스㈜(SK하이닉스)는 에스케이그룹(SK그룹) 소속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전문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모태는 1949년에 설립된 건설업체 국도건설이며 1983년 현대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면서 국도건설의 상호를 현대전자산업으로 바꿨다. 1985년 256kb D램을 개발, 생산하면서 반도체 기업으로 전환했다. 이후 ㈜하이닉스반도체를 거쳐, 2012년 에스케이그룹에 편입되면서 지금의 에스케이하이닉스㈜로 상호를 변경했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산업을 하므로 에스케이하이닉스㈜가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4월에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반도체 사업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반도체 생태계 조성 계획'을 발표했는데 양사의 목표는 같지만 실행하는 전략 방향은 달랐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역량을 강화한다면, 에스케이하이닉스㈜는 기존과 차별화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성과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의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 원을, 에스케이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차세대 메모리 생산거점)에 120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 삼성전자㈜가 집중하는 비메모리는 앞으로 급격한 수요증가와 더불어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이는 시스템 반도체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메모리) 반도체와 데이터를 분석·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해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등의 새로운 시장영역에서 적용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세계 반도체 시장의 호황 배경 및 시사점'에 따르면 이미 시스템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2017년 기준)이 메모리 반도체(1천 240억 달러)를 넘어 전체의 약 70%(2천 882억 달러)를 점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함께 차량용 반도체, 센서,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에서 글로벌 시장의 19.1%를 점유해 시장 2위(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기준)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에서 글로벌 시장의 11%의 점유율로 세계 4위(시장조사업 아이비에스(IBS)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에서는 세계 1위 업체인 대만의 티에스엠씨(TSMC)보다 앞선 미세공정 기술력(EUV)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부터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노광기술을 활용한 7나노미터(㎚) 크기의 시스템 반도체 양산에도 돌입할 예정이다. 김동원 케이비증권(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글로벌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2019년 1분기 기준 파운드리 점유율은 2위(19.1%)를 기록하며 1위(48.1%)와 격차가 벌어진 상태'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분야의 집중 투자를 통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3]
- 반면 에스케이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용인에 차세대 메모리 공장(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을 짓고, 향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STT-M램, RE램 등)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오는 2022년부터 2028년까지 용인 원삼면 일대 부지에 약 135만 평 규모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순차적으로 4개의 반도체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SST-M램과 RE램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다. SST-M램은 D램보다 빠른 데이터 처 리속도와 함께 낸드플래시처럼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비휘발성을, RE램은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느리지만 낸드플래시보다 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차세대 메모리는 기존의 메모리 반도체보다 막대한 데이터를 저장·분석하기에 용이해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3]
- 2018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161조 9,150억 원이고, 에스케이하이닉스㈜는 29조 7,189억 원이였으며, 영업이익은 삼성전자㈜가 34조 8,571억 원, 에스케이하이닉스㈜는 13조 3,408억 원으로 삼성전자㈜가 월등히 높은 편이다.[4]
해외 기업
- 애플(Apple)
- 애플은 미국의 전자제품 제조회사다. 1976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론 웨인(Ronald Wayne)에 의해 창업되었고 맥북(MacBook), 아이팟(IPot),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회사다. 전자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과 라이벌 구도는 당연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기업 모두 스마트폰을 주력 아이템으로 이익을 크게 보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애플과 삼성이 경쟁하는 모습은 당연히 눈에 띠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년 동안 전쟁을 치루게 됐다. 지난 2011년 4월, 양사 특허 전쟁의 서막을 알렸던 소송이 시작됐다. 양사는 이 소송을 시작으로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대륙에서 소송전을 펼쳤다. 미국에선 애플이, 유럽에선 삼성전자㈜가 유리했다. 그러나 2014년 8월 양사는 미국 소송 2건을 남기고 나머지 소송은 철회했다. 합의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합의는 그 이후 4년이 더 필요했다. 미국 2건의 소송 중 1건은 지난 2017년 11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삼성전자㈜ 상고를 기각해 끝났다. 이 소송은 2012년 애플이 삼성전자㈜ '갤럭시넥서스'의 특허침해를 주장한 것이 출발이다. 삼성전자㈜ 역시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맞붙었다. 양사 상용특허 침해여부가 쟁점, 쌍방 침해로 결론났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약 1342억 원을, 애플은 삼성전자㈜에 약 2억 원을 배상했다. 7년 특허 전쟁 막을 내린 소송은 삼성전자㈜는 표준특허, 애플은 상용특허를 쟁점으로 삼았다. 1심은 2014년 애플의 특허침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만 애플에 약 1조 425억 원을 물어주라고 했다. 2심은 이중 약 6144억 원만 확정하고, 나머지는 다시 따져보라고 돌려보냈다. 삼성전자㈜는 결국 2015년 12월에 애플에 돈을 지급했다. 3심은 약 4474억 원을 재검토하라고 판결했다. 2심과 3심이 보낸 총 8754억 원에서 6041억 원을 인정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미리 준 돈에 추가로 1570억 원을 더 줘야하는 셈이 됐다. 판결은 배심원평결을 참조해 판사가 내린다. 미국 사법 관행을 보면 사실상 삼성전자㈜의 부담이 더 커졌다. 소송 취하는 배심원평결을 두고 판사에게 마지막 변론을 하는 평결복불복심리(LOL) 과정에서 이뤄졌다. 삼성전자㈜가 애플에게 이미 지급한 돈 이상을 주고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5]
- 소송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세계 1위가 됐다. 2011년은 스마트폰 시장 개화로 기존 일반 핸드폰 업체의 몰락이 가속했던 시절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5위권에 있던 노키아(Nokia), 모토로라(Motorola), 엘지전자㈜, 소니(SONY)는 현재 주인이 바뀌었거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흥세력으로 부상한 블랙베리(BlackBerry) 등과 2위를 두고 경쟁했다.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역설적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지명도를 높였다. '애플 대항마 = 삼성전자㈜'라는 이미지를 창출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소송 직후인 2011년 3분기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애플 분기 판매량을 역전했다. 2012년부터 세계 1위를 굳혔다. 삼성전자㈜의 경쟁자였던 블랙베리는 급격히 힘을 잃었다. 이후 시장은 현재 모습으로 재편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구도, 상위권을 노리는 중국업체로 굳어졌다. 애플은 창업주 스티브 잡스 사후 떨어진 경쟁력을 소송으로 만회한다는 비아냥을 하였다. 구글 등 대부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특허를 무기로 업계 혁신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를 카피캣이라 비판했지만 아이오에스(iOS)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장점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중저가 아이폰도 출시했다.[5]
블록체인 관련
- 삼성, 통합된 '블록체인 개발 그룹' 출범
- 삼성전자㈜가 2020년 5월 말에 내부 조직 개편을 통해 여러 부서에 나뉘어 있던 블록체인티에프(TF)를 '블록체인 개발 그룹'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개발 그룹을 통해 갤럭시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사용자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새로 꾸려지는 블록체인 개발 그룹은 삼성전자㈜의 모든 블록체인 서비스를 총괄하게 된다고 한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기술과 서비스 개발, 사업 등을 서로 다른 여러 부서가 운영해왔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를테면, 블록체인 기술은 블록체인티에프, 서비스는 블록체인 키스토어팀, 사업은 삼성페이 사업부가 담당하는 식이었다. 최근 탄생한 블록체인 개발 그룹은 이들 부서를 모은 것이라고 이들은 전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비교 덕 신생 분야여서 파편적·산발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용인됐으나, 앞으로는 통합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개발 그룹을 통해 사용자 중심의 블록체인 서비스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조직 개편을 통해 그동안 삼성이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삼성헬스'와 블록체인 서비스의 결합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2020년 5월 20일, 아이티조선(IT조선)이 삼성전자㈜의 블록체인 기술 연구 조직이 해체됐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삼성전자㈜는 공식 입장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 연구 조직이 해체됐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내부 조직 구조는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 다만,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키스토어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지갑과 댑(Dapp) 서비스를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가 블록체인 메인넷과 암호화폐를 개발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성 관계자들은 블록체인 키스토어의 암호화폐 지갑 서비스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암호화폐를 분석·연구한다는 내용이 와전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6]
- 블록체인 플랫폼 SDK 공개
- 삼성전자㈜는 올해 초 갤럭시 S10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데 이어, 2019년 10월에 미국 새너제이에서 시작하는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19(SDC19)’에서 삼성 블록체인 플랫폼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공개했다. 개발자들은 이번 SDK와 함께 쉽고 안전하게 블록체인 앱(DApp)을 개발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또 사용자는 안전하게 개인 키를 보관하는 동시에, 금융·쇼핑·게임 등 다양한 블록체인 앱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 블록체인 플랫폼 SDK의 특징은 더욱 강화된 보안 기능과 모바일 편의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뿐 아니라, 글로벌 콜드월렛 공급업체 레저(Ledger)와 연동을 통해 더 확대된 ‘개인 키’ 관리 옵션을 제공했다. 또 암호화폐 결제 기능 등을 지원해 개발자들이 쉽게 블록체인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모바일 전용 블록체인 앱 브라우저를 제공하는 등 모바일 환경에서 사용 편의성도 높였다. 블록체인 생태계 확장의 기폭제가 되었다.[7]
- 가상 지갑 '월렛(Wallet)'
- 삼성전자㈜가 미국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인 제미니(Gemini)와 파트너십을 맺고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한 블록체인 월렛 서비스를 선보인다. 삼성전자㈜ 블록체인 월렛은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지갑 서비스로 현재 갤럭시S10 시리즈와 갤럭시S20 시리즈 등 최신 플래그십 모델에 기본 탑재됐다. 이번 파트너십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400만 제미니 사용자는 제미니 모바일 앱과 삼성 블록체인 월렛을 이용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거래와 잔액 조회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제미니의 커스터디(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통한 콜드월렛 전송도 할 수 있다. 제미니는 삼성 블록체인 월렛과 파트너를 맺은 최초의 가상자산 거래소다. 한편 제미니는 영어로 쌍둥이(gemini)를 뜻하며, 실제 일란성 쌍둥이인 카메론(Cameron), 타일러(Tyler) 윙클보스(Winklevoss) 형제가 지난 2014년 설립한 거래소다. 2018년 미국 달러화와 연동 가능한 '제미니 달러'(GUSD)를 뉴욕 금융당국으로부터 판매 허가받으면서 미국 뉴욕 금융당국의 규제 승인을 통과한 최초의 스테이블코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해 뉴욕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고 비트코인캐시(BCH)를 상장한 점도 관련 업계 이슈로 작용했다. 글로벌 보험회사인 에이온(AON)과 협력해 가상자산 보험에 가입한 점과 우수한 보안성, 대량 거래가 가능한 블록트레이딩 서비스 도입 등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평가 및 비판
삼성은 대한민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직접 수출 부문에서 2000년에 312억 달러로 한국 총 직접 수출부문의 18.1%를 담당했고, 2004년에는 527억 달러 20.7%를 차지했다. 또한, 2003년 납세액은 6조 5천억 원으로, 대한민국 정부 조세 예산에서 6.3%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했다. 삼성 측은, 삼성그룹이 실제 그룹이 아니라 삼성물산에서 시작되는, 역사를 같이 하는 기업의 모임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에서 노조 없는 회사로도 알려져 있다. 삼성은 직원들의 내부 신뢰수준 향상과 노사간의 건전한 조직문화 활성화 프로그램인 지더블유피(GWP, Great Workplace) 운동을 1998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부문이 처음 도입한 뒤로 2003년부터 계열사별로 지더블유피를 도입하고 있다. 삼성화재, 삼성에스디아이, 삼성에버랜드, 삼성물산, 제일모직, 삼성네트웍스 등이 그러하다. 특히, 2006년에는 삼성전자㈜ 9개 자회사와 80개 해외법인, 130개 해외사업장으로 지더블유피를 확대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영국 인터브랜드와 미국 비즈니스위크가 공동 선정한 세계 기업 브랜드가치 평가에서 2000년 43위(52억달러), 2001년 42위(64억달러), 2002년 34위(83억달러), 2003년 25위(108억달러), 2004년 21위(125억달러), 2005년 20위(149억달러), 2015년7위(379억달러)를 기록했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등 금융 관계사 위주로 운영되어 오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P) 제도를 삼성전자㈜ 등 전 계열사로 확대하는 등 준법감시경영을 전면 도입할 전망이다.
삼성그룹 주요 인물
각주
-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삼성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C%82%BC%EC%84%B1?from=%EC%82%BC%EC%84%B1%EA%B7%B8%EB%A3%B9
- ↑ 2.0 2.1 임현석·이다희, 〈삼성 vs LG...전쟁의 시작은 언제부터?〉, 《1분》, 2019-09-27
- ↑ 3.0 3.1 양태훈 기자, 〈반도체 생태계 조성, 삼성과 SK 어떻게 다른가〉, 《지디넷코리아》, 2019-04-26
- ↑ 〈(캐치's Pick)삼성전자 VS 하이닉스〉, 《캐치》
- ↑ 5.0 5.1 유상호 기자, 〈(해설) 삼성 vs 애플, 특허소송 종결…7년 전쟁, 승자와 패자 얻은 것은?〉, 《디지털데일리》, 2018-06-28
- ↑ 박근모 기자, 〈삼성, 통합된 '블록체인 개발 그룹' 출범〉, 《코인데스크코리아》, 2020-05-25
- ↑ 〈삼성 블록체인 플랫폼 SDK 공개…‘블록체인 혁신’ 주도〉, 《삼성뉴스룸》, 2019-10-29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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