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산화수소
과산화수소(過酸化水素, Hydrogen Peroxide)는 물(H₂O)에 산소 원자가 하나 더 붙어서 만들어진 무기화합물이다. 화학식은 H₂O₂이다. 이산화 이수소라고도 한다. 가장 간단한 과산화물이자 우리 주변에서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과산화물이다. 약산성을 띄며, 보통 고농도로 존재하기 어렵다. 물에 희석해 과산화수소수로 만들어 사용한다.
개요
순수한 상태에서 옅은 파란색을 띠고 투명한 액체인 과산화수소는 물보다 점성이 약간 크며, 산소-산소 단일 결합을 갖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과산화물(peroxide)로서, 산화제, 표백제 및 소독제로 사용된다. 85 % 이상의 고농도 과산화 수소(high-test peroxide, HTP)는 활성 산소 종을 쉽게 방출시킬 수 있어 로켓 추진제로도 사용된다. 과산화 수소는 불안정하며 염기나 촉매 하에서 서서히 분해되기에 약산성 용액에 안정제를 첨가하여 보관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서 과산화 수소가 발견되며, 이를 사용하거나 분해하는 효소를 퍼옥시데이스(peroxidases)로 분류한다.
발견
1792년 훔볼트(A. von Humboldt)는 공기를 분해하는 연구 도중에 부산물로 최초의 과산화물인 과산화 바륨(BaO₂)을 합성했다. 19년 후 테나르(L. J. Thénard)는 이 화합물을 이용하여 최초로 과산화수소를 제조하였으며, 그의 합성 방법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사용되었다. 1811년에 그는 게이-뤼삭(L. Gay-Lussac)과 함께 과산화 소듐(Na₂O₂)을 합성하였다.
이 시기에 과산화물이나 그 염이 자연 염료에 대해 표백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나, 쉽게 생산하지는 못했으며, 1873년에야 독일의 베를린에 처음으로 공장이 설립되었다. 이후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전기분해(electrolysis) 방법과 안트라퀴논 공정(anthraquinone process)이 개발되었으며, 1998년 전 세계 과산화수소의 연간 생산량은 약 270만 톤에 달한다.
초창기 합성 과정에서 물과 과산화 수소를 분리하고자 하는 시도가 모두 실패하여 한동안 과산화 수소는 순수한 물질을 얻을 수 없는 불안정한 물질이라고 여겨왔다. 이것은 수용액 속에 존재하는 전이 금속 염과 같은 매우 소량의 불순물이 과산화수소의 분해를 촉진시켰기 때문이었다. 과산화수소가 발견된 지 약 80년 후인 1894년 독일의 화학자 볼펜슈타인(R. Wolffenstein)에 의해 처음으로 순수한 과산화수소가 진공 증류를 통해 얻어졌다.
구조 및 성질
과산화수소는 수소 원자 두 개가 산소-산소 단일 결합 말단에 비틀린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 비평면 분자이다. 결정성의 고체 상태에서는 수소 결합이 없는 기체 상태의 분자 구조와 크게 다르다.
과산화수소는 Hm−X−X−Hn (X = O, N, S) 결합 배열을 갖는 다양한 구조적 유사체들(analogues) 중에서 이론적으로 가장 높은 끓는점을 가지며 하이드라진(H₂N-NH₂)의 끓는점과 비숫하다고 예측된다. 유사체들 모두 인접한 원자의 비공유 전자쌍(lone pair electrons) 사이의 반발력으로 인해 비틀린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한 물질이다.
과산화수소의 끓는점은 물보다 약 50 ℃ 높은 150.2 ℃로 추정되며, 실제로 이 온도까지 가열하면 폭발 가능성이 있는 열분해(thermal decomposition)가 진행되기에, 감압 조건에서 더 낮은 온도로 안정하게 증류할 수 있다.
수용액에서 과산화수소는 물과 수소 결합을 하여 순수한 상태와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순수한 물과 순수한 과산화수소의 녹는점은 각각 0 ℃와 -0.43 ℃이나, 과산화수소와 물은 어는점 내림(freezing-point depression) 현상이 나타나는 공융 혼합물(eutectic mixture)을 형성하며, 끓는점 또한 두 물질의 끓는점의 평균인 125.1 ℃ 보다 낮은 114 ℃를 나타낸다.
반응
과산화수소는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하여(ΔHo = -98.2kJ/mol 및 ΔS = 70.5J/mol∙K) 물과 산소로 분해된다. 분해 속도는 온도, 농도 및 pH가 상승함에 따라 증가하고, 차고 희석된 산성 용액에서 가장 안정하다. 전이 금속을 비롯한 다양한 화합물에 의해서 분해가 촉진되기도 하며 생물학적으로 효소에 의해 분해될 수 있다. 과산화수소가 분해되면 산소와 열을 방출하므로, 인화성 물질에 고농도의 과산화수소가 유출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과산화수소는 pH에 의존하여 산화 및 환원 특성을 나타낸다. 산성 용액에서 과산화수소는 강한 산화제로 알려진 염소(Cl₂), 이산화 염소(ClO₂), 과망가니즈산 포타슘(KMnO₄ )보다 더 강한 산화제로 작용한다. 또한, 촉매 반응을 통해 반응성이 높은 하이드록실 라디칼(∙OH)을 생성할 수 있다.
과산화 수소는 예를 들어 싸이오에터가 설폭시화물로 산화되는 유기 화학 반응에서 산화제로 자주 사용된다.
Ph−S−CH₃ + H₂O₂ → Ph−S(O)−CH₃ + H₂O
또한, 과산화 수소는 약산으로 다양한 금속과 반응하여 하이드로과산화물이나 과산화물 염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과산화 수소는 붕사(borax, 사보론산 소듐, N₂2B₄ O₇)와 반응하여 세탁 세제의 표백제로 사용되는 과보론산 소듐(Na₂B₂O₄(OH)₄ )을 생성한다.
Na₂B₄O₇(s) + 4H₂O₂(aq) + 2NaOH(aq) → 2Na₂B₂O₄ (OH)₄(aq) + H₂O(l)
제접
예전에는 황산 용액 하에서 중황산 암모늄(NH₄HSO₄)의 전기분해로 얻어진 과황산 암모늄((NH₄)₂S₂O₈)의 가수 분해(hydrolysis)를 통해 과산화 수소를 공업적으로 생산하였다.
(NH₄)₂S₂O₈(s) + 2H₂O(l) → H₂O₂(l) + 2(NH₄)HSO₄(s)
오늘날에는 1936년에 개발되고 1939년에 특허를 취득한 안트라퀴논 공정에 의해 대부분 생산되고 있다. 이 공정은 팔라듐(Pd) 촉매의 수소화(hydrogenation) 반응에 의해 안트라퀴논이 안트라하이드로퀴논(anthrahydroquinone)으로 환원된 후 다시 자동 산화되면서 부산물인 과산화 수소와 함께 안트라퀴논을 재생시키는 반응을 이용한 것이다.
단순화된 공정 전체 반응식은 아래와 같다.
H₂(g) + O₂(g) → H₂O₂(l)
일반적으로 과산화수소는 수용액 형태로 사용된다. 소비자는 중량 대비 3~6 % 농도의 수용액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실험실 용도로는 중량 대비 약 30 % 농도의 수용액이 일반적이다. 상업적 용도로 70 %에서 98 %까지 구입할 수 있으나, 68 % 이상의 농도가 되면 과산화수소 용액이 수증기와 산소로 완전히 해리될 가능성이 있어 매우 위험하며, 특별한 저장소가 필요하다. 과산화수소는 지표수, 지하수 및 대기 중에서 물이 빛을 받거나 촉매 작용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해수, 담수, 공기 중에는 각각 0.5~14 μg/L, 1~30 μg/L, 및 0.1~1 ppb의 과산화수소가 포함되어 있다.
용도
분자 내 산소의 산화수가 -1인 데다 분자 구조도 불안정해 강한 산화력을 가지고 있어서 모발의 탈색이나 염료의 탈색에 사용된다. 쉽게 비유하자면 색소나 오염물질을 태워 버리는 거나 다름없다. 흔히 말하는 '산소계 표백제'의 주원료가 이것. 액체세제의 표백제로 들어가고 분말세제에는 고체인 과탄산 소다가 들어간다.
30% 이상 농도의 과산화수소가 피부에 닿으면 닿은 부분이 완전히 새하얗게 변하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피부 미백이 아니라, 하얀 물감처럼 완전한 하얀색으로 변한다. 과산화수소가 피부 아래의 모세혈관에 침투해 미세한 공기방울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저 정도의 과산화수소에 피부가 살짝 노출된 것은 아주 심각한 사태는 아니다. 약간 많이 따끔거리고 가려우며, 보기 흉하긴 하겠지만, 보습 크림을 살짝 발라주고 하루 정도 지나면 말끔히 원상복구된다.
표백력을 이용해 치아미백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품도 이것이다. 치과에서 진료할 때는 상당히 고농도의 과산화수소를 사용하며, 판매되는 미백치약에도 약간씩 들어있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미백 중에 이와 잇몸이 굉장히 시리다. 치아에 충치라도 있으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 다만 치과의사에게 시술을 받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과산화수소를 구해서 사용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물과 산소로 바뀌며 열을 내어 놓는 점으로 인하여 일부 엔진이나, 우주 추진 로켓의 연료 겸 추진제로도 쓰인다. 70%이상의 농도는 우주선에 사용되기도 한다. 과산화수소를 이용한 추력기는 자세 제어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V2(로켓)의 예연소실에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3~4%의 희석액은 소독액으로 사용한다. 소독액으로 사용하는 과산화수소는 피 속의 카탈레이스와 촉매 반응하여 산소 이온을 내어 놓는데, 이게 활성산소라는 물질. 세포벽을 산화시켜 파괴하여 불활성화(소독) 시킨다. 좀 많이 따갑고 아프다. 현재는 과산화수소수의 엄청난 자극성 때문에 상처 소독에는 포비돈 요오드나 클로르헥시딘을 주로 사용하고 과산화수소수는 엉겨붙은 피를 닦아내는 용도로나 쓰인다.
카탈레이스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실 산소로 호흡하는 생명체의 경우, 부산물로 자유 라디칼이 나오게 된다. 과산화수소도 이때 부산물로 생겨 DNA나 세포막 등을 마구 파괴하므로 카탈라아제 같은 효소로 분해하는 것. 면역계에서도 사용하는데, 면역계에서는 과산화수소가 자유 라디칼이란 점 때문에 세균을 만나면 면역세포에선 먼저 비타민C 같은 항산화제를 우걱우걱 해버려 세균놈이 먹을 것도 없게 만든 후, 과산화수소를 내뱉어 세균을 죽여버린다. 상처가 났거나 균이 많은 부위에 과산화수소를 한 방울 놔 보면 알 것이다. 그 맑고 투명한 액체가 거품이 생기면서 순식간에 크림 거품으로 변신한다.
곰팡이 제거나 핏물 제거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황변, 변색된 플라스틱을 다시 원래 색으로 되돌릴 때도 효과적.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목욕시킨다. 단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흠이다.
20세기 초에는 미용 목적으로 쓰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안네의 일기 내용을 보면 안네 프랑크가 은신처에서 잠자리 준비를 할 때 얼굴의 잔털을 제거하는 용도로 옥시돌을 바른다는 묘사가 실려있다.
햇빛 및 열에 의해 산소와 물로 분해되므로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하며, 반응성이 크고 분해 후에는 조연성(산소니까)을 가지게 되므로 위험한 물질과는 떨어뜨려 보관해야 한다. 고농도(36% 이상)의 과산화수소는 위험물안전관리법에 의해 제6류 위험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정수량은 300kg이다.
진한 황산과 섞어 피라냐 용액이라는 화합물을 만들 때도 쓰인다. 둘 다 강력한 산화제이고, 진한 황산은 거기에 강한 탈수력까지 갖췄기 때문에 거의 모든 유기화합물을 태워버려 이산화탄소 기체로 만들어 날려버릴 수가 있다. 물론 위험성도 배가 된다.
덧붙여, 실험실에서도 보통 30~40% 정도의 농도로 된 수용액을 사용하며, 그 이상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한데, 진한 과산화수소는 산화력이 지나치게 강력해서 유기용제와 섞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 거기다가 앞서 서술한 대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과산화수소 자체의 농도가 80% 이상이 되면 그 자체로도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
동물병원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었을 때 구토를 유도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약국에서 파는 소독용 3% 과산화 수소를 사용하며, 몸무게(kg) x 1.1(ml)의 양에 같은 양의 물을 희석해서 주사기 등을 사용해 먹이고 조금 기다리면 토하기 시작한다. 이건 응급처치니까 무사히 토해냈더라도 얼른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애초에 근처에 바로 갈 수 있는 동물병원이 있다면 그냥 개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의 경우 주의를 해야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과산화수소가 구토를 유발시키는 건 위벽과 과산화수소가 반응하여 구토가 유발되는 건데 이는 당연히 식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한마디로 식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식도 점막은 생각보다 재생이 잘 되는 조직이기에 문제가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 병원에 애완동물을 구토를 목적으로 데려가면 애완동물이 어지간히 저항하지 않는 한 카테터를 위 내까지 집어 넣은 후 투여를 할 것이다. 이는 과산화수소가 식도 내에 최대한 접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2005년에 '산소 치료'랍시고 병원에서 과산화수소를 몸에 주사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 성행했는데, 15여년이 지난 2020년에 또다시 과산화수소를 먹으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가짜뉴스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과산화수소는 렌즈 소독액으로도 쓰이는데 보관액이랑 용도를 착각하고 눈에 넣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요오드화 칼륨과 주방세제와 섞으면 일명 '코끼리 치약'(Elephant Toothpaste)이라고 알려진 대량으로 거품이 일어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요오드화칼륨은 과산화수소의 분해를 쉽게 해주는 촉매이며 세제는 산소 거품을 만들어 내는 재료이다. 유튜브 등을 보면 이 반응 실험을 대규모로 행해서 사방 천지를 거품으로 덮는 영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폭탄먼지벌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뿜는 물질의 주성분 중 하나이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