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블리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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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블리퉁주(인도네시아어: Kepulauan Bangka Belitung)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3]
목차
개요
방카블리퉁주의 면적은 16,424.23㎢이며 인구는 1,043,456명(2005)이며 주도는 팡칼피낭이다. 2000년 11월 21일에 남수마트라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방카섬과 블리퉁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민은 말레이인이며 자바인과 화교가 상당수 있다. 언어는 마인어, 영어, 중국어(민난어 or 광동어)가 있으며, 이 지역의 마인어 방언으로 방카 말레이어 및 블리퉁 말레이어가 있다. 종교는 이슬람이 다수지만, 화교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에서도 특이하게 유교도가 많다.
광물자원이 풍부한데, 특히 주석은 인도네시아에서 제1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또한 관광자원도 풍부하여 아름다운 해변과 작은 섬들을 찾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유명한 해변으로는 마트라스 비치(Matras Beach), 파라이 비치(Parai Beach), 탄중페소나 비치(Tanjung Pesona Beach), 바투베다운 비치(Batu Bedaun Beach) 등 다수가 있다.[4]
자연환경
열대우림기후 지역으로 다양한 생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빙하기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간빙기에는 분리된 섬의 특성상 유라시아 남부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생태환경과 종 구성을 보인다. 또한 인도양 방향의 산악 지대는 고산의 생태구조를 보인다. 특히 수마트라 북동 해안의 일대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탄 습지 우림(Peat Swamp forest)이 발달하여 있다. 수마트라의 산림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산림 지원의 확보와 농경지 확대를 목적으로 급격하게 파괴되었다. 현재는 원래 수준의 50% 정도 수준의 열대우림만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독특한 수마트라 섬의 생태계 전반이 위협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섬 환경으로 육지의 유사 종보다 크기가 작은 특성을 가졌던 수마트라 호랑이, 수마트라 코뿔소, 수마트라 코끼리, 오랑우탄 등의 종이 서식지를 잃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수마트라 북동 해안의 일대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탄 습지 우림(Peat Swamp forest)이 발달해 있다. 이탄 습지 우림이 전지구적 탄소 순환과 생태계 보호에 핵심적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개발지인 수마트라섬 일대에 대한 개발지를 확보하고, 쌀 수확량을 늘리고자 하는 인도네시아 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왔다. 그 이외의 산림도 목재 채취와 팜 오일 플랜테이션 개발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산림파괴는 엔소(ENSO, El Niño–Southern Oscillation) 현상과 함께 결합하여, 산불피해 빈도를 늘리고 있다. 수 년에서 수 십년 주기로 발생하는 엔소 현상은 수마트라섬에 가뭄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산림, 특히 파괴된 이탄 습지 우림의 이탄층에 화재를 유발한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과 이탄 습지층에 발생한 산불은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종종 그 빈도와 규모가 커져,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기오염을 일으켜 주변국까지 영향을 주는 연무 현상(haze)를 일으키고 있다.
고산 지대의 경우에는 다소 온도가 떨어져 온대 기후로 분류될 수 있는 지역도 있다. 강수량은 대부분 연 1,000~4,000mm 정도이며, 산세가 험한 인도양 방향의 강수가 비교적 많고, 안다만해와 자바해 연안이 다소 적다. 연평균기온은 지역에 따라 22~29℃를 보이며, 공통적으로 연교차에 비해서 일교차가 크다.[5]
역사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의 확산이 시작된 곳으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이슬람을 확산케 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서기 1250년경 아체 판수르와 라무리 왕국(Kingdoms of Fansur and Lamuri)에 도착했다. 17세기 초 아체의 술탄국은 말라카해협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하며 문화적으로 발달된 국가였다. 아체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와 그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 정부 모두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마트라 동쪽 해안에는 약 1500년경 나구르(Nagur), 아루(Aru), 파나이(Panai), 바탕기우(Batangiou) 등 여러 왕국이 있었다. 이런 왕국들은 농장 소유 기반의 한 가족으로 구성된 작은 왕국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시싱가망가라자(Sisingamangaraja) 후예들에 의해 왕국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왕국은 점차 전역의 영향권을 확대했다. 이에 16세기 북부 수마트라에는 나구르, 시싱가망가라자 왕의 통치하에 있는 바탁(Batak) 왕국, 아루 세 왕국이 있었다. 그러나 세 왕국 간의 전쟁으로 아체, 믈라카, 포르투갈, 미낭카바우 등 외부 영향이 쉽게 유입되었다. 아체의 술탄국은 동부 해안의 이슬람화에 성공했고, 파드리 전쟁의 다른 지역에서도 남부 타파눌리 왕국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세 개의 큰 왕국은 델리, 세르당, 아사한, 랑카트 술탄국, 마로파트, 링가 왕국 등 여러 개의 작은 왕국과 술탄국으로 분열되었다.
서부 수마트라는 1347년 아디탸와르만(Adityawarman)이 세운 파가루융(Pagaruyung) 왕국의 중심지였고, 이 당시 이 왕국은 힌두-불교 문화였다. 16세기에는 이 지역에 처음 온 유럽인은 1523년경에 도착한 파르망티에(Jean Parmentier) 프랑스 여행자였다. 16세기부터 인도,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와의 교역항으로 많은 상인들이 오고 갔던 무역 도시이고, 주된 무역 상품은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와 코코넛이었다. 이후 네덜란드 당국의 통치에 접어들면서 이곳에 네덜란드령 통치 부서가 설립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 원주민들과 네덜란드 고위 관료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고용된 현지화된 화인들도 이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은 현재 파당 중심부에 위치한 강가 주변에 남아있다.
인도네시아 고대사에 대표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스리비쟈야(Srivijaya) 왕국의 중심지역이 남부 수마트라이다. 이 왕국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며 해상 강국이 되었고, 동남아시아섬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음에도, 서쪽으로 3,300마일이나 떨어진 마다가스카르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스리비자야 왕국의 중심지였던 지역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스리비자야는 10세기 내내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로를 통제하였으나, 세기 말이 되자 동부 자바의 메당(Medang) 왕국이 새로운 해상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스리비자야의 지배권은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중국 송 왕조 시기,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 왕국은 산 포시(San-fo-tsi)라고 불렸고, 자바의 메당 왕국은 셰 포(She-po)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1세기 중반 스리비자야 왕국은 인도 왕국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그 이후 이슬람의 영향으로 이슬람 왕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수마트라의 가장 남쪽인 람풍주의 경우는 16세기부터 반튼 술탄 왕국(Banten Sultanate)의 영향권에 있었고, 19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에 의해 완전히 영향력이 사라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남수마트라주는 1945년까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1964년에는 람풍주, 1967년에는 븡쿨루주, 2000년에는 방카블리퉁주에서 분리되어 남수마트라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방카블리퉁주는 원래 남수마트라주의 일부였다가 2000년 11월 21일에 독립하였으므로 20년밖에 안 된 신생주다. 그러나 2022년 파푸아에서 여러 주들이 분리되어 더 이상 새로운 주도 아니다.[6]
팡칼피낭
수마트라섬 동쪽에 있는 방카블리퉁주의 주도이다. 카리마타해협에 면한 항구도시로 섬에서 산출되는 주석과 코프라·후추·생선 등을 수출한다. 그러나 바다가 얕고 곳곳에 암초가 있어서 항행은 불편하다. 주민은 대부분 화교들로 광둥 방언을 사용한다. 목각·금속세공품·직물 등의 가내공업과 선박제조업 및 원양어업이 성하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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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방카블리퉁주〉, 《위키백과》
- ↑ 〈방카블리퉁 제도〉, 《나무위키》
-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방카벨리퉁주〉,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팡칼피낭〉,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방카블리퉁주〉, 《위키백과》
- 〈방카블리퉁 제도〉, 《나무위키》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방카벨리퉁주〉,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팡칼피낭〉,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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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블리퉁주(인도네시아어: Kepulauan Bangka Belitung)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3]
개요
방카블리퉁주의 면적은 16,424.23㎢이며 인구는 1,043,456명(2005)이며 주도는 팡칼피낭이다. 2000년 11월 21일에 남수마트라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방카섬과 블리퉁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민은 말레이인이며 자바인과 화교가 상당수 있다. 언어는 마인어, 영어, 중국어(민난어 or 광동어)가 있으며, 이 지역의 마인어 방언으로 방카 말레이어 및 블리퉁 말레이어가 있다. 종교는 이슬람이 다수지만, 화교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에서도 특이하게 유교도가 많다.
광물자원이 풍부한데, 특히 주석은 인도네시아에서 제1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또한 관광자원도 풍부하여 아름다운 해변과 작은 섬들을 찾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유명한 해변으로는 마트라스 비치(Matras Beach), 파라이 비치(Parai Beach), 탄중페소나 비치(Tanjung Pesona Beach), 바투베다운 비치(Batu Bedaun Beach) 등 다수가 있다.[4]
자연환경
열대우림기후 지역으로 다양한 생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빙하기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간빙기에는 분리된 섬의 특성상 유라시아 남부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생태환경과 종 구성을 보인다. 또한 인도양 방향의 산악 지대는 고산의 생태구조를 보인다. 특히 수마트라 북동 해안의 일대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탄 습지 우림(Peat Swamp forest)이 발달하여 있다. 수마트라의 산림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산림 지원의 확보와 농경지 확대를 목적으로 급격하게 파괴되었다. 현재는 원래 수준의 50% 정도 수준의 열대우림만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독특한 수마트라 섬의 생태계 전반이 위협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섬 환경으로 육지의 유사 종보다 크기가 작은 특성을 가졌던 수마트라 호랑이, 수마트라 코뿔소, 수마트라 코끼리, 오랑우탄 등의 종이 서식지를 잃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수마트라 북동 해안의 일대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탄 습지 우림(Peat Swamp forest)이 발달해 있다. 이탄 습지 우림이 전지구적 탄소 순환과 생태계 보호에 핵심적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개발지인 수마트라섬 일대에 대한 개발지를 확보하고, 쌀 수확량을 늘리고자 하는 인도네시아 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왔다. 그 이외의 산림도 목재 채취와 팜 오일 플랜테이션 개발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산림파괴는 엔소(ENSO, El Niño–Southern Oscillation) 현상과 함께 결합하여, 산불피해 빈도를 늘리고 있다. 수 년에서 수 십년 주기로 발생하는 엔소 현상은 수마트라섬에 가뭄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산림, 특히 파괴된 이탄 습지 우림의 이탄층에 화재를 유발한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과 이탄 습지층에 발생한 산불은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종종 그 빈도와 규모가 커져,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기오염을 일으켜 주변국까지 영향을 주는 연무 현상(haze)를 일으키고 있다.
고산 지대의 경우에는 다소 온도가 떨어져 온대 기후로 분류될 수 있는 지역도 있다. 강수량은 대부분 연 1,000~4,000mm 정도이며, 산세가 험한 인도양 방향의 강수가 비교적 많고, 안다만해와 자바해 연안이 다소 적다. 연평균기온은 지역에 따라 22~29℃를 보이며, 공통적으로 연교차에 비해서 일교차가 크다.[5]
역사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의 확산이 시작된 곳으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이슬람을 확산케 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서기 1250년경 아체 판수르와 라무리 왕국(Kingdoms of Fansur and Lamuri)에 도착했다. 17세기 초 아체의 술탄국은 말라카해협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하며 문화적으로 발달된 국가였다. 아체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와 그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 정부 모두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마트라 동쪽 해안에는 약 1500년경 나구르(Nagur), 아루(Aru), 파나이(Panai), 바탕기우(Batangiou) 등 여러 왕국이 있었다. 이런 왕국들은 농장 소유 기반의 한 가족으로 구성된 작은 왕국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시싱가망가라자(Sisingamangaraja) 후예들에 의해 왕국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왕국은 점차 전역의 영향권을 확대했다. 이에 16세기 북부 수마트라에는 나구르, 시싱가망가라자 왕의 통치하에 있는 바탁(Batak) 왕국, 아루 세 왕국이 있었다. 그러나 세 왕국 간의 전쟁으로 아체, 믈라카, 포르투갈, 미낭카바우 등 외부 영향이 쉽게 유입되었다. 아체의 술탄국은 동부 해안의 이슬람화에 성공했고, 파드리 전쟁의 다른 지역에서도 남부 타파눌리 왕국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세 개의 큰 왕국은 델리, 세르당, 아사한, 랑카트 술탄국, 마로파트, 링가 왕국 등 여러 개의 작은 왕국과 술탄국으로 분열되었다.
서부 수마트라는 1347년 아디탸와르만(Adityawarman)이 세운 파가루융(Pagaruyung) 왕국의 중심지였고, 이 당시 이 왕국은 힌두-불교 문화였다. 16세기에는 이 지역에 처음 온 유럽인은 1523년경에 도착한 파르망티에(Jean Parmentier) 프랑스 여행자였다. 16세기부터 인도,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와의 교역항으로 많은 상인들이 오고 갔던 무역 도시이고, 주된 무역 상품은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와 코코넛이었다. 이후 네덜란드 당국의 통치에 접어들면서 이곳에 네덜란드령 통치 부서가 설립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 원주민들과 네덜란드 고위 관료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고용된 현지화된 화인들도 이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은 현재 파당 중심부에 위치한 강가 주변에 남아있다.
인도네시아 고대사에 대표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스리비쟈야(Srivijaya) 왕국의 중심지역이 남부 수마트라이다. 이 왕국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며 해상 강국이 되었고, 동남아시아섬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음에도, 서쪽으로 3,300마일이나 떨어진 마다가스카르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스리비자야 왕국의 중심지였던 지역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스리비자야는 10세기 내내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로를 통제하였으나, 세기 말이 되자 동부 자바의 메당(Medang) 왕국이 새로운 해상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스리비자야의 지배권은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중국 송 왕조 시기,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 왕국은 산 포시(San-fo-tsi)라고 불렸고, 자바의 메당 왕국은 셰 포(She-po)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1세기 중반 스리비자야 왕국은 인도 왕국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그 이후 이슬람의 영향으로 이슬람 왕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수마트라의 가장 남쪽인 람풍주의 경우는 16세기부터 반튼 술탄 왕국(Banten Sultanate)의 영향권에 있었고, 19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에 의해 완전히 영향력이 사라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남수마트라주는 1945년까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1964년에는 람풍주, 1967년에는 븡쿨루주, 2000년에는 방카블리퉁주에서 분리되어 남수마트라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방카블리퉁주는 원래 남수마트라주의 일부였다가 2000년 11월 21일에 독립하였으므로 20년밖에 안 된 신생주다. 그러나 2022년 파푸아에서 여러 주들이 분리되어 더 이상 새로운 주도 아니다.[6]
팡칼피낭
수마트라섬 동쪽에 있는 방카블리퉁주의 주도이다. 카리마타해협에 면한 항구도시로 섬에서 산출되는 주석과 코프라·후추·생선 등을 수출한다. 그러나 바다가 얕고 곳곳에 암초가 있어서 항행은 불편하다. 주민은 대부분 화교들로 광둥 방언을 사용한다. 목각·금속세공품·직물 등의 가내공업과 선박제조업 및 원양어업이 성하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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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방카블리퉁주〉, 《위키백과》
- ↑ 〈방카블리퉁 제도〉, 《나무위키》
-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방카벨리퉁주〉,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팡칼피낭〉,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방카블리퉁주〉, 《위키백과》
- 〈방카블리퉁 제도〉, 《나무위키》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방카벨리퉁주〉,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수마트라섬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팡칼피낭〉,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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