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술라웨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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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술라웨시주(인도네시아어: Provinsi Sulawesi Tengah)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중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개요[편집]
중앙술라웨시주의 면적은 68,089.83㎢이며 인구는 2,633,402명(2010)이며 주도는 팔루이다. 1964년 4월 13일에 북술라웨시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북쪽으로는 고론탈로주, 남쪽으로는 남술라웨시주, 동남술라웨시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말루쿠 제도, 서쪽으로는 마카사르 해협과 접한다.
중앙술라웨시주는 화산 폭발과 지진 등 자연 재해의 발생 위험도가 섬에서 비교적 높고, 상대적으로 남술라웨시주는 안전한 편이지만 절대적 안전지대라고는 하기 어렵다.
중부술라웨시주의 주도는 팔루강을 끼고 발달한 술라웨시의 제3 도시이며, 니켈을 비롯해 아연, 납, 금, 은, 구리, 크롬, 철, 망간 등 각종 광물의 보고인 중앙술라웨시주의 중심지로 인구 외에 총 GRDP 기준으로도 마카사르, 마나도 다음 술라웨시에서 세 번째이다.[3]
자연환경[편집]
순다 대륙붕(Sunda Shelf)으로 연결되어 있는 서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섬 및 반도들과는 달리, 술라웨시섬은 이들과 가까운 서쪽의 마카사르 해협은 다소 깊이가 깊어 최후 빙기(LGM, Last Glacial Maximum)에도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남쪽의 오세아니아 대륙과도 연결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술라웨시는 북부의 필리핀과 주변의 말루쿠 재도, 소순다 제도와 함께 지형, 지질, 생태적으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가 혼합된 혹은 중간 정도의 특성을 보인다. 이 생물지리학적 점이지대를, 다윈과 함께 진화론의 발명자이자 이 지역에 대한 조사로 널리 알려진 생물지리학자인 알프레드 워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의 이름을 따 '월리시아(Wallacea)'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중 일 최고기온은 30~32℃, 일 최저기온은 23~24℃정도 수준이며, 비가 얼마나 내리느냐, 그리고 얼마나 고산지대에 있는지에 따라 다소 달라진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술라웨시의 대부분은 열대우림기후(Af)로 구분되며, 남부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건조 지대의 영향으로 다소 강수가 적은 열대계절풍기후(Am)를 나타낸다. 중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다소 서늘한 온대기후(Cfb 또는 Cfc)가 나타나기도 한다. 섬의 대부분이 남반구인 만큼 적도수렴대(ITCZ, 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가 북반구로 이동하는 6~8월 주변이 건기이고, 반대로 적도수렴대가 남반구로 이동하는 12~2월과 그 주변이 우기다. 열대계절풍기후를 대표하는 남부 술라웨시의 중심지인 마카사르의 연 강수량은 3,086mm이며, 우기가 한창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월 500mm가 넘는 비가 오는 반면, 가장 건조한 8월에는 15mm정도의 강수량만을 기록한다.[4]
역사[편집]
술라웨시 지역에 언제 유력한 토착 정치체가 등장했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각 지역마다 역사 기록 이전을 다루는 구술사 채록이 있으며, 기원후 첫 번째 천년기에 창건되었다는 전승을 가진 국가들도 있다. 그러나 기원후 첫 번째 천년기에 성립한 체계를 갖춘 국가가 기원후 두 번째 천년기까지 이어졌다는 물증은 2021년 현재 아직 확실한 것이 없다.
인도네시아 군도의 다른 지역들처럼 불교(및 아마도 힌두교)가 기원후 첫 번째 천년기, 그것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술라웨시로 전래되었음은 알 수 있다. 2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불상이 서술라웨시 시켄뎅(Sikendeng) 지역에서 1921년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기원후 10~11세기에 제작된 소형 청동 불상 2점도 남술라웨시 본토하루(Bontoharu) 지역에서 1974년 발굴되었다. 이 불상 2점은 보다 정교한 자바 지역의 불상을 모방하여 남술라웨시 지역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째 천년기 초기, 적어도 남술라웨시 지역은 군도 무역 체제에 통합되어 여러 지역 국가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라웨시 지역에 관해 최초로 확인되는 신빙성 있는 문헌 기록은 자바에서 기록된 마자파힛 제국 시대의 역사적 서사시 《나가라크르타가마》(1365)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14세기 중반 당시 남술라웨시 지역에는 반타엥(Bantaeng), 루우(Luwu), 우다(Uda, 와조 지역으로 추정) 등의 지역 국가들이 있었다. 남술라웨시 지역에서는 이후 마카사르어와 부기스어로 된 근세 연대기로도 약 14~15세기부터 각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중부를 중심으로 산지가 많은 술라웨시에서는 많은 전통 국가가 파편화되어 독립적으로 발달했지만, 비교적 평야가 많고 자연 환경이 안정적인 남술라웨시에서는 대규모 국가가 출현할 수 있었다. 남술라웨시에 존재한 주요 국가는 마카사르인의 고와 술탄국과 부기스인의 루우 술탄국, 보네 술탄국, 와조 왕국이 있다.
이 두 민족은 남술라웨시의 정치에서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핵심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이상의 지형 지도를 보면 남술라웨시 남부 반도를 동서로 양분하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산지가 있는데, 이 산지 좌측은 마카사르인의 영역(고와/탈로 왕국), 우측은 부기스인의 영역(보네/와조/소펭 왕국)으로 산지가 양 민족 간의 자연 경계가 되었다. 술라웨시 최고봉 라티모종산을 중심으로 중부의 산지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동북쪽으로는 다시 산지를 일부 영역으로 포괄한 루우 왕국의 영역이 펼쳐졌다. 남술라웨시의 역사는 이하에서 따로 상세히 서술한다.
서술라웨시 지역에는 만다르인(Mandar)이 16세기에 술라웨시 서부에 세운 발라니파 왕국(Kerajaan Balanipa) 등 다수의 군소 왕국이, 중부술라웨시(술라웨시 중북부) 지역에는 바나와 왕국(Kerajaan Banawa), 팔루 왕국(Kerajaan Palu) 등 다수의 군소 왕국이, 동남술라웨시 지역에는 코나웨 왕국(Kerajaan Konawe, 15세기–1916, 톨라키어 등 사용), 부톤 술탄국(Kesultanan Buton, 1332–1960, 월리오어, 찌아찌아어, 투캉브시어 등 사용) 등 다수의 군소 왕국이 있었으나 고와 술탄국의 전성기에 고와 술탄국에 이 지역들이 복속되었던 적이 있다. 그 밖에 술라웨시 남부와 서부에서 산간 지방에 거주하는 토라자인은 남술라웨시 저지대 국가들과 서술라웨시 만다르인 국가들에 영향을 받았지만 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를 거쳐 지역은 모두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흡수되었다.
술라웨시섬 북동부의 미나하사 반도는 고론탈로(Gorontalo)주(주요 주민은 고론탈로인, 오늘날에는 이슬람교 우세 지역)와 북술라웨시주(주요 주민은 미나하사인, 오늘날에는 기독교 우세 지역)로 나뉘는데, 이 지역은 다른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지역과 달리 토착민이 필리핀어군에 속하는 언어들을 사용하며, 역사적으로도 타 술라웨시 지역과는 이질적인 곳이다. 이 지역에도 수많은 토착 국가들이 있었고, 16세기에는 트르나테 술탄국과 스페인 영향권에 속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세력이 진입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세력을 축출하였고, 이후 17세기 후반부터 동부의 미나하사 지역은 마나도를 중심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서부의 고론탈로 지역도 19세기 전반부터 네덜란드의 보호령이 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남술라웨시 원정(1905)으로 1905년까지 술라웨시 주요 지역 전체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완전히 통합되어 식민 지배 체제가 사실상 완성되었다. 식민 치하에서는 마카사르와 마나도를 중심으로 근대적 제도와 도로, 병원, 학교 등 근대적 기반 시설이 도입되었다. 마나도는 기독교도 인구가 많고 유럽화된 곳으로 식민 정부는 마나도를 암본과 함께 토착민의 동화가 특히 잘 이루어진 곳으로 평가했다. 마카사르는 동인도 동부(술라웨시, 소순다 열도, 말루쿠 제도, 서뉴기니) 최대의 도시이자, 자바나 수마트라의 대도시에 견줄 만한 동부 유일의 대도시로 마나도와 함께 근대 술라웨시를 대표했다. 이 시기 마카사르에서 네덜란드식 교육을 받고 사범학교를 졸업한 토착민 작곡가 와게 루돌프 수프라트만(Wage Rudolf Supratman)은 1920년 마카사르에서 동인도 최초의 재즈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고, 1924년 인도네시아 국가 위대한 인도네시아를 작곡 및 작사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일본 제국이 마나도 전투(1942년 1월 11~12일), 큰다리 전투(1942년 1월 24일), 자바 해전 등에서 승리하고 술라웨시 전역을 점령했다. 이 가운데 마나도 전투는 일본 낙하산 부대가 처음 실전 투입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이 패전하고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때 남술라웨시에서는 1945~1946년 독립파와 네덜란드군 간 전투가 벌어졌다. 열세였던 독립군은 초기 국면 이후로는 게릴라전에 의존했고, 여기에 골머리를 앓던 네덜란드군은 이를 소탕하기 위해 라이몬트 베스테를링(Raymond Westerling)이 이끄는 특공대를 투입해 게릴라로 지목한 자를 잔혹하게 즉결 처형하면서 1,500명 이상의 인도네시아인을 사살하며 독립군을 진압했다.
식민 정부는 독립군을 진압하면서 동시에 원활한 통제를 위해 술라웨시를 포함하는 동인도 동부 지역(서뉴기니 제외)을 1946년 12월 마카사르를 수도로 하는 동인도네시아 자치국으로 독립시켰다. 동인도네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독립전쟁이 끝나고 인도네시아 합중공화국이 수립되자 합중공화국의 구성국으로 가입해 실질적으로 독립했다. 합중공화국 체제의 동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의 통합을 지지하는 통합파와 연방 체제 유지를 희망하는 자치파가 의견 대립을 보였다. 1950년 2월 동인도네시아 총선에서 통합파가 승리했고, 자치파는 반발하며 동인도네시아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술라웨시에서는 특히 1950년 4월 자치파의 마카사르 반란이 일어났지만 오래 못 가 군사적으로 진압되었다. 이후 1950년 8월 17일 동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통합되어 술라웨시는 단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각 주로 나뉘어 오늘날에 이른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술라웨시와 말루쿠에서는 알렉스 카윌라랑(Alex Kawilarang) 대령(앞서 공화국 편에서 마카사르 반란을 진압한 인물) 등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공화국 정치의 자바 중심주의에 반발하는 지역주의적 보편투쟁헌장(Permesta, 프르메스타, 뻐르메스타) 운동이 벌어졌다. 이 운동의 참가자들은 자바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정치권이 지역의 개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술라웨시 등 동부 지역을 자원 공급처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들은 지방 자치의 확대와 중앙 예산을 보다 많이 지역 개발에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 1957년 3월 운동이 시작될 때 중심지는 남술라웨시 마카사르였지만, 1957년 6월 남술라웨시인들과 북술라웨시인들 사이 내부 대립이 벌어져 운동의 중심지는 북술라웨시 마나도로 옮겨 갔다.
1957년 내내 Permesta 운동과 자카르타 정부 사이에 꾸준한 협상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Permesta 운동은 1958년 2월부터 같은 시기에 지역주의적, 반 자바 중심주의적 반란을 일으킨 수마트라의 인도네시아 공화국 혁명정부(PRRI)와 연대했다. 이렇게 되자 중앙정부는 Permesta에 평화적으로 대응하기를 포기하고, 군사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저항은 거셌지만 동원 규모의 차이는 절대적이었고, 1958년 6월 말에 마나도가 정부군에 떨어졌다. 이어 7월에 북술라웨시 제2의 도시 톤다노가, 8월에는 토모혼이 함락되었다. 반정부 게릴라전이 그 뒤에도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결국 1961년까지 잔존 반군 세력이 협상을 거쳐 정부군에 모두 항복해 반란은 진압되었다.
Permesta 반란 가담자에 대한 대통령 수카르노의 처리는 매우 유화적이어서, 1961년 반군 항복 후 알렉스 카윌라랑 등 많은 Permesta 반군은 그대로 1961년 6월 22일 대통령령으로 처벌 없이 사면되어 민간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반란 전 특수부대(Kopassus)를 창설하는 등 인도네시아군에 혁혁한 공헌을 했던 알렉스 카윌라랑은 비록 정규군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재향군인회에서 잘 대접받으며 자카르타 경마 사업에 참여하는 등으로 여생을 보내다 1999년(사망 1년 전) 특수부대의 명예 장교로 복권되었다.
중앙술라웨시 포소(Kabupaten Poso) 지역(위 지도 붉은색 영역)에서 1998년 1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유혈 분쟁이 발생해 1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만 명의 지역 내 난민이 발생했다.
분쟁의 직접적 도화선은 1998년 말 무슬림 소녀가 기독교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이후 격분한 일부 무슬림들이 기독교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기독교도들도 이에 반격하면서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러나 분쟁의 근본적 원인은 보다 복잡하다. 원래 이 지역은 고지대에 거주하는 기독교도 토착민들이 인구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지역 토착 무슬림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낮은 지역으로 이주하기를 장려하는 정부 정책이 펼쳐지며 저지대 마을과 해안 지역에 꾸준히 타지에서 온 무슬림 이주민이 유입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남술라웨시 지역에서 무슬림 부기스인 등이 술라웨시 내 각지로 이주하는 흐름이 있어 왔다. 이로 인해 1990년대에는 인구 구성이 역전되어 지역에서 무슬림이 기독교도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1998년 당시 인도네시아 사회는 수하르토 퇴진 전후 정치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어 주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특히 포소 지역에서는 경제적, 정치적 이권이 점점 무슬림 이주민에게 넘어가고 있어 지역의 토착 기독교도가 반발하고 있던 차였다.
초기 분쟁은 무슬림 부기스인들과 개신교도 파모나(Pamona)인들 사이에 벌어졌지만, 분쟁이 확대되며 종교를 경계로 지역의 다양한 무슬림, 기독교도 종족 집단이 서로를 공격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천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며 3년간 이어진 분쟁은 정치인 유숩 칼라(Jusuf Kalla)의 중재로 2001년 말 두 종교 집단 사이에 남술라웨시 말리노(Malino)에서 평화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어 평화를 위한 '말리노 선언'이 채택되어 종결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2001년 말 이후에도 2000년대 포소 지역에서는 이따금 소규모 종교 분쟁이 벌어졌다. 2010년대에는 ISIL과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중앙술라웨시에서 일으킨 소요에 포소 지역이 휘말리기도 했다. ISIL에 충성을 맹세한 소규모 극단주의 단체 동인도네시아 무자히딘(Mujahidin Indonesia Timur)이 종교 간 갈등이 첨예한 포소 지역을 본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것이다. 이 테러 단체는 2016년부터 개시된 인도네시아군의 강력한 진압 작전인 마다고 라야(Madago Raya) 작전으로 2022년 9월까지 51명이 사살되고 19명이 항복하거나 체포되어 완전히 소멸했다.
교통[편집]
술탄 하사누딘 국제공항[편집]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마카사르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12km 거리에 위치한다. 인도네시아 공군과 시설을 공유하여 상업·군사용으로 사용되며 술라웨시섬 남부로의 주요 관문이다. 네덜란드 점령기인 1935년 카디엥 테르방 비행장(Kadieng Terbang Field)으로 개항했다. 1942년 한 차례의 개칭을 거쳐 1985년 17세기 고와왕국의 16대 술탄인 술탄 하사누딘(Sultan Hasanuddin, 1631–1670)의 이름에서 따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2008년 8월 20일 신 여객 터미널을 개관하였으며, 2010년 1월 3,100m 길이의 제2활주로를 완공하였다. 공항 코드는 UPG(IATA), WAAA(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국제선 구역과 국내선 구역의 면적은 각각 3,815㎡, 47,189㎡이다. 활주로는 3,100mx45m, 2,500mx45m 크기로 총 2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는 에어아시아(AirAsia)·수리위자바항공(Sriwijaya Air)·바틱에어(Batik Air)·씨티링크(CitiLink)·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윙스에어(Wings Air)·라이언항공(Lion Air) 등 20여개사가 있다. 국제선은 정기편으로 중국 상하이(上海)·톈진(天津),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싱가포르(Singapore)의 총 3개국 4개 도시로의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국내선은 세마랑(Semarang)·티미카(Timika)·요그야카르타(Yogyakarta)·마나도(Manado)·마삼바(Masamba)·자야푸라(Jayapura)·루왁(Luwuk)·발리섬 덴파사르(Denpasar)·반둥(Bandung)·자카르타(Jakarta)·수라바야(Surabaya)·타후나(Tahuna)·말랑(Malang)·와카토비(Wakatobi)·포소(Poso)·메라우케(Merauke)·소롱(Sorong)·팔루(Palu)·테르나테섬(Ternate)·발릭파판(Balikpapan) 등 20여개 도시로의 직항 노선이 있다. 대중 교통편으로는 담리(Damri)사의 셔틀버스가 공항과 마카사르 시내를 연결한다.[5]
팔루[편집]
팔루는 중앙술라웨시주의 주도이자 주 최대 도시로 팔루강 하구에 좁고 긴 만(Bay)의 입구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산등성이 사이에 감춰진 듯한 장소로 기후가 매우 건조하다.
2004년 12월 이슬람교도로 보이는 무장괴한들이 이 도시의 교회를 습격하여 예배 중이던 기독교도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목사를 숨지게 하는 등 2000년 이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종교적 갈등이 심각하여 종종 충돌을 빚어왔다. 2005년 1월에는 이 일대에서 강도 6.2의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고, 모든 저지대 주민들이 높은 언덕이나 산 등 고지대로 피난을 가서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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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중앙술라웨시주〉, 《위키백과》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술라웨시섬〉, 《나무위키》
- 〈두산백과: 술라웨시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술탄 하사누딘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팔루〉,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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