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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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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락주(말레이어: Perak)는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13개 주의 하나이다. [1][2]

개요

페락주의 면적은 21,035㎢이며 인구는 2,258,428명(2010년 기준)이며 주도는 이포이다. 주의 수도는 이포흐이며 예전부터 주석 채굴지로 알려졌다(후에 금속 가격 폭락으로 주의 경계에 일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포흐가 행정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왕실 수도는 쿠알르캉사르이며 이곳에 왕궁이 존재한다. 말레이인의 전통적 거주지로서 술탄이 통치하고 있으며, 화교(華僑)도 많이 살고 있다.

북쪽으로는 크다주와 태국 얄라주, 북서쪽으로는 피낭주, 동쪽으로는 클란탄주파항주, 남쪽으로는 슬랑오르주, 서쪽으로는 믈라카 해협과 인접해 있다.

주의 공식 명칭인 페락 다룰 리주안(ڨيراق دار الرّضوان)이며, 뜻은 "은혜의 집 페락"이다. "페락"은 말레이어로 은을 뜻하며, 주석의 색이 은색이었다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89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충적 유적물이었던 페락에는 대영제국의 왕실의 보석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며, 믈라크 술탄국의 경리(bendahara)였던 툰 페락의 이름을 땄다는 주장에서부터 "은처럼 빛나는 물고기의 빛"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룰 리주안"은 아랍어 존칭이며, "은혜의 집" 또는 "땅"을 뜻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네 번째로 큰 주이고, 서말레이시아에서는 파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주. 수도권인 슬랑오르와 인접해 있어 쿠알라룸푸르의 막강한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느그리슴빌란에 비하면 다소 약하며 오히려 쿠알라룸푸르와 피낭 사이에 끼어있어서 그런지 이들에 비하면 좀 무시당하는 신세이다. 다만 느그리슴빌란의 경우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개항으로 더 발전하게 된 것이며, 이전에는 그쪽도 많이 낙후된 편이었다.

라트의 캄펑의 개구장이는 이 주 킨타 계곡에 있는 시골 고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도시의 개구쟁이는 도시 이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현대 말레이시아에서 페락 주는 캄펑 시리즈로 유명하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 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두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뉘는데 11개의 주와 2개의 연방 직할구가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있고 2개의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가 동말레이시아에 있다. 각 주는 시 또는 구역으로 나뉘며, 또다시 소구역(mukim)으로 나뉜다. 사바와 사라왁의 구역들은 분할에 따라 묶인다.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던 당시 총 14개의 주만 있었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당초 연방 직할구는 없었으나, 1974년 쿠알라룸푸르가 슬랑오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시작으로 생겼으며 이후 푸트라자야와 라부안이 신설되었다.

주의 관할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둘 다인데, 각각 다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연방 직할구는 연방 정부가 직접 관할한다. 비록 자치법령의 몸체가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제정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지만, 시의회, 구의회, 지방의회 등 하위 관할은 각 지역이 맡는다. 연방 헌법은 연방 직할구 외의 지역 관할을 각 주의 전담관할로 하지만, 실제로는 연방 정부가 각 지역의 부의 내정에 간섭한다. 총 144개의 지역의회가 있는데, 11개는 시의회, 33개는 지방의회, 97개는 구의회이다.

13개의 주 모두 역사 속의 말레이 왕조를 바탕으로 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주 11개 중 9개는 말레이 주(또는 이슬람 주)라 하여 고유의 왕실을 두고 있다. 국가원수인 양디-퍼르투안 아공(국왕)은 5년마다 이 9개의 주의 지도자(술탄)가 번갈아가며 선출한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왕은 군주제를 시행하지 않는 주에서 각 주수상과의 합의를 거쳐 4년간 업무를 수행할 정부 수반을 임명한다. 각 주에는 주의회로 알려진 단원제 의회가 존재하며, 나름의 주 헌법을 작성한다. [3][4]

자연환경

동·북·서의 3방향을 산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사이를 페라크강(江)이 흐른다. 동쪽 경계에는 말레이 반도의 척량산맥(脊梁山脈)이 뻗어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

역사

전설에 따르면 페락의 북동부에 강그 느가르(Gangga Negara)라고 불리는 인도-말레이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선사시대부터 페락에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증명한다.

릉공 지역의 코트탐판은 구석기 시대에 말라야가 어땠는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곳이다. 기원전 40만년부터 기원전 8000년에 이르기까지 페락 주는 일부 진화를 이루었다. 호아빈흐 시대와 신석기, 철기 등을 겪었으며, 이 시대에 관련된 고대 공예품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 뒤로는 힌두교/불교 시대로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 말라야의 기타 지역도 이러한 일들을 겪었으리라 추정된다.

사실은 말레이시아에서 나름 존재감 있는 주였다. 15세기 믈라카 술탄국의 일원이었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공격을 실컷 받던 곳의 하나이긴 했다. 페락의 근대 역사는 믈라크 술탄국의 몰락 후에 시작된다. 무자파르 샤흐 왕(믈라크의 마지막 술탄 마흐무드 샤흐의 장남)은 1511년 포르투갈의 침략을 피해 도주했으며 1528년 페락 강 부근에 그만의 왕국을 건국했다. 주석의 매장층이란 점 때문에 발전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며, 이 때문에 외세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산업

이곳은 19세기까지 광업으로 번영하던 곳이었다. 여기서 은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 주의 이름인 '페락'이 말레이어로 '은'을 뜻하는 단어일 정도. 그러나 중국인 광부들이 쿠알라룸푸르와 슬랑오르에서 광산을 발견하는 바람에 몰락해 버린 것. 그나마 완전히 유령도시가 되지는 않았고 그럭저럭 뜨긴 했지만 그 후로 인지도와 영향력이 급감해서 상대적으로 파묻히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주이며, 특히 킨타 계곡은 주석의 채굴로 유명하다. 그 밖에 고무·쌀·코코넛 등이 산출된다.

교육

툰쿠압둘라만대학교

툰쿠압둘라만대학교(UTAR)는 말레이시아 셀란고르주 순가이롱과 페락주 캄파르 등 2곳에 캠퍼스가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2002년 8개 학위과정으로 출범한 이 대학교는 경영학과, 공학, 수학, 창작산업, 디자인, 사회과학, 교육, 의학, 중국학 등의 분야에서 60개 이상의 학사과정, 31개의 석사과정, 12개의 박사과정을 운영한다. 중국학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전 과정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

툰쿠압둘라만대학교이 배출한 7만 9,000명이 넘는 졸업생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신생대학으로서 단기간에 교육과 연구에서 말레이시아의 명문대학으로 부상했다.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801-1000위권, 아시아 174위를 기록했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1835위, 아시아 716위, 말레이시아 대학 중 13위로 평가됐다.[5]

술탄이드리스교육대학교

술탄이드리스교육대학교는 말레이시아 페락주의 중소도시 탄종말림에 있는 공립 교육특화 대학교이다. 1922년 11월 29일 '술탄이드리스 교육대학(Sultan Idris Training College, SITC)'으로 처음 개교했다. 말레이시아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으로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의 근대 지식인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2개 캠퍼스에 9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801-1000위권, 아시아 대학 가운데 182위를 기록했다.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세계 801-1000위권, 아시아 대학 가운데 168위로 평가됐다.

이 대학교의 동문 가운데 대표적인 말레이인 졸업생으로는 근대 말레이어를 정리한 학자 펜데타 자바와 말레이 좌파 지도자 이브라힘 야콥, 말레이시아 총리를 지낸 자파르 바바 등이 있다. 브루나이인 졸업생으로는 브루나이 인민당의 창건자 살레흐와 브루나이 총리를 지낸 무하마드 유소프 라힘과 마르살 마운, 브루나이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자밀 우마르 등이 있다.[6]

렝공 계곡 고고학 유산

렝공 계곡 고고학 유산은 말레이시아 페락주에 있는 고대 유적. 구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노천 유적과 동굴 유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말레이시아 북서부의 페라크주에 흐르는 페라크강을 따라 형성된 2곳의 고대 유적 밀집지역을 가리킨다. 페라크강 기슭과 고대 하천의 자갈 하상(河床)에 구석기시대의 석기 작업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노천 유적과 동굴 유적을 간직한 곳으로, 아프리카 대륙 이외의 지역에서 발굴된 고대인의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자 단일 지역에 고대인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이기도 하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된 뒤 2012년 3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실사 평가 보고서를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같은 해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36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말레이시아의 4번째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되었다.

2곳의 밀집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고고학 유산의 면적은 399ha이며, 주변의 완충지역 면적은 1787ha에 이른다. 페라크강 북쪽 굽이에 있는 제1군 유적은 부킷 부누(Bukit Bunuh)와 코타 탐판(Kota Tampan)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킷 부누에는 구석기시대의 도구가 보존되어 있는데, 여기서 발견된 183만 년 전의 손도끼는 동남아시아에 거주하였던 초기 인류가 만든 도구로서 아프리카 대륙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손도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코타 탐판의 초기 구석기시대 작업장 유적에도 수많은 도구가 남아 있다.

제1군의 북쪽에 있는 제2군 유적은 부킷 자바(Bukit Jawa)·부킷 케팔라 가야(Bukit Kepala Gajah)·구눙 룬투 동굴(Gua Gunung Runtuh)·카양 동굴(Gua Kajang)·텔루크 켈라와르 동굴(Gua Teluk Kelawar)·하리마우 동굴(Gua Harimau)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킷 자바에는 2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의 작업장이 남아 있다. 6㎢에 이르는 부킷 케팔라 가야의 거대한 카르스트 노두(露頭)에는 20개가 넘는 동굴이 있는데, 이 가운데 구눙 룬투 동굴과 텔루크 텔라와르 동굴 그리고 카양 동굴 등 3곳에서 선사시대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특히 구눙 룬투 동굴에서 발견된 페라크맨(Perak Man)은 1만 120년 전의 홍적세 말기와 홀로세 초기에 동남아시아 대륙과 인도네시아 군도 서부에 거주하던 오스트랄로이드(Australoid)로서 동남아시시아에서 발견된 인간의 골격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의 고고학적 유물은 183만년 전부터 1700년 전 사이의 구석기 시대뿐 아니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거주지를 보여주는 이례적 증거들로서 렝공 계곡 전역에 걸쳐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물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半) 정착생활을 한 인류가 상당히 많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유적들은 초기 인류 이동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지질학적으로는 고대 하천의 자갈 하상과 운석의 영향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7]

지도

동영상

각주

  1. 페락주〉, 《위키백과》
  2. 페락〉, 《나무위키》
  3. 말레이시아〉, 《위키백과》
  4. 두산백과: 페라크주〉, 《네이버 지식백과》
  5. 세계의 대학: 툰쿠압둘라만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6. 세계의 대학: 술탄이드리스교육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7. 두산백과: 렝공 계곡 고고학 유산〉,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동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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