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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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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위치

꺼야주(버마어: ကယားပြည်နယ)는 미얀마 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개요[편집]

꺼야주의 면적은 11,670㎢이며 인구는 259,000명이며 주도는 로이코이다. 북쪽으로 샨주, 동쪽으로 태국매홍손주, 남쪽과 서쪽으로 꺼인주와 접한다.

인류학자들은 꺼야주의 토착민을 7개에서 10개의 민족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북부에는 샨족, 인타족, 버마족이, 주변의 구릉에는 빠오족이 살고 있다. 분명히 꺼야주의 민족은 복잡한 문제이고 이것이 현재의 정치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1983년에 유엔에 의해 수행된 인구 조사에 따르면 꺼야족은 56.12%, 버마족이 17.58%, 샨족이 16.66%, 꺼인족이 6.45%, 혼혈이 2.08%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의 행정 구역은 크게 7개의 삐내(버마어: ပြည်နယ် 삐내)와 7개의 따잉데따찌(버마어: တိုင်းဒေသကြီး 따잉 데따 찌)로 나뉜다. 도의 이름은 에야워디도와 떠닝따이도를 제외하고는 도의 소재지의 이름이 도의 이름이 되었다. 또한 도와 주는 민족 간의 경계가 되어 도는 버마족이 다수를 이루는 반면, 주는 소수 민족이 다수를 이룬다. 도와 주의 하위 행정 구역으로는 군(버마어: ခရိုင် 커야잉)이 있다.[3]

역사[편집]

버마족 중심의 정치체제는 서기 849년 무렵 중국 윈난성을 통해 남하하기 시작한 이들이 건국한 '초기 바간 왕조'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다. 하지만 바간 왕조 이전에도 이라와디강 북부에는 버마족 이전에 중국 국경을 통해 건너온 퓨(Pyu) 왕국과 남쪽에는 몽족의 도시국가들이 존재해왔다. 특히 퓨족의 도시왕국이 대개 이라와디강 평원의 주인공으로 기원 전후부터 7세기까지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고학적으로 뚜렷하게 확인되는 이 고대왕국들은 평야에 높은 성을 쌓고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된다.

이후 미얀마는 크게 3갈래의 방향으로 나뉘어 발전과 통합을 반복하게 된다. 우선 이라와디강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의 버마족 왕국(바간 왕조→퉁구 왕조→꽁바웅 왕조), 동북부 산악지대의 샨족 왕국(아바→잉와 왕조), 그리고 남쪽 해안가의 몽족 왕국(따통→한따와디 왕조)이 그 세 가지 미얀마의 원천이 된다. 이들은 상호 교역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며 현재의 미얀마로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거에는 주로 버마족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였지만 연방체제가 자리를 잡은 이후엔 이들 3갈래(평야, 해안가, 산악지대) 지리적 특성과 왕조가 뒤섞인 정체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강조되는 중심 흐름은 이라와디 평야의 버마족이 주도한 된 통일 바간 왕국(1044~1287)과 퉁구 왕조(1531~1752), 그리고 꽁바웅 왕국(1752~1885) 이다. 바간 왕조는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로 문자를 도입하고 불교문화를 발전시켜 미얀마의 정체성의 초석을 놓은 미얀마 역사의 가장 빛나는 시절에 해당된다. 이후 몽골족의 침략에 바간이 멸망한 다음에 상당기간 샨족의 잉와, 버마족의 퉁구, 몽족의 한따와디 등 3왕조가 병립하였다. 이후 미얀마를 넘어 동남아 전체에 뚜렷한 영향력을 내보인 버마계 왕국이 퉁구 왕조와 꽁바웅 왕조이다. 16세기 퉁구 왕조는 동남아시아에서 최대의 제국을 이루며 이웃 태국을 사실상 완전히 정복하고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진출하였다. 18세기 꽁바웅 왕조 역시도 1757년 태국 중부의 아유타야와 서남부 아라칸 왕국을 정복하며 현재에 그려진 미얀마의 영토를 사실상 확정하였다.

그러나 천년을 이어온 버마 왕국은 19세기 들어 영국과의 3차례에 걸친 전쟁(버마전쟁, 1823, 1852, 1885)에 차츰차츰 영토를 잠식당하며 최종적으로 꽁바웅 왕조의 붕괴와 영국의 식민지배로 이어진다. 이후 1937년까지 영국령 인도제국의 지방행정구역의 하나로 편입되면서 민족적 자존감에 커다란 생채기를 내었다.

영국은 다수인 버마족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인도와 중국인을 대거 끌어들였고, 나아가 소수민족인 까렌족과 카친족 몽족 등을 중심으로 군대와 치안조직을 운영하게 된다. 이같은 식민지배의 분열 정치의 결과로 내부 갈등이 높아지고 이는 독립이후 연방의 분열과 내전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적 자각을 독려하던 아웅 산(Aung San, 1915~1947) 등 젊은 독립운동가들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버마의 독자적인 군대 조직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외부 지원세력을 찾기 시작하였다. 당초 중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광저우로 간 이들 일행은 당시 중일전쟁 중인 일본군과 접촉하게 되면서 일본의 지원을 받기로 방향을 바꾸었고, 인도로의 진출을 꿈꾸는 일본의 야심과 버마군 창설을 원했던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요구가 맞아 떨어졌다.

1941년 일본의 도움으로 첫 버마군대 BIA(Burma Independence Army)를 조직해 1942년 일본의 버마 진격에 참여하였다. 영국을 몰아낸 일본은 약속과 달리 이후 3년간 버마를 식민지배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싹텄고, 이에 아웅 산과 버마군(BIA)은 다시금 영국과 연합해 일본과 전투(버마전투)에 나서고 1945년 일본군을 버마에서 몰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복귀한 영국은 식민지배를 다시금 복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대까지 보유하고 두 차례의 국제 전쟁까지 경험한 아웅 산을 비롯한 젊은 독립세력은 이에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아웅 산을 중심으로 한 정당인 반파시스트인민해방연대(AFPFL)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끝내 영국 정부로부터 독립을 이끌어 냈다. 1947년 4월 제원의회 선거에서 아웅 산이 이끄는 AFPFL이 압승하여 그의 초대 총리 취임이 유력시 되었지만 7월 19일 정치노선이 다른 세력에 암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1948년 1월 4일 버마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이뤄냈다. 초대 총리는 우누(U Nu, 1907~1995)가 되었다. 독립초기 영국식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여느 독립국처럼 초기의 경제실적과 정치불안은 쉽게 개선되지 못하였다. 신생독립국 버마의 불안요소는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행보를 가속화 하던 공산주의 세력과 버마족 주도의 연방질서에 화학적 융합이 어려웠던 소수민족, 그리고 지배정당인 AFPFL 내부의 정책을 둘러싼 극단적인 내분이 이어졌다. 1948년 8월, 꺼인니족의 지도자 베투레는 버마 연방군에 암살되었다. 1951년 10월 8일, 꺼인니주는 꺼야주로 개칭되었다.

1957년에 꺼인니민족진보당(KNPP)와 꺼잉니군(KA)으로 이루어진 친독립집단이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 1995년의 짧은 정전과는 별개로 KA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KNPP의 반대편의 꺼얀국 신당과 카렌니 국가인민해방전선(KNPLF)은 현재 미얀마 군부와 동맹을 맺었다. 1996년에 미얀마의 국가평화발전평의회(SLORC)는 카렌니의 독립을 분쇄하기 위해 강제 이주를 실시하여 독립군의 지원 기반을 빼앗았다.[4]

산업[편집]

꺼야주는 주로 농업 기반 경제이다. 주요 작물은 관개를 통한 쌀이고 다른 작물로 기장, 옥수수, 참깨, 땅콩, 마늘, 야채가 있다. 광물로는 앨러배스터, 석고, 텅스텐이 있다. 한 때 티크, 소나무와 같은 귀중한 목재들이 생산되었으나 미얀마 군부의 불법 채벌로 거의 헐벗은 상태이다. 로이카우 외곽의 로피타 폭포의 수력발전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며 미얀마 전체 전력의 20%이상을 공급한다.

꺼야주는 정치적인 상황만 개선된다면 관광지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주에는 바위산, 강, 호수, 폭포가 있지만 교통은 불편하다. 꺼야주는 오직 허가된 외부인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용된다. 허가를 받았더라도 대개 로이코 주변으로 25km 반경내만 허용된다. 중앙 정부는 로이코와 주 서부의 일부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로이코[편집]

미얀마 꺼야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11,000명으로 추정된다. 주의 북쪽 끝 근처의 해발 1,200m에 있다. 주민 대부분은 꺼야족이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수력 발전소가 롸잉꼬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로삐따 폭포에 있다. 롸잉꼬는 새로이 건설된 아웅반-롸잉꼬-핀롱 철도에 의해 연결된다. 대학으로 롸잉꼬 대학이 있다.[5]

꺼야족[편집]

카렌족의 하위 분파로, "붉은 카렌족"이라는 뜻의 카렌니족(Karenni, 버마어: ကရင်နီ)으로도 불린다. 미얀마 꺼야주에 주로 거주한다. 카야족에 속하는 부족집단으로 게코족, 게바족, 라위족, 붸족, 마누마나우족, 인 탈라이족, 파오족 등이 있으며, 특히 그 중 게코족, 게바족, 파다웅족 등을 통틀어 카얀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6]

지도[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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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꺼야주〉, 《위키백과》
  2. 미얀마/행정구역〉, 《나무위키》
  3. 미얀마의 행정 구역〉, 《위키백과》
  4. 미얀마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5. 롸잉꼬〉, 《위키백과》
  6. 카야족〉,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동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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