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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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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주(말레이어: Sarawak)는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13개 주의 하나이다. [1][2]

개요[편집]

사라왁주의 면적은 124,450㎢이며 인구는 2,500,000명(2007년 기준)이며 주도는 쿠칭이다. 북동쪽은 브루나이사바주, 동쪽과 남쪽은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주에 접하며 서쪽과 북서쪽은 남중국해에 면하고, 해안선 길이는 720km에 이른다. 원주민은 바다 다약족·육지 다약족·말레이인 등이지만, 화교도 많아 전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라왁'이란 이름의 연원에는 두 개의 설이 있다. 안티모니를 뜻하는 현지 말레이어 방언 serawak에서 왔다는 설이 첫 번째이며 또 하나는 1841년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이곳을 차지한 뒤로 원래의 주인이었던 브루나이의 술탄이 "그대에게 바친다"는 뜻의 "Saya serah pada awak"에서 왔다는 설이지만 첫 번째 설이 유력하고, 두 번째 설은 거의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awak이란 단어는 서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동말레이시아에서는 전혀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루나이에서는 애초부터 "awda"나 "kau"를 사용했고 사라왁인들은 "kitak"을 사용한다. 현대에는 서부 방언을 사용하는 매체의 영향으로 "awak"의 사용 비중이 다소 높아지고 있으나 반감 때문에 잘 받아들여지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awak"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한 적이 없어 두 번째 설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 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두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뉘는데 11개의 주와 2개의 연방 직할구가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있고 2개의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가 동말레이시아에 있다. 각 주는 시 또는 구역으로 나뉘며, 또다시 소구역(mukim)으로 나뉜다. 사바와 사라왁의 구역들은 분할에 따라 묶인다.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던 당시 총 14개의 주만 있었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당초 연방 직할구는 없었으나, 1974년 쿠알라룸푸르가 슬랑오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시작으로 생겼으며 이후 푸트라자야와 라부안이 신설되었다.

주의 관할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둘 다인데, 각각 다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연방 직할구는 연방 정부가 직접 관할한다. 비록 자치법령의 몸체가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제정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지만, 시의회, 구의회, 지방의회 등 하위 관할은 각 지역이 맡는다. 연방 헌법은 연방 직할구 외의 지역 관할을 각 주의 전담관할로 하지만, 실제로는 연방 정부가 각 지역의 부의 내정에 간섭한다. 총 144개의 지역의회가 있는데, 11개는 시의회, 33개는 지방의회, 97개는 구의회이다.

13개의 주 모두 역사 속의 말레이 왕조를 바탕으로 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주 11개 중 9개는 말레이 주(또는 이슬람 주)라 하여 고유의 왕실을 두고 있다. 국가원수인 양디-퍼르투안 아공(국왕)은 5년마다 이 9개의 주의 지도자(술탄)가 번갈아가며 선출한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왕은 군주제를 시행하지 않는 주에서 각 주수상과의 합의를 거쳐 4년간 업무를 수행할 정부 수반을 임명한다. 각 주에는 주의회로 알려진 단원제 의회가 존재하며, 나름의 주 헌법을 작성한다. [3][4]

자연환경[편집]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주이다. 보르네오섬의 서북 해안 일대를 차지하며 인도네시아칼리만탄과 접한다. 해안부는 습지가 많아 많은 토지가 미개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라장강(江)을 비롯하여 바람·림방·루파르 등의 강은 모두가 배로 항행이 가능하며, 유역은 관개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의 대부분은 열대원시림으로 덮여 있다.

우림 기후가 대부분인 말레이시아 전체에서도 비가 특히 많이 오는 지역이다. 서말레이시아에서 다우지에 속하는 쿠알라트렝가누의 연 강수량이 3,000mm 정도인데, 사라왁은 거의 전역이 3,000mm 이상의 강수량을 보이고 주 면적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지역은 강수량이 3,500mm 이상이다. 주도 쿠칭은 4,200mm 정도의 연 강수량을 보인다.

역사[편집]

고대에는 여러 왕국이 있었다. 그중 사리바스라는 왕국도 있었다고 한다. 사리바스가 사라왁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고 하지만 아닐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실 사라왁은 1841년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들어오기 전까지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토였다. 바다에 인접한 쿠칭 일대만이 16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되어 "Cerava"로 알려졌다.

그러던 1830년대 후반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이 곳에 들어와 지리적 이점을 노렸고, 이곳에서 판치던 해적들을 물리친 공로로 1841년 브루나이 술탄이 그에게 이 곳을 양도하여, 사라왁 왕국이 건국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사라왁 왕국은 당시 아시아에서 유례없는 백인 왕조였는데 어떻게 보면 영국의 괴뢰국이라 봐도 무관했다. 이후 브룩은 점점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역을 먹어가더니 마침내 림방 지역을 먹음으로서 지금의 영역을 확립하였고 브루나이를 두동강 내버렸다.

마침내 영국은 1880년대부터 지금의 동말레이시아 지역들과 브루나이를 완전한 영국령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사라왁도 예외는 아니라서 1888년 완전히 영국에 편입된다. 그 후 영국의 치하에서 영국의 문물과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홍콩처럼 국제적인 무역지대로 떠오르는 데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점령했으나 1945년 일제의 패배과 함께 독립했으나 이듬해 영국이 다시 점령한다.

1946년 사라왁 왕령식민지가 설치되어 영국의 식민지로 다시 전환되었으나 말라야 연합에는 편입되지 않았다. 1948년 새로 신설된 말라야 연방에도 편입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때문에 1963년 7월 22일 독립을 쟁취했으나 연방편입을 위한 임시적 독립이었으며 남은 2개월 동안은 사실상 영국의 괴뢰정권이었다. 8월 31일 말라야의 독립 기념일에 맞춰 말레이시아의 신설이 확정되어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일로 인해 9월 16일에 성사되었다. 드디어 영국은 완전히 철수하였고 어느 정도 해방을 달성했다.

일본의 나리타시 일대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비슷한 시기 공산주의 운동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1970년 취임한 총리 압둘 라흐만 야쿱은 공산주의자 척결을 시도했는데 문제는 이를 빌미로 이슬람화를 종용한 게 주민들하고 충돌이 빚어져 다소 안 좋은 이미지로 찍혔다.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배신하고 탄압하는 독재정치를 펼쳤고 본토의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진입과 일당독재를 구축하려 하였기 때문.

1981년 야쿱은 11년의 통치를 마치고 조카인 압둘 타입 마흐무드에게 총리직을 물려준다. 그리고 33년 장기독재의 시기가 열렸지만 상대적으로 삼촌에 비해 주민들의 자치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독립요구를 받아주거나 자치확대를 전반적으로 시행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1990년 공산주의자들과의 평화협정이 있었지만 소련의 붕괴로 좌익들은 꼼짝없이 벙어리가 된다. 타입은 이를 빌미로 정권을 연장하였는데 말레이시아의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유례없는 33년의 장기집권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2014년 총독으로 임명되어 직은 소멸되었고, 아데난 사템이 새 총리가 되면서 종식을 맞이했다.

교통[편집]

말레이시아에서 공항이 가장 많은 주이다. 사실상 공항 천국인데 주도인 쿠칭에 최대 공항인 쿠칭 국제공항이 있고 인근의 시부나 빈툴루, 미리, 림방 등 지방공항들도 많다.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나 싱가포르 등을 거쳐서 가야 한다. 하지만 국내선이 싼 법이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나 코타키나발루를 거쳐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간단한 경로를 적자면 쿠칭이나 사마라한 일대를 갈 거라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나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을 거쳐 쿠칭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면 된다. 림방의 경우는 쿠칭 국제공항에서 림방 국제공항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업[편집]

저지에서는 쌀·고무·후추·사고야자·코코야자 등이 재배되며, 미리의 유전을 비롯하여 보크사이트·금을 산출하며, 석유는 수출의 주종을 이룬다.

사회[편집]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본토나 사바와는 다르게 한국인들이 그렇게 찾는 지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유학으로 오게 된다면 권장할 만한 곳이다. 실제 2020년대 코로나 이후 국내 자녀의 조기유학을 고민하는 30~40대 부모들이 싼 가격에 가려고 가는 데가 사라왁이다. 돈이 매우 많이 드는 싱가폴 홍콩의 대체제로 여기를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또한 그 필리핀보다도 치안은 훨씬 좋아서 어학연수 수요가 늘 확률이 높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유일한 주이기 때문이다. 사라왁인들은 말레이어보다 영어 사용을 더 선호하며, 1973년 이전까지는 영어가 공용어였다. 그 후 말레이화의 일원으로 공용어 지위를 박탈당했으나, 2015년 다시 공용어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라왁에 거주하는 말레이인은 약 20% 정도로 사바에 비해서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 별 존재감이 없다. 참고로 이쪽 말레이인은 본토와는 다르게 브루나이나 칼리만탄 계열인데 '쿠칭'에서 '시부' 일대는 칼리만탄계, '빈툴루'에서 '라와스'까지는 브루나이계가 주를 이룬다. 그 중 브루나이 사이에 끼어있는 '림방'은 또 하나의 브루나이라 봐도 무관하다.

주민의 약 28%는 중국인으로, 원주민인 이반족(31%)에 비해 수적으로는 적지만 이들이 사라왁에 끼친 문화적 영향은 엄청나다. 대표적인 예가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사라왁 콜로 국수. 그리고 소수 불교도와 중국계 종교들 신도들의 수를 합할 경우 약 20% 정도인데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현대에 와서 고유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는 것은 원주민이다. 가장 큰 집단은 이반족으로 전체 인구의 31%를 차지고 있으며, 그외에도 소수민족으로 떨어진 믈라나우족과 비다유족, 오랑울루족 등이 존재한다. 원래 이들은 각각 고유어를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가는 상황이다.

사라왁주 최대 도시인 쿠칭에는 호주의 스윈번(Swinburne) 대학교 분교가 있으며, 국립대학인 University of Malaysia, Sarawak가 있어서 가성비 좋은 유학을 원한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브루나이와 인접한 미리에는 호주의 대학교인 커틴 대학교의 분교가 있고, 시부에는 비록 주정부 차원이지만 사립 대학교인 사라왁기술대학교(UCTS)가 생기면서 대표적인 유학의 장소로 뜨고 있다.

여담으로 북한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고. 조선로동당과 사라왁 주 정부가 일종의 협약을 맺어서, 사라왁의 탄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줬다.

분리주의[편집]

말레이시아에서 사바와 더불어 분리주의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사라왁과 사바, 소위 동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 본토인 서말레이시아와 큰 관련이 없는 동네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독립 열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반군들이 결성되고 몇 차례 독립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죄다 실패했다.

1957년 말라야 연방은 먼저 독립을 쟁취했으나 이후 싱가포르들의 가입이 계획되며 말레이시아로의 개편이 논의된다. 말라야의 우파 계열 정치인들은 싱가포르가 중국계 다수 도시이며 좌익 인민행동당을 지지하는 싱가포르의 가입을 탐탁잖아 했으며 특히 싱가포르 단독 가입 시 말레이시아에 중국계가 말레이계가 더 많았을 지경이니 말 다했다. 따라서 말라야의 정치인들은 말레이계가 많은 북보르네오로 영토 확장을 시도한다.

기존에 영국의 계획 상으로, 그리고 보르네오의 3개주/국 사라왁 브루나이와 북보르네오(오늘날의 사바)의 의견도 이 3개 주가 통일하여 따로 독립을 할 예정이었으나 브루나이 국왕은 이 통일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약화시키고 브루나이의 오일머니를 타 2개주에 나눠주게 될 것이라 여겨 이 통일 계획에 반대한다. 북보르네오 통일 독립 계획이 엎어지고 독립 열기가 고조되자 사라왁 독립의 지도자였던 스테픈 칼롱 닝칸은 "일단 그쪽 동네에 몸 좀 맡겨두자"며 말라야로의 편입을 결정하고 주민투표 결과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입이 확정된다. 그 결과로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시아 가입, 브루나이 또한 말레이시아 가입을 고민하나 후술할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 및 북보르네오 공산반란 중 브루나이 인민당 봉기 이후 취소, 1984년에 독립한다.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극단적 독립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도네시아가 심심찮게 노리다가 1964년 침공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전쟁을 일으키는 등 안보 문제에서 최접전 지역이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1965년 싱가포르가 말라야 연방에서 쫓겨난 뒤로 불거졌다. 사실 사라왁은 싱가포르의 권유로 가입했는데 정작 주동자가 탈퇴했으니 본인들도 탈퇴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화교 위주의 인구 구성 때문에 이미 연방 경제를 화교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싱가포르까지 포용하면 싱가포르의 화교계에게 연방의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연방정부가 강제로 축출해 독립했지, 사라왁은 같은 말레이계에 풍부한 자원 때문인지 독립이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의 침공 등 안보 문제가 걸렸고 본인들도 자력강생이 쉽다고 판단하지 못했으니 연방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흑역사가 시작되는데, 1973년 동말레이시아에서도 연방정부 주도의 "말레이화"가 진행되었고 기독교를 믿는 다수 주민들은 말레이 본토의 이슬람으로의 개종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개종했으나 후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혼혈을 강요하고 주민들을 협박 탄압했다는 얘기 등이 나와, 강간 살인이 난무하는 등 일종의 국가폭력이 시행되었다. 게다가 주민 정서 자체가 본토(말라야)와는 맞지가 않아 심심찮게 충돌이 빚어졌는데 이미 자치는 소멸되었다.

그래도 보면 연방정부에서 그나마 특별대우를 가장 많이 해주는 곳이 사라왁이고, 중국홍콩처럼 본토의 간섭이 가장 덜한 곳이 바로 사라왁이다. 물론 자치가 완전 시행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치를 가장 많이 보장받으니 굳이 독립을 외쳤다가 코로 사라왁 콜로 국수를 흡입할 짓을 할 필요가 없다. 헌법도 본토의 연방헌법과 다소 분리되어 있고, 심지어 본토와는 엄연히 입출경 심사를 하고 본토인이라도 이 지역에서 깽판을 치면 영구적으로 추방시킬 수 있다. 일례로 야당 정치인 테오니칭이 사라왁으로의 입경이 금지된 바가 있다. 그리고 본토인도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받으며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입국 시 90일 무비자가 찍힌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영주권이 있으며 5년 이상 거주하면 주어지는데 사라왁 주민들은 말레이시아 국적과 함께 영주권이 있다. 만약에 본토인이 사라왁에서 영원히 살고 싶거든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

이웃한 사바주와는 독립/자치 문제로 다소 친한 편이지만 사라왁이 유독 고집이 센 편이라 그런지, 이민 문제는 사바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라왁인에게는 특별히 영주권을 자동적으로 주는 사바 주와는 천지차이. 그렇지만 사라왁에서도 사바인은 본토인과는 다르게 보긴 하고, 본토인에 비하면 좀 더 잘 해주는 편.

사라왁은 샤리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주이다. 무슬림이라고 별도의 종교법을 적용하지는 않고, 배교자 처벌도 없다. 이러한 점들을 모아볼 때는 그래도 연방정부가 특별히 대해주는 지역이긴 하니 굳이 독립을 외칠 필요도 없는 듯. 이웃한 사바는 이미 자치가 많이 소멸되어 UMNO가 통치하고 샤리아가 무슬림들을 관리하는 사회가 되었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사라왁이 유독 특별하긴 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사라왁주〉, 《위키백과》
  2. 사라왁〉, 《나무위키》
  3. 말레이시아〉, 《위키백과》
  4. 두산백과 : 사라왁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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