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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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부(일본어: 大阪府)은 일본 간사이지방에 위치해 있는 부이다.[1][2]
개요[편집]
오사카부의 면적은 1,905.14km²이며 인구는 8,772,771(2024)명이다. 인구는 도쿄도에 이어 일본 내에서 2위이다. 부청 소재지 오사카시 외에 여러 개의 위성도시가 있다. 동쪽으로 나라현, 북서쪽으로 효고현, 남쪽으로 와카야마현과 경계를 접하며 북동쪽으로 교토부와 인접한다.
오사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은 15세기 말의 일로 그 이전에는 나니와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래서 지금도 오사카의 지명 중에는 난바라는 곳이 있다. 율령국인 셋쓰국 동부(7군) 및 가와치국과 이즈미국의 각 전역으로 구성되어 삼국 문자를 따 섭하천이라고도 하는데, 교토부에서 가시타촌 전역과 가메오카시의 일부가 월경 편입된 1958년 이후에는 단바국 남동부(극일부)도 포함하게 되어 있다. 사카이현 편입 1881년부터 나라현 을 재설치하여 1887년까지는 야마토국의 전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오사카부는 일본 제2의 도시이자 간사이지방의 중심지, 서일본 최대의 도시이다. 도쿄도 다음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수많은 철도 노선과 도로가 오사카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연결하며, 일본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오사카부는 간사이지방의 경제, 정치, 문화, 산업, 금융, 교육의 중심지이며,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한 긴키 지방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 경제권역을 형성한다.
국제 행사로, 아시아 최초의 세계 박람회(엑스포)인 1970년 세계 박람회를 열었으며, 1995년 APEC 회의, 2019년 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였다. 2018년 11월에는 2025년 세계 박람회를 유치하였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랭킹에서 오사카는 빈, 멜버른, 시드니에 이어 세계 4위로 평가되었다.
자연환경[편집]
오사카부의 지형은 비와호에서 흐르는 요도가와와, 나라현에서 흐르는 야마토가와강의 오랜 퇴적 작용으로 생긴 거대한 삼각주 지형으로, 강에서 갈라지는 지류와 호수가 많아 에도 시대까지만 해도 강과 인공 운하를 이용한 교통이 활발했다. 남서부는 오사카만이다.
현재까지 흐르고 있는 운하는 도톤보리, 요코보리, 토사보리, 죠호쿠가와, 히라노가와 등이 있다. 광활한 평야 지대에 자리한 간토 지방과 달리, 전체적으로 가파른 산지에 둘러싸여 있어, 그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연평균 기온은 17.1℃로, 아열대 기후로 취급된다. 게다가 오사카는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습도도 높다. 일본에서 가장 푹푹 찌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월 평균 기온은 29.0℃로 일본의 주요 도시 중에서는 가장 높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악명 높은 2018년 8월 당시 서울 평균 기온이 28.8℃였다. 여름에 오사카로 여행을 가면 실외 관광이 어려울 정도다. 겨울 날씨는 서울에 비하면 훨씬 따뜻하다. 가끔 1~2월엔 종종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날씨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겨울은 한국의 초봄 정도의 날씨가 계속된다. 전반적으로는 바람이 많은 제주도보다 따뜻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쿄보다 눈 보기 더 힘든 동네이다. 기온이나 기후를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벚꽃이 피기 전후인 3월~4월과 11월~12월이다. [3]
역사[편집]
17세기 도쿄에 에도 막부가 설치되기 전까지 일본은 천황이 수도였던 나라, 교토가 중심이었고 근교도시인 오사카, 사카이를 중심으로 하여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오사카시는 예로부터 천황이 있는 천년 수도 교토와 가까운 점과 사카이시라는 무역학이 있었기에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외항으로 성장하여 오랫동안 일본의 상업 중심지로서 기능했다. 오사카시 바로 남부에 위치한 사카이시 역시 오사카, 고베 등과 경쟁하던 긴키의 주요 외항이었으며 닌토쿠 덴노의 능으로 알려진 다이센 고분이 위치해 있는 등 상고~고대 시대에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다.
과거 율령국 기준으로는 셋쓰노쿠니(摂津国)의 동부, 가와치노쿠니(河内国), 이즈미노쿠니(和泉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고대에는 소가씨와 대립했던 유력 호족 가문인 모노노베씨의 근거지(가와치)이기도 했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세이와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그 동생 요리노부가 각각 셋쓰와 가와치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는데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무로마치 막부를 세운 아시카가 다카우지 등은 요리노부의 후손들인 가와치 겐지 출신의 인물들이다. 그 외에도 남북조 시대의 유명한 무장 구스노기 마사시게도 가와치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등 유력한 무장과의 연관이 많은 땅이었다.
무로마치 막부 이후로는 호소카와, 하타케야마의 양대 간레이 가문이 이 지역을 다스렸으나 오닌의 난을 전후해 양 가문 모두 치열한 가독 분쟁으로 인한 혼란에 휩싸였고 이 과정에서 사카이의 부유층 세력이 자치 도시를 형성하고 대표적인 무역 도시로 성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정토종의 중흥조로 알려진 렌뇨(蓮如)가 오늘날의 오사카성 일대에 이시야마 혼간지를 건설하고 세력을 확장했는데 오사카라는 지명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렌뇨의 기록이 최초이며, 혼간지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점차 오사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혼간지는 이후 11대 종주인 겐뇨의 대까지 이 지역에서 굳건한 세력을 보유했으나 오다 노부나가와 무려 10년간의 대립 끝에 결국 항복하고 이후 교토로 근거지를 옮긴다. 이는 오사카는 당시 북부는 요도가와강 동부는 히라노강, 서부는 바다, 남부는 평원이라는 천혜의 요새에 가까운 지형이었다.
16세기 후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천혜의 요새에 가까운 오사카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고 사카이시에도 영향을 가하며 막대한 금은보화를 쌓았다. 1583년 천하인에 가까운 히데요시는 자신의 엄청난 재력을 투자해 축성한 오사카성을 쌓고 이곳에 머물렀고 천하인이었기에 모든 다이묘가 상락을 하러 오면서 행정적 중심지의 역할까지 겸하며 짧게나마 명실상부한 일본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히데요시 사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에게 받았던 호조 가문의 옛 영토 간토 6주와 대평야를 받은 뒤 훌륭한 치적과 내정을 바탕으로 에도(지금의 도쿄)에 성을 짓고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 승리를 끝으로 도요토미가 멸문, 도쿠가와 가가 천하를 잡게 되면서 오사카가 정치 중심지로서 누리는 영광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났다. 에도 시대에도 오사카는 상업도시로서 일본에서 에도 다음가는 중심지였으나 에도가 번영하면서 대체로 중요성이 조금씩 준 편이다. 게다가 1869년 대정봉환 이후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천황이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가 그곳이 제국의 수도로 발전하며 긴키 지역의 위상은 더욱 축소되었다.
1956년 9월 1일에 오사카시는 정령 지정 도시로 승격하였고 24개의 구로 나뉘었다. 2000년에 오타 후사에는 요코하마 노크에 이어 일본의 첫 번째 여성 부지사가 되었다. 2006년 4월 1일에 사카이시가 정령 지정 도시로 승격되었고 7개의 구로 나뉘었다. 2008년에 예전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유명한 변호사였던 하시모토 도루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부지사에 선출되었다.
산업[편집]
역사적으로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교토(京都)와 같은 수도의 위상을 가지지는 못하였으나 수로와 운하가 발달하여 상업도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성격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공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도시의 주산업은 상공업으로 오사카만 연안과 요도가와 강(淀川) 연안 지역은 한신(阪神) 공업 지대가 중심을 이룬다. 근래에 조성된 사카이(堺), 센호쿠(泉北) 임해 공업 지역에는 철강·석유 화학 콤비나트가 형성되어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오사카부의 연간 총생산은 도쿄도에 이어서 2위이다. 오사카부 내 인구 270만 명에 불과한 오사카시(市)만을 보더라도 지역 내 총생산이 요코하마시를 가뿐히 제치며 사이타마현, 효고현, 홋카이도 등 몇몇 도도부현보다도 크다. 오사카부 전체의 총생산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르헨티나보다도 크고, 또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케이한신 도시권은 2012년 기준 세계 7위의 경제권을 형성할 만큼 규모가 매우 크다. 이렇기 때문에 평일에는 고베, 교토, 나라 등 주변 지역에서 오사카로 출퇴근하는 인원이 많으며, 교토나 고베로 가는 전철이 모인 오사카·우메다·쿄바시역의 러시아워 인파는 도쿄의 시나가와역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음식[편집]
예로부터 오사카 중심지의 요도가와(강)의 끝자락에 있는 나카노시마 쌀 거래소로 수로를 통해 몰리는 쌀의 물류 센터 기능과, 인근 바다의 해산물, 식자재의 유통, 상권의 중심지 등 간사이 경제권 물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거대한 지역 경제권뿐만아니라 황족, 귀족이 사는 교토에 물류 공급 중심지가 되어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란 별명이 생겼다.
밀가루와 소스, 풍부한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이 특징인데,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멘도 오사카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도톤보리의 달리는 선수 광고판으로 유명한 제과 회사 글리코가 생긴 곳이기도 하다. 위스키, 맥주 등의 술과 음료수로 유명한 산토리도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다.
관동지역과의 차이점은 우동을 두고 본다면 관동은 간장 베이스의 짠맛이 강한 반면, 관서 지방은 간장을 덜 넣어서 맑은 국물에 가깝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낫토를 즐겨 먹지 않는 편이다. 같은 주먹밥이라도 관동 지역은 오무스비, 관서 지역은 오니기리라고 부르는 등 이름이 다른 경우도 꽤 있다. 자세한 것은 일본 요리 항목을 참고 바람. 스시에서도 하코즈시라는 특색 있는 전통 초밥도 존재하며 마키스시(김말이 초밥)에 관해서도 관서는 마키라고 하면 후토마키를 의미하지만 관서 이외의 지방에서는 호소마키가 기본이다. 또한, 칸표스시(박고지 초밥)은 칸사이에서는 타 지방과는 다르게 잘 먹지 않는다.
오사카시[편집]
오사카시(일본어: 大阪市)는 일본 오사카부에 있는 도시로 부청 소재지다. 혼슈 간사이지방의 요도강 하구 오사카만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에서 도쿄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4세기에 나니와궁이 놓여진 이후 약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상업과 해외여행 등이 활발하고 있으며 주간 인구는 도쿄 23구 다음으로 일본 전국에서 2위, 야간 인구는 요코하마시 다음으로 3위이다. 1956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간토 지방이 아닌 지방에서는 제일 많으며,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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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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