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이칼 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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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이칼 변경주(러시아어: Забайка́льский край, 문화어: 자바이깔 변강)는 러시아 극동연방관구에 속하는 변경주이다.[1] 자바이칼 변경주의 중심 도시는 치타이다.
개요[편집]
자바이칼 변경주의 면적은 431,892㎢ 인구는 1,053,485명 (2021년)이다. 자바이칼 변경주는 모스크바(Москва, Moscow)에서 남동쪽으로 5,108km 떨어져 있으며, 러시아 극동연방관구(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의 동시베리아경제지구(Восточно-Сибирск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айон)에 속한다. 주도(州都)는 치타(Чита, Chita)이다. 서쪽으로 부랴트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Бурятия), 북쪽으로 이르쿠츠크주(Иркутская область)와 사하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Саха), 북동쪽으로 아무르주(Амурская область)와 접한다. 남동쪽으로는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 남서쪽로는 몽골과 국경을 마주한다.
인구의 90%는 러시아인이고, 부랴트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인구 5만 이상의 도시는 치타와 크라스노카멘스크 둘 뿐이다. 하바롭스크 지방과 사할린주의 소수민족 니브흐의 조상이 이곳에서 유래됐다.
자바이칼 변경주는 바이칼호 너머의 땅이라는 뜻으로, 이름과는 달리 바이칼호와는 접해있지 않다. 사실 최초로 설치되었을 때에는 호수 동안과 붙어 있었고 때문에 이름도 바이칼 호수의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1923년 부랴트공화국이 여기서 독립되어 나가는 바람에 바이칼 호수 없는 자바이칼 지방이 되어 버렸다.
자바이칼 변경주는 2007년 3월 11일 치타주와 아긴스크부랴트 자치구에 대한 통합 주민투표가 양 지방에서 90%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2008년 3월 1일에 성립한 행정구역이다. 2018년 11월 3일 대통령령 제632호로 부랴트공화국과 함께 시베리아연방관구에서 극동연방관구로 이관되었다.[2][3]
자연환경[편집]
극심한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며,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이와 동시에 남부 지방과 북부지방의 기온차도 크게 나타난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지는 긴 겨울철은 한랭건조하고, 여름철은 짧지만 따뜻하다. 연평균 기온은 -1.4℃이며, 겨울철인 1월의 평균 기온은 남부지방에서 -19.7℃, 북부지방에서 -37.5℃, 여름철인 7월의 평균 기온은 남부 지방에서 20.7℃, 북부지방에서 13℃를 기록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300mm 이내로 적은편이지만, 북부 산간 지방에서는 매년 600mm를 기록한다. 강수량의 약 70%가 여름철에 집중된다.
지형은 대부분이 해발고도 1,000∼1,400m의 산지와 깊고 넓은 하곡(河谷) 및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부지방에는 평야가 발달해있다. 산림의 지배 수종은 자작나무이고, 토양은 비옥한 흑토(黑土)인 체르노좀(chernozyom)과 밤색토(chestnut soil)가 분포한다. 석탄, 금, 은, 구리, 텅스텐, 우라늄 등의 풍부한 자원이 다량 매장되어 있다.
역사[편집]
자바이칼 지역은 고대부터 유목민들의 땅이었으나, 13세기 칭기즈칸의 침략으로 몽골제국에 예속되었다. 1648년 아가부랴트인들이 러시아제국에 복속된 후 카자크 군대와 카자크인들의 유입 및 정착이 시작되었다. 이후 1653년 러시아인 정착지들이 생겨났고, 인고다(Ингода, Ingoda)에 카자크 군대의 동계 숙영지가 형성된 것이 치타시(市) 형성의 기원이 되었다. 1700년부터 네르친스크 은연공장을 비롯한 대형 공장들이 이 지역에 설립되었고, 금과 주석의 채굴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18~19세기에는 정치범 유배지로 기능하다가, 1851년에 시(市)로 승격되면서 자바이칼주(Забайкальская область)의 주도가 되었다. 또한 1897년 부설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치타를 관통함에 따라 지역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 되었다. 1920년 자바이칼주는 극동 공화국(Дальневосточная республика)에 병합되었다가 1922년 자바이칼현(Забайкальская губерния), 1926년 극동 변강주(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край), 1937년 치타주(Читинская область)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2008년 주민 투표의 결과로 치타주와 아가부랴트 자치구(Агинский Бурятский автономный округ)가 통합되었고, 치타를 주도(州都)로 하는 연방 주체인 현재의 자바이칼 변강주가 신설되었다. 자바이칼 변강주는 창설 당시 시베리아연방관구(Сибирски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의 관할이었으나, 2018년 11월 극동연방관구로 이관되었다.
산업[편집]
광업 및 목재가공, 목축업, 농업이 활발하다. 비팀고원 근처의 산악지역은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금 생산지대이며, 석탄, 텅스텐, 구리, 주석, 우라늄 등도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목축업은 방목의 형태로 양과 말을 사육하며, 귀리, 봄밀 등 곡물의 재배도 활발하다.
교통[편집]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주요 기작치로 철도가 남부를 횡단하여 관통하고, 3개의 연방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는 등 육상교통이 발달하였다. 치타 시내에서 18km 떨어진 근접한 곳에 치타 국제공항(Международный аэропорт Чита-Кадала)이 위치한다.
관광[편집]
이 지역 중북부에는 사막이 있다. 차라 사막(Чара пески/Chara sands)이라는 곳인데, 사하라같은 일반적인 사막과 달리 매우 춥다고 한다. 사실 사막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고 큰 모래 언덕 수준이다. 러시아에선 나름 유명한 곳이다. 자바이칼 지방 향토 박물관(Забайкальский краевой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 им. А.К.Кузнецова), 자바이칼 지방 드라마 극장(Забайкальский краевой драматический театр) 등이 대표 명소이며, 2011년부터 매년 자바이칼 국제 영화제(Забайкальский международный кинофестиваль)가 개최된다.
치타(Чита, Chita)[편집]
이르쿠츠크 동쪽 600㎞, 헤이룽강(江)의 지류인 인고다강(江)과 치타강(江)이 합류하는 지점의 시베리아 철도변에 위치한다. 동시베리아의 광공업 및 문화의 중심지이며, 시가지는 인고다강 양안의 낮은 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치타에서 남동쪽으로 280km 떨어진 발레이 주변에서는 많은 금과 은이 채굴된다.
시는 1653년 카자크의 동계 숙영지(宿營地)로 건설한 잉고딘스코예가 기원인데, 1690년 그 자리에 요새가 세워졌다. 1706년 치틴스크라 개칭되었고, 대상(隊商) 무역로변에 자리잡고 있어 중국인 및 북방민족과의 교역으로 점차 번창하였다. 1825년에는 데카브리스트 봉기에 가담했던 85명의 데카브리스트 당원들이 이곳의 광산이나 건설현장으로 유배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1900년에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부설되고, 1901년 교역로를 따라 중동철도(中東鐵道)가 건설되면서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성장했다.
체르노프스케 탄전, 철도차량 수리 공장, 식육 콤비나트, 의복·봉제 콤비나트, 피혁·제화 콤비나트, 치타 목재가공 콤비나트, 기계공장(컴프레서·냉동설비), 광산설비 공장·모피 공장 등이 있다. 가까이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하얼빈[哈爾濱] 및 선양[瀋陽]으로 가는 옛 중동철도의 접속역이 있다. 1851년 시(市)가 되었다. 광물박물관이 있으며, 22㎞ 떨어진 곳에 몰로코프카 온천휴양지가 있다.
시베리아 철도 개통 이후 1905년에 발생한 제정 러시아 정부의 민중 유혈진압 사건인 피의 일요일(Кровавое воскресенье)로 치타는 새로운 변화기를 맞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조합이 파멸하자, 치타는 노동자들의 활동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1905년 12월 치타공화국이 건설되었지만, 이듬해 러시아정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러시아혁명 이후, 시베리아 출병에 의해 파견된 일본군이 1918년 9월 치타를 점령하여 1920년까지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1920년 10월 22일에는 다시 붉은 군대(소비에트 군)가 제압하고, 극동공화국에 편입시켰다. 그 후, 극동공화국의 수도는 베르흐네우딘스크(현재의 울란우데)에서 치타로 이동되었다. 극동공화국은 1922년 11월 15일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1930년대부터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전까지 치타는 폐쇄된 도시로 외국인들의 진입이 금지되었다.
도시 계획의 특이점으로, 치타는 러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격자형 도시로 설계되었다. 건축적으로 다양한 양식이 혼재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대의 건축과 함께 전통적인 목조 가옥들이 남아 있다. 19세기 후반, 무역으로 이주한 타르타르 족 이슬람 교도들이 유대인 지구 가까이에 정착하면서 지은 이슬람 사원이 있다. 교회 건축으로는 1776년에 지어진 성 미카엘 교회(Церковь декабристов)가 있다. 또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 시내 중심에서 다수 보인다.
교육시설로는 트란스바이칼 주립 대학과 치타 주립 의학 아카데미 등이 있다.
인접한 공항으로, 시 서쪽으로 10km 거리에 카달라 공항(Аэропорт Чита Кадала)이 있으며 러시아 국내 주요도시로의 국내선이 취항하고 있다. 현재 시베리아 철도로는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중국의 치치하얼(齊齊哈爾)시와 연결된다. 기후는 전형적인 내륙성기후로, 1월의 평균기온은 섭씨 -25도로 한겨울의 기온은 -24~-34도까지 떨어진다. 그 반면, 7월의 평균기온은 19도로 한여름의 기온은 20~34도까지 올라간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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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