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투그로수두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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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투그로수두술주(브라질 포르투갈어: Estado de Mato Grosso do Sul, 스페인어: Estado de Mato Grosso del Sur)는 브라질 중서지방에 위치한 주이다.[1][2] 마투 그로수 두 술 주라고 띄어서 쓸 수 있다.
개요
마투그로수두술주의 면적은 357,125km²이며 인구는 2,839,188 명 (2021)이다. 브라질에서 6번째로 넓으며 브라질 중서부 지역의 22.2%, 브라질 영토의 4.2%를 차지하며 독일보다 약간 크다. 주도는 캄푸그란지 (Campo Grande)이다. 주도인 캄푸그란지를 중심로 도라두스(Dourados), 코룸바(Corumbá), 트레스라고아스(Três Lagoas)등의 도시가 있다. 북쪽으로 마투그로수주, 남쪽으로 파라나주, 동쪽으로 미나스제라이스주, 남동쪽으로 상파울루주, 남서쪽으로 볼리비아, 서쪽으로는 파라과이, 북서쪽으로는 고이아스주와 접한다.
과라니-카이오와(Guarani-Kaiowá) 부족이 씨족 공동체를 이루어 거주했던 곳으로, 토착민들은 19세기에 유럽인과 조우했다. 열대림으로 덮여 있어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투그로수주에 소속된 지역이었으나, 1977년 주의 남쪽이 분리되어 마투그로수두술주가 생성되었다.
농경과 목축, 그리고 목재 산업이 주요 경제 활동이다. 관광명소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판타나우(Pantanal) 보존지구가 있다.[3]
자연환경
서남부는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국경과 마주하고, 파라나강을 경계로 5개의 주와 면해 있는 내륙 지방으로, 남회귀선을 통과한다. 담수 습지인 판타나우(Pantanal) 및 아열대 기후대인 세하두(Cerrado) 지역에 속한다.
계절은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남부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가 열대성 기후를 보이며 연평균 25°C이며 고지대에서는 20°C의 기온을 보인다. 최남단 지역은 고도가 높으며 아열대성 기후를 보인다. 연간 강수량은 약 1,500mm이다.
역사
1719년 4월, 현재의 주도인 쿠이아바가 설립되었다. 1750년 1월에 채결된 마드리드 조약에 의거하여 포르투갈령 브라질의 일부로 공식 인정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스페인과의 갈등이 생겼다. 1766년이 되어서야 스페인이 완전히 철수했다. 하지만 1801년 다시 스페인의 침략이 이어졌고 1년 만에 종전이 되면서 완전히 브라질의 영토로 넘어왔다. 1835년 쿠이아바가 주도로 승격되었다. 1839년 8월 14일, 쿠이아바에서 주의 첫 번째 신문인 "치피스 마투그로센시"가 처음 발행되었다. 1864년 발발한 파라과이 전쟁으로 인해 군대가 주둔하며 설탕, 식량, 목재를 공급하면서 사회 기반 시설를 건설했고 짧은 기간의 경제 호황을 가져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브라질은 유배지로만 활용할 뿐 사실상 방치된 영토로 돌아갔다. 1878년 4월, 볼리비아와의 아야쿠초 조약으로 인해 현재의 국경이 확립되었다.
본래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보로로족이었다. 이들은 유럽인에 대항하여 쿠이아바 시를 자주 습격하곤 했다. 19세기 말, 질병과 탐험가, 노예상인, 다른 원주민 부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심각하게 감소했지만, 보로로족은 마투그로수 중부와 동부 지역, 그리고 고이아스 주 서부를 계속 점령했다. 1884년 11월엔 28대 주지사로 후에 브라질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하는 플로리아누 페이쇼투가 임명되기도 했다. 1903년 채결된 페트로폴리스 조약에 따라 이 주의 남서부 지역 일부가 볼리비아에게 양도되었다.
공화정 시대 초기에 마투 그로수의 인구는 약 8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교통 상황이 매우 열악하여 실질 월경지로 생각될 만큼 외진 곳이었다. 당시엔 나머지 브라질 지역과 연결되는 철도가 없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발하면 약 30일이 걸릴 정도였다. 철도는 20세기 초에나 건설되었다.
1930년부터는 도로 건설과 비행기의 등장으로 고립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 들어서며,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과 아마존과 중서부 지역을 대상으로 한 개발은 마투 그로수의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졌다. 특히, 브라질리아 건설은 오래된 침체를 종식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로 인해 농업이 상업화되며 주에서 생산한 콩과 쌀을 수출되며 경제적인 성장과 인구가 증가했다.
1977년, 남부 지역이 마투그로수두술 주로 분리되었다. 1977년 5월 4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에르네스투 가이제우은 남부 지역 분리에 대한 법안을 의회에 상정시켰다. 같은 해 10월 11일, 법령은 통과되었고 마투그로수두술이라는 새로운 주가 탄생되었다.
판타나우 보존지구
브라질 마투그로수주(State of Mato Grosso) 남서쪽과 마투그로수두술주(Mato Grosso do Sul) 북서쪽에 있는 자연보존지역이며 2000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판타나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침수초원이다. 브라질의 마투그로수두술주에 대부분의 면적이 위치하며, 그 외 브라질 마투그로수주, 볼리비아와 파라과이의 일부 지역에도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4만 ~ 195,000 평방 킬로미터(54,000 ~ 75,000 평방 마일)로 추산된다. 다양한 하위 지역 생태계가 존재하며, 각각 뚜렷한 수문학적, 지질학적, 생태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판타나우 범람원의 약 80%는 우기에 잠기며, 생물학적 다양성 확보에 도움을 준다. pantanal라는 단어는 브라질 포르투갈어로 열대 습지를 뜻하는 pântano에 접미사 al이 붙은 것이다.
판나타우는 해발고도 80~150m에 위치한, 주변 고원이나 산들의 물흐름이 모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이다. 제3기 때 안데스 산맥 부근에서 발생한 지각변동으로 형성된 브라질 고원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거대한 삼각주를 이른 형태이며 파라과이 강의 지류로 물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주변 고원에서 흘러들어온 여러 강들이 합쳐져 오랜 세월 동안 판타나우의 수많은 구덩이들을 퇴적시켰다.
판타날 강은 서쪽과 북서쪽으로 치키타노(Chiquitano) 건조림[4], 남서쪽으로는 그란 차코(Gran Chaco) 건조림, 남쪽으로는 습윤 차코(Humid Chaco) 지역과 경계를 이룬다. 세하두(Cerrado) 사바나는 북쪽, 동쪽, 남동쪽에 위치한다. 판타나우은 사바나 기후(Aw)로 구분되며 연평균 기온은 21.5도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320 mm이며 11월에서 3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연중 기온은 약 6.8도이며, 가장 따뜻한 달은 11월(26도)이고 가장 추운 달은 6월(20도)이다. 가장 습한 달은 1월이고, 가장 건조한 달은 6월이다.
브라질 정부는 1981년 9월부터 판타나우 지역을 '판타나우 마투그로센시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o Pantanal Matogrossense)'으로 보호하고 있다. 1993년 5월 24일, 람사르 협약에 따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1998년에 설립된 SESC 판타나우 자연유산 특별 보호구역(Reserva Particular do Patrimonio Natural SESC Pantanal)은 쿠이아바에서 남서쪽으로 100km 떨어진 포코네 (Poconé)에 위치한다. 영구하천, 간헐하천, 담수호, 계절성 범람림, 습지 등이 위치하며 모두 람사르 협약에 따라 람사르 국제 중요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오투키스(Otuquis) 국립공원은 볼리비아의 판타나우 지역에 위치한다.[4]
캄푸그란지
캄푸그란지(포르투갈어: Campo Grande)는 브라질 중서부에 있는 마투그로수두술주의 주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다. 캄푸그란지는 상파울루주 등 남동부 지방 (브라질)에서 북부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1900년대 초 상파울루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했다. 1970년 14만여 명에서 2008년 75만 명으로 20세기 말에 인구가 급속히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은 중서부 지방 (브라질) 사바나 기후 지역인 세라두의 농축산업 발달에 힘입은 것으로, 캄푸그란지가 그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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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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