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족
몽골족 또는 몽골계 민족(Mongolic people)은 몽골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동아시아계 민족 집단이다. 그들의 조상은 원시 몽골인으로 불리며, 오늘날 가장 큰 규모의 몽골족 집단은 몽골인이다. 몽골어족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지만 서로 유전적 친화도가 높으며, 고대 동아시아인들과의 연속성을 보인다.
형성과정[편집]
통일 영웅으로 불리는 칭기즈칸이 통합한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등은 실제로는 몽골족이 아니라 몽골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일 뿐이었고, 이후에 몽골로 편입된 위구르족, 캉글리, 킵차크, 거란족, 탕구트 등도 이 당시 정(正) 몽골인으로 분류된 니룬(귀족), 두릴리킨(평민) 몽골과 달리 한문 사료에 언급되는 '색목인(色目人)'에 가까웠다.
14세기 후반 몽골제국이 붕괴된 후, 색목인으로 분류된 각 부족들부터 정(正) 몽골인으로 구성된 부족들까지 부족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각지로 흩어졌고, 부하라칸국, 카자흐칸국, 크림칸국, 티무르제국, 북원, 오이라트 등의 구성 부족이 되었다.
유목민족의 복잡한 정체성은 이들의 정치체가 정주국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정주국가는 왕이라는 강력한 중심 아래 지방이 이에 복속되는 형태라면, 유목국가는 부족들의 연합체 성격이 강했다. 때문에 유목국가 아래에 있는 부족들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해당 국가에 존속하거나 떨어져나가곤 했다. 예를 들면 북원 말기 내할하 5부들은 수차례 몽골에 붙다가, 후금에 붙었다 했다. 이처럼 수많은 유목부족들이 몽골이라는 "울루스"에 속했지만 오이라트, 키르기스처럼 경우에 따라서 얼마든지 떨어져나가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현대 몽골인의 기원은 청나라 치하 몽골에서 비롯되었다. 청나라에서 효과적인 이민족 통치를 위해 이번원을 설치했고, 몽골도 이번원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청나라는 몽골을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누어서 다스렸다. 분단 기준은 청나라에 복속한 시기였다. 홍타이지 시기에 복속한 몽골은 내몽골이, 강희제 시기에 복속한 몽골은 외몽골이 되었다. 이에 덧붙여 청나라는 예케 몽골 울루스에 속하는 몽골인 뿐만 아니라, 오이라트, 투바도 모두 몽골로 묶어서 관리했다.
이후 청나라 조정은 기존의 울루스와 오톡 제도를 파괴한 뒤 팔기제에 준하여 몽골 제부를 181기(旗: 호슌)와 13맹(盟: 출간)으로 재편하고 유목지를 지정했다. 19세기 중후반 청이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세속주의 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화되기 시작하자, 많은 한족들이 투셰투칸부 등으로 유입돼 개간을 시도했고, 이에 따라 유목 사회는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몽골로 유입된 한족은 유목민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위협적인 타자와 접촉하게 된 유목민들은 '동족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전세계 민족주의의 바람은 몽골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몽골인들은 모든 몽골인들은 뭉쳐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범몽골주의다. 이에 따르면 외몽골, 내몽골, 오이라트는 모두 같은 몽골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범몽골주의에 대해서도 각 몽골족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범몽골주의와 독립에 적극적이었던 부족은 단연 외몽골이었다. 이들은 8대 젭춘담바 후툭투 복드 칸을 중심으로 몽골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몽골 독립을 지지하는 수많은 내몽골, 오이라트 세력도 외몽골과 협력했다. 하지만 몇몇 오이라트, 외몽골 부족과 내몽골 세력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중국,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있었던 몽골인들이 독립에 부정적이었다. 특히 내몽골 중에서는 일부는 외몽골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1911년 12월 29일 복드 칸이 칸의 자리에 오르면서, 외몽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복드칸국은 중국에 거주하는 모든 몽골인들에게 귀부를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투바, 신장의 토르구트, 간쑤성의 여러 몽골인들, 내몽골 내 수많은 몽골인들이 귀부를 알렸다. 문제는 러시아가 새로 만들어진 중화민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하여 몽골이 중국에 남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러시아의 인정과 지원이 절실했던 몽골은 결국 내몽골의 귀부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단 중화민국의 내몽골 통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했던 몽골인들은 1913년 마침내 내몽골 원정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중화민국에서 반격하기 시작하면서 후퇴하게 된다. 이후 1915년 캬흐타 협정으로 복드 칸국이 중국의 자치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쉬수정의 외몽골 장악과, 러시아 백군, 적군의 싸움으로 몽골 정세가 어수선해지면서 몽골 통합 논의는 지지부진하게 된다.
몽골의 통합 운동은 1921년 7월 10일 몽골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재논의되기 시작한다. 이당시 몽골의 최우선 과제는 외몽골과 내몽골, 부랴트, 탄누 우량카이, 오이라트, 그외 몽골 제부족의 통합이었다. 1921년 몽골인민공화국 수립에 큰 영향을 받은 내몽골인들이 여러 민족주의 활동을 벌였다. 몽골인민공화국은 내몽골의 이러한 움직임을 내몽골인민혁명이라 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으로 내몽골 공산세력의 활동은 멈추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소련의 입김으로 1925년 제4차 당 대회 강령에서 몽골 통합 내용을 제거하면서 몽골 통합운동은 또다시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한편 내몽골에서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1933년 1월 일본의 관동군이 중화민국의 열하성을 점령한다. 이에 내몽골의 각 수장들이 백령묘(百靈廟)에 모여 회담을 했다. 그리고 중화민국의 난징정부에 내몽골 사람들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일본에 붙어버리겠다 통보한다. 이에 놀란 장제스는 곧바로 내몽골의 자치를 인정하고, 몽고지방자치정무위원회(蒙古地方自治政務委員會)를 세웠다. 여기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 데므치그돈로브였다. 일본의 관동군은 데므치그돈로브와 접촉하기 시작하였고, 그를 수장으로 삼아 일본의 괴뢰국 몽강연합자치정부를 만들었다. 일본은 소련과의 관계 문제로 내몽골과 외몽골이 접촉하는 것을 꺼려렸다. 데므치그돈로브도 몽골 통합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1945년, 일본제국의 패색이 짙어져가는 중에, 몽골 인민공화국이 1945년 8월 9일 소련과 함께 내몽골에 진입한다. 내몽골 곳곳에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고, 처이발상도 내몽골에 압제자 일본으로부터 내몽골을 해방시키겠다고 선전을 했다. 그리고 9일 뒤인 8월 18일, 내몽골해방선언을 발표한다. 하지만 소련의 압력으로 통합운동은 지지부진해지고, 결국 내몽골 민족운동 세력이 자치를 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몽골의 통합이 성사되지 못한다. 처이발상의 사후에는 중국의 내몽골에 대한 지배가 확실해지면서 점차 통합운동은 사그러지게 된다. 이후로 외몽골과 내몽골은 70년이 넘도록 통합하지 못하고 분단되어 살아가고 있다. 또, 내몽골 지역에 한족이주가 계속되고 내몽골이 외몽골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하게 되면서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세대를 지나면서 동족이라는 인식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윗세대는 서로를 같은 종족으로 보고 있지만, 80년대생 이후부터는 서로 신경을 끄는 경향이 강해진다.
몽골계 민족[편집]
몽골인을 포함한 몽골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몽골계에 해당되는 민족들을 가리킨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몽골계에 해당되어도 정체성이 다르기에 민족의 정체성으로 본다면 몽골인과는 다르다. 언어는 몽골어족에 속한다.
만주 지역과 몽골 사이의 내몽골 동부에 거주하는 다우르족, 신장위구르자치구 북부 준가리아의 오이라트계와 극소수의 준가르족들, 그리고 오이라트인 중 러시아 카스피해 북서부로 이주한 칼미크인, 티베트 북부 칭하이성의 투족, 간쑤성에 거주하는 무슬림 민족들인 둥샹족, 아프가니스탄 북서부에 거주하는 모골인들 역시 대표적인 몽골계 민족들이다.
특징[편집]
신체적 특징[편집]
유목 생활을 주로 하는 환경적인 요인 덕분에 시력이 매우 좋기로도 유명하다. 유목민에게 중요한 재산인 양과 같은 가축이 늑대와 같은 맹수의 먹이로 희생되는 일이 많기에 이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하므로 시력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눈을 피로하게 하는 장애물이 적고 탁트인 넓은 초원에서 살아왔기에 시력이 좋은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 국가 사람들처럼 시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 몽골인들의 절반가량이 수도인 울란바토르 주변에 살고 있는데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보통의 대도시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석탄으로 난방을 하다보니 공기가 매우 나쁘며, 눈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또한 몽골인이라고 해서 TV나 스마트폰, 컴퓨터 등 눈 나빠지기 쉬운 전자제품 사용률이 특별히 더 낮은것도 아니기 때문에 요즘은 몽골인들 중에도 안경 쓰고 렌즈 끼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예시로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만 해도 안경 착용자다. 몽골인이 시력 좋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그래도 타 국가 사람들에 비해서 시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자신들이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믿는 몽골인이 많다. 실제로 과거 몽골제국의 영토에 사는 현세대 민족 중 칭기즈 의 후예로 추정되는 사람은 약 8%에 달하며 이는 1,600만 명이라는 대인구다. 실제 칭기즈 칸의 유전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은 전부 동일 Y염색체를 가졌으며 약 1천 년 전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다 정확히는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은 아니고 칭기즈칸 가문의 유전자들이 이어진 것이다. 칭기즈칸 가문 사람들은 몽골제국이 쇠락한 이후로도 유라시아 각지에 나라를 세우면서 지배계층의 자리를 차지했고.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모굴리스탄칸국, 크림칸국, 부하라칸국 등의 나라가 수백년 넘게 이어왔고, 몽골계 국가들을 정복해서 세를 확장한 러시아제국에서도 몽골계 귀족가문이 상당수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중국에서도 청나라가 중국 전역을 정복한 뒤로는 황금씨족이 청나라 황실과 혼맥을 맺을 정도로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 때문에 칭기즈칸 유전자는 만주, 중국 북부, 고비 사막, 바이칼, 투르키스탄, 파키스탄 북부 등지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것이다, 다만 몽골 이외 지역에서 정착한 칭기즈칸 가문의 후예들은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지배계층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튀르크족, 페르시아인, 슬라브인 등과 혼혈되어 중동인, 유럽인의 외모를 지니는 경우가 많고, 언어, 문화적으로도 현지어를 쓰며 동화되었기 때문에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지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웹상에서는 2010년대 이후로 부흐가 매체에서 조명되거나 몇몇 부흐 출신 몽골 선수들이 격투기나 레슬링 등지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덩치 크고 힘 좋은 민족이라는 인식도 생겼는데, 실제 러시아 내에서 몽골인들은 소수민족 중에서 힘이 좋기로 유명하다. 다만 유전적 차이라기보다는 스포츠가 생활화되고 고단백 식단에서 나오는 차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러시아 소수민족이 아닌 몽골 본토의 남성 국민들은 평균키가 160중반~후반대를 육박 하기에 그리 키나 덩치가 큰 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품질의 영양섭취가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체격이 큰 유전적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 인구 집단이라 해도 영양 섭취가 좋은 집단에 비해 평균 키나 체격의 성장이 정체되기 마련이다.
국민성[편집]
국민성의 경우 척박한 지역에서 유목을 하는 특성상 대체적으로 터프하지만 순수한 편으로 돌려말하기식 같은 건 전혀 없고 빈말이란 개념도 없어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목민들의 공통적인 특성인 여행자 같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편이다.
술을 매우 잘 마시는 나라로, 소비량, 음용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폭음 문화는 역시 오래된 유목생활에서 나타나는데, 이 문화는 몽골 제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국 성립 이후에도 몽골인은 중국인, 고려인, 이란인 등 타민족과의 공식석상에서도 상식을 초월한 폭음을 즐겨 피지배 민족을 경악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몽골 국외 거주 몽골인[편집]
몽골 국민들은 중국과 대립하는 감정이 있으며, 아울러 내몽골인이나 자국 내 튀르크계 카자흐인은 더욱이 혐오한다. 외몽골 할하인들과 다르게 내몽골인들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내몽골인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한족과는 다른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몽골계 중국인이다.
몽골국에는 몽골인 말고 소련 시대에 이주한 러시아인도 있는데, 인종부터 백인인 데다 정교회를 믿는다.
이슬람을 믿는 5%의 튀르크계 카자흐인 및 키르기즈인도 있는데, 외몽골 서부의 호브드 아이막에 산다.
미국내에 소수의 몽골계 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칼미크계 미국인들도 거주하는 등 소수의 몽골계 민족이 미국에 거주한다. 그리고 러시아내에는 몽골계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편집]
- 〈몽골인〉, 《나무위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