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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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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주(말레이어: Melaka)는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13개 주의 하나이다. [1][2]

개요[편집]

믈라카주의 면적은 1,664㎢이며 인구는 788,706명(2010년 기준)이며 주도는 믈라카시(Malacca city)이다. 믈라카주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57%는 말레이인이며 32%는 중국인이다. 말레이 반도의 서남부 말라카 해협에 위치하여 있다. 인도네시아수마르타와 마주보고 있으며, 북쪽에는 느그리슴빌란주, 동남부에는 조호르주가 있다.

크기는 퍼를리스, 풀라우피낭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작은 주이지만,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도읍이자 지금의 이슬람 말레이시아의 시조 국가이며 말레이시아 문명 발상지의 하나이다.

현지인들은 "Melaka"라고 한다. 공식적인 별명은 "Negeri Bersejarah"로 뜻은 "역사적인 주 믈라카". 술탄제의 기원이다보니 가끔 "귀족의 집"이라는 뜻의 "Darul Azim"으로도 불리지만 술탄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는 그리 사용되는 별칭은 아니다. 이 이름의 기원은 믈라카 나무이다. 드물지만 "Negeri Hang Tuah"(항 투아의 집)이라는 별칭도 사용된다.

믈라카주에는 세인트폴 언덕의 유적을 비롯하여 세인트존 언덕의 성채가 그것이며, 이 밖에 박물관도 있다. 화교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싱가포르에 밀려 있다. 동서양의 중심에 위치하여 관광지로도 각광 받는다. 시파단 섬 등은 트럼펫 피시(trumpet fish)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이다. UNESCO에 따르면 2008년 7월 7일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문화 유산 대회에서, 세계 유산의 하나로 믈라카 시가 등재되었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 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두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뉘는데 11개의 주와 2개의 연방 직할구가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있고 2개의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가 동말레이시아에 있다. 각 주는 시 또는 구역으로 나뉘며, 또다시 소구역(mukim)으로 나뉜다. 사바와 사라왁의 구역들은 분할에 따라 묶인다.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던 당시 총 14개의 주만 있었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당초 연방 직할구는 없었으나, 1974년 쿠알라룸푸르가 슬랑오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시작으로 생겼으며 이후 푸트라자야와 라부안이 신설되었다.

주의 관할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둘 다인데, 각각 다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연방 직할구는 연방 정부가 직접 관할한다. 비록 자치법령의 몸체가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제정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지만, 시의회, 구의회, 지방의회 등 하위 관할은 각 지역이 맡는다. 연방 헌법은 연방 직할구 외의 지역 관할을 각 주의 전담관할로 하지만, 실제로는 연방 정부가 각 지역의 부의 내정에 간섭한다. 총 144개의 지역의회가 있는데, 11개는 시의회, 33개는 지방의회, 97개는 구의회이다.

13개의 주 모두 역사 속의 말레이 왕조를 바탕으로 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주 11개 중 9개는 말레이 주(또는 이슬람 주)라 하여 고유의 왕실을 두고 있다. 국가원수인 양디-퍼르투안 아공(국왕)은 5년마다 이 9개의 주의 지도자(술탄)가 번갈아가며 선출한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왕은 군주제를 시행하지 않는 주에서 각 주수상과의 합의를 거쳐 4년간 업무를 수행할 정부 수반을 임명한다. 각 주에는 주의회로 알려진 단원제 의회가 존재하며, 나름의 주 헌법을 작성한다. [3]

역사[편집]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이 점령한 이래 인도양태평양에 진출했던 제국주의 유럽 열강 중 말라카를 차지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인도-동아시아 무역망을 경영한 세력은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대로 말라카를 지배했던 세월은 바로 그 나라들이 이 광활한 남아시아 해양 무역 네트워크 자체를 독점했던 패권의 척도 그 자체이기도 했다.

믈라카 술탄국[편집]

고대 믈라카는 처음엔 현지 말레이인이나 "해지인"(Orang Laut)로 불리는 이들이 살던 한적한 어촌으로 시작했다. 바다가 접해 있고 그렇다 보니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여러모로 지리적으로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기원전부터 해상 향신료 루트의 주요 거점에 속해, 동남아, 동아시아로 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실제 한반도 동남부에 치우쳐진 신라의 유물 중에서 유리 재질의 사치품이나 로마, 중동 양식의 사치품들이 있는데, 이쪽 해협을 건너간 것들이다.

이 한적한 어촌말레이시아 역사를 주도하게 된 것은 테마섹 왕국의 군주인 파라메스와라가 믈라카로 도피하면서 수도로 삼았고, 나라이름도 믈라카 술탄국으로 바꾸면서 한동안 말레이시아의 정세를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건마국의 왕이 되어 삼한의 정세를 주도한 것과 위례성 함락 이후 웅진에서 새출발한 백제가 비슷한 예라 할 수 있다. 본래 파리메스와라는 오늘날의 싱가포르에 위치하던 테마섹 왕국의 군주였지만 이 당시 세를 떨치던 마자파힛 제국에게 싱가포르 섬을 함락당하자 급히 믈라카로 도피했고, 믈라카를 임시수도로 정하며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계 왕조 출신이었지만 말레이인이었다. 당시 아랍 상인들과의 교류 중 이슬람이 전파되었는데 그는 이슬람으로 즉시 개종하고 페르시아어식 호칭인 "이스칸다르 샤"를 칭했고, 나라이름도 믈라카 술탄국로 개칭하였다.

다만 국가가 성립된 시기는 불분명하다. 이는 고대부터 원래 거주하던 토착세력이 무역을 하며 세운 도시와 14~15세기부터 무역이 크게 확대 되면서 번영하며 강성해진 시기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바는 15세기 초반이지만, 근래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3세기 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건국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는 상태이다.

포르투갈령 믈라카[편집]

예전부터 믈라카는 지리적인 이점, 인도, 아랍과의 교류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는데 파라메스와라는 이를 노렸다. 그러나 파라메스와라가 죽은 지 한참 후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포르투갈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1511년 불과 700명의 본토 병사에 300명의 남인도인 보조부대로 코끼리 20마리를 포함한 2만 명이 지키는 믈라카를 함락시켰다. 이때 포르투갈군 전사자는 불과 28명에 불과했다. 결국 믈라카 술탄국은 멸망했고, 포르투갈의 속국이 되었다.

포르투갈은 기독교(가톨릭)를 전도하려 했으나 주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었다. 믈라카 술탄국의 왕실이 조호르로 망명하여 온전한 만큼 저항의식이 강했고 지형과 기술 때문에 진압이 어려웠다.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는 정복에는 성공했으나 가톨릭화에는 실패했으니 절반의 성공일 뿐이었지만 의외로 이쪽 문화에 감동을 느껴 오히려 현지 문화를 존중했다. 그래서 당시 포르투갈의 핵심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는 행정 언어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했지만 여기서는 말레이어를 사용했다.

당시 말라카 술탄국은 조선이나 베트남과 비슷하게 명나라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순식간에 조공국이 멸망하는 걸 본 명나라는 망명한 말라카 술탄이 도움을 요청하자 당시 명나라에 있던 포르투갈 사신단과 상단을 모두 억류하고 함대를 편성하여 포르투갈을 몰아내려고 했다. 1521년, 1522년[3] 두차례 걸쳐 홍콩 일대에서 포르투갈 선단을 격파한 명나라는 이 기세를 몰아 말라카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포르투갈이 인근의 중국 이권을 보장하고 왜구 소탕에도 도움을 주겠다며 당근을 제시하자 마카오에서 무역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양국은 합의를 봤다.

조호르로 망명한 말라카 술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기용할 수 있었던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포르투갈의 지배 하에 있던 말라카를 탈환하려고 하였다. 1521년, 1550년, 1567년, 1574년 수 차례 조호르 술탄국은 인근 다른 말레이계 술탄국, 영주들과 연합군을 편성하여 포르투갈령 말라카에 공격을 가했고, 그 중 특히 1550년의 원정은 거의 함락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격퇴되었다.

조호르 술탄국은 이후에도 계속 말라카를 정복하려 했지만 16세기 후반 포르투갈과 타협하여 포르투갈이 더 이상 말레이계 세력으로 확장을 하지 않으며, 인근 해적 소탕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말라카 수복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말라카는 이미 불안한 정치적 상황과 끊임 없는 군사적 충돌, 그리고 이런 막장 상황을 틈 탄 해적들의 기승으로 인하여 한때 화려했던 태평양-인도양 무역의 메카로서 역할을 인근 조호르 술탄국의 리아우 열도, 빈탄, 아체, 시악 등에게 넘겨 주었다.

17세기 초반에는 오히려 조호르 술탄국과 포르투갈이 싸우던 사이 새로운 해양 세력으로 강력한 힘을 기른 이스칸데르 무다 치하 아체 술탄국의 맹렬한 공세에 둘 다 멸망할 뻔했다. 그러자 조호르와 포르투갈은 이때 만큼은 힘을 합쳐서 겨우 아체의 공세를 격퇴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네덜란드가 말레이 반도로 진출하게 된다.

네덜란드령 믈라카[편집]

당시 유럽에서 80년 전쟁을 겪으며 이베리아 연합 아래 포르투갈과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던 스페인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던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의 무역 거점인 말라카를 차지하면 이베리아 세력에게 강력한 타격을 주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해양제국의 기반도 쌓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17세기 초반 말레이 반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강력한 포르투갈 세력과 어느 정도 타협은 봤지만 고토 수복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조호르 술탄국에게 이 새로운 세력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1606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대표 마텔리프 판 용헤와 동맹을 체결하여 아체의 위협을 물리치자마자 다시 포르투갈에게 칼 끝을 돌렸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아시아 최강급 방어력을 자랑하며 거의 두자릿수의 인근 경쟁 세력이 연합한 정복 시도를 막아냈던 포르투갈령 말라카도 결국 이베리아 제국의 약화 자체를 극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공격을 몇 차례 막아냈으나 결국 1641년 조호르-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연합군의 공격에 함락당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말라카를 제외한 인근 영토 모두는 조호르 술탄에게 반환하며, 차후에도 군사적, 경제적 편익을 제공하고 영토 확장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조호르 술탄국과 거래를 했다.

믈라카를 수중에 넣은 네덜란드는 믈라카를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결정이 믈라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갖춘 수도였던 바타비아는 물론 말루쿠(몰루카)까지도 이어지는 크고 아름다운 네트워크를 통한 무역이 경제 성장에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영국령 믈라카[편집]

네덜란드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믈라카는 이제는 영국령이 되었다. 문제는 영국의 세력이 커지자 네덜란드와 분쟁이 발생했는데 결국 1824년 싱가포르를 기점으로 북쪽은 영국이, 남쪽은 네덜란드가 차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한 영화협정을 통해 해결했다. 이로써 믈라카는 풀라우피낭과 싱가포르와 더불어 신설 해협 식민지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술탄제도 폐지된다. 처음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령이었지만 나중에는 영국 정부에 소유권이 넘어가 왕령식민지로 개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시 일제의 지배를 받았으나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영국령 해협 식민지로 복귀했다. 그러나 1년만에 해체되고, 싱가포르를 제외한 상태로 말라야 연합에 가입한다. 2년 만에 말라야 연합이 붕괴되고 이후 세워진 말라야 연방에도 잔류하였다.

말레이시아 믈라카주[편집]

1955년 첫 총선과 함께 독립이 기정사실화 되고 1957년 8월 31일을 기점으로 말라야는 독립을 쟁취하지만, 술탄제는 부활하지 못했다. 1963년 9월 16일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을 때도 그냥 풀라우피낭,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와 더불어 총독제가 시행되는 주의 하나가 되었다. 1989년 말레이시아의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었고 이어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왕정복고[편집]

누르 잔이라는 사람이 2013년 믈라카는 "복종의 집"이라는 뜻의 "Darul Islam"이라는 별칭과 함께 술탄제로 복귀해 술탄으로 추대되면서 드디어 술탄제가 복귀한다라는 주장을 했다. 그는 페락 왕실 출신인데 당초 아즐란 샤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나 나즈린 샤가 떠오르면서 밀렸던 모양. 그러자 홧김에 아버지를 거역하고 술탄을 참칭했으나 끝내 내려왔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소문일 뿐이며 사실 여부는 모른다.

그런데 본인이 이렇게 스스로를 믈라카 술탄으로 추대했다는 것은 어쩌면 본인이 믈라카 술탄의 후손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긴 했으나 결국 진위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왕정복고를 주장한 이듬해 경찰에 검거되었고, 신성한 왕실 타이틀을 가지고 물의를 빚었으니 처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람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보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 같다.

중요한 사실은 믈라카 술탄국이 1511년 무너진 이후 술탄제가 부활한 적은 없다. 말라카의 술탄들은 포르투갈에게 말라카를 상실한 이후 옆동네 조호르로 자리를 옮겼다. 말라카 술탄의 혈통은 왕가가 이주한 조호르가 이어 받았고 18세기, 19세기에 있었던 왕위 계승 분쟁으로 몇차례 왕실이 바뀐 후에도 여전히 조호르에 남아 있었고, 19세기에 전혀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말라카-조호르 왕가의 왕통이 소멸 되었다.

그리고 말라카 본토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직할 통치를 받았고, 현재까지 400년 넘게 자체적인 술탄이 없다. 그런 상황에 말라카에 술탄제를 복고한다는 주장은 이상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이 주가 진짜 술탄제로 부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술탄제의 근원지라는 점 때문에 주민들도 술탄제에 대해 의외로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누르 잔 말고도 술탄을 참칭한 자는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매우 극단적인 통일주의자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부르나이-필리핀까지 전 말레이계 나라를 합친 마필린도라는 가상의 국가의 술탄을 자처했다. 물론 이 사람도 경찰에게 제지 당했다.

교통[편집]

산미랑(森美兰) 주 남부의 탐핀(Tampin) 및 풀라우 세방(普罗士邦, Pulau Sebang)에 인접하여 있다. 말레카 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말라카 유일의 기차역이 있다. 제이차세계대전 전부터 이용되었으나,일본군에게 파괴되어 사망철로(死亡铁路)라고 불렸다. 역사 유적으로서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말라카의 버스 터미널은 콸라룸푸르(Kuala Lumpur), 조호 바루(新山, Johor Bahru) 및 말레이반도의 각 곳으로 연결된다.

산업[편집]

믈라카주의 양대 산업은 관광업과 제조업이다. 말라카 주의 구호는 "믈라카 관광이 곧 말레이시아 관광"(영어: Visiting Melaka Means Visiting Malaysia, 말레이시아어: Melawat Melaka Bererti Melawati Malaysia). 풍부한 문화유산 및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제조업으로는 하이 테크놀로지 무기, 자동차, 전자, 컴퓨터 등이 있다. 23개 이상의 공업단지가 있으며,미국, 독일,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의 공장들이 500개 이상 있다.

사회[편집]

총독제를 시행하고 있는 주 중에서는 풀라우피낭, 사바와 함께 무슬림이 대다수인 주는 아니다. 2013년 통계에서는 25.3%가 중국인인데 동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는 전형적인 차이니스 말레이시안과 혼혈 현지화되어 중국인이라는 감각이 희미할 듯 한 프라나칸(Peranakan)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프라나칸은 "바바와 뇨냐"라는 말레이-중국의 혼합된 문화를 남겼는데 여기에 바바뇨냐 유산 박물관이 있다. 인도인은 6%인데 이들은 치티라고 하는 말레이화된 인도인이다.

그리고 타 지역에서는 존재조차 불분명한 크리스탕족이라는 특이한 민족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15세기 첫 식민지 개척자였던 포르투갈인들의 후손으로 현지 말레이인 및 원주민들과 혼혈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내려져오고 있는 일종의 크리올 집단이다. 치티와 마찬가지로 믈라카 외에는 그나마 싱가포르에서 볼 수 있는 민족. 총 37,000명 뿐인 소수 민족이다. 이들은 말레이식으로 변형된 포르투갈어 방언을 사용한다. 말레이시아의 음악인 로이스턴 스타 마리아가 크리스탕 출신이다. 랑아슬리 계열의 트무안족도 극소수 거주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믈라카주〉, 《위키백과》
  2. 믈라카〉, 《나무위키》
  3. 말레이시아〉,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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