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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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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jia1222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1월 28일 (화) 17: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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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Lamborghini)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는 람보르기니(Lamborghini)가 1967년 제작한 최고속도 280km/h의 고성능 스포츠카다. 최초의 양산형 V12 미드십 차량이자 최초로 슈퍼카라는 명칭을 얻은 자동차이다. 또한 람보르기니가 공식적으로 분류한 람보르기니 최초의 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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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1966년 출시된 이 엄청난 머신은 슈퍼카의 세계에서 미드십 구조를 최초로 유행시킨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미우라가 출시된 당시 페라리는 외모로 보나, 퍼포먼스로 보나 미우라에 비해서 한참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우라는 또한 최초로 쿼드-캠샤프트 V12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였다. 미우라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차체가 땅에 붙어있는 듯한 아주 낮은 디자인은 마치 우주에서 온듯한 느낌이었으며, 미래에서 온 슈퍼카라는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차체 양옆에 위치한 거대한 사이드 실은 새로운 섀시 디자인의 상징이었으며, 큰 사이드 실과 센터터널이 사용된 스틸 모노코크 방식을 채택했다. 엔진이 운전자 뒤에 위치한 미드십 구조였으며, 엔진룸은 스틸 프레임으로 감쌌다. 엔진은 알로이블락과 헤드로 구성되었으며, 연소실은 미국 엔진에서 영감을 얻은 고전적인 반구형이었고 실린더당 밸브는 2개에 불과했으나 4개의 캠샤프트가 사용되었다. 이후에 출력을 385마력으로 올린 SV버전이 1971년 출시되었는데, 오일쇼크로 인해 2년 만에 단종되었다.

출시배경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2차대전 당시 정비공으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온 페루치오는 트랙터를 생산하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트랙토리체라는 회사를 만든다. 람보르기니의 모체가 된 기업이다. 트랙터 사업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쥘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페루치오는 사업에서 성공하자 여러 자동차를 사 모았다. 이중, 60년대 초 인기 스포츠카였던 페라리의 250 GT 모델도 있었다. 페라리는 당시 F1 경주대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양산차에서는 클러치 결함이라는 고질병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트랙터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으로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페루치오는 고객이자 엔지니어로서 자문을 전달해주기 위해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쵸 페라리를 찾았다. 하지만 호의를 가지고 방문한 페루치오에게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와 수모였다. 레이스 대회에서 입지를 굳혀가며 자신감에 넘쳐있던 엔쵸 페라리는 페루치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모욕을 당한 페루치오는 최고의 스포츠카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1963년 현재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볼로냐 인근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장을 설립했다. 동시에 최정예 기술자들을 끌어 모았으며, 페루치오가 이들에게 주입한 절대 원칙은 페라리를 능가하는 자동차였다. 페루치오의 꿈은1년 만에 첫 성과물을 낳았다. 토리노 모터쇼에서 350GTV를 내놓은 것이다. 후속 모델인 400GT까지 잇따라 성공시키며 트랙터 업체가 최고의 스포츠카를 제작하려는 것은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던 주위의 시선을 한낱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1]

자신감을 얻은 람보르기니는 성능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페라리를 앞서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바로 미우라의 출시다. 미우라는 페루치오가 직접 명명한 것으로, 투우 중 최고 종자라는 뜻이다. 미우라라는 정식 명칭이 붙기 전의 차 이름은 P400이었다. P는 Posteriore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뒷쪽을 뜻한다. 엔진을 뒤에 놨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애초 P400은 페루치오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페루치오는 고성능 스포츠카보다는 좀더 대중성 높은 GT(Grand Touring·그랜드 투어링)카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했고, 페루치오 역시 람보르기니의 이미지와 광고 효과를 고려해 프로젝트 추진을 승낙하게 된다.

P400(프로토타입) 제작의 선봉에는 람보르기니의 쟝 파울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와 파울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 밥 월레이스(Bob Wallace) 등 엔지니어들이 나섰다. 이들은 레이싱 자동차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공공 도로용 스포츠카를 원했다. 즉, 트랙에서도 경쟁 차종을 이길 수 있고 공공 도로에서도 몰고 다닐 수 있는 마니아들을 위한 자동차를 상상한 것이다. 엔진이 가로로 중앙에 배치된 P400의 경사 진 차대는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호평 속에 이듬해 P400이라는 이름 대신 프로토타입에 바디를 완성시킨 미우라 P400이 등장했다. 미드십 엔진으로 기동성을 높인, 공공 도로 주행 가능한 스포츠카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람보르기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투우 뱃지도 이때부터 본격 사용하게 됐다.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된 미우라 P400은 4.0ℓ V12 엔진에 최고속도 280㎞/h, 최대출력 350마력의 고성능을 자랑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소요되는 시간(제로백)은 6.2초를 찍었다.[2]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를 내놓으면서 이전까지 없었던 영역인 슈퍼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그동안 GT와 스포츠카를 제작하고 있었던 페라리와의 성능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며, 마침내 페라리보다 더 빠른 차를 만든다는 창업의 목표를 성취했다. 그리고 미우라는 오늘날까지 투우 소의 이름을 빌려 쓰고, 리어미드십 V12 엔진을 장착하는 등, 람보르기니 플래그십 슈퍼카의 전통을 세운 모델이 된다. 지금까지도 미우라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탁월한 엔진 성능이다. 미우라는 배기량 4.0리터와 60도의 뱅크각을 갖는 V12 엔진은 P400, P400S, P400SV 모델에서 각각 최대 출력 350마력, 370마력, 385마력을 내는 4개의 40 IDL 3L 웨버 컨뷰레이터를 탑재했다. 이러한 성능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기에 충분했다. 미우라는 출시 직후부터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가 되었다. 미우라는 총 43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종종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람보르기니는 성능으로 페라리를 이긴 미우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슈퍼카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1980~1990년대 수많은 스포츠카 제조사들이 사라지고 있었던 가운데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3]

각주

  1. 람보르기니 미우라 - 슈퍼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차〉, 《네이버캐스트》
  2. 안광호 기자, 〈6. 람보르기니의 야심작 ‘미우라’〉, 《경항신문》, 2011-11-21
  3. 모토야, 〈슈퍼카의 개척자, 람보르기니 미우라 이야기〉, 《모토야》, 2022-08-03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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