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지폐(paper money / bill, 紙幣)는 종이로 만든 화폐를 말하며 지전(紙錢)이라고도 하며, 종이말고도 실크나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지폐와 은행권을 이른다.
목차
개요
금속화폐의 보관증 또는 표지화폐(標識貨幣)로 시작하여, 보통 정부지폐와 은행권을 칭한다. 지폐는 주로 면섬유와 종이 섬유를 혼합하여 만드는데, 대개 면섬유를 주로 쓴다. 종이를 쓰지 않는 이유는 방수력과 접힘 내구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종이는 많이 접었다 펴면 잘 찢어질 수 있지만, 면섬유는 최대 만 번까지 견딜 수 있다. 우리나라 지폐를 만드는 한국조폐공사는 지폐의 내마모성(마찰에도 닳지 않고 잘 견디는 성질)이 거의 세계 최고의 수준에 달한다.
역사
세계 최초의 지폐
세계 최초의 지폐는 중국 송나라의 '교자'(交子)이다. 10세기 말경 동(銅)의 부족을 막기 위해 쓰촨 등지에서 철화를 대신하는 임시 용도로 발행되었다. 공식적인 지폐의 발행은 1170년 남송시대에 이르러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 지폐의 발행 배경이 되었다. 특히 원나라 때 지폐 발행이 매우 활발했는데, 금(金)·은(銀)·동(銅) 모두 정부가 강제로 보관하고 그 보관증 형태로 지폐를 발행하여 유통을 촉진 시켰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이 종이가 오랫동안 유통되어 찢어지고 닳게 되면, 조폐청에서 3센트 할인해서 새 돈으로 교환해주었다. 금이나 은으로 그릇이나 혁대 장식, 다른 귀중품을 만들 때면 왕립 조폐청으로 가서 그 종이 몇 장을 내밀고 조폐관에게서 금이나 은을 샀다. 왕의 군대는 모두 이런 종류의 돈을 지급받았다." 지폐는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한국, 일본 등으로 전파되었다.
서양 최초의 지폐
최초의 서양 지폐는 17세기 초 영국에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앞선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이미 장거리 신용이나 지불의 수단으로 환어음과 같은 지폐의 형태가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금·은 세공업자들이 귀중품 또는 돈을 받고 영수증으로 써준 '예치증서'(Goldsmith note)로서 오늘날 은행권의 모체가 되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부터 각종 금융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점차 대여, 예금, 외환업무, 수표와 약속어음 발행과 같은 넓은 범위의 은행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고 이들 역시 예치증서를 발행했다.
한국 최초의 지폐
고종 30년인 1893년, 우리 정부가 발행한 '호조태환권'은 한국 최초의 지폐이다. 호조에서 발행했고 5냥, 10냥, 20냥, 50냥짜리가 있었다. 당시 화폐로 쓰고 있던 엽전(葉錢)을 회수하여 새로운 화폐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화폐 업무를 담당한 일본인들의 운영권 다툼 때문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한 장도 사용되지 못한 채 모두 소각되었다고 한다. 이후에 나온 지폐 모두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발행한 지폐들이고 광복이 된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국 지폐 속 그림
천 원(1,000원)
앞면에는 모두가 익숙한 퇴계 이황이 그려져 있지만, 뒷면에 있는 그림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은 퇴계 선생의 그림이 아닌 한국회화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알려진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이다. 계상정거도는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주변의 모습을 담은 산수화이다. 계상정거(溪上靜居)의 뜻은 '냇가에서 조용히 지낸다'라는 의미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둘러싸인 배산임수의 풍경으로 그 안에 작은 암자가 있다. 자세히 보면 퇴계 선생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천 원(5,000원)
오천원권에는 율곡 이이 선생의 초상이 들어있다. 율곡 이이는 실효를 강조하는 철학사상과 조선 사회의 제도 개혁을 주장한 학자이다. 그리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며 오만 원권에 초상이 그려져 있다. 오천원권 뒷면에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작품 '초충도'가 있다.
만원(10,000원)
가장 익숙한 지폐인 만 원권 앞면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초상이 있다. 그리고 세종대왕 초상 뒤에는 '일월오봉도'가 있는데, 이름 그대로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물이 일정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다른 지폐와 다르게 만 원권만 유일하게 그림이 앞면에 그려져 있는데, 일월오봉도는 조선 시대 임금이 있는 곳에 항상 뒤에 존재하는 병풍이었다. 왕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화폐에서도 세종대왕의 뒤에 병풍처럼 그림을 펼쳐둔 것이다.
오만 원(50,000원)
오만 원권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어몽룡의 '월매도'가 있다. 월매도는 사군자인 대나무, 매화, 국화, 난초 중 매화를 그린것인데, 어몽룡은 매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일평생을 매화만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매화는 군자에 주로 비유되며, 달빛 머금은 매화의 청순함이 상징화되어 문학과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다. 오만 원권에 신사임당의 그림이 아닌 어몽룡의 그림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이미 오천원권에 신사임당의 그림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위해 동시대 화가의 그림을 뽑은 것이라고 한국은행 측이 답변하였다.
참고자료
- 〈지폐〉, 《나무위키》
- 〈화폐사〉, 《위키백과》
- 길건우, 〈화폐의 등장 그리고 진화〉, 《브런치》, 2018-03-28
- 서종한, 〈우리나라 지폐 속 그림이야기〉, 《IBK기업은행 블로그》, 2012-06-19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