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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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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投機, speculation)란 유가 증권 및 파생상품 등의 유동성 자산 혹은 부동산의 가격 변동의 차이를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행위를 말한다. 즉, 기회를 틈타서 큰 이익을 보려고 하는 행위이다.

투자와 투기[편집]

공장, 기계, 건물이나 원료, 제품의 재고 등 생산 활동과 관련되는 자본재의 총량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는 활동을 투자(投資)한다. 하지만 투기(投機)는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이 오직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실물 자산이나 금융 자산을 구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투자와 투기는 공통점을 갖지만,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고 투기는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땅을 매입하려는 경우에 건물을 짓든, 주택을 지어 판매하는 것이든, 농사를 짓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건물의 경우 사무실로 활용하거나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목적을 가지고 매입한 경우에 투자행위에 해당한다. 즉, 어딘가에 활용할 명확한 목적이 있을 때는 투자가 된다. 그러나 부동산을 매입할 때 사용 목적이 없음에도 매입해놓고 가만히 두었다가 시세가 오르기만 기다려 판매하고 나오려는 경우 투기에 해당한다. 또한 김세중 신영증권 주식전략 팀장은 "운에 맡기는 식이면 투기이고, 기업의 가치를 분석해 확률적으로 이익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것이 투자다"라며 둘의 차이를 설명하였다.[1]

문제점[편집]

부동산 투기[편집]

부동산 투기는 첫째, 가격 상승을 노리고 저가에 사들여 비싸게 되팔아 차액을 얻으려는 행위, 둘째, 개발하거나 생산요소로 이용하려는 의도 없이 보유 혹은 매매하는 행위, 셋째, 자본 이득의 획득을 노리고 부동산을 거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다.

  1. 집(부동산)값의 급격한 상승이 금융 이자율을 능가하게 되면, 노동자 또는 저소득층은 임금을 모아서 집을 구매하기 보다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해서 집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키고 왜곡된 시장가격으로 집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또다시 가계부채를 지속해서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며, 그로 인해 노동자들은 부가적인 금융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이중적 손실을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본가와 금융가들의 이익으로 돌아가고 빈부격차, 근로 의욕 상실, 국민통합 저해의 가장 큰 원인이다.
  2. 기업경영, 노동 의욕의 상실과 공장용지의 가격상승으로 생산원가와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경쟁력 약화되어 경제적 손실을 주게 된다. 자본이 생산활동 보다 부동산으로 모이게 되며, 기업경영이 위축되어 실업률을 증가 시켜 기업의 신규투자능력을 감소시키며,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
  3. 공공용지, 기반시설 설치가 어려워 공개념의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힘들게 한다. 개발정보를 미리 입수하여 필요 없는 집을 짓거나 나무를 심어 보상금을 높이는 경우가 있다.

투기의 사례[편집]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버블 : 1720년에 발생한 '남해회사 버블' 사건은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와 많은 금융 투기업체들이 연루되었던 특별한 사건이었다. 1701년~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시작하여 1711년에 영국에서 합자회사 형태로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가 설립되었다. 설립자인 로버트 할리(Robert Harley)는 스페인 국왕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남해회사에 스페인 식민지와의 독점 교역권을 허가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영국의 국가 부채는 남해회사 주식으로 전환되었다. 1713년에는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해 신대륙(아메리카)의 식민지에 대한 스페인의 주권이 공식적으로 확정된다. 이에 따라 남해회사의 원자재 교역은 당초 예상했던 규모보다 제한된다. 남해회사는 1년에 한 번 노예와 영국 상품을 거래하는 무역 항해를 골자로 하는 계약을 확정 짓게 되었다. 1717년 남해회사의 첫 무역 항해가 이루어지고 1719년 국회에서 추가적인 국가 부채를 남해회사에 양도하기로 승인했다. 다음 해인 1720년 1월에, 남해회사 임원들이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허위로 유포한다. 정부는 더 많은 국가 부채를 남해회사의 주식과 교환해 떠넘기려는 요량으로 이 회사의 사업 계획을 지지하고 나서게 된다. 이로 인해 투기열이 한층 고조되었다. 같은 해 6월에 남해회사가 영국 왕실의 인가서에 해당하는 왕실 칙허장(Royal Charter)을 받게 되고, 처음에 투자자들은 이를 신임 투표에 해당하는 긍정의 표시로 간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는 급락한다. 1721년 공식 수사 결과, 거미줄처럼 얽힌 부패와 사기 혐의가 드러나고 남해회사 임원과 정부 관료들이 줄줄이 기소된 사건이다.[2]

각주[편집]

  1. 디지털뉴스팀, 〈투자와 투기의 결정적 차이는?〉, 《동아일보》, 2011-09-18
  2. 희대의 금융 투기 사건:남해회사 버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2014-11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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