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력
수력(Waterpower, Hydropower, 水力)은 물이 가지는 위치에너지나 운동에너지를 이용하는 것 또는 그렇게 얻을 수 있는 동력이다. 물의 낙하 또는 압력에 의해 생기며 공업적으로 이용되고 수력발전에도 이용한다.[1][2][3]
개요
수력은 물이 가지고 있는 원동력 즉 물이 갖는 위치에너지, 속도에너지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동력 혹은 흐르거나 떨어지는 물의 힘이다. 수력은 댐, 강, 하천 등에서 물이 가지고 있는 위치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를 변환하는 제반 기술로 사용한다. 물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거대한 폭풍우와 같은 위력을 이용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로 우리에게 필요한 전력을 생산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 가까이에 가보면 천지를 진동하게 하는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데 이 힘을 실제로 이용한 것이 수력발전이다. 하천이나 호수의 물을 보관해두었다가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또 장마철과 같이 물이 풍부한 시기에 저수지에 담아놓았다가 필요할 때 에너지를 얻는 방법도 있다. 수력은 모든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근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수력을 이용해서 물을 퍼올리거나 곡식을 가공하기도 하지만 현재 수력은 대부분 전기를 생산하는 데 이용된다. 수력발전은 무한하게 사용 가능한 재생에너지일 뿐 아니라 홍수조절, 용수 공급, 전력계통 품질유지, 전력계통 최초 복구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수력은 기원후 3세기 물레방아에 이용되었으며 역사상 최초의 제재소인 로마 제국령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 제재소를 건설하였다. 수력 제재소는 11세기에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에 수력 제재소가 널리 퍼졌고 그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수력 제재소는 공학적으로 물레방아의 회전운동이 톱날의 왕복운동으로 전환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할 수 있다. 국내에서 수력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는 1905년으로 평안북도 운산수력에 500kW급 발전소가 건설되었다.[4][5][6]
수력조사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산지가 많은 조선의 지형을 놓고 수력발전 가능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조선총독부는 1911~1914년 동안 제1차 수력조사를 실시하였고 1922년부터 8년에 걸쳐 제2차 수력조사를 실시하였다. 제1차 수력조사에 의해 80개의 수력지점과 56,966kW의 이론 발전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측을 통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 지점이 39개였다. 제2차 수력조사에서는 131개 지점, 최대 이론발전량 2,333,754kW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1929년 당시에 전국의 기상관측소는 모두 187개소였으며 수력조사를 위해 27개소를 추가로 설치하였다. 유역 내에 포함된 관측소는 모두 157개였으며 관측소당 평균 유역면적은 1,226㎢였다. 관측은 강수량, 풍향 및 풍력, 날씨 및 기타 현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관측은 관측자가 제출한 우량 및 기상월표를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종합하여 우량 연표, 증발량 연표, 기온 연표, 우량 누적 연표, 증발량 누적 연표를 작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우량에 대해서는 전국의 우량 분포, 다우지역, 과우 지역, 월별 분포, 지역별 유출계수 등을 분석하여 기록하였다. 우리 땅에 대한 수력조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1932년에 조선수력전기주식회사에 의해 부전강수력발전소(20만kW)가 준공되었고 1932년에는 운암발전소(5,120kW)가 건설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수력발전소가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7]
국내 수력발전소 역사
최초에 수력발전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1905년으로 평안북도 운산수력에 500kW급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남한지역에는 섬진강 운암수력이 1931년 건설되었고, 한강수계는 1943년 청평수력, 1944년 화천수력, 1960~1980년대 춘천, 의암, 팔당수력, 청평양수가 건설되며 한강계 수력발전소가 현재의 모습을 완성하였다. 한강수력본부 수력발전소의 역사는 한국경제 성장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수원 내 한강수력본부의 수력발전소 역사가 긴 만큼 발전소 근래에 발전설비가 한계수명이 도달하여, 노후 수력 현대화사업을 통하여 계속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2009년 춘천수력 현대화를 시작으로 청평수력, 괴산수력, 의암수력 등 9개 호기 193MW를 완료하였으며, 2025년까지 섬진강수력, 화천수력, 삼랑진양수 등 12개 호기 1140MW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노후 수력 현대화사업을 통하여 앞으로 약 40년간 친환경에너지를 계속 생산하고, 친환경 방식으로 설비를 개선하여 수도권 수질보호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발전소 신규 건설 분야에서도 2000년도 이후 2001년 산청양수를 시작으로 양양양수, 청송양수, 예천양수, 2012년 청평수력 4호기 증설까지 3,160MW의 발전설비를 확보하게 되었다.[8][9]
각주
- ↑ 〈수력〉, 《위키백과》
- ↑ 〈수력〉, 《네이버 지식백과》
- ↑ "Hydropower", Wikipedia
- ↑ 물절약, 〈물의 힘, 수력〉, 《다음 블로그》, 2015-11-22
- ↑ 〈제재소〉, 《위키백과》
- ↑ 배봉원, 〈(기고) 수력발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에너지데일리》, 2015-09-21
- ↑ 김원, 〈안타까운 우리 하천의 역사 3 조선의 수력조사〉, 《한국하천협회》
- ↑ 방방곡곡, 〈일제강점기 때 후암동에 살았던 사업가 니시지마 신조(西島新藏)와 당시 일본의 수력(水力)발전 기술〉, 《네이버 블로그》, 2019-02-07
- ↑ 전력거래소, 〈수력에너지특징, 수력에너지이용사례와 장단점 알아볼까요?〉, 《네이버 블로그》, 2018-02-27
참고자료
- 〈수력〉, 《위키백과》
- 〈제재소〉, 《위키백과》
- 〈수력〉, 《네이버 지식백과》
- "Hydropower", Wikipedia
- 물절약, 〈물의 힘, 수력〉, 《다음 블로그》, 2015-11-22
- 배봉원, 〈(기고) 수력발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에너지데일리》, 2015-09-21
- 〈안타까운 우리 하천의 역사 3 조선의 수력조사〉, 《한국하천협회》
- 방방곡곡, 〈일제강점기 때 후암동에 살았던 사업가 니시지마 신조(西島新藏)와 당시 일본의 수력(水力)발전 기술〉, 《네이버 블로그》, 2019-02-07
- 전력거래소, 〈수력에너지특징, 수력에너지이용사례와 장단점 알아볼까요?〉, 《네이버 블로그》, 2018-02-27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