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잉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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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잉지구(버마어: စစ်ကိုင်းတိုင်းဒေသကြီး)는 미얀마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 지구이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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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저가잉지구의 면적은 93,527㎢이며 인구는 5,300,000명(1996)이며 주도는 저가잉이다. 북쪽으로 인도의 나갈랜드주, 마니푸르주, 동쪽으로 꺼친주, 샨주, 만달레이지구, 남쪽으로 머궤지구, 서쪽으로 인도와 친주에 접한다.
버마족이 만덜레-미찌나 철도를 따라 중앙 건조 지역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샨족은 친뒨강 상류에 살고 있다. 북서쪽 산맥의 북쪽에는 나가족, 남쪽에는 친족도 상당 수 살고 있다.
에야워디강과 친뒨강의 수운이 많이 사용된다. 도로와 철도 교통은 열악한 편이다.
미얀마의 행정구역은 크게 7개의 삐내(버마어: ပြည်နယ် 삐내)와 7개의 따잉데따찌(버마어: တိုင်းဒေသကြီး 따잉 데따 찌)로 나뉜다. 도의 이름은 에야워디도와 떠닝따이도를 제외하고는 도의 소재지의 이름이 도의 이름이 되었다. 또한 도와 주는 민족 간의 경계가 되어 도는 버마족이 다수를 이루는 반면, 주는 소수 민족이 다수를 이룬다. 도와 주의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군(버마어: ခရိုင် 커야잉)이 있다.[3][4]
역사[편집]
저가잉도에 처음 살았던 사람들은 서기 1세기의 쀼족이다. 버마족은 9세기에 고지 미얀마로 처음 이주해왔다. 이 지역은 11세기 중반에 현재의 미얀마 전체를 지배한 버간 왕국의 아나우라타 왕(1044~1077) 때 확실히 버간의 영역이 되었다.
1287년에 버간이 멸망한 후에 고지 미얀마의 북서쪽 일부는 버마족화된 샨족왕이 지배하는 저가잉 왕국(1315~1364)의 통치하에 놓여졌다. 이 지역은 1364~1555년까지는 잉와 왕국, 1555~1752년까지는 따웅우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772~1885년까지는 꼰바웅 왕조를 지배를 받았고 1885년 이후에는 영국령이 되었다. 1948년에 버마족이 독립한 후에 이 지역은 저가잉도가 되었다.
산업[편집]
농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작물은 쌀로, 경작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작물로는 밀, 참깨, 땅콩, 면화, 담배가 있다. 저가잉은 미얀마의 주요 밀 산지로 나라 전체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임업은 친드윈강 상류의 중요한 산업으로 티크나무와 기타 활엽수가 생산된다. 광물로는 금, 석탄, 소금과 약간의 석유가 있다. 산업으로는 방직, 구리 정련, 금 제련과 디젤 공장이 있다. 구에는 많은 쌀, 식용 기름, 면화 제재소와 직조 공장이 있다. 지역 산업으로 토기, 은그릇, 청동기, 철기와 칠기를 생산한다.
저가잉[편집]
저가잉(버마어: စစ်ကိုင်း 저가잉)은 미얀마의 저가잉지구의 수도이다. 에야워디강의 맞은 편으로 만덜레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약 30만 명이다. 저가잉은 종교와 수도원의 중심지로, 수많은 불교 수도원이 있다. 강을 따라 달리는 산맥의 언덕에는 수많은 탑과 사원이 있다. 순우뿐냐신 사원은 240m의 언덕 위에 있고 층계로 연결된다.
버간 왕조가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315년에 어띤커야왕이 세워 50년 동안 저가잉 왕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저가잉은 1760~1764년에 잠시 다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영국인들은 저가잉과 만덜레를 연결하는 어와다리를 건설했다. 관광객들은 만덜레에서 일일 여행지로서 저가잉을 많이 방문한다.[5]
버마족[편집]
버마족(버마어: မြန်မာလူမျိုး, 영어: Burmese people)은 미얀마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족으로 미얀마 인구의 68%(약 3천만명)를 차지한다. 이는 미얀마에 속한 모든 다른 민족(카렌족, 샨족, 카친족, 몬족 등)을 포함한다.
버마족의 공식 언어인 버마어는 버마족 뿐만 아니라 많은 소수민족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핵심적인 단어는 중국티베트어계의 단어이지만, 불교, 예술, 과학, 정부와 관련된 많은 단어들은 인도유럽어계의 영어와 팔리어로부터 유래한 것이 많다. 라카인족은 문화적으로는 버마족과 구별되지만, 민족적으로는 버마족과 관련이 있고 버마어의 방언을 사용한다. 다른 방언은 내륙으로부터 격리된 해안 지역인 타닌타리 구의 방언과 친 주 구릉 지역의 방언, 샨 주의 방언이 있다.
버마족들은 1200~1500년 전에 오늘날 중국의 윈난성에서 고지 미얀마의 이라와디강 계곡으로 이주했다. 지난 1000년간 원래 이라와디강 계곡을 지배했던 몬족과 퓨족을 주로 대체, 흡수하였다.
버마족은 미얀마에 가장 많으며, 미얀마의 다수 민족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 특히 영국에 정착했다. 버마족의 디아스포라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최근의 현상으로 2차 대전 때 시작되었고 주로 군부의 통치가 길어지면서 발생했다. 그 외에도 독일, 미국, 중국, 일본, 한국, 태국, 캄보디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도 거주한다.
버마족의 사회는 부부와 그 아이에 의한 핵가족이 중심이다. 다만 복합 가족도 많이 볼 수 있고 결혼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거나 결혼한 형제 자매가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인 버마족의 사회에서는 성이라는 혈연집단은 없었고 이름뿐이었다. 그 때문에 선조의 영혼을 제사 지내는 조상 신앙은 없고 유산은 아이들에게 균등하게 상속된다.
종교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상좌부 불교를 믿는다. 미얀마의 전통 의상으로 롱이(လုံချည်)가 있다.[6]
흐르는 강[편집]
에야워디강[편집]
에야워디강(버마어: ဧရာဝတီမြစ် 에야워디 미) 혹은 이라와디강(영어: Irrawaddy River)은 미얀마 중앙을 흐르는 강이다.
미얀마에서 가장 중요한 강이며 많은 하항을 가진 수운의 요지이다. 유역 면적은 411,000 km2이고 전체 길이는 2,170 km이다. 최대의 지류는 에야워디 삼각주 중앙부에서 합류하는 친뒨강으로, 미얀마 북동부의 나가 구릉을 수원으로 하고 있다.
에야워디강은 히말라야산맥의 남단에서 발원한 느마이강과 말리강이 꺼친주에서 합류해 형성된다. 이후 미얀마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단하고, 9개로 나뉘어 광대한 삼각주 지대를 형성하며 안다만해로 흘러든다. 철도나 도로가 정비되기 전의 식민지 시대에는 만덜레로의 길로 불리고 있었다.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로 코끼리강을 의미하는 airavati로부터 왔다고 추정되고 있다. 1989년에 연방 정부는 이 하천의 로마자 표기를 옛 버마어의 발음에 유래하는 이라와디(Irrawaddy)에서 현대 버마어의 발음에 맞춘 에야워디(Ayeyarwady)로 개칭했다.
강으로부터 이름을 붙인 에야워디돌고래라는 종이 있다.[7]
친뒨강[편집]
친뒨강(버마어: ချင်းတွင်းမြစ် 친뒨 미) 혹은 나잉티강(버마어: နိုင်းထိမြစ် 나잉티 미)은 미얀마의 강으로, 에야워디강의 가장 큰 지류이다.
친뒨강은 미얀마의 꺼친주 후가웅계곡의 따내강, 따운강, 따윤강이 만나는 곳에서 발원한다. 따내강의 상류는 모가웅에서 북쪽으로 19 km 떨어진 꾸문산맥의 슈웨다웅지산이다. 강은 후가웅 계곡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북쪽으로 흐른다. 강은 이후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평야의 가운데를 통과하고 따윤강과 합류해 친뒨강을 형성한다.
친뒨강은 민낀까지는 대체로 남서쪽으로 흐른다. 중앙 평원으로 진입하면서 남동쪽으로 흐르고 문이와의 서쪽을 통과한다. 강은 이 지점에서 저가잉도와 머궤도의 경계를 형성한다. 이후 뻐코꾸군과 저가잉군 사이에서 에야워디강과 합류한다.[8]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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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저가잉도〉, 《위키백과》
- 〈미얀마/행정구역〉, 《나무위키》
- 〈미얀마의 행정구역〉, 《위키백과》
- 〈두산백과: 아예야르와디 구〉, 《네이버 지식백과》
- 〈저가잉〉, 《위키백과》
- 〈버마족〉, 《위키백과》
- 〈에야워디강〉, 《위키백과》
- 〈친뒨강〉,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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