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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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낭주(말레이어: Pulau Pinang)는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13개 주의 하나이다. [1][2]
개요[편집]
피낭주의 면적은 1,048㎢이며 인구는 1,520,143명(2010년 기준)이며 주도는 조지타운이다. 프를리스주 다음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작은 주이며 말레이시아에서 여덟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말레이 반도 서부와 피낭섬으로 구성되어있다. 피낭주를 구성하는 피낭섬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다수인지라 1인당 주민 소득이 2위일 정도로 말레이시아 안에서는 경제 사정이 꽤 괜찮은 주이다. 말레이시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로부터 서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으며 상당한 부분이 육지에서 떨어진 섬에 위치해 있다. 섬과 맞닿은 말레이 반도 본토에도 피낭주 관할 지역이 일부 있으며 크다주에 약간 끼어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다수인 도시란 점이 특이점이며, 역사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보다 더 오래되었다.
주민은 중국인 43.2%, 말레이인 40%, 인도인 10%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이 분포도 1위를 차지하는 유일한 주이다. 주요 도시로는 주도인 조지타운을 비롯하여 부키트메르타잠(Bukit Mertajam), 숭가이아라(Sungai Ara) 등이 있다. 조지타운은 영국에 의하여 자유무역항으로 건설되어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배가 모여드는 상업 항구도시인데, 영국과 중국 문화, 그리고 인도의 힌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 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두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뉘는데 11개의 주와 2개의 연방 직할구가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있고 2개의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가 동말레이시아에 있다. 각 주는 시 또는 구역으로 나뉘며, 또다시 소구역(mukim)으로 나뉜다. 사바와 사라왁의 구역들은 분할에 따라 묶인다.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던 당시 총 14개의 주만 있었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당초 연방 직할구는 없었으나, 1974년 쿠알라룸푸르가 슬랑오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시작으로 생겼으며 이후 푸트라자야와 라부안이 신설되었다.
주의 관할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둘 다인데, 각각 다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연방 직할구는 연방 정부가 직접 관할한다. 비록 자치법령의 몸체가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제정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지만, 시의회, 구의회, 지방의회 등 하위 관할은 각 지역이 맡는다. 연방 헌법은 연방 직할구 외의 지역 관할을 각 주의 전담관할로 하지만, 실제로는 연방 정부가 각 지역의 부의 내정에 간섭한다. 총 144개의 지역의회가 있는데, 11개는 시의회, 33개는 지방의회, 97개는 구의회이다.
13개의 주 모두 역사 속의 말레이 왕조를 바탕으로 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주 11개 중 9개는 말레이 주(또는 이슬람 주)라 하여 고유의 왕실을 두고 있다. 국가원수인 양디-퍼르투안 아공(국왕)은 5년마다 이 9개의 주의 지도자(술탄)가 번갈아가며 선출한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왕은 군주제를 시행하지 않는 주에서 각 주수상과의 합의를 거쳐 4년간 업무를 수행할 정부 수반을 임명한다. 각 주에는 주의회로 알려진 단원제 의회가 존재하며, 나름의 주 헌법을 작성한다. [3][4]
역사[편집]
15세기 ~ 16세기 말라카 술탄국의 일부였는데, 포르투갈이 소수의 콩키스타도르들을 동원해 말라카 술탄국을 멸망시키며 이곳까지 점령하였고 나중에는 포르투갈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말라카가 네덜란드인들에 함락되자 네덜란드로 넘어갔다.
이곳은 원래 케다(Kedah)주를 통치하였던 말레이 이슬람 왕국에 속하였던 지역이나, 1786년 영국의 프란시스 라이트(Francis Light) 대령이 극동지역의 첫 번째 무역기지로 개발하였고, 그때부터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영국이 이 지역을 포함해 말라카와 싱가포르에 해협 식민지를 설치했으며, 지금 서말레이시아인 말라야 지역의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영국화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통치 과정에서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한 후 태국이 혼란스럽자 수많은 중국계 태국인들이 건너오고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에서 남방 푸젠성과 광둥성, 하이난성 사람들이 대거 쿨리로 건너오면서 중국계 이주민이 늘어났다. 이들은 나중에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조상이 된다.
나중에 이 해협식민지들은 1946년 영국 정부가 설치한 말라야 연합에 반환되었으며, 1948년 말라야 연합을 계승한 말라야 연방 등에도 잔존하였고 1963년에 창설된 말레이시아 시대부터도 계속 잔존 중이다.
교통[편집]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두 개의 피낭 대교가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다리는 체제선전을 위한 흑역사일 뿐이며 막상 현재에는 별로 볼거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다리 외에도 배를 통해서도 연결되는데 배 타는 곳이 버터워스역 기차역 바로 앞이라서 태국이나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에서 여기로 기차 타고 왔으면 배로 갈아타서 들어가는 게 편하다.
참고로 1985년에 완공한 최초의 다리는 한국의 현대건설에서 지었다. 지금은 잊혀지고 있지만 당시엔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다리로 한국기업이 건설했다는 점에서 말레이시아인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태국까지 이어지는 국영 철도가 이곳을 관통하는데 버터워스 역에서 내리면 이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처럼 지하철을 만든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럴 일이 없어보인다고 했는데 고가 모노레일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페낭에서 지하철을 만든다면 수요가 많은 페낭 섬 특히 조지타운을 중심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지하는 뚫을 수가 없고 더구나 안 그래도 교통체증이 넘치는 조지타운 지역 도로를 막고 개발하기에는 리스크가 매우 크다. 차라리 만든다면 모노레일을 만들어서 조지타운보다 개발이 쉽고 수요도 적당한 섬 남부 부킷잠불(Bukit Jambul) 지역을 조지타운 및 공항과 잇는 것이 적당하다.
공항으로는 말레이시아 제3의 공항인 피낭 국제공항이 있다. 한국에서는 화물편 외에 직항은 없으며 싱가포르 창이 공항,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 또는 자카르타 국제공항을 거쳐야 한다. 이 중 쿠알라룸푸르에서 국내선을 이용하지 않으면 싱가포르항공으로 싱가포르를 많이 경유한다.
정치[편집]
화교가 다수인 동네라 부미푸트라 정책 등에 대한 반발이 있는지 야당의 우세가 강한 편이긴 하다. 일부는 독립 성향도 보이는데 사바나 사라왁처럼 심한 편은 아니라 다수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말레이시아인"으로 규정하긴 한다. 다만 좀 어색할 뿐이다.
1969년 5.13 사건이 터진 후엔 야당이었던 민중운동당(Gerakan)이 압승했다.
하지만 얼마 후 민중운동당이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에 가입하면서 여당의 텃밭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주요 야당인 민주행동당(DAP)이 다시 차지해 야당의 텃밭이 되었다. 좀 왔다갔다 하는 거 같은데 그만큼 이 지역이 이질적이라고 홀대받은 게 사실이었고 그래서 중국계 극우주의 같은 싸구려 극단주의도 기승을 부린다. 당장 황당무계한 외국인 요리 금지법이 이 주에서 실시된 것이었다.
현 실권자는 부지도자이자 총리인 민주행동당 소속 화교 림관엥이다. 하지만 림관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선량한 민주화 인사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참고로 주의 지도자는 그냥 얼굴마담으로 실권없는 총독이며 술탄이 최고지도자인 본토의 다른 주와는 다르다. 총독은 압둘 라흐만 아바스이고 총리는 림관엥이다. 취소선 드립이 있었는데 어차피 총독은 실권이 없고 총리에게 실권이 있기 때문에 총독이 누구냐보단 총리가 누구냐가 중요한데 현재 림관엥의 정당 민주행동당은 외국인 요리 금지법이라는 악명높은 법까지 통과시킨 중국계 극우정당이다.
사회[편집]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주이다. 하지만 가장 큰 종교는 이슬람이다. 그래도 화교들이 다니는 교회도 많으며 특히 성공회 소속 조지타운 교회는 19세기에 세운 곳으로 영국식 영어와 표준 중국어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그리고 태국인 이민자들도 은근히 많아 거대한 와불상이 있는 태국 사원 같은 태국 절도 많이 보인다. 태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대부분 중국계 태국인인 시노타이인들이다. 이러한 중국계 태국인 즉 시노타이들이 만든 절 중에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사(蛇寺) 즉 뱀의 사원도 있다. 내부는 말 그대로 중국풍과 태국풍이 마구 섞여있다. 드나드는 사람들은 태국에서 건너온 중국계 태국인들 및 그들과 통혼 및 교류를 이어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불교도이며 법회도 태국어를 쓰는 등 태국 분위기가 강하다. 태국절 외에는 미얀마 출신들이 만든 절도 있으며 미얀마절은 분위기가 태국절과 또 다르다.
확실히 쿠알라룸푸르나 코타키나발루 등과는 분위기가 다른데, 영국령 시대에 남겨진 유럽풍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낡았다. 실제 삶의 질 등에서 좀 떨어지는 편이며 중국계가 돈이 많아 망정이지 아니면 빈곤에 허덕였을 곳이란 의견도 있다. 당장 조지타운은 어딘가 좀 을씨년스럽고 나사 빠진 구석들이 한두군데 발견되는 곳이다.
물론 중국계의 미친듯한 경제력 덕에 1인당 주민 소득 수준은 말레이시아에서 2번째로 높을 정도로 말레이시아 내에선 경제가 발달한 편이다.
조지타운[편집]
조지타운은 말레이시아 북서부 피낭섬의 주도이며 1786년 영국이 말라카 해협 북쪽 입구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피낭섬을 점거함과 동시에 그 항구로서 건설되었다. 그 후 자유항으로서 싱가포르와 경쟁하면서 발전했는데, 특히 말레이 반도 서해안의 코프라·주석·고무의 수출항으로서 발전하였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전형적인 복합도시의 하나로, 화교와 인도인 거주자가 많다.
시내에는 약 200개의 중국인 사원(寺院)이 있으며, 또 이슬람 모스크, 인도인의 시바 사원도 있다. 이들 각 민족의 축제는 시의 명물이 되어 있다. 시를 조망하는 피낭힐(900m)의 꼭대기까지는 관광을 위한 케이블카가 통하며, 대안(對岸)의 본토와는 페리보트가 왕래한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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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피낭주〉, 《위키백과》
- ↑ 〈풀라우피낭〉, 《나무위키》
- ↑ 〈말레이시아〉, 《위키백과》
- ↑ 〈두산백과: 풀라우피낭주〉,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조지타운〉,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피낭주〉, 《위키백과》
- 〈풀라우피낭〉, 《나무위키》
- 〈말레이시아〉, 《위키백과》
- 〈두산백과: 풀라우피낭주〉,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조지타운〉,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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