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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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주(인도네시아어: Provinsi Papua)는 인도네시아 뉴기니섬 서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3]
개요[편집]
파푸아주의 면적은 81,049㎢이며 인구는 1,034,956명 (2022년)이며 주도는 자야푸라이다. 북쪽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서파푸아주, 남쪽으로는 아라푸라해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와 국경을 접한다. 이 지역은 과거 이리안자야주(Irian Jaya)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한때 인도네시아의 영토에 속해 있는 뉴기니섬 서반부 지역 전체를 관할했다. 2002년 파푸아주(Papua)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2003년 2월에 서이리안쟈야주(현재의 서파푸아주)가 파푸아주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이 섬의 이름은 이 지역 사람들이 기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한 서양인들이 붙였다. 파푸아나 이리안(Irian)이라는 이름도 있다. 파푸아란 이름의 어원은 불분명한데, 말레이 계통 언어로 곱슬머리란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외의 가설도 몇 개 더 있다.
이리안이라는 인도네시아어 이름은 현지어인 비악(Biak)어로 "떠오르다"란 뜻의 이름이었으며, 원래는 어딘가 간지나는 원주민들에게 선호되는 이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인도네시아 측에서 원주민에게 강제하는 이름처럼 뉘앙스가 바뀌었다고 한다.
성폭행 우발지역이기도 하다. 뉴기니 지역같은 경우는 남성의 48%가 강간을 저지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럼으로 여성 관광객의 경우 파푸아주를 여행 할때 수상한 남성들에게는 접근하지 마라. 비즈니스 일이 없으면 당연히 아예 안 가는 게 상책이다.[4]
자연환경[편집]
뉴기니섬 기후는 고도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저지대는 주로 열대우림이 덮여있는 반면 산악 지대는 비교적 서늘해 사람 살기에 괜찮은지라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다.
연 평균기온 20.5℃, 연 강수량 2,638mm로 일조량이 심하게 적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살기에 괜찮은지라 이 지역의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한 편으로, 라에의 경우 연강수량 4,636mm라는 엄청난 강수량을 보여 주지만 포트모르즈비는 1,012mm에 불과하다.
역사[편집]
뉴기니섬에서는 약 4~50,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멜라네시아인 원주민들은 독자적으로 농경을 발명하고 오랜 기간 원시 부족 사회들을 이루고 살았다. 이후 인도네시아 지역의 여러 왕국이 서부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으나 대체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티도레섬의 술탄 누쿠(Nuku)는 네덜란드의 식민화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티도레와 파푸아의 술탄"으로 칭하기도 했다.
1526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메네세스(Jorge de Meneses)가 뉴기니섬의 서단부를 발견하고 이를 말레이어에서 유래한 파푸아(ilhas dos Papuas)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1545년 스페인의 탐험가 레테즈(Yñigo Ortiz de Retez)는 섬의 북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6월 20일 처음 상륙하여 뉴기니(Nueva Guinea)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당시 주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던 네덜란드는 19세기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성립시키며 뉴기니섬의 서부의 지배권을 주장하였다. 이후 19세기 말 영국과 독일이 동부를 분할하여 동남부는 영국령 퀸즐랜드에, 동북부는 독일령 뉴기니에 각각 편입되었다. 영국은 1905년 영국령 뉴기니섬의 관할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전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령 지역도 오스트레일리아 관할로 편입되어 1942년까지 '파푸아 뉴기니 영토'(The Territories of Papua and New Guinea)로 불리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일본 제국이 뉴기니섬을 침공하여 파푸아뉴기니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연합군이 맞서 승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양측 총 20만 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뉴기니인들은 연합군에 참전, 수송 등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2차 대전 종료 후 독립을 주장한 인도네시아와 이를 인정하지 않은 네덜란드 사이에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발생하여 4년간 지속되었으며, 헤이그 회의에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인정되는 한편 뉴기니 서부는 네덜란드 관할로 남게 되었다. 196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서뉴기니를 완전히 독립시키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곧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자 1962년 인도네시아 측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군을 진공시키는 등 분쟁이 발생하였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은 양국을 중재하여 뉴욕 협정이 체결되었고, 1969년까지 파푸아인들이 독립 여부를 선택할 조건(자유선택행동)으로 인도네시아에 인도되었다. 1969년 인도네시아 주도로 선출된 뉴기니 원로 회의가 인도네시아 잔류를 결정하면서 서뉴기니는 인도네시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현재까지도 이에 반대하는 분리주의 측과 인도네시아 정부 측 간에 계속적인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파푸아주는 인도네시아의 무력침략으로 점령된 뒤 강제로 합병되었고 각종 제노포비아가 득실거리는 땅이 된다. 2003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정부에서 서쪽을 분할해 서파푸아주를 신설했다.
2022년 7월 중앙파푸아주, 남파푸아주, 파푸아고원주 가 새로 생겨서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되면서 인구도 반토막 났고 면적도 줄어들었다. 주로 민주당(인도네시아)을 지지한다. 현 주지사인 루카스 으넴베 역시 민주당 소속이다.[5]
관광[편집]
인도네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파푸아주는 많은 흥미로운 행선지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 있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적자원으로 하면 귀중한 자산이 된다. 파푸아니아가 무한정한 아름다움 때문에 작은 천국의 이름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푸아 관광은 이국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전히 울창한 산, 초원, 늪지대, 그리고 풍부한 바다 풍경과 더불어 세계에 인정을 받고 있다. 파푸아니아, 솔라우, 마누라히리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자야라는 곳은 지구를 탐험하고 싶은 관광객들의 기지로 느끼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하려는 독립단체와의 무력충돌이 종종 있기 때문에 위험한 구역이 많다.
자야푸라[편집]
자야푸라는 인도네시아의 파푸아주에 있는 최대 도시이자 주도이다. 오늘날 자야푸라가 있는 자리는 도시가 세워지기 전에는 '눔바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네덜란드령 동인도때인 1910년 네덜란드의 홀란드 주에서 이름을 따 "홀란디아"란 이름으로 도시를 건설했고 무역으로 흥했다. 이 '홀란디아'란 이름은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인 1962년까지 유지되었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이후 이곳은 네덜란드령 뉴기니의 중심지로 남아있다가 1969년에 인도네시아령 이리안자야의 주도가 되고 도시명은 자야푸라가 된다. 파푸아 주의 주도이며, 미승인 국가인 서파푸아 공화국의 수도이기도 하다. 서파푸아 분리독립운동주의자들 역시 이곳을 자신들의 수도로 여긴다.
1998년에 파푸아 뉴기니 지진으로 이곳도 피해를 입었다. 주로 스쿠버 다이빙 등으로 유명하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유적, 문화유산은 거의 없다. 쇼핑은 몰 자야푸라에서 하면 된다. 도시의 만을 이어주는 다리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파푸아 지방 답게 종교는 대부분 개신교이며 주민들도 파푸아인들이 대부분이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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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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