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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일 (화) 01:2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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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가와현(일본어: 神奈川県)은 일본 간토지방에 남서부에 위치하며 도쿄도 남쪽에 인접하는 현이다.[1][2]
개요
가나가와현의 면적은 2,416.17km²이며 인구는 9,225,091명(2024)이다. 일본의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현청소재지는 요코하마(橫濱)이다. 북쪽은 도쿄와 접하고, 동쪽은 도쿄만, 남쪽은 사가미만에 면하며, 서쪽은 야마나시현·시즈오카현과 이웃하고 있다.
옛날에는 사가미(相模)이라고 불린 지역이며,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전국시대에는 호조씨의 계승을 내세우며 호조 소운이나 호조 우지야스를 위시한 후호조씨가 사가미국의 서남쪽의 오다와라를 거점으로 지배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벌로 멸망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배하였다. 이에야스가 호조씨의 본거지인 이곳 대신 동쪽으로 본거지를 옮긴 곳이 바로 에도, 지금의 도쿄도다.
흔히 오사카부가 일본 제2의 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여기 인구가 30만 명 정도 더 많다. 이를 일본인도 잘 모르는 이유는 도쿄와 딱 붙어있어서 존재감이 덜하기 때문이고, 오사카부는 지방이지만 가나가와현은 수도권이라 그런 듯.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오사카부가 가나가와현보다 앞선다.
항구를 중심으로 이미 1800년대부터 근대 도시급 인프라를 갖춘 요코하마시와, 도쿄의 발전 중에 덤으로 껴서 수혜를 상당히 본 지역. 또 좀 더 과거로 가면 가마쿠라 막부의 본거지도 이 지역이며 비슷한 과거에 행정구역이 정비되기 전에는 간토의 서쪽 경계면이 가나가와와 시즈오카 사이였기 때문에 지리적인 입지로는 일본 내에서 가장 좋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고령화와 인구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전성기가 지나고 불황과 저출산 노령화의 기조가 이어지면서 인구의 유입이나 신규 출산이 정체되어 늙어가는 도시가 속출하는 것. 특히 오다와라시·미우라시·요코스카시 등은 65세 인구 비중이 30%에 이르렀다. 요코하마시를 위시한 북부 지역은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낫다. 당장 정령지정도시 3곳이 모두 북부 지역에 있다. 가나가와현은 도쿄 근교이고 대도시가 밀집해 있다 보니 고령화는 일본 평균 고령화보다는 덜한 편이다.
가나가와라는 이름은 현재는 요코하마의 일부인, 요코하마시 가나가와구 지역에서 따온 것이다. 가나가와와 요코하마는 에도 시대까지는 별개의 도시였고, 폐번치현으로 가나가와현이 만들어질 때 현청을 가나가와에 두면서 현 이름도 따간 것이다. 요코하마가 개항장이 되어 발전과 시역 확장을 거듭해 가나가와를 흡수하면서 현재와 같이 하나의 도시가 되었다.
요코하마의 존재감이 강한 곳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농담으로 요코하마현이라고 놀리는 네타가 있다. 비슷한 예로 나고야현, 삿포로현, 고베현이 있다. 가와사키시도 인구가 140만에 달하고 주요 공업 지구도 위치한 대도시이지만 도쿄와 요코하마 사이에 끼어 있는 위성도시이다. 원래 가나가와의 중심지는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진 가마쿠라와 후호조씨가 거점으로 삼은 오다와라였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점을 에도로 삼은 이후 위상이 축소되어 현재는 중소도시들에 불과하다.
1853년과 1854년 매튜 페리 제독이 가나가와에 상륙하여 미국에 일본 항구를 개방하는 가나가와 조약에 서명하였다. 요코하마는 도쿄만에서 가장 큰 심해항으로, 몇 년간의 외압 끝에 1859년 외국 상인들에게 개방되었고, 마침내 일본에서 가장 큰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주위에는 그동안 요코스카시 도쿄만의 입에 가까운 군항고 지금 미국 7함대와 일본 해상 자위대의 함대 작전을 위해 본부로 쓰인다 개발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요코하마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하코네를 방문했다. 메이지 정부는 1872년 도쿄의 신바시에서 요코하마로 가는 최초의 철도를 개발하였다.
1923년 간토 대지진의 진원지는 사가미만의 이즈오시마섬 아래였다. 도쿄, 요코하마, 지바현, 가나가와현, 시즈오카현을 초토화시키고 간토지방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다. 바다는 마나즈루 포인트에서 해안으로부터 400 m나 멀어지고, 미쓰이시섬을 뒤덮은 거대한 물벽을 타고 해안으로 되돌아갔다. 가마쿠라에서는 지진, 쓰나미,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섰다. 오다와라에서는 즉시 건물의 90 %가 붕괴되었고, 그 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잔해가 타버렸다.
요코하마, 가와사키와 다른 주요 도시들은 1945년 미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총 사상자는 수천 명이 넘었으며,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나가와에 상륙하였다. 캠프 자마(육군), 요코스카 해군기지, 아쓰기 해군비행장(해군) 등 가나가와 현지에 미군 기지가 남아 있다.[3]
자연환경
가나가와는 상대적으로 작은 현으로 간토평야의 남동쪽 모퉁이에 위치하고 북쪽으로 도쿄도, 북서쪽으로 후지산의 기슭, 남쪽으로 사가미만, 동쪽으로 도쿄만과 접한다. 현의 동부는 상대적으로 평평하고 고도로 도시화된 지역으로 큰 항구도시인 요코하마시(현청 소재지)와 가와사키시(도쿄도 접경지역)를 포함한다.
미우라 반도와 인접한 남동부 지역은 가마쿠라 고대 도시 때문에 절과 신사로 관광객이 몰린다. 서쪽은 야마나시현, 시즈오카현과 접해있고 산지가 많고 오다와라현, 하코네현과 같은 휴양지가 포함된다.
간토 산지를 동쪽으로 흐르는 사가미강은 현의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에 사가미하라 대지, 서쪽에 나카쓰하라 대지, 하류부에 사가미평야를 형성한 뒤 사가미만으로 유입된다. 사가미만 연안에는 쇼난사구가 발달해 있고, 사가미하라 대지의 동쪽을 남류하는 사카이가와강 북동부 지역은 다마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하천들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도쿄만으로 흘러들면서 만의 기슭에 좁은 충적평야를 형성하였고, 남동쪽 끝에 있는 미우라반도는 요코스카만·나가우라만 등 양항만(良港灣)과 해식대지(海蝕臺地)를 발달시켰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온난한 편인데, 특히 사가미만의 연안 지방은 겨울 평균기온도 온화하여 일찍부터 게이힌 지방의 휴양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내륙 산간지대에는 내륙성기후가 나타난다. 요코하마의 연평균기온은 14.8℃, 연 강수량은 1,632mm이다.
역사
현의 몇몇 고고학 유적들은 조몬 시대(BC400)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코네산의 화산 폭발의 결과 현의 서쪽에 아시노호가 생성되었다. 야마토국이 동쪽으로 전진하면서 5세기부터 이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에 이 지역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사가미 중앙의 가마쿠라는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일본의 수도였으며 중세 시대에 가마쿠라는 사가미노쿠니와 무사시노쿠니의 일부였다. 에도 시대에 사가미 국의 서부는 오다와라성의 다이묘의 통치 하에 있었고 동부는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령이었다.
함대사령관 매슈 페리는 1853년에 가나가와에 상륙하였고 1854년에 일본의 항구를 미국에 개항하는 미일 화친 조약에 서명하였다. 요코하마는 도쿄만의 가장 큰 심수항으로 1859년에 열강의 압력으로 외국의 무역업자에 개방되었고 일본의 가장 큰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도쿄만 입구의 인접한 요코스카는 해군 항으로 개발되었고 현재 미국 제7함대와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의 본부 역할을 한다. 메이지 시대에 많은 외국인들이 요코하마 시에 살았고 하코네를 방문하였다. 메이지 정부는 1872년에 도쿄의 신바시에서 요코하마에 이르는 첫 번째 철도를 건설하였다.
1923년 간토 대지진의 진앙지는 사가미 만의 이즈오섬 밑이었다. 지진은 간토 지방 전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고, 도쿄와 요코하마 등의 항구 도시, 주변의 지바현, 가나가와 현, 시즈오카현은 황폐해졌다. 가마쿠라에서 지진과 쓰나미, 화재로 인한 총 사망자는 2000명이 넘었다. 오다와라에서는 건물의 90%가 즉각 붕괴되었고 뒤따른 화재로 인해 남은 건물들은 잿더미로 변했다.
요코하마, 가와사키와 다른 주요 도시들은 1945년에 미군의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사상자는 수 천명 이상이었다. 전쟁 후 일본 점령 하에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나가와에 상륙했다. 캠프 자마, 요코스카 해군시설, 아쓰기 해군비행장을 포함한 가나가와의 미군 기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산업
현의 경제 기반을 이루는 산업은 상공업으로, 가와사키·요코하마의 임해부(臨海部)는 게이힌공업지대의 중핵을 이룬다. 공장은 매축에 의해 조성된 공업지에 집중되어 있으며, 중화학공업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주요 공업은 수송용 기계·기구와 석유제품·전기제품·식료품·화학제품·기계·철강 등이다. 또 고도(古都) 가마쿠라와 국제적으로 알려진 하코네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게이힌 등 여러 도시에 접하고, 기후가 온화한데다가 관광지가 많아서 연간 1일 관광객 수가 [일본]]에서 가장 많다. 1990년 한국의 경기도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교통
가나가와의 교통망은 도쿄와 서로 얽혀있다. 대부분의 가나가와로의 항공 여행은 도쿄 국제공항과 나리타 국제공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도카이도 신칸센의 신요코하마역과 오다와라역 등이 현에 위치하여 도쿄, 나고야, 오사카와 다른 주요 도시로의 고속철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요코하마시
일본열도 혼슈 중부의 가나가와현 서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가나가와현의 최대 도시이자 현청 소재지이다. 도시의 기원이 되는 요코하마무라(横浜村)는 에도 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가나가와주쿠(神奈川宿) 남쪽에 위치한 한촌(寒村)이었으나, 1859년 개항도시로 지정된 이후 도시가 팽창하면서 가나가와주쿠를 병합하였다. 개항 이후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1922년에 이미 일본 6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으며, 1956년 정령지정도시(政令指定都市)가 되어 폭넓은 자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1988년에는 제4차 전국종합계획(全国綜合計画)의 일환으로 업무핵도시로 지정되었고, 이후 행정기관과 기업 본사 등의 중추 기관이 들어섰다. 2022년 11월 기준 약 377만 2천명의 인구를 지녀, 일본의 시(市) 단위 도시 중에서는 가장 큰 인구 규모이다.
위치상으로 도쿄도 도심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져 있고, 도시 북동부와 남동부 항구에 각종 공업이 발달해 이들 시설과 도쿄를 잇는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다. 도쿄의 부도심과 요코하마 도심을 잇는 철도 노선에 더하여 도쿄 부도심과 요코하마 시가지를 이어주는 철도 노선이 발달하여 도쿄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쿄와의 긴밀한 관계로 인하여 오사카시나 나고야시 등과 달리 지역 중심도시로서의 성격은 다소 약한 편이다.
요코하마는 수도에 인접한 개항장으로 출발하여 성장한 도시라는 점과 수도의 공업기능과 베드타운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의 인천과 유사성을 지닌다. 실제로 양 도시는 우호협력도시 관계에 있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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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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