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옐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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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옐공화국(러시아어: Нижегоро́дская о́бласть)은 러시아 볼가연방관구에 속해있는 공화국이다. [1][2]
목차
개요
마리옐공화국의 면적은 23,375km²이며 인구는 676,184명(2021년)이다. 모스크바(Москва, Moscow)에서 남동쪽으로 약 640km 떨어져 있으며, 러시아 볼가연방관구(Приволжски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의 볼가-뱌트카경제지구(Волго-Вятск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айон)에 속하는 지역이다. 수도는 요시카르올라(Йошкар-Ола, Yoshkar-Ola)이다. 동쪽과 북쪽으로는 러시아 연방의 키로프주(Кировская область), 남동쪽으로는 타타르스탄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 남서쪽으로는 추바시공화국(Чуваш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서쪽으로는 니제고로드주(Нижегородская область)와 접한다. 모스크바 시간대 (MSK/MSD)에 놓여있다.
마리옐공화국에는 마리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초원 마리인(марий йылме)과 산지 마리인(мары йӹлмы), 동부 마리인으로 나뉘어 있다. 체체미스인이라고도 하며 핀우고르어파의 마리어를 쓴다. 마리어의 방언인 초지 마리어가 러시아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 이슬람교도 약간은 존재한다. 전에는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이 존재했다.[3]
자연환경
동유럽 평원에 위치해 있고, 볼가강에 면해 있다.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겨울철은 춥고 길며, 가을철에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잦다. 겨울철인 1월의 평균 기온은 -13℃, 여름철인 7월의 평균 기온은 18℃~20℃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550mm 내외로 주로 여름철에 집중된다.
영토의 북동부는 구릉성 평원이, 서부는 저지대 습지가 발달해 있다. 삼림이 영토의 57% 가량을 차지하며, 식생은 혼합림이 나타나나 침엽수림이 우세하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아스펜 등이다. 토양은 주로 포드졸(podzol)이 분포한다.
200개 이상의 호수가 존재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면적 1㎢에, 깊이는 1-3 m의 호수가 전부이다. 많은 호수가 수영을 할 수 있다. 수영할 수 있는 면적이 10-70 ㎢~100 ㎢이다. 겨울(12월부터)에는 호수가 얼어버리는데 1-1.5 m(이상일 때 3 m) 정도 얼어버린다.
역사
마리옐공화국의 원주민은 핀-우그르계 민족인 마리인(Марийцы, Mari)이다. 체레미스인(Церемисы, Cheremis)이라고도 불리던 이들은 10세기 초 볼가강(江) 유역에 정착하였다. 1236년 몽골의 침공 이후로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552년이 카잔 한국이 모스크바 차르국에 병합되면서 모스크바 차르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마리인들은 러시아 정교를 받아들였고, 1870년대 러시아 정교회의 권위에 저항하는 종교운동인 Kugu Sorta를 제외하면 비교적 러시아인에 저항적이지 않았다.
1920년 11월 마리자치주(Марийская автономная область)가 신설되었으나, 1929년 7월 니제고로드변강주(Нижегородский край)에 편입되었다. 1936년 마리소비에트사회주의자치공화국(Марийская Автономн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이 성립되었고, 지역에 펄프 및 제지 공장이 들어서면서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공화국은 1990년 10월 22일에 주권을 선언하였고 1991년 12월 14일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인 1992년, 신연방 조약에 따라 러시아 연방의 독립된 연방주체인 마리옐공화국으로 인정받았다.
산업
주요 산업은 기계 및 금속 가공, 임업, 목공, 펄프 및 제지 생산, 식품 가공 등이다. 농경지는 공화국 영토의 35% 정도에 해당하며, 주요 농작물은 보리, 귀리, 호밀, 밀, 감자, 아마 등이다. 축산업도 활발하다.
교통
수도인 요시카르올라시(市)에 요시카르올라 공항(Аэропорт Йошкар-Ола)이 위치하며, 공화국 내 4개의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교육
볼가국립공업대학교(Поволж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технологиче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와 마리국립대학교(Марий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등이 지역의 주요 교육기관이다.
관광
대표적인 명소로는 마리 민족 드라마 극장(Марийский национальный театр драмы имени М. Шкетана), 마리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Марий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театр оперы и балета имени Эрика Сапаева) 등이 있다.
요시카르올라
요시카르올라는 마리옐공화국의 주도이며 옛 이름은 크라스노콕샤이스크(Krasno Kokshaisk)이다. 인구는 약 24만 8200명(2003)이다. 밀라야콕샤가강(江) 연안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1578년 차료보콕샤이스크라는 전초기지로서 건설되었다. 1919년 크라스노콕샤이스크로 이름이 바뀌면서 자치주였던 마리의 주도(州都)가 되었으며, 1927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통신과 교통이 불편한 오지여서 오랫동안 발전하지 못했으나, 1927년 볼가강 유역을 따라 젤레노돌스크로 연결되는 철도가 부설되면서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농업기계·가구·의약품 등의 제조업이 발달해 있으며, 목재공업전문학교·교육대학·임업연구소가 있다.[4]
마리인
마리인은 코미인, 카렐인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거주하는 핀-우그르계 민족이다. 마리라는 민족 명칭은 그들 말로 사람, 남자를 뜻한다. 마리(Марий 또는 Мары), 마레(Маре) 등으로도 불렸던 마리인이 사료에 처음 언급된 시기는 10세기 경이다. 하자르족 연대기에서 마리인은 하자르족에 조공을 바치던 체레미스인(Церемис)으로 기록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인도 마리인을 체레미스(Черемисы)라고 불렀으며, 체레미스라는 말은 혁명 전까지 마리인을 가리키는 공식 명칭으로 사용됐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2010년 러시아연방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러시아연방 각지에 살고 있는 마리인 인구는 약 550,000명이다. 마리인이 옛날부터 살아왔던 곳은 러시아연방 마리-엘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Марий Эл)이다.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마리-엘 공화국은 타타르스탄, 추바시 공화국, 키로프 주와 이웃하고 있다.
초기 철기시대 볼가 강과 카마 강 유역에서 거주했던 핀-우그르 계열의 민족 일부가 10세기 초반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볼가 강과 베틀루가 강 사이로 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이 바로 마리인이다. 마리 민족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 번째 그룹은 마리 땅 서쪽에 거주하는 ‘산지 마리인’(Горные марийцы)이다. 두 번째는 볼가 강과 뱌트카 강 사이에 거주하는 ‘초지 마리인’(Луговые марийцы)으로 마리 민족 대부분이 이 그룹에 속한다. 마지막 그룹은 16~18세기 마리 땅 동쪽에 있는 바시코르토스탄과 우랄 산맥 근처로 이주해 정착한 ‘동부 마리인’(Восточные марийцы)이다.
산지 마리인은 나머지 두 그룹과 언어·문화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마리인은 핀-우그르 민족의 특징과 함께 몽골 인종에서 볼 수 있는 요소도 섞여 있다. 마리인은 옅은 황색 피부와 검은 머리, 검거나 황갈색 눈을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백인과 동양인의 특징이 조금씩 섞여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러시아가 13~15세기 몽골 타타르 지배 아래 있었을 때, 마리인은 킵차크한국(汗國)과 카잔한국(汗國)의 일원이었다. 1552년 모스크바 공국이 카잔한국을 정복하면서 마리인도 러시아에 복속됐다. 그러나 마리인은 카잔한국의 편에 서서 꽤 오랫동안 러시아에 맞서 싸웠다. 마리인은 1552~1557년과 1571~1574년, 1583~1585년 ‘체레미스 전쟁’(Черемисская война)이라 불릴 정도의 대규모 봉기를 잇달아 일으켰다. 마리인의 봉기는 민족 독립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농민반란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제정 러시아 정부는 마리 땅을 동부로의 영토 확장 거점으로 삼아 식민지를 대대적으로 확장했는데, 마리인은 러시아의 식민지화에 대항하여 크고 작은 봉기를 일으켰다. 마리인은 러시아 정교도로 개종시키려던 러시아 정부의 시도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저항했다. 러시아 정부는 마리인이 숭배하는 사당을 폭파하는 등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마리인의 정교화에 박차를 가했지만, 이는 마리인이 푸가초프의 난에 대거 참여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긴 저항과 강압의 시간을 지나 마리인은 러시아의 국민이 되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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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마리옐 공화국〉, 《위키백과》
- 〈마리 엘 공화국〉, 《나무위키》
- 〈마리 엘 공화국〉, 《네이버 지식백과》
- 〈요시카르올라〉, 《네이버 지식백과》
-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마리인〉,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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