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멕시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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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멕시코주(State of New Mexico)는 미국 남서부의 주이다. [1]
목차
개요[편집]
뉴멕시코주의 면적 315,194km²로 미국의 주들 중 5번째로 넓다. 한국의 3배를 넘는 크기로 대부분이 메마른 고원 지대이다. 북쪽은 콜로라도주가, 동쪽은 오클라호마주와 텍사스주, 서쪽은 애리조나주, 남쪽은 텍사스주 및 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인구는 2,088,070명 (2017년)이다. 주도는 1607년에 스페인인들이 건설한 산타페로, 최대 도시인 앨버커키와 라스크루시스(Las Cruces), 로즈웰(Roswell) 등의 주요 도시를 거느리고 있다. 나바호족 자치구 등 인디언들도 많이 사는 지역이다.
오랫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이었으며, 에스파냐의 총독령인 누에바에스파냐, 멕시코의 주 (이 당시에는 콜로라도주, 캔자스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의 일부도 포함하는 큰 주로, 이름도 산타페데 누에보메히코 주였다.)를 거쳐 1848년에 끝난 멕시코전쟁의 결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1912년 1월 미국의 47번째 주로 편입되었다(같은해 2월에 애리조나 주가 48번째로편입). 2차 대전중 원자탄 개발을 목적으로한 맨해튼 계획에 의해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비밀리에 세워졌고 최초의 원자폭탄 시험을 1945년 7월16일 뉴멕시코 남쪽 화이트센즈(White sands) 사막에서 하였으며 일본에 떨어뜨린 두개의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곳이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라고 알려지면서 뉴멕시코주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땅이였던 역사적 배경때문에 미국에서 히스패닉계 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주(46.3%:2010년 통계)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역시 9.4%로서 높은 비율이다. 따라서 앵글로와 히스패닉, 원주민 인디언의 문화가 섞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 가장 큰 도시는 앨버커키로 주변 위성도시를 포함한 인구는 907,775명(2011년 통계) 이 된다. 뉴멕시코주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되는 인구가 앨버커키 지역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름인 뉴멕시코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미국 영토가 아닌 멕시코 영토였다. 미국의 영토가 된 것은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이름만 전쟁일 뿐, 사실상 미국군이 멕시코군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다시피 한 일로 인하여 멕시코가 미국에게 항복했으며, 이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에 의해 미국으로 할양되었다.[2][3]
자연환경[편집]
뉴멕시코 땅이 별명으로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으로 불리는 까닭은 먼저 다양한 지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량한 사막과 숲이 울창한 높은 산들이 대조적이며 단층으로 인해 다양한 색깔의 들어난 지층과 메사(Mesa)들은 이곳을 찾는 여행객을 매혹 시키고 있다.
뉴멕시코 북쪽은 로키산맥(Rocky Mt.)의 끝 부분이 되는 곳이어서 산악 지대가 된다. 가장 높은 산은 타오스 북쪽에 있는 상그레 더 크리스토(Sangre de Cristo) 산에 속하는 휠러피크(Wheeler Peak)로서 4,011m(13,161 ft) 높이가 되며 알버커키 동편에 있는 샌디아 산(Sandia Mountains)은 3,255m(10,678 feet) 높이가 된다. 2750 m의 백두산 보다 500m정도 더 높다. 앨버커키 도시는 해발 1,619m(5,312 ft) 정도 되는 고원 지대에 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있는 지역의 헤이메즈(Jemez)산은 화산으로 인해 생긴 산인데 그 분화구 함몰로 형성된 칼데라(Caldera)는 직경이 19km(12마일)에 달하며 세계에서 제일 큰 칼데라가 된다.
뉴멕시코 남쪽은 평지가 많고 건조한 사막이 많다. 흰모래언덕의 장관을 이룬 화이트샌즈 국립 모뉴먼트(White Sands National Monument)와 축구 경기장 만한 공간이 있는 지하동굴에 오묘한 종유석의 예술품을 볼 수 있는 칼즈배드 동굴(Carlsbad Cavern)국립공원이 이지역에 있다.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에서 시작해 내려오는 리오그란데강은 뉴멕시코 주의 중앙의 사막 지대를 흘러 택사스와 멕시코의 경계로 내려간다. 이 강은 북미에서 4번째 가는 긴 강이다. 뉴멕시코에는 19개의 인디언 푸에블로(Pueblo는 스페인어로 부락이란 뜻)가 있는데 많은 푸에블로가 리오그란데강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리오그란데 강의 상류쪽에 있는 타오스푸에블로는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푸에블로다. 리오그란데 강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가 여러개가되는데 그중에 하나인 코치티 호수(Cochiti Lake)가 알버커키 북쪽에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댐의 길이가 .5마일이나 되어 세계에서 11번째 되는 긴 댐이된다.
주 전체가 고원 지대로 되어 있어 위도로는 남쪽에 속해도 더위가 심하지 않고 건조하여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연중 300일 이상 구름이 끼지 않은 화창한 날씨가 된다. 따라서 연간 평균 강우량은 350 mm(13.9인치)로 극히 낮다. 절반 이상의 강우량은 여름 7, 8월에 내린다. 산이 많은 북부 지대는 비와 눈이 보다 많이 내려서 숲으로 덮힌 국유림이 많다. 7월 여름의 낮 평균 최고 기온은 저지대의 경우 36 °C(97 °F), 고지대의 경우 26 °C(70 °F) 내외가 된다.
역사[편집]
옛날의 뉴멕시코는 아나사지(Anasazi) 인디언 들만이 살던 땅이였다. 서기 800년에서 1300년 사이에는 아나사지 인디안이 뉴멕시코 서북부에 있는 챠코케년지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서 챠코문명(Chaco Culture)을 이루며 살았다. 그러나 1276년부터 1299년사이에 있었던 심한 가뭄으로 그들은 챠코 케년의 도시를 버리고 리오그란데강가로 내려와서 소집단을 이루는 푸에블로(Pueblo)를 형성해서 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서기 1500년경에는 캐나다 지역에서 살던 나바호(Navajo)와 아파치(Apache) 인디언이 뉴멕시코로 이주해 내려왔다. 나바호인디언은 리오그란데강의 서쪽지역에 정착했고 아파치 인디안은 뉴멕시코의 남부, 동부에 흩어져 살았다.
스페인의 정복[편집]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후 스페인은 지금의 멕시코 시티(Mexico City)지역을 정복하여 식민지인 나라를 만들어 이름을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영어로 번역하면 뉴스페인(New Spain)이라 하고 총독을 보내어 다스리게했다.뉴멕시코 쥬니 푸에블로 지역에 시볼라(Ciola)라고 하는 금으로 장식된 도시가 있다는 거짓 소문을 듣고 1540년 코로나도(Coronado)원정대를 보내어 뉴멕시코의 쥬니 인디언이 사는 곳을 답사 했다. 그들은 헛 소문을 확인한뒤에도 서쪽으로 탐험을 계속해서 그랜드 케년과 콜로라도 강을 발견하기도 했다. 동쪽으로 탐험을 계속해서 리오그란데강 지역에 사는 푸에블로를 발견했고 (지금의 얄버커키 지역) 캔자스 지역까지 탐색을 했으나 헛소문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본격적인 뉴멕시코 개척 원정은 1598년 스페인 왕 필립 2세의 명에 의해서 오냐테(Oñate)장군의 원정팀으로 시작되었다. 리오그란데 강 상류 지역에 스페인 이주민을 정착시키고 인디언 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는 활동도 하게 했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를 거부하는 인디언의 세력도 컸다. 아코마(Acoma)인디언 들과의 갈등으로 10여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죽게되자 보복으로 25세 이상의 남자들은 전부 그들의 발목 하나를 잘라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1610년 스페인 사람들은 상그라데그리스도 산 밑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수도로 정하였다. 이름을 산타페(지금의 샌타페이:Santa Fe)로 지었다.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수도(首都:Capital City)가 이때 된 것이다.
인디언의 반란[편집]
스페인 사람들은 뉴멕시코의 인디언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썼다. 인디언은 그 반발로 1680년 8월 10일 일제히 봉기하여 성당을 불사르고 사제를 죽이는 반란을 일어켰고 이로 인해 400여명의 스페인 사람은 목숨을 잃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멕시코 국경 지역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몇년뒤 인디안의 지도자가 죽고나자 스페인 사람들은 다시 이땅을 손쉽게 무혈로 되찾고 만다. 1692년부터 뉴멕시코는 다시 스페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스페인 정복자 들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식민 정책을 보다 더 온건한 정책으로 바꾸었고 기독교도 인디안에게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
멕시코의 독립[편집]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200여 년이 지난 1821년, 스페인의 통치 아래 있던 뉴스페인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멕시코라는 이름으로 독립 국가를 선언하게 된다. 따라서 뉴멕시코는 신생 독립 국가인 멕시코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25년밖에 안 된다. 1846년 멕시코와 미국 간의 영토 분쟁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2년뒤 전쟁이 끝나고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에 의거 이곳 뉴멕시코는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미국 영토로서의 뉴멕시코[편집]
미국의 영토가 된 이후 이곳 인디언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나바호 인디언과 미국인 서부 개척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자 겔럽(Gallup)지역에 살고 있던 나바호 인디언을 300마일 떨어진 페코스강이 있는 포트섬너(Fort Sumner)로 강제 이주 시킨 일이 있었다. 이 계획을 반대한 나바호 인디안은 완강히 맞서 싸우다가 캐니언디셰이(Canyon de Chelly:애리조나주에 있음)에 도주하여 숨어 버리자 킽 칼슨(Kit Carlson)대령이 지휘하는군인들은 민가를 불태우고 가축을 잡아 죽이는 보복을 가해서 나바호 인디언의 항복을 받아 내고 강제 이주를 하는 장거리 행진, 롱 워크(Long Walk)를 하게 하였다. 300마일(480 km) 되는 먼길을 겨울철에 8-9000명의 인디안은 걸어서 이동 하는 가운데 200여명이 기아와 추위로 인해 죽었다. 새로 마련한 인디안 보호 구역에서 농사를 짓고 새로운 개척을 하려 했으나 토지와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서 계속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인디안이 죽어갔다. 결국 4년 뒤1868년 미국 정부에서는 이 계획이 잘못 된것임을 인정하고 나바호 인디안을 본래 고향, 뉴멕시코 서북부로 돌아가게 허용했다. 뉴멕시코는 신개척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었다. 카우보이를 위시해서 광부, 철도공사 노동자, 노름꾼과 각종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범죄도 늘어나 무법천지가 되는 듯했다. 미국의 어느 장군은 죠크로 말하길, ‘미국은 멕시코와 다시 전쟁을 해서 골치꺼리의 뉴멕시코를 도로 멕시코가 가져가게 해야된다’고 말했다 고한다. 빌리더키드(Billy the Kid)는 이 당시 무법의 서부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전해오고 있다.
미국 합중국 연방가입[편집]
1912년 1월 드디어 뉴멕시코는 미국의 47번째의 주로 승격된다. 미국 영토가 된지 62년만이다. 한달 뒤에 애리조나가 48번째 주로 들어와서 미국 국기 성조기의 별이 1959년 알래스카주가 가입될때까지 47년동안 성조기의 별이 48개로 되어 있었다. 뉴멕시코의 자연 풍경에 매력을 느끼고 많은 화가, 사진작가, 저술가등이 산타페와 타오스에 몰려왔다. 뉴멕시코의 좋은 날씨가 페결핵 치료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요양원 시설이 앨버커키시에 늘어났고 인구도 불어 났다. 넓은 평지가 많은 이곳은 공군 기지를 만드는데 좋은 조건이어서 2차대전 시기에 세 개의 공군 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화이트샌드 미사일 시험장(White Sands Missile Range)도 생겼다. 험한 계곡이 있는 산속에 비밀유지 하기 좋은 지리 조건을 갖춘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는 원자탄 개발을 위한 연구소가 생겼고 1945년 7월16일 뉴멕시코 남부 사막에서 최초의 원자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하여 핵시대의 문을 연것도 뉴멕시코에서 일어난 일이다. 2차대전때에 참전 용사들 중에 나바호 인디안은 암호병으로 활약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미국군은 일본 사람들이 나바호 말을 알지 못하는점을 이용해서 나바호말을 암호에 대신해 써서 미국군의 기밀 유지를 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때도 뉴멕시코는 큰 기여를 했다. 뉴멕시코 주에서도 많은 젊은이가 한국전에 파병하여 싸웠는데 그중에 서 189명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갤럽(Gallup)에 사는 일본인 2세인 히로시미야무라(Hiroshi Miyamura)씨는 한국 전에서의 공로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뉴멕시코는 인디안, 스페인 그리고 앵글로 문화가 혼합된 타주가 갖지 않은 다양한 색깔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지금도 미국의 발전에 기여 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는 주가 되고 있다.
경제[편집]
뉴멕시코 주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의 생산과 관광 수입 및 연방 정부에 의한 사업 자금 지출이 뉴멕시코주의 경제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 주 정부는 새로운 기업체가 많이 들어와서 지역 경제를 더 활성화 시키려고 새로 시작하는 기업체에게 세금의 혜택을 주는등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고 있다.
경제지표[편집]
뉴멕시코주의 주내 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은 762억불이 된다. 2007년 개인당 총수입은 $31,474로서 미국 랭킹은 43위로 뒤쳐진다. 2005년도 통계로 극빈자의 비율은 전체 주민의 18.4%였다. 주정부 관광국의 보고에 의하면 2006년도 관광으로 인한 수입은 18억 불이였다. 2011년도 7월 기준으로의 실업율은 6.8%로 비교적 낮은 비율이다. 동일 보고서에 의하면 캘리포니아가 11.8%, 애리조나가 9.3%로 나와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편집]
뉴멕시코 서북부의 산환 분지(San Juan Basin)와 동남부에 있는 분지에 풍부한 매장량의 유전이 있다. 천연가스의 매장량으로 볼 때 미국에서 1위이다. 2006년도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석유 생산의 3.4%, 천연가스 생산의 8.5%, 액체가스 생산의 10.2%가 뉴멕시코에서 되었다.
연방정부[편집]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세 개의 공군 기지, 즉 커트랜드(Kirtland), 홀로만(Holloman), 케논(Cannon) 공군 기지와 화이트샌드 미사일 시험장(White Sands Missile Range),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 샌디아 국립 연구소를 통해서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다. 이들로 인한 고용 효과도 대단하다. 커트랜드 기지가 2만 3천명, 홀로만 기지는 1만 7천명,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가 9천명, 샌디아 연구소가 8천 4백명이 된다. 뉴멕시코에서 연방정부에 들어가는 세금 전액의 2.03배의 자금이 도로 뉴멕시코로 되돌아오는데 이 비율은 50개 주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영화[편집]
주 정부에서는 새로운 기업체 유치를 위해 여러 가지로 지원해 왔다. 2003년 이후 영화 제작사가 많이 들어온 것은 이러한 주정부의 노력의 결과다. 2007년도 보고에 의하면 85개의 영화가 뉴멕시코에서 제작되었으며 이로 인해 12억불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첨단 산업[편집]
가장 큰 규모의 산업체로는 6천 8백 명의 직원을 가진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인텔(Intel Corporation)이 있다. 이어서 중소 규모의 첨단과학 분야의 회사가 많이 있다. 몇몇 기업체를 예로 들면 CVI 레이저(Laser), 레이티온 케이택(Raytheon K-Tech), 허니웰(Honeywell), 굳리치(Goodrich), 노스롭그루만(NorthropGrumman),휼렛펙카드(Hewlett-Packard), 엠코(Emcore) 등이 있다.
교육[편집]
플래그십 주립대학으로 뉴멕시코 대학교 (University of New Mexico)가 앨버커키에 있으며 카네기 분류 R1에 해당한다. 그 외에 뉴멕시코 주립대학교 (New Mexico State University)가 라스 크루세스에 있다. 그리고 소코로에 뉴멕시코 광산공과대학 (New Mexico Institute of Mining and Technology)이 있다.
로스 앨러모스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요 연구기관이었던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가 있으며[26], 뉴멕시코 대학교와 가까이 샌디아 국립 연구소가 앨버커키에 위치한다. 또한 미합중국 공군 연구소 (Air Force Research Laboratory) 역시 앨버커키에 위치한다. 이렇게 대규모 국립연구소가 세 곳이나 한 지역에 몰려 있으며, 이 때문에 흥미롭게도 뉴멕시코가 인구당 박사학위 소지자가 전미에서 가장 높다.
해당 연구소들과 상기 대학교들과의 협업이 많으며 해당 학생들에게 인턴이나 포닥 등의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인구[편집]
국경 지대다보니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의 여러 지역들처럼 미국에서 히스패닉계 주민 비율이 높은데 2015년 기준 48%로 미국 주 중에서 히스패닉 비율이 가장 높은 주이다. 타 인종은 주로 영국계 미국인과 독일계 미국인인 백인은 38%, 아메리카 원주민 10.5%, 흑인 2.5%, 거의 중국인인 아시아인 2% 정도다.
다수의 멕시코계 미국인은 원래 이 주가 멕시코 영토였기에 예전부터 살고 있었던 곳에 계속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애초에 미국이 미멕전쟁 과정에서 합병한 멕시코 영토는 주로 독일계 멕시코인, 미국계 멕시코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진짜 원주민인 대부분 나바호 부족인 아메리카 원주민 역시 많다. 나바호 부족은 스페인에 동화되어 스페인어를 쓰고 가톨릭을 믿는다. 멕시코계 미국인 피에는 이 나바호 부족과 이웃 아나사지, 아파치, 치치멕 부족들의 피가 섞여있고 아즈텍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치치멕족이 아즈텍의 속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페인+멕시코, 영국+독일+스칸디나비아,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가 섞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 한 예로 스페인+멕시코의 영향은 주 이름과 정체성 자체, 그리고 멕시코 요리의 일종인 지역 토착요리들과 전통문화이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영향은 나바호족이 남긴 각종 문화유산들이며 영국계 미국인들은 스테이크 등 식문화를, 독일계 미국인들은 질 좋은 맥주를 이 지역에 소개했다.
관광[편집]
매혹의 땅이란 별명이 의미하는 그대로 관광 할만한 경치 좋은 국립공원과 내셔널 모뉴먼트가 많다. 내셔널 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는 미국의 유적 보호법에 의거 대통령이 지정한 국립공원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공원이다. 뉴멕시코주에는 내셔널 모뉴먼트가 11곳이 되어 미국에서 애리조나주 다음으로 모뉴먼트가 많은 주가 된다. 넓은 지역의 산과 숲이 국유림으로 관리되고 있어서 하이킹, 캠핑, 스키등 야외 리크리에이션을 즐길수 있는 곳이 많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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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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