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 학원가
중계동 학원가(中溪洞學院街)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은행사거리에 학원이 많이 들어서 있는 지역을 말한다.[1][2]
개요[편집]
중계동 학원가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형 규모 학원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국풍 2000, CMS, 학림학원, 토피아 학원, 세일학원, 알로곤학원, 미래탐구 학원 등이 있다. 사실, 개인의 이름을 건다거나 하는 영세 학원, 혹은 영세라기엔 좀 큰 우량학원들도 많다. 대형 규모의 학원들이 자리잡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은행사거리를 정복한 것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이 지역을 거점으로 성장한 학원으로 가장 대표적인 학림학원 같은 경우도 은행사거리를 정복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국풍 2000은 중계동이 본점으로 시작하여, 송파관, 목동관, 방이관, 밀락관 등 그 규모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친다. 어떤 학교든지 가리지 않고 등록할 수 있기에 경우에 따라서 교사와의 1:1수업도 가능하다. 여타 학원과 마찬가지로 학기 중에는 내신대비, 방학 동안에는 모의고사대비가 이루어지며, 정기적으로 주말 오전마다 학원 자체에서 집필한 모의고사 풀이도 진행된다. 또한 화상 시스템을 병행함으로써 주중에 학생들의 부족했던 부분들을 질의응답식으로 철저히 대비한다. 일단 학원 자체적으로 자료가 많다. 중계동 본점은 건물이 2개 존재한다.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활용하는 곳은 신아프라자 5~7층 총 3곳이 운영 중이며, 초등학생 리딩교육 및 화상수업은 바로 뒷 건물인 에덴프라자 5층에서 진행된다.
CMS의 경우에는 많이 오래되지는 않았다. 기존에는 알로곤과 비숫한 규모의 학원이었는데 2019 영재학교 입시가 대박을 치면서 2019년부터 원생수가 급증했다. 청구 상가의 사고력관, 영재 1관, 씨큐브 코딩, 스타벅스 건물의 영재 2관이 존재한다. 학림학원은 건물 한 층의 방 몇 칸 빌려서 차린 영세 학원이었다. 그런 작은 학원이 몇 년 사이에 옆 건물(그린코아B/D)로 대규모 확장하여 옮겨 운영하다가 목동의 하이스트(학원)와 더불어 유명한 학원가의 여러 학원들과의 연합으로 '타임교육'이라는 공동체가 되어 매우 커지고, 2009년 즈음에 학원 이름도 '하이스트'로 바꿨다가 2014년 즈음에 다시 학림학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참고로 초기 학림학원의 경영전략은 아직까지도 노원구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학교도 아닌 학원이 입학시험을 치러서 학생을 골라 받았다. 그 입학시험도, 학교 시험 성적이 일정 점수 이하인 사람은 치르지도 못했다. 대형 학원의 득세가 절정의 이르렀을 타이밍(정확히 이야기해서 신해철이 하이스트 광고출연을 맡게 된 타이밍)에서부터 대형규모 학원들의 거품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학부모와 학생들이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 과외식 학원에 수요가 몰리게 된다. 그런 이유로 현재는 은행사거리 대형 학원 3사(하이스트, 세일학원, 토피아)는 현재 차지하고 있는 건물 층수로만 따져도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알로곤학원은 2012년에 개원하여 개원한지 얼마 안됐지만 초4~중3까지의 꽤 넓은 학년대와 중등반의 경우 학년별로 거의 10개반이 존재, 10편에 가까운 셔틀버스 노선 등의 대규모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알로곤 학원은 토피아학원 영재교육반에서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떨어져나와서 설립한 학원이다. 알로곤 학원은 원광빌딩 9층에 위치해있다. 이 학원은 기이하게도 반의 등급에 상관없이 영재학교 대비 학생들에게 광주과고를 추천하는 것으로 유명하였으나 최근에는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합격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노원역과 더불어 노원구의 경제는 은행사거리의 학원이 먹여살린다 할 정도로 은행사거리는 노원구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리이다. 은행사거리 학원가로 인해 주변 아파트 가격이 준공 초기 입주 시에 비해 3배 이상 올랐다.
세일학원은 2001년 은행사거리에 '중계세일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진출했고(처음 진출했을 당시에는 원광빌딩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5년 후인 2006년에 중계 세일학원은 세일학원이 지어준 새로운 건물, 중계아카데미빌딩으로 이전하게 된다. 원래 중계아카데미빌딩 자리에는 어부 朴씨일명 어부 차씨라는 커다란 횟집이 있었는데, 그 횟집이 2004년경에 하계동 서울온천 맞은편으로 이사를 간 뒤, 나중에 횟집 건물은 철거되고, 그 터에 세일학원이 중계아카데미빌딩을 지은 것인데, 1층에 기업은행, 지하(1층)에 노원문고를 두어서 중계아카데미빌딩에 입주해있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들이 다 갖춰져 있다. 중계아카데미빌딩은 지하 2층, 지상 13층짜리 건물이다. 한때는 중계세일학원이 지상 2층부터 13층까지 차지했었는데, 은행사거리 대형학원의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하면서 중계세일학원도 2011년경부터 규모가 점점 축소되어 축소되고 남은 층에 여러 학원들이 들어오면서 지금은 중계세일학원이 빌딩 5층부터 8층까지만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중계아카데미빌딩이 지어질 당시에는 중계아카데미빌딩이라는 이름이 없었고 중계세일학원이 건물을 다 차지하니까 그냥 '세일인텔리전트프라자'라는 이름의 건물이었는데, 위에서 서술한대로 중계세일학원의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하고 여러 학원들이 들어오면서 건물 이름을 새롭게 중계아카데미빌딩으로 지은 것이다.
대형 학원 종합반(여러 과목을 모두 맡아 가르쳐 주는 반이다)은 방학 때도 아침까지 등원해야 하기 때문에 종합반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 등교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서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종합반에 다니는 학생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기 중에는 학교 끝나고 학교가는 기분이고 방학때는 방학같은건 증발한지 오래. 몇몇 공부 많이 시키는 학교들은 방학에도 보충수업 들으라고 학생들을 강제 등교시킨다. 은행사거리와 가까운 서라벌고등학교 뒷길에는 오후 10시가 되면 어째 승용차보다 학원 셔틀버스가 더 많이 다니는 기이현상을 볼수 있다 학원 끝나는 시간이 되면 버스철이란 소리는 농담이 아니다. 애들 태우려고 은행사거리 도로변에 셔틀버스 수십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심지어는 은행사거리 바깥쪽인 서라벌고등학교 옆길까지 버스가 늘어져 있을 정도이다. 당장 토피아학원의 버스만 서른 대가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야밤 은행사거리 도로변에 줄지어 서있는 학원 셔틀버스의 길이는 거의 은행사거리 기점에서 종점과 유사하다. 2021년부터는 동북선 경전철의 공사도 시작하면서 일부 차로가 막히는 바람에 더더욱 헬게이트가 되었다. 근처에 사는데 어쩌다 야근을 해서 22시쯤 근처에 도착할 경우 차라리 불암고 쪽으로 돌아서 접근하는 게 나을 정도. 특히 토피아 학원 건물 뒷길은 학원이 끝난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의 차들로 완전히 마비돼 버리며, 심지어 바로 앞에 있는 중계라이프신동아 아파트의 출입구를 점거할 지경이다.[3]
은행사거리[편집]
조선시대 때 이곳에서 자손들이 번창지 않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서 받아온 은행나무 가지를 심어다가 구릉 대감이라 부르며 모셨고, 그 결과 마을이 번창하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나무는 중계동 61-22번지에 있고, 이 나무 덕분에 이곳이 "은행마을"이라 불렸는데, 여기서 은행사거리라는 말이 유래한 것이다.
은행사거리 학원가[편집]
학원 은사점, 은사 3관 같이 사람들에게 은행사거리 하면 떠오르는 게 학원가라고 하듯이 은행사거리에는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학원가가 가장 유명하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주로 은행이나 병원, 사무실이 들어섰지만 그 후 1998년에 서라벌고등학교가 성북구 돈암동에서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전하여 몇년 후 본격적으로 학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참고로 서라벌고등학교가 중계동으로 이전한지 3년 쯤 됐을 때(2001년경) 재수학원을 전교생의 1/2 가량 보냈다. 은행사거리 학원가의 파워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지만 학교에선 절대 그런 얘기를 안하면서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선전한다. 하지만 서라벌고등학교의 명문대(특히 서울대) 진학률과 은행사거리 학원가는 별 상관없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일단 서라벌고등학교가 이전한 것은 1998년 3월이었기 때문에, 중계동으로 이전한지 약 3년 차였을 2001년 당시에는 아직 은행사거리 학원가가 현재처럼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학원가와는 별개로 서라벌고등학교 자체의 패기어린 수험생 관리 요령 역시 무지막지했는데, 상위권 학생들의 철저한 학습 관리를 명분삼아 주말에 안 놀고 공부하는지 감시하겠다고 불시에 학생이 사는 집에 쳐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전직 교감이 자신의 수필집에서 자랑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성북구에 있을 당시 주변 고등학교들보다 몇 레벨 앞서는 스파르타식으로 애들 굴리기로는 유명했다.
연세대학교 나 고려대학교 등 소위 명문대에서 공대나 의대, 법대 등 입결 높은 학과에 입학할만한 점수를 낸 학생들을 족쳐서 서울대학교의 농대(현 농업생명과학대학)나 철학과 등 입결 낮은 단위에 밀어넣는 기가 막힌 노하우도 한몫했다. 이 당시의 경우 서라벌고가 나름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로 알려지면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서울의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선택하는 학교 중 하나였고, 이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야자 강요' 라거나 '덮어놓고 서울대 밀어넣기' 등의 학교쪽 술책이 아주 잘 통했다. 오히려 중계동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학군제가 제대로 적용되면서 저런 미친 짓거리를 하기 힘들어졌고, 결국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전한 이후 서라벌고의 서울대 진학자 수는 동네에서는 좀 많은 편이라고 하지만 돈암동 시절보다는 명확하게 줄어든 상태이다. 즉 은행사거리 버프와 전혀 상관없던 성북구 돈암동 시절에 서울대는 더 많이 보냈다.
은행사거리 학원가의 형성과 서라벌고의 그럭저럭 괜찮은 명문대 진학률은 같은 원인에서 나타난 두 결과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규모 개발 이후 노원구 지역으로 이주한 학부모 세대들은 고도성장기의 후반부에 속하는 세대로써 '성적과 학벌이 곧 사회적 성공의 주춧돌이 된다(=좋은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직업을 얻어 돈을 잘 벌수 있다)'는 논리를 강하게 체득한 상태였기에 자기 자식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던 것. 이들의 지불능력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 바로 은행사거리의 학원가이다. 또한 앞에서는 중계동 이전 이후에는 서라벌고 교사들이 더이상 무식한 짓을 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좀 덜해진것 뿐이다. 예를 들어 주변의 다른 학교들은 전인교육을 이유로 야자를 중단하는 것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도 서라벌고는 꿋꿋하게 야자를 유지했지만 학부모들은 이런 학교의 행태에 반발하기는 커녕 오히려 환영하고 있었다. 밤 11시~12시에 야자가 끝나면 자식들을 데려가기 위해 직접 학교앞까지 차를 몰고 나온 학부모들을 보면 이들이 야간자율학습이란 제도를 기꺼이 지지하고 후원할 생각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서라벌고의 경우 교직원 교체가 별로 없는 사립학교라는 특징도 있어 돈암동 시대부터 축적되어온 아이들 쥐어짜는 노하우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고, 이 수법 중 일부만을 포기하거나 변화시키는 형태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여 성과를 얻어낸 것. 말하자면 은사 학원가와 서라벌고 야자는 같은 배경에서 탄생하여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두 '수단'이므로 서로 상관관계가 있고, 이 두 수단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정도의 관계라 볼 수 있겠다.[3]
교통[편집]
노원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불편하고, 서쪽은 편리하다. 7호선 기준으로 동쪽으로 갈수록 매우 불편하다. 서쪽은 동일로, 동부 간선도로,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위치해 매우 편리한 반면, 동쪽 지역에는 몇 개의 지선버스 노선만 있으며 이마저도 부족하여 1224번이나 1142번은 항시 가축수송, 빗자루 이용객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경전철 동북선이 이 지역을 통과할 예정이다. 다만 도심접근성은 중계4동이 매우 편리하다. 4호선 상계역 출구 중 일부가 중계4동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철도[편집]
- 중계역 - 서울 지하철 7호선
- 상계역 - 서울 지하철 4호선
주요도로[편집]
- 동일로 (3번 국도 : 당현1교~노원구민회관사거리)
- 덕릉로 (당현2교~당고개입구오거리)
- 한글비석로 (서라벌고교삼거리~상계역)[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